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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막장 ‘예산 드라마’를 멈춰라

서일범 경제부 차장

준예산 편성 공포에 정부·여당 결국 양보

선진국은 예산편성에 행정부 권한 존중

野 이만하면 자존심 세우지 않았나





법정 기한을 21일이나 넘긴 여야의 예산안 ‘막장드라마’는 야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표 정책인 지역사랑상품권 부활을 위한 예산이 3525억 원 편성됐고 정부 경제팀이 총력전을 펼쳤던 법인세 최고세율 3%포인트 인하도 구간별로 1%포인트씩 찔끔 인하되는 데 그쳤다.

그나마 금융투자소득세는 2년 유예됐지만 주식양도세 10억 원 대주주 기준은 기존대로 유지돼 당초 의도한 정책 효과는 거두기 어렵게 됐다. 국정을 책임지는 것은 결국 정부와 여당인데 예산안은 야당이 입맛대로 휘두른 주객전도가 일어난 셈이다.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던 예산안 전쟁이 정부 여당의 패배로 끝난 배경에는 ‘준예산’ 편성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고 한다. 준예산은 국회가 법정 회계기준일인 1월 1일까지 예산안을 확정하지 못할 때 전년 예산에 준하는 최소 예산으로 국가 재정을 집행하는 조치다. 가계에 비유해 보면 월세나 보험료 같은 고정비용은 그대로 지출되지만 병원비나 경조사 비용과 같은 미리 예측하기 힘든 비용은 지출이 전부 중단된다는 의미다.



단순히 지갑을 닫는 정도의 문제라면 당정으로서도 조금 더 버텨볼 여지가 있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사실 따로 있었다. 바로 준예산이 불러올 금융시장 대혼란이다. 강 대 강 대치가 며칠만 더 진행돼 그대로 2023년이 오면 전 세계 주요 외신들은 ‘한국 정부 폐쇄(shut down)’라는 제목의 긴급 기사를 전 세계에 타전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준(準)예산이라는 점에서 정부 폐쇄와는 다르다고 반론할 수 있을지 모르나 또박또박 공무원 월급이 나간다는 점을 빼면 2013년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 사태나 한국 준예산 사태나 별로 차이가 없다.

갈 곳을 찾아 헤매는 전 세계 투기 자본에 ‘셧다운’ 신호는 곧 ‘공격 개시’ 신호와 같다. 불과 석 달 전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촉발한 파운드화 폭락, 신용등급 전망 강등과 같은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졌을 것이라는 의미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살얼음판 같은 금융시장에서 도박을 걸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치권이 갈수록 양극단화하고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기회에 예산안 제도 자체를 뜯어고칠 필요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 헌법은 행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국회가 일방적으로 깎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언제든 야당이 마음만 먹으면 정부의 경제정책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구조다. 반면 대다수 선진국들은 행정부를 존중하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국회의 예산안 의결에 맞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고 영국은 의회가 정부 예산안을 수정할 경우 의회 해산과 총선이 자동 진행된다. 또 프랑스 역시 의회가 일정 기간 예산안을 의결하지 않으면 행정부 명령으로 예산을 확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판정승을 거둔 야당도 내년부터는 더 이상 발목 잡기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중에는 내년 우리나라가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곳이 나올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시한 각종 개혁도 그나마 우리 경제에 체력이 남아 있을 때 서둘러야 한다. 이만하면 169석어치 자존심은 세운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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