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의 유명 캐릭터 굿즈샵은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날인데도 한산했다. 3개층 총 350평 규모의 이 대형 매장은 평소 외국인 관광객과 2030세대 소비자들이 많이 찾아 한 때는 입장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북적이던 곳이다. 하지만 이날은 방문한 손님이 3개층을 통틀어 30여명에 불과했다. 매장 직원은 “작년에 비해 확실히 방문객이 줄었다면서 "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잠잠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올리브영 팝업스토어에서도 외국인 관광객 몇 몇이 예전처럼 싹쓸이하는 대신 신중하게 상품을 보다가 한두 개만 골라 계산했다.
고물가·고금리에 서민들의 지갑이 얇아진 가운데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더해지면서 소비 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이날 서울 시내의 주요 상권은 성탄절 분위기를 느끼려는 사람들로 북적댔지만 무료 체험이나 할인 행사가 있는 곳에만 몰릴 뿐, 실제로 매장에서 지갑을 여는 사례는 드물었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화점 2층.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해당 층은 올해 4월 리뉴얼 후 26개의 매장이 들어서 있었지만 손님은 6명뿐이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캐주얼 의류 매장 역시 ‘원플러스원’, ‘50% 할인’을 내걸었지만 손님 3명과 직원 2명뿐이어서 무인 매장을 방불케 했다. 그나마 명품 브랜드 중 루비이통 매장 앞에 6명 가량의 고객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10분만 기다리면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구찌·프라다·티파니 등에는 대기자가 없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 켠 뒤에 자리 잡은 몽클레어·발렌시아가·롤렉스 등 매장에는 사람이 없었다.
반면 건담 모형을 조립해 가져갈 수 있는 무료 체험 행사장은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로 가득했다. 게임 '젤다의 전설' 출시를 앞두고 연 무료 체험 역시 사전 예약한 고객만 입장할 수 있었지만 10~20대 고객들이 게임을 하거나 전시 상품을 구경했다. 자녀와 함께 쇼핑몰을 방문한 진 모씨(39)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사주려고 왔다가 건담 무료 체험 행사가 있다고 해서 와봤다”면서 “쇼핑몰은 신발이나 옷을 온라인으로 사기 전 착용해보는 용도로 올 뿐이고 실제 소비는 커피나 아이들 간식을 사주는 정도만 한다”고 말했다. 해당 백화점 근처의 노점상 주인은 닭꼬치와 핫도그만 쌓여 있는 텅 빈 가게를 가리키며 “장사도 안 되는데 물어보지 말라”고 말했다. 옆 가게는 아예 문을 닫은 상태였다.
크리스마스 때면 내외국인들이 몰리는 명동 지역의 상인들은 내국인 방문객 회복세가 더딘 가운데 외국인들마저 지갑을 열지 않는 점을 체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는 성 모 씨는 “최근 여러 국가 관광객들이 오고 있지만 이전에 중국인 여행자가 많았던 때에 비하면 숫자도 적고 소비력도 줄어든 느낌“이라면서 ”손님이 오더라도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토로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방한 중국인 관광객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올해 상반기까지 세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다 10월 54.4%, 지난달 37.3%로 낮아졌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에 대해 여행 주의를 발령했던 일부 국가들이 단계를 하향하고는 있지만, 아직 정치적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만큼 향후 여행객 증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탄핵 정국은 얼어붙은 내수에 찬물을 끼얹었다. 통계청의 빅데이터 통계인 나우캐스트에 따르면 이달 6일 기준 전국 신용카드 이용금액은 전주 대비 26.3% 급감했다. 연말 특수가 기대되는 12월 초의 신용카드 이용금액이 이처럼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업종별로는 오락 스포츠‧문화 분야의 카드 이용액이 전주 대비 6.7% 줄었고, 식료품‧음료 분야도 6.5%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소비자동향 조사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감지된다.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달보다 12.3포인트 하락했다.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년 3월(-18.3포인트)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황희진 한국은행 통계조사팀장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와 더불어 이달 비상계엄 사태가 지수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얼마나 빨리 해소되느냐에 따라 소비심리 회복 속도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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