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참사 여객기, 동체착륙 직전 비행고도 왜 못 높였나
안전 재착륙 첫 단계 "복행"…안전 고도까지 올라갔어야
사고기, 비교적 낮은 고도 상공서 180도 선회·동체착륙
활주로 안전 접근·대응시간 확보할 복행, "재착륙 성패"
"복행 뒤 양쪽엔진 이상 늦게 인지" "전력 분배 어려움"
"사상자 無" 유사 사고도 충분히 떠 올라 15~20분 확보
[서울=뉴시스] 국토교통부는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사고 기체가 활주로의 3분의 1 지점에 착지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했다. 해당 항공기는 무안공항 관제탑으로부터 29일 오전 8시54분 착륙허가를 받고, 8시57분 새 떼를 주의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후 2분이 더 지난 8시59분에 기장은 메이데이(긴급구난신호)를 선언했고 9시3분 항공기가 외벽을 충돌하며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무안=뉴시스]변재훈 이영주 기자 =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가 "조류 충돌" 비상선언 직후 재착륙을 시도하려다 충분한 고도까지 올라가지 못해 동체착륙 강행으로 이어졌다는 가설에 대해 전문가들은 큰 이견이 없다.
복행(착륙 전 다시 고도를 높이는 재착륙 시도 첫 단계)이 불완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기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가 핵심 규명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12일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에 따르면 현장 수거한 기체 엔진에 유입된 흙더미에서 새 깃털 일부가 발견됐다. 사조위는 현재 "한쪽 엔진은 (조류 충돌로) 확실하게 보이는데 양쪽 엔진에서 같이 일어났는지는 결과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속단할 수는 없지만 교신 기록(조류 충돌 회피 주의·"버드 스크라이크 메이데이"), 사고 전 비행 영상 등까지 고려하면 참사의 발단은 조류 충돌에 의한 엔진 계통 이상이었을 것이라는 추론에 더욱 힘이 실린다.
그러나 "메이데이" 선언과 함께 복행이 시작된 오전 8시59분부터 동체가 활주로에 맞닿은 이후 비상착륙(9시2분), 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 충돌(9시3분)까지 4분 사이 기체의 어떤 기능이 불능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4분에 대한 자료도 블랙박스인 비행기록장치(FDR)와 음성기록장치(CVR) 등에 남아있지 않아 "전원 셧다운" 등 여러 추론만 나올 뿐이다.
사고기는 복행 직후 애초 허가받은 01방향 활주로가 아닌 반대편 19방향 활주로로 180도 급선회해 착륙 바퀴(랜딩기어)를 펴지 못한 채 동체만으로 착륙했다. 조류 충돌 이후 벌어진 모종의 기체 문제로 차선책을 시도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무안=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항공기 착륙 도중 충돌 사고의 원인으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에 따른 항공기 엔진 폭발이 지목되는 가운데 29일 오후 무안국제공항 주변으로 철새떼가 날고 있다. 2024.12.29. [email protected]
전문가들은 착륙이 한 번에 안 됐을 때의 복행은 재착륙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이근영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복행은 안전한 재착륙을 위해 실시한다. 랜딩기어를 내리고 플랩(날개 감속장치)을 작동하며 활주로 중심선에 안전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도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영상으로만 보면 사고기는 복행 직후 500피트(152.4m)도 채 못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엔진 문제가 아니라면 고도를 못 올릴 이유가 없다. 사고기인 B737-800기종은 엔진 한쪽이 멈추더라도 다른 엔진 추력만으로도 광주나 여수 등 다른 공항에 충분히 갈 수 있다. 다른 반대쪽 엔진도 심각한 손상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복행 단계에서 최대 출력이 나야 할 반대쪽 엔진에도 새가 들어갔다면 출력을 올리다가 조류 충돌로 인한 엔진 기능 저하가 급격히 커졌을 것이다. 