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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낳고도 총 쏜다"…파리 은메달 '엄마 사수' 금지현

등록 2024.08.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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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소총 10m 혼성 은메달리스트

"무서울 것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메달로 경력단절 없다는 것 증명"

[화성=뉴시스] 김종택 기자 =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금지현(경기도청)이 16일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경기도사격테마파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16. jtk@newsis.com

[화성=뉴시스] 김종택 기자 =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금지현(경기도청)이 16일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경기도사격테마파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16. [email protected]


[화성=뉴시스] 이병희 기자 = "무서울 것도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어요."

2024 파리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금지현(24·경기도청) 선수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한국에 첫 메달을 선사한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 당시 가졌던 마음가짐이다.

금지현은 16일 경기도사격테마파크에서 가진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출산 전부터 '경력 단절'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나는 아기도 낳았고, 아직 총을 쏘고 있었다.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엄마 사수'로 이름을 날린 2000년생 금지현은 경기도청 소속 국가대표 선수이자, 한 사람의 아내이자, 돌 된 딸을 키우는 엄마다.

파리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의 목표는 동메달이었지만, 금지현과 파트너 박하준(KT)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지현은 "결선이 끝난 뒤 '한국 첫 메달'이라는 타이틀을 들었다. 다른 선수들도 좋은 출발 기운을 받아서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컸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출산 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메달 획득으로 경력 단절이 전혀 없다는 걸 증명했다. 슬럼프를 극복해 성적을 낸 것만으로도 인정을 받는 것 같아 자존감이 올라갔다"라고 말했다.

[화성=뉴시스] 김종택 기자 =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금지현(경기도청)이 16일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경기도사격테마파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16. jtk@newsis.com

[화성=뉴시스] 김종택 기자 =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금지현(경기도청)이 16일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경기도사격테마파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16. [email protected]


임신·출산, 그리고 복귀와 파리올림픽은 금지현의 선수 인생에 전환점이 됐던 시간이다.

금지현은 "늘 공허함이 있었다.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는데 시간만 간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지난 1년은 꽉꽉 찬 느낌이 들었다"라고 돌아봤다.

2022년 10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에서 임신 12주차였던 금지현은 파리올림픽 출전 쿼터를 따냈다.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본인이 빠질 경우 우리나라 출전권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총을 잡았다.

그는 "한국 여자 소총이 올림픽에 못 나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출전권을 따내러 왔으니까 나 아니라도 우리나라 선수 한 명이라도 더 나갈 수 있게 해서 메달 확률을 높이자는 생각만 했다. 애국심이 올라왔던 것 같다"라고 웃어 보였다.

이후 출산으로 인해 운동을 쉬어야했고, 공백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몸이 마음만큼 따라오지 않았고, 슬럼프를 겪었다.

"출산 뒤 몸이 중학생 때 체력훈련 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자세 잡을 때마다 뼈마디가 아팠고, 주변에서 들리는 말처럼 애엄마가 돼서 경력이 단절될까 겁도 났다. 그렇게 부담이 가중됐고 슬럼프가 왔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가 나올 때마다 '엄마라는 또다른 경력이 생긴 거니까 퉁치자'라고 웃어넘기면서도 그동안 쌓아온 것을 잃을까 걱정이 컸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금지현의 목표는 '사격'이었다. 그는 "사격을 계속 하는 게 목표였다. 몸의 균형이 달라져서 감각을 되찾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러면서 멘탈이 세졌다. 정면 돌파 아니면 길이 없다고 생각해서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출산 7개월 뒤 치른 복귀전이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금지현은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금지현은 "사실 욕심 부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쉬지 않고 준비한 다른 선수들을 어떻게 이기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 나갈 시합을 대비해서 감각을 익히자는 생각으로 나갔는데, 마음을 편하게 쏴서 그런지 결과가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출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올림픽 뛰었으면 '노(no)메달'이었을 것 같다. 임신, 출산 뒤 멘탈 훈련을 해서 메달 기회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며 기뻐했다.

메달을 따면 세계적으로 딸자랑을 하겠다던 금지현은 공항에서 '붕어빵' 딸 서아양을 안고 대중 앞에 섰다. "아기가 한창 클 때라서 훌쩍 훌쩍 크는데, 올림픽 나가면서 2달 만에 보니까 어린이가 돼 있는 느낌이었다. 반가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라고 말했다.

또 "친정엄마가 아기를 봐주시는데, 공항에서 엄마 얼굴을 보니까 새삼 엄마도 나이먹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미안하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빈손이 아니라 메달로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라며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도 전했다.

[화성=뉴시스] 김종택 기자 =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금지현(경기도청)이 16일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경기도사격테마파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16. jtk@newsis.com

[화성=뉴시스] 김종택 기자 =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금지현(경기도청)이 16일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경기도사격테마파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8.16. [email protected]


금지현은 파리올림픽에서 '오락실'에 빠졌던 에피소드를 풀어놓으며 어린아이같이 즐거워하기도 했다.

금지현은 "파리에서 4시간 떨어진 샤토루 CNTS 경기장 근처에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 훈련장과 숙소만 오가면서 답답했는데, 우연히 발견한 오락실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면서 웃었다.

그는 "선수들과 다같이 오락실 에어하키 게임에 빠져서 죽도록 했다. 코치님은 '시합 전에 게임하냐'면서 화를 내셨지만 그 오락실이 저희가 메달을 딸 수 있는 비결 중 하나였다"라고 전했다.

또 "브라질 국가대표 권총 코치랑 같이 게임을 한 적도 있었는데, 같이 소리지르고 하이파이브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올림픽의 벽이 있었는데 그 때 '이렇게 다 같이 즐기는 자리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벽이 해소된 것 같았다"라며 경험을 털어놨다.

올림픽 이후 새 목표가 생긴 금지현은 이제 자신을 표현할 새로운 수식어를 꿈꾸고 있다.

금지현은 "저 혼자 잘 되기보다는 다같이 잘 되면 좋겠다. 후배들을 가르치고, 선수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 싶다. 내년부터는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이른 나이지만 대표팀 코치가 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제 인생이 이렇게 스팩타클하게 지나갈 줄 몰랐다. 지금까지 순탄하지 않은 길을 순탄하게 펼치면서 나아가는 느낌이다. 제가 살면서 배워온 걸 토대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또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스피치를 배워서 진로 강의도 해보고 싶다"라고 했다.

끝으로 금지현은 "개인적으로 '애국자'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경기가 끝난 뒤 '애국자'라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뻤다. 보내주신 그 응원이 닿아서 메달을 딴 게 아닐까. 응원해준 분들과 은메달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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