노벨상·전미비평가상·안데르센상…한강 신드롬에 주목받는 여풍
송고시간2024-10-13 09:08
최근 8년 국제문학상 3분의 2 여성…세계문학 흐름 아시아 女 언어에 주목
김혜순·정보라·윤고은, 작가군 탄탄…그림책 작가 백희나·이수지·한인 작가 이민진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강 작가가 한 시상식에서 전년도 수상자로서 제게 상을 준 적이 있어요. 그때 제 '스토리보드와 더미북(견본책) 같은 습작이 경이롭다'는 짤막한 편지를 써서 읽어주셨죠. 또래이기도 해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울컥하더라고요."
그림책 작가 백희나는 지난 10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제 일처럼 기뻐했다. 그는 2020년 세계적인 권위의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한강은 노벨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영감을 준 작가 중 한명으로 스웨덴 아동문학 작가인 린드그렌을 꼽았다.
백희나는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이라니, 정말 기뻤다"며 "꼭 남녀를 나누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여성 교육이 일반화된 게 몇십년 안 됐는데 짧은 시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게 대단한 일이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한강이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국내 출판계에서 신드롬급의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문학계는 최근 수년간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해외 유수 문학상에서 낭보를 전해 '포스트 한강'이 등장할지에 대한 관심도 받고 있다.
지난 12일 한국문학번역원 자료에 따르면 한강의 2016년 맨부커상 국제부문 수상을 시작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8년여간 한국 작가들은 국제문학상(만화상 포함)에서 31차례 수상했다. 이중 여성 작가의 수상은 한강, 김혜순, 편혜영, 손원평, 윤고은, 김초엽, 황보름 등 22차례로 3분의 2를 차지한다.
세계문학의 중심이 서구, 남성, 백인의 서사에서 아시아 여성의 언어에 주목하는 흐름과도 맞물려 이들의 활약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한다.
한강 외에도 노벨문학상 잠재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는 미국과 유럽에서 독자를 확보한 김혜순 시인이다.
김혜순은 2019년 '죽음의 자서전'으로 캐나다의 그리핀 시문학상을 차지했고 2021년 스웨덴의 시카다상을, 올해 '날개 환상통'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2022년에는 영국 왕립문학협회의 국제작가로도 선정됐다.
세계 시장에 각인된 30~50대 여성 작가군이 탄탄해진 점도 낙관적이다. 이들은 여성 서사에서 나아가 판타지, 추리, 과학소설(SF)까지 장르 다양성도 확보했다.
정보라는 굵직한 국제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소설집 '저주토끼'로 2022년 영국 부커상 국제부문과 2023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그는 SF와 판타지, 호러를 경계 없이 넘나드는 작품으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 장르 문학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윤고은은 2021년 '밤의 여행자들'로 영국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을 아시아 작가 최초로 수상했다. 같은 해 이 작품으로 SSF 로제타상, 영국&아일랜드 코미디 우먼 인 프린트상, 2022년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편혜영은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소설인 '홀'로 2018년 미국의 셜리 잭슨상을 받았다. 2019년 일본번역대상과 2020년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과 독일 리베라투르상 후보에도 올랐다.
SF 작가 김초엽은 비중화권 작가 최초로 중국의 양대 SF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2023년 중국 성운상 번역작품 부문 금상, 은하상 최고 인기 외국작가상을 받았다.
디아스포라(이산)의 역사를 다룬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로 확장하면 여성 파워는 더욱 거세진다.
이민진은 재일조선인 4대의 파란만장한 연대기인 '파친코'로 2017년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고, 2022년 이 소설이 애플TV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제2의 이민진'으로 불리는 김주혜는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되던 날, 데뷔작인 '작은 땅의 야수들'로 러시아 톨스토이 문학상 해외문학상을 받았다.
세계 아동문학계에선 이미 백희나와 이수지가 그림책 작가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두 상을 거머쥐었다. 백희나에 이어 이수지는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이수지는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동네책방 에디션 표지를 그린 인연이 있다. 한강은 이수지가 그림책 작가들과 공동 창작하는 '바캉스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심청'의 바다 그림 중 쓰지 않은 장면을 표지로 담았다. '심청'은 정식 출간된 책이 아니란 점에서 독자들은 한강의 넓은 관심사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10/13 09:0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