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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자'와 함께 작품으로 영원히 사는 권진규 [아트씽]
    '선자'와 함께 작품으로 영원히 사는 권진규 [아트씽]
    작가 2024.05.27 10:00:00
    2010년 7월 무더운 여름날 필자를 비롯한 무사시노미술대학교의 미술사학과 박형국 교수, 조각과 쿠로가와 히로다케(?川弘毅)교수, 사진담당 이정훈 일행은 뉴욕 브룩클린에 사는 이선자를 만나러 갔다. 이화여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이후 조각을 배우고 싶었던 선자 학생은 1966년부터 1967년 미국으로 유학하기 전까지 권진규에게 조각을 배웠다. 당시 권진규는 재료를 구입해 선자 학생과 같이 나눠 사용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상황은 권진규가 스승이었던 시미즈 다카시로부터 조각칼을 받았던 것처럼 권진규는 선자 학생에게 조각칼을 선
  • 그 곳에 우리가 있었다…노기훈이 사진으로 살려낸 도시의 생명력 [아트씽]
    그 곳에 우리가 있었다…노기훈이 사진으로 살려낸 도시의 생명력 [아트씽]
    작가 2024.04.30 16:29:50
    노기훈의 ‘옐로 데이스’는 고향 구미를 오랫동안 촬영한 작품이다. 작가는 구미 시의 핵심이 공단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도시구조와 역사를 바탕으로 그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주목했다. 구미의 도시계획과 발전 양상은 공단의 형성과 산업의 변화와 동일시되는데 작가가 2010년대 전후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도시민의 70% 이상이 30대 이하 젊은 층이면서 남녀 성비에 있어서는 여성 비율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작가의 친구 대부분은 여자 친구들이었고, 그들은 성인이 되어 무엇보다도 익숙한 구미
  • 그림값만 300억원 웃도는 김창열·이우환의 '거장전' [아트씽]
    그림값만 300억원 웃도는 김창열·이우환의 '거장전' [아트씽]
    작가 2024.04.09 16:41:40
    #툭 치면 후두둑 떨어질 것만 같은 물방울 수백 개가 캔버스에 알알이 맺혔다.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1929~2021)의 1978년작 ‘Water Drop No.2M’. 폭 228㎝에 길이 182㎝의 대작인 이 그림은 2012년 11월 국립 대만미술관에서 열린 김창열 개인전 출품작이었고, 전시 이후 대만 컬렉터의 소장품이 됐다. 딱 10년 뒤인 2022년 5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나온 이 작품은 705만 6000홍콩달러(수수료 제외), 한화로 약 12억원에 낙찰됐다. #블루칩 작가 이우환(87)의 대표 연작 ‘점으로부터
  • '길버트와 조지'는 왜 작품을 격자로 쪼갤까? [아트씽]
    '길버트와 조지'는 왜 작품을 격자로 쪼갤까? [아트씽]
    작가 2024.03.26 16:50:30
    여기, 작품이 된 작가가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길버트 프로쉬(81)와 영국 태생의 조지 패스모어(82)다. 두 사람은 각자 미술대학에서 공부한 후, 1967년 런던의 세인트 마틴 미술학교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동성애 커플임을 공표한 이들은 둘이지만 하나의 작가로 살기로 했다. 1969년에 졸업을 하고 본격적인 작가 듀오로 활동한다. 야심은 컸으나 여건은 빈약했다. 돈도, 후원자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뿐. 스스로 작품이 된 ‘길버트와 조지’ 두 사람은 스스로 ‘살아있는 조각’이 되기로 결심한다. 1970년작 ‘노래하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국경 초월한 글로벌 예술인으로..이젠 그를 놓아줄 때다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국경 초월한 글로벌 예술인으로..이젠 그를 놓아줄 때다
    작가 2019.10.18 17:42:17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한국이 낳은 가장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을 설명하는 수식어가 고작 이뿐이란 말인가. 서울경제가 지난 3월 시작한 기획연재 ‘인간 백남준을 말하다’는 이 같은 반성적 질문에서 시작됐다. 특히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는 신화화, 박제화 된 백남준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백남준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했다. 백남준의 활동을 재구성하기 위해 그와 20년 가까이 협업한 엔지니어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를 비롯해 1990년대 전성기 백남준의 한국 쪽 전담 갤러리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피아노파괴 퍼포먼스서 TV로봇까지...예술혼, 영원히 남다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피아노파괴 퍼포먼스서 TV로봇까지...예술혼, 영원히 남다
    작가 2019.10.11 17:39:45
