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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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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짜리 숨과 오천원짜리 1시간

2024-07-1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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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숨을 들이켰습니다. 돈이 나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갑니다. 어디냐고요? 그냥 평범한 셋집입니다. 사람은 독립해서 월세(혹은 주택대출 이자)를 내는 순간 숨쉬는 것도 싼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언젠가 봤던 해외 예능방송에 나온 연예인은 주말에 절대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하더군요. 돈 냈는데 집에 머물지 않으면 집세가 아깝다나요. 홈-스위트-홈은 무척이나 자본주의적인 공간입니다.
 
그렇다고 집 밖으로 나간다고 숨의 값어치가 저렴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숨만 쉬어도 돈'이라는 말만큼이나 흔하게 들리는 말이 '나가면 다 돈'이라는 문장입니다. 돈을 들이지 않고 머물 공간이 극히 드무니까요. 한국에는 수많은 집 밖의 셋방들이 있습니다. 목적만큼 중요한 것은 공간 그 자체입니다. 노래방, 피씨방처럼 방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부터 수많은 카페들이 집 밖의 집처럼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집 밖에서도 집세를 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돈을 아껴가며 숨을 쉬어보려는 젊은이들로 무료 공간은 늘 인산인해입니다. 취준생 시절 자주 가던 을지로 청년일자리카페는 3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방문이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청년들의 몸부림을 지나 청계천을 건너면 돈 없이 시간을 때워보려는 노인들이 잔뜩 모인 공간이 나옵니다. 탑골공원입니다. 날이 아주 더운 날엔 맞은편 버거킹에서 콜라 한잔을 시켜놓고 더위를 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꽤나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철과 공원 그리고 공항에 주로 머무릅니다. 돈을 내지 않아도 되고, 그들에게 눈치도 주지 않는 공간입니다. 비싼 숨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노인들은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돕니다.
 
언젠가 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만원으로 시간을 산다면 코인노래방에서 한시간 반 정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며, 커피 한 잔을 사서 카페에서 두세시간 정도를 때울 수 있고 피씨방에도 두시간 반정도 있을 수 있겠네요. 집세로 따진다면 한나절정도 집에서 숨을 쉬는 정도입니다. 만원이 무거운 사람들은 오늘도 공짜로 숨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돌겠지요. 무더운 여름, 숨의 값을 따지지 않는 공간이 보다 많아졌으면 합니다.
 
노인들은 저렴한 시간을 사기 위해 공원, 전철역, 공항을 찾는다. 사진은 탑골공원 인근 급식소 앞 줄.(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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