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유가 잡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정유 회사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감시하는 한편 주요 석유 소비국에 비축유 방출까지 요청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이 빨라질 수 있다며 부동산·주식·암호화폐 등 과열된 자산 시장에 대한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예상보다 이른 긴축 정책이 유동성 장세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美, ‘물가 잡기용’ 기업 때리기
17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바이든 미 대통령은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정유 회사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바이든은 리나 칸 FTC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정유 제품 가격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휘발유 소비자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며 “정유 회사의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해달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날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인도·일본 등 주요 석유 소비국에 비축유 방출도 요청했다. 산유국들이 증산 요구를 거부한 상황에서 각국을 압박해 비축유를 방출하게 함으로써 국제 유가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이다. 특히 중국은 바이든의 요청을 받은 다음 날인 18일 “비축유 방출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측은 "방출량과 시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적절한 시기에 웹사이트에 공개하겠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미국의 요청에 응했다는 분석이다.
이미 바이든은 물가 잡기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뒀다. 최근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바이든은 1조 7,000억 달러 규모의 사회복지예산안 처리와 내년 11월 중간선거 등을 앞두고 있어 국정 운영의 성패가 물가 안정에 달렸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자동차를 많이 타는 미국인에게 휘발유 가격은 체감지수가 높아 유가 상승에 대한 소비자들의 민감도가 유난히 크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준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41달러로 1년 전(2.12달러)에 비해 60% 넘게 뛰었다.
자산 거품 우려도 점점 강해져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시장의 탐욕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도 많아졌다.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유동성에 기댄 자산 시장의 거품이 꺼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지난 40년간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탐욕이 공포를 훨씬 앞지른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이 그렇다”며 “향후 금리 인상을 고려하면 이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전설적인 채권투자자 빌 그로스 핌코 창업자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각국의 전례 없는 돈풀기 정책이 투자자들을 ‘꿈의 나라’에 빠지도록 만들었다”며 현재 자산 시장은 낮은 금리에 힘입어 유동성으로 지탱되는 비정상적인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주택 시장과 주식, 암호화폐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전날 ECB는 2년마다 실시하는 금융안정성 검토 보고서에서 “기업과 공공 부문의 부채 수준 증가와 더불어 신용·자산·주택 시장 활황에 대한 우려가 특히 크다”며 “물가 상승과 실질금리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수익률을 쫓아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부동산·주식·암호화폐 시장이 투기판이 됐다"고 경고했다. ECB는 고물가가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급격한 시장 조정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신용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로존 10월 CPI, 13년만에 최고
당초 인플레이션이 내년 이후 점차 완화될 것으로 예상해 내년에는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던 ECB가 태도를 전환한 셈이다. ECB는 “최근 글로벌 공급망 문제, 에너지 가격 급등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더 오래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4.1% 올라 2008년 7월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컸다. EU의 2분기 주택 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7.3% 상승해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이후 가장 빠르게 올랐다. CNBC는 “ECB가 2023년 전에 금리 인상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 중앙은행도 다음 달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0월 CPI가 전년 동기 대비 4.2% 급등하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CNN은 “영국의 경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의 영향으로 더 많은 생산 비용이 든다”며 “중앙은행이 다음 달 주요국 가운데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