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충북 증평의 작은 절 미륵사. ‘댕플스테이’에 참여하기 위해 반려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강아지들은 저마다 승복을 입고 염주를 찬 모습이 영락없는 동자승이었다. 조용한 절 분위기를 눈치라도 챈 듯 좀처럼 날뛰거나 까부는 법이 없었다. 몸무게가 2.4㎏에 불과한 두살배기 반려견 ‘새봄이’는 맞는 승복이 없을 정도로 몸집이 작아 핀으로 옷을 집어야 했다. 한 참가자는 “도심 속에서 생활하던 우리 강아지에게는 잔디밭 밟을 기회가 소중했다”고 말했다.
미륵사엔 사찰과 속세의 경계를 구분짓는 ‘일주문’이 없다. 다른 절과는 달리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 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미륵사의 한 수행자는 “참가자들이 이곳에 오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이 일주문을 지나온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 절 주지인 정각 스님이 반려견을 동반한 템플스테이를 시작하자는 한국관광공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강아지 ‘화엄이’와의 인연과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 때문이다. 계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각 스님은 “화엄이가 어느날 갑자기 미륵사에 와서 1층 싱크대 밑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고 첫 만남을 회상했다. 이후 화엄이는 이 절 수행자들의 도반(함께 불법을 수행하는 벗)이 됐다. 정각 스님은 “청각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으로 듣는 화엄이를 통해 많은 것을 공부하게 된다”면서 “반려견은 여러분(참가자들)보다 마음이 훨씬 더 넓다”고 했다.
댕플스테이는 참가자와 반려견이 사찰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시작된다. 스님과 함께 사찰 곳곳을 둘러본 뒤, 소원지를 만들고 108배를 체험하는 활동도 여느 절의 템플스테이와 다름이 없다. 연꽃잎을 종이컵에 이어붙여 등을 만들 때 쓰는 풀은 강아지가 먹어도 무해한 밀로 쑤어 만들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은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증평군 및 스타트업 ‘반려생활’과 함께 기획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반려동물 양육 가구를 겨냥했다. 지난 5월 시작돼 연말까지 매월 1회씩 열린다. 양수배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장은 “전국 1500만 반려 인구가 함께 다니면 국내 관광 활성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며 “이런 프로그램을 전국 단위로 확대시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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