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이 나라 전체의 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오래됐지만 이제 아예 역류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생산활동을 통해 획득한 소득의 실질구매력을 나타내주는 국내총소득(GDI) 성장률이 27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수출 등으로 실컷 돈을 벌어봤자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값이 워낙 많이 올라 해외로 나간 돈이 더 많아진 탓이다. 호주머니는 채워지지 않고 물가는 4%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보니 국민의 '체감 고통지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은행이 27일 내놓은 '2011년 1ㆍ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GDP는 1ㆍ4분기에 전기 대비 1.4% 성장하면서 전년 동기보다 4.2% 늘었다. 수출이 반도체와 및 전자부품ㆍ자동차 등의 호조에 힘입어 전 분기보다 3.3% 늘었고 전년 동기 대비로는 16.8% 급증하면서 성장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수출과 달리 내수는 역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건설투자는 -6.7%를 기록해 "외환위기 이후 최저이고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수준(김영배 한은 경제통계국장)"까지 추락했다. 설비투자도 전년 동기에 비해서는 12.0% 늘었으나 반도체 제조용 기계투자를 중심으로 전 분기에 비해서는 0.8% 감소했다. 민간 소비는 승용차와 영상음향기기 등의 내구재가 많이 늘어나 전기 대비 0.5%, 전년 동기 대비 3.0%가 증가했는데 아주 나쁜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족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래도 GDP가 성장한 만큼 국민 호주머니 사정이 따라가주기만 한다면 괜찮은데 심각할 만큼 성적이 좋지 않았다. 실질 GDI는 전 분기에 비해 0.6% 감소했다. 똑같이 1,000원을 갖고 있더라도 전 분기에 비해 구입할 수 있는 양이 60원 적어졌다는 뜻이다. 실질 GDI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8년 4ㆍ4분기 -0.6% 이후 처음이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1.6% 성장하는 데 그쳤다. 교역조건이 전기 대비 -3.6%를 기록하면서 2008년 3ㆍ4분기(-4.9%) 이후 가장 안 좋아진 데 따른 것이다. 교역조건은 수입가격지수에 대한 수출가격지수를 산출한 것. 수출가격은 떨어진 반면 수입 가격은 상대적으로 올라가면서 수출입 조건이 악화됐다는 의미다. 지난해 1ㆍ4부터 4ㆍ4분기까지 (전기 대비) -0.9%, -0.4% -0.2%, -0.4%였던 것을 감안하면 하락폭이 훨씬 커졌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실제로 주력 수출상품인 반도체는 -10.3%, LCD 등은 -12.2% 등으로 가격이 떨어진 반면 원유(21.1%), 비철금속류(17.4%) 등 원자재 가격은 크게 올랐다. 김영배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유가가 현 상태를 유지한다면 더 이상 교역조건이 크게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지만 기름값이 떨어진다고 확신할 수 없는 점을 생각하면 국민 호주머니 사정이 2ㆍ4분기 이후에라도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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