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 대한민국…결국 '인재(人災)'
아리셀 관계자 3명, '중처법' 위반으로 입건
경찰, 압수수색 진행…신원확인에도 박차
국회 "산업안전청 설치해야"…늑장 대처
2024-06-26 17:58:03 2024-06-26 18:45:39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 배터리 공장 화재는 결국 '안전불감증'이 낳은 인재로 드러났습니다. 이번 참사 이틀 전에도 화재가 발생했지만 아리셀 측은 별다른 신고도 없이 넘어갔고, 일반 소화기로는 진화가 되지 않는 리튬을 대량으로 보관하고 있었음에도 특수 소방기구를 충분히 비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소방당국이 3개월 전 화성 배터리 공장 화재 시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경고했지만, 사 측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희생자 대다수를 차지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리·교육 역시 허울에 그쳤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복수의 '전조 증상'을 무시한 결과는 역대 최악의 화재 참사였습니다. 정부는 언제나 그렇듯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대책들만 내놓고 있습니다. 
 
26일 오후 경기 화성시 서신면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경찰과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방당국, 3개월 전에 '경고'…명백한 '인재'
 
리튬 1차 전지 공장 화재를 둘러싼 '인재' 논란이 연일 커지고 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위성곤 민주당 의원실이 26일 확보한 화성소방서의 '소방 활동 자료조사서'에 따르면, 남양119안전센터는 지난 3월 28일 아리셀 공장 '3동 제품' 생산라인을 '다수 인명피해 발생 우려' 지역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번 화재가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전조 증상이 있었던 셈입니다. 이에 따라 사고 원인 규명 과정에서 인재 논란이 더 커질 전망입니다. 
 
정부는 총력전에 나섰습니다. 민길수 고용노동부 지역사고수습본부장은 이날 경기 화성시청에서 화성 화재사고 관련 브리핑을 열어 "화재가 발생한 일차전지 제조공장 아리셀 관계자 3명을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날 박순관 아리셀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 5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전원 출국금지 한 것에 이은 조치인데요.
 
이날 오전 9시부로는 아리셀 공장 전체에 대한 전면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어 이날 오후 경찰은 경기고용노동지청 등과 아리셀 등 3개 업체(5개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습니다. 정확한 화재 원인과 인명 사고가 발생한 원인을 밝혀낸다는 방침입니다. 
 
경찰은 또 노동자들의 신원 확인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번 참사로 희생된 23명 중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한국인 3명인데요. 나머지 사망자들은 시신 훼손이 심해 DNA 채취 및 대조 작업 없이는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상탭니다. 외국인 희생자 18명 중 16명은 가족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어 DNA 채취가 바로 가능하지만, 2명은 중국에서 가족이 입국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참사 발생 직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꾸린 정부는 부처별 대책 마련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부는 경기도와 함께 '리튬취급·전지제조업체 환경분야 특별점검계획'을 세워 경기도 내 관련 업체 대상으로 합동점검을 실시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아리셀 화재에 따른 국내 산업 영향을 점검함과 동시에 '배터리 산업현장 안전점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합니다. 리튬 2차 전지 및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제조시설, 사용 후 배터리 보관시설 등 유사 사업장의 안전점검계획 수립 현장점검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재발방지 대책 마련…28일 긴급 현안질의"
 
국회에서도 "재발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보호받는 나라, 신소재 산업에 필요한 안전 기준을 꼼꼼한 입법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화재참사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는데요. 박정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리튬 등 화학물질이 원료로 있을 때는 관리가 잘 됐는데, 완제품이 된 상황에서는 제품의 안전성이 확보가 됐다고 봐서 상대적으로 관리가 취약했다"며 "위험성이 있는 제품에 대해서는 관리가 강화될 수 있도록 법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 체계 확보도 필요하다"고 덧붙인 박 의원은 "오는 28일 관계 부처 장관들을 대상으로 긴급 현안질의를 예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산업안전청' 설립을 제안했습니다. 지난 2021년 신설한 산업안전보건본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관리 감독 인력을 보강하고 전문성을 높인 산업안전청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허 대표는 이날 열린 개혁신당의 최고위원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앞세워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장까지 구속시키겠다'고 아무리 처벌을 강화해 봤자 뭐하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는다"며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잠깐 호들갑을 떨기보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도 이에 공감하면서 "안전 관리·감독에 무엇보다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는데요.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리셀같은) 제조업체들은 자체 안전관리 매뉴얼을 다 갖고 있는데, 그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회사가 이번에 문제가 됐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달리하면 각기 다른 전지가 만들어지는데, 위험성도 모두 다 다른 제품들에 대한 일괄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며 "전수조사를 통해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부족한 곳은 잘 되게끔 만들어주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전했습니다.   
 
김진양 기자 [email protected]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