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퇴임 직전에도 50%를 넘었다. 미국 언론들은 경제 호조 외에 선택과 집중, 국민과의 소통을 비결로 꼽았다. 많은 국정 어젠다 중 ‘오바마만의 레거시’를 남기는 데 정치적 자산과 개인적 역량을 집중했다는 것이다. 오마바는 국정의 우선순위에 대해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지가 ‘북극성’ 같은 지침”이라고 했다.
그는 오마바케어(의료보험 개혁)와 이민 개혁, 동성 결혼 합법화, 이란·쿠바와의 관계 개선 등 여러 성과를 남겼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이념·계층·인종에 따라 오바마 정책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하지만 오바마가 ‘담대한 희망’이라는 슬로건 아래 자신만의 비전을 정교하고 일관되게 추진했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는 주요 방송사의 오락성 토크쇼에만 20회 이상 출연해 특유의 자학 유머로 좌중을 웃기면서 정책 홍보의 수단으로 삼았다. 오마바케어 홍보 동영상을 찍을 때는 직접 출연해 거울 앞에서 혀를 내밀고 총 쏘는 시늉을 하는 등 망가지는 모습도 불사했다. 오바마는 ‘코미디 최고 사령관’이자 ‘슬픔의 사령관’으로도 불렸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 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의 장례 예배에 참석했을 때는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를 선창하며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용서와 화합을 호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임기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국정 지지율은 10%대로 추락했고 ‘명태균 씨 녹취록’ 파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처지에 몰렸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집권 가치는 뿌리째 흔들린 지 오래다. 취임 이후 여러 악재들이 발생했지만 지지율 하락이 필연적인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 때 야당과 정치적 공방을 주고받을 게 아니라 유가족을 위로하고 국민들과 슬픔을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우리 국민들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선진 국민’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가장 싫어하는 지도자 유형 중 하나가 오만하고 독선적인 리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라는 상징 자본에 힘입어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지만 화난 얼굴로 불통의 모습을 보이는 순간 국민들이 등을 돌리면서 탄핵으로 이어졌다.
오바마는 재임 기간 중 가장 역겨웠던 순간으로 6~7세 어린이 20명이 희생된 샌디 훅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미국총기협회(NRA)의 반대로 총기 규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때라고 회고했다. 그는 “미국 국민들이 ‘이건(총기 참사는) 정상이 아니야. 우리는 바꿀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때까지 총기 규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자신은 미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지만 결국 모든 선택은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지금 연금·노동·교육·의료 등 4대 개혁은 구호만 무성할 뿐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개혁의 방향조차 모르겠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런데도 윤 대통령은 “개혁에는 반드시 저항이 따른다”며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소신대로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것이지만 여소야대 구도에다 국민 지지율마저 낮은 상황에서 공허하게만 들린다.
구조 개혁은 이해 당사자들의 희생을 동반한다. 윤 대통령은 개혁을 하지 않아서 인기가 없는 게 아니라 국민 신뢰가 떨어져 개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아무리 지지율이 높더라도 대통령부터 야당·시민사회 등과 소통하면서 정교한 정책을 펴지 않으면 개혁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윤 대통령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여러 개혁 과제 중 하나만 성공시키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7일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낮은 지지율은 국민들의 경고장이다. 이번에도 ‘마이웨이’를 고수하며 김건희 여사 문제 등에 대해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지지율은 더 하락할 것이다. 일회성 사과로 끝나지 않고 국정의 전면적인 쇄신이 뒤따라야 한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자기 살길 바쁜 여당 의원들부터 등을 돌릴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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