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말 민관군 병영혁신위원회가 권고사항으로 제안했던 군 복무 학점인정제가 최근 국방부의 공청회를 계기로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군 복무 학점인정을 반대하는 측은 대체로 이 문제를 이미 위헌 판결이 난 군 가산점제의 변형, 즉 국방부의 ‘꼼수’로 인식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주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거나 사회적 논란을 가중시킬 무리한 주장이라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는 본질적으로 다양한 외부의 학습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이른바 ‘경험학습 인정’의 문제다. 군 복무의 경험을 제도의 틀 내에서 대학의 학점으로 인정하는 것이 합당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반론의 핵심이 되는 두 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논의해보고자 한다.
우선 군 복무 경험이 대학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른 것이어서 이를 학점으로 인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평생학습 시대를 맞아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학습을 학력으로 인정하는 것이 사회적 추세다. 지금도 여러 대학에서는 사회봉사 활동, 해외 어학연수 및 외부 시험으로 인정받은 성적 등을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3년 이상 직업에 종사한 개인은 재직 중 경험과 학습 결과만 가지고도 별도 추가적인 수업 없이 학사학위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 군의 경우 ‘경험학습’은 군 생활 전체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집을 떠나 단체생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제력과 리더십을 함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군사 교육훈련을 제외하더라도 유명인사 초빙특강, 재해재난에 따른 구조활동, 양로원 및 어린이집 봉사, 독서 코칭을 통한 자기계발 학습, 인성교육 등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교양과목의 범위가 워낙 넓기 때문에 단결력과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군사훈련을 대학의 학점으로 전환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교육학자들이 있다. 또 실제로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군 복무 중 이뤄지는 학습은 20~27학점으로 환산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럼에도 대학교육이 지향하는 가치, 교양교과의 교육목표를 고려할 때 군 복무 경험학습이 이에 부합하고 있는지는 전문가의 검토가 필요하고 앞으로 많은 논의를 통해 보완돼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봉사활동 등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개별대학의 광범위한 사례를 볼 때 유독 군의 학습에 대해 교양교과의 방향과 부합하지 않다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그 잣대가 너무 협소하고 적용이 엄격하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이미 군 복무 경력과 경험을 학점이나 자격으로 인정하는 것이 체계화돼 있다. 인디애나주립대는 최근 한국인 유학생이 제출한 한국군 복무 경력만을 가지고도 체육과 리더십에서 각각 3학점씩 6학점을 인정한 바 있다.
둘째, 여성 및 장애인 등 군 면제자와 고졸의 군 장병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차별이며 형평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 또한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21개월의 군 복무를 위해 통상 2~3년의 학업중단을 경험해야만 하는 약 80%의 군 장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성 및 장애인 등 특정대상에 대한 차별정책이 아니다. 물론 18%에 달하는 고졸 이하 장병과 약 2%인 대졸 장병에 대한 지원방안은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검정고시 지원을 보다 확대하고 군 복무 경험을 ‘학점은행제’에 등록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로를 끌어내리는 하향 평준화’가 아닌 수준을 높이는 상생의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6학점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군 복무 학점인정제는 조기졸업으로 인한 대학의 재정 손실을 발생시키지도 않을 뿐더러 개별대학의 선택에 따라 자율적으로 시행할 경우 대학의 자율권을 훼손한다고 볼 수도 없다.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무엇보다 군 복무 학점인정의 가능성과 타당성은 충분히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1개월의 군 복무 기간은 인생에서 그 어떤 시기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군 면제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처해지는 전역장병 복학생에게 잃어버린 21개월의 복무기간을 6학점의 ‘여유’로 돌려주고 이를 통해 부족했던 취업 준비 등 생산적 활동에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는 오히려 사회적 형평성을 높이는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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