복행 고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여객기 주전력 계통에 문제가 생겼다면 기체 비행 유지를 위한 조종, 랜딩기어 작동, 감속장치 전개 등에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전력)를 잘 분배해야 할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돌 직전 4분간의 블랙박스 저장 중단에 대해선 "회로도를 보면 FDR과 CVR은 양쪽 엔진 발전기(제너레이터) 전원이 안 들어오면 작동이 안 되는 구조다. 주전력 계통이 불능이고 보조동력장치(APU)를 켜지 않으면 마지막 4분간의 기록이 안 될 수 있다. 전파 기반 항공기 추적시스템(ADS-B)도 기록이 안 됐다면 전력이 안 갔거나 안테나에 전원 공급 중단 또는 파손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여객기 운항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일정 고도인 "안전 고도"까지 복행하지 못한 점에 주목했다. 조종사들은 공항별 안전고도를 숙지하고 그에 따라 이·착륙 고도를 설정하는 만큼 복행에서도 안전 고도까지 상승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봉식 초당대학교 항공정비학 교수는 "사고기는 공항 안전 고도인 5000피트(1524m)까지 고도를 높여 크게 선회한 뒤 다시 착륙 패턴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활주로에 접근해야 했다. 사고 직전 영상 등을 볼 때 사고기는 굉장히 낮은 고도까지만 복행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엔진이 하나만 작동하더라도 고도를 충분히 높이는 복행에 큰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조종사가 시간을 더 끌면 공중에서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보고 급선회해 동체착륙을 감행했을 수 있다. 사고기의 복행 전후 고도 변화가 사고 재구성에 필수 확인 사안"이라고 밝혔다.
[무안=뉴시스] 김선웅 기자 = 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전날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의 잔해와 동체 착륙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24.12.30. [email protected]
익명을 요구한 현직 민항기 조종사인 A기장은 "항공기는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이용해 나는 원리다. 복행은 높은 고도에서 위치에너지를 확보, 착륙에 필요한 운동에너지로 전달하기 위한 과정이기에 중요하다. 복행은 비상 상황에 대비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조종사와 관제사, 활주로 지상 소방대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말했다.
A기장은 "새 충돌 충격으로 엔진 파손 조각이 연료관·유압관 등에 추가 손상을 줬고 복행 과정에서 조종사가 뒤늦게 알았을 수 있다. 랜딩기어 수동 작동 등 상황에서는 숙련 조종사라도 2분 이상은 필요하다. 사고 기종의 신속 지침(보잉 "퀵 레퍼런스 핸드북")에는 조종사가 의자를 뒤로 뺀 뒤 랜딩기어 3개의 수동 조작 줄을 15초씩 당겨야 한다. 물리적으로 최소 45초는 무조건 걸린다"고 밝혔다.
과거 유사 사고 사례를 봐도 복행은 인명피해 여부를 판가름할 정도로 중요했다. 국내에서 2010년대 조류 충돌 직후 엔진 고진동·과열이 발생한 여객기 사고는 3건이다. 모두 이륙 도중 조류 충돌로 엔진에 문제가 생겨 회항, 급거 착륙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과거 사고기 3대 모두 이륙 직후 낮은 고도에서 새가 엔진에 충돌했으나 최소 2000피트(609.6m)에서 최고 7200피트(2194.56m)까지 날아오르는 복행을 거쳐 비상착륙했다. 조류 충돌 인지부터 착륙까지 15~20분가량 비행했다. 그사이 안전한 착륙의 선결 요건인 활주로 확보와 접근 비행, 지상 비상 대응 체계 가동 등이 이뤄지며 피해 최소화를 할 수 있었다.
사조위 관계자는 "현장 조사와 함께 공청회 등 절차를 통해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고 조사를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29일 오전 9시3분께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방콕발 제주항공 여객기가 동체만으로 착륙하려다 활주로 밖 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을 정면충돌하고 폭발했다. 사고로 탑승자 181명(승무원 6명·승객 175명) 중 179명이 숨졌다.
[무안=뉴시스] 김근수 기자 = 4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수색대원들이 엔진인양 작업을 하고 있다. 2025.01.04.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