    100년, 300년, 1만 년 후의 삶을 내다본 백남준(1932~2006)이었지만 인생은 유한했다. 대신 작품이 남아 작가를 기억하게 한다. 기획 연재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의 마지막 편에서는 백남준의 시기별 대표작을 살펴보고자 한다. 백남준은 일본 유학시절에 음악에 심취했고 ‘아놀드 쇤베르크 연구’로 논문을 쓰고 1956년 동경대를 졸업했다. 독일로 건너갈 때만 해도 피아노와 작곡 등에 관심이 많았으니 그의 지향점은 음악인 듯했다. 당시 독일 전위예술의 핵심지던 다름슈타트라는 도시에서는 ‘국제 현대음악 하기강좌’라는 행사가 열렸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전 세계 누빈 천재예술가...마지막 길까지 한편의 퍼포먼스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전 세계 누빈 천재예술가...마지막 길까지 한편의 퍼포먼스
    작가 2019.10.04 14:26:11
    백남준은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기도 했지만 추위에 더 취약했다. 특히 배가 차면 맥을 못 췄다. 그래서 배를 감싸는 복대를 두르곤 했다. 기록으로 남아 전하는 백남준의 전시 준비 사진에서는 복대 맨 그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출장길에 복대를 챙기지 못했을 때는 신문지로 배를 감싸기도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백남준은 혹독한 뉴욕의 겨울을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종종 따뜻한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에서 겨울을 나곤 했다. 지난 1984년 마이애미 공항 확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가 비디오작품 설치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비디오 이후의 예술...레이저로 쏘아올린 '천상의 세계'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비디오 이후의 예술...레이저로 쏘아올린 '천상의 세계'
    작가 2019.09.27 11:10:09
    백남준은 뇌졸중 후유증에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하게 됐지만 새로운 세기는 그를 또 불러냈다. 실은 백남준 그가 가만있지 않았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뉴욕근현대미술관(MoMA)·휘트니미술관과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구겐하임미술관이 2000년 2월 11일에 ‘백남준의 세계(The Worlds of Nam June Paik)’라는 제목의 대규모 회고전을 개막했다. 밀레니엄 시대를 여는 첫 기획전으로 백남준을 택한 것이다. 아시아인이 구겐하임에서 개인전을 연 것도 백남준이 처음이었다. 백남준이 이 전시를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자정부터 시작된 창작고통…아방가르드 TV가 꺼졌다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자정부터 시작된 창작고통…아방가르드 TV가 꺼졌다
    작가 2019.09.06 11:42:10
    “아방가르드(Avant-garde·혁신적 경향의 전위예술)는 마르셀 뒤샹이나 존 케이지처럼 여든 이상은 살아야 빛을 볼 수 있어. 그래서 나도 80살까지는 살아야 해.” 백남준은 환갑을 앞둔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대규모 회고전 ‘백남준 비디오때·비디오땅’ 전시를 위해 서울에 머물던 중 존 케이지(1912~1992)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케이지는 음악의 영역을 확장시킨 전위적 현대음악가로, 백남준이 ‘스승’으로 꼽는 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독일로 간 백남준이 행위예술가이자 미술가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비디오아트 다음은 인포아트"...20년 앞서 예술 미래상 제시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비디오아트 다음은 인포아트"...20년 앞서 예술 미래상 제시
    작가 2019.08.30 13:07:40
    백남준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신문부터 찾는 ‘신문 중독자’로 유명했다. 일어나는 시간은 10시쯤으로 느지막했으나 뉴욕타임즈(NYT),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샅샅이 읽었다. 몇 가지 빠진 신문이 있으면 조수들에게 “오는 길에 신문 좀 사 오라”고 당부했다. 독일신문 슈피겔지 등 외신과 한국신문까지 챙겼다. 스튜디오 근처 신문가판대 주인은 백남준이 온다 싶으면 민첩하게 신문들을 한 부씩 뽑아두곤 했다. CNN 같은 보도 전문채널을 항상 켜두고 있었으며, 월가의 주가지수까지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앞으로의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광주 고인들을 위한 고인돌 만들어야지"…경계를 넘어 CF찍다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광주 고인들을 위한 고인돌 만들어야지"…경계를 넘어 CF찍다
    작가 2019.08.23 13:11:18
