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5세의 나이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역대 최연소 챔피언에 오른 리디아 고(27·하나금융그룹)는 이듬해 캐나다 여자오픈 2년 연속 우승으로 첫 승이 ‘깜짝’이 아니었음을 세상에 알렸다. 최종일 전반이 끝났을 때 이미 2위와 5타 차였고 결국 5타 차로 압승했다. 2013년 8월 26일(이하 한국 시간)의 일이다.
정확히 11년이 지난 26일 리디아 고가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AIG 여자오픈(총상금 950만 달러)에서 우승했다. 스코틀랜드의 ‘골프 성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파72)에서 역대 세 번째로 열린 대회라 더 뜻깊었다. 이달 11일 파리 올림픽 금메달로 LPGA 투어 명예의 전당 입회 조건을 충족했는데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 속에 들어갔다. 11년 전의 리디아 고는 뿔테 안경에 덧니가 귀엽던 아마추어 학생이었는데 지금의 그는 성숙한 여인이 돼 갤러리로 응원한 남편과 우승의 감동을 나눴다. 2019년을 전후로 한 오랜 슬럼프를 딛고 다시 전성기를 연 그는 “동화 속에 사는 기분”이라며 감격해했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4위로 4라운드를 출발한 리디아 고는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언더파 69타를 쳤다. 버디 3개를 후반에 집중하며 완벽한 역전극을 썼다. 최종 합계 7언더파 281타. 2위 그룹의 4명을 2타 차로 제친 리디아 고는 우승 상금 142만 5000달러(약 18억 9500만 원)를 받았다. LPGA 투어 우승은 올해 1월 힐튼 대회 이후 7개월 만으로 통산 21승째다. 메이저 우승은 8년여 만에 3승째. 전체 5개 메이저 중 3개를 정복했다.
리디아 고는 끝에서 오른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4번 홀(파4)의 절묘한 7m 버디로 선두를 2타 차로 추격했다. 14번 홀(파5) 웨지 샷을 핀 앞에 잘 떨어뜨린 뒤 3m 버디를 잡으면서는 선두 넬리 코르다(미국)를 1타 차로 압박했고, 3명의 공동 선두 중 한 명이던 18번 홀(파4)에서 2m 버디를 잡아 단독 선두로 먼저 경기를 마쳤다. 이후 디펜딩 챔피언 릴리아 부(미국)의 마지막 홀 중거리 버디 퍼트가 홀에 못 미치면서 리디아 고의 우승이 확정됐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린 여자 메이저 대회 우승자는 2007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2013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에 이어 리디아 고가 세 번째다. 골프의 고향에서 이룬 우승이 커리어에서 몇 번째로 소중하냐는 물음에 리디아 고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만큼 어려운 질문”이라며 웃었다.
리디아 고의 시아버지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 “올림픽, 명예의 전당, 세인트앤드루스. 가족들은 한 달 동안 계속 연타를 맞아서 멍한 상태. 드라마도 이러면 과한 건데”라는 글을 올려 며느리의 최근 업적을 놀라워했다.
2위와 1타 차의 단독 선두로 출발한 신지애는 2타를 잃어 5언더파 공동 2위로 마감했다. 12년 만의 이 대회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36세 나이에도 링크스 코스의 강풍을 뚫고 우승 경쟁력을 확인하면서 감동을 줬다. 신지애와 동갑인 LPGA 투어 통산 7승의 김인경은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김인경은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항상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 골프를 통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14번 홀(파5)에서 더블보기를 범한 세계 랭킹 1위 코르다는 신지애, 부, 인뤄닝(중국)과 공동 2위에 올랐다. 코르다는 한 시즌 5대 메이저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 주는 롤렉스 안니카 메이저 어워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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