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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산 훈장, 죽은 훈장

훈장이라면 가슴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휘장이 연상된다. 나라와 사회의 공로자에게 수여하는 것이 훈장이므로 남한테는 자랑이 되지만 잘못하면 저 잘난체하고 뻐기는 데 오용될 수도 있다. 명예와 권위의 상징인 훈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적은 반면 그것을 둘러싼 화제는 적지 않다. 70년대 초, 15년 간의 군대생활을 청산하고 의과대학에 진학한 38세의 노병만 학생이 11개의 훈장을 팔겠다고 내놓아 화제를 뿌린 일이 있다. 그는 등록금 8만원이 없어 제적당할 처지에 있다면서 『녹슬어 가는 훈장의 영광만으로는 살아갈 길이 아득하다』고 말했다.훈장은 흔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속성을 가졌다. 11대 국회 말에 국회의원들이 연금문제와 함께 주요정당 간부들의 훈장품신을 거론했던 웃긴 일도 있었다. 88년 2월에는 임기를 불과 열흘 정도밖에 남기지 않은 국무위원들이 제 손으로 제 가슴에 훈장을 달자는 의도를 드러내 물의를 빚은 사건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공적 내용보다 정치적 지위에 따라 훈장등급이 매겨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문화방송이 80년대 말 6·25특집으로 제작한 「살아있는 훈장」은 6·25 영웅 김병환씨의 고통과 회한에 시각을 맞춘 것이 특징이었다. 모두 130명의 인민군을 사살했다는 김씨는 6·25전장은 인간도살장이었다며 훈장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았다. 6·25는 많은 사람에게 죽음을, 살아남은 몇 사람에게는 훈장이라는 침묵을 남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자필드하키 전 국가대표선수 김순덕씨의 훈장도 「살아있는 훈장」이 아니고 『쓰레기에 불과한 훈장』일 뿐이다. 화성 씨랜드 참사로 아들을 잃은 그에게 정부는 판이한 두 얼굴을 가진 존재로 보임에 분명하다. 하나는 그에게 체육훈장 맹호장과 국민훈장 목련장을 달아준 위선적 존재요, 하나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인권을 올바로 지켜주지 않는 정나미 떨어지는 존재이다. 대통령은 조문사에서 어린 생명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고 총리는 김순덕씨의 훈장반납 및 이민결심을 철회하라고 종용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국민을 무시하는 나라에선 살기 싫다』는 모정의 분노가 커다란 공감대를 이루므로 「정치적 수사」는 메아리 없는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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