    백남준이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대규모 회고전 때문에 평창동 올림피아호텔에 묵고 있던 1992년의 어느 날이다. 한국 현대조각의 1세대 작가인 조각가 김영중(1926~2005)이 백남준을 찾아왔다. 그는 광화문광장 앞 세종문화회관 외벽의 대리석 부조 ‘비천상’을 제작했고, 독립기념관의 ‘강인한 한국인상’ 등으로 유명한 작가다. 1만㎡ 이상 대형 건축물이 의무적으로 건축비의 일정 부분을 미술품 설치에 쓰도록 한 일명 ‘1% 법’을 제안한 이도 그다. 판을 크게 보고, 멀리 본 사람이었다. 전남 장성 태생이지만 광주지역에 뿌리를 두고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鐵의 강인함·풍요로움을 형상화...'TV나무'는 아내의 유작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鐵의 강인함·풍요로움을 형상화...'TV나무'는 아내의 유작
    작가 2019.08.16 11:52:25
    지난 1995년 완공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포스코센터는 순수 국산기술로 지어진, 우리나라 1세대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주목받았다. 유리와 철강으로 이뤄진 이 모던하고 화려한 건물의 또 다른 볼거리는 곳곳에 설치된 미술작품들이다. 공공미술 활성화를 표방한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연면적 1만㎡가 넘는 건물의 경우 건축비의 0.7% 이상을 미술장식품으로 설치해야 하는 일명 ‘1%법’이 1995년 그해부터 의무화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포스코센터만의 가치는 백남준과 그 부인 구보다 시게코의 작품이 공공미술로 나란히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왜 일본? 한국 휘트니가 낫지" 이 한마디에…韓미술, 경계를 넘었다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왜 일본? 한국 휘트니가 낫지" 이 한마디에…韓미술, 경계를 넘었다
    작가 2019.08.09 13:59:40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을 포함해 구겐하임과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 그리고 휘트니미술관은 ‘뉴욕의 4대 뮤지엄’으로 통한다. 이 중 휘트니미술관은 철도왕 코넬리어스 밴더빌트의 손녀이자 미술가였던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1875~1942)가 미국의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자 1931년에 설립했다. 원래 휘트니는 자신이 수집한 미술품 700여점을 다른 미술관에 기증하려 했으나 ‘검증되지 않은 젊은 미술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예 새 미술관을 짓기로 했다. 소신 있게 미술관 이름도 휘트니미국미술관(Wh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엑스포 끝나자 '프랙탈 거북선' 수난...우여곡절 끝 정박항 찾아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엑스포 끝나자 '프랙탈 거북선' 수난...우여곡절 끝 정박항 찾아
    작가 2019.07.26 14:22:27
    기세등등한 백남준의 ‘거북선’과 함께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대전엑스포)는 대성공을 거뒀다. 외국 국가 원수로는 첫 번째로 대전엑스포를 방문한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유독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빈 병을 이용해 만든 ‘재생조형관’을 찾아갔고, 백남준이 300대 이상의 고물 TV와 못 쓰는 라디오, 토스터기 등을 이용해 설치한 ‘거북선’ 앞에서 한참을 감상에 집중했다. 대전엑스포는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딱 석 달 동안 열렸다. 전시관 하나를 보기 위해 2시간에서 많게는 7시간씩 기다렸을 정도로 인
  •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밀수품 취급받은 백남준의 '고물 TV' 대전엑스포 빛내다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밀수품 취급받은 백남준의 '고물 TV' 대전엑스포 빛내다
    작가 2019.07.19 10:50:44
    충무공 이순신 장군만 거북선을 만든 건 아니다. 백남준도 거북선을 제작했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제박람회기구(BIE) 공인을 받아 개최한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대전EXPO)에서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정부가 유치한 행사로 지난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3개월간 대전에서 열렸고 국내외 1,45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국가관들로 꾸려지는 이 행사에 리사이클링(Recycling·재활용)을 주제로 ‘재생조형관’을 만들자고 얘기를 꺼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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