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제조사 판매장려금 자료 제출 의무화 조항은 삼성전자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애플에는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모양새로 귀결될 수 있어 역차별이 우려된다. 이용자에 도움되는 실질적 변화보다 정치적 과실을 위한 근시안적 행태가 아쉽다.
단통법 폐지 논의 과정에서 포함된 판매장려금 자료 제출 의무화 규정은 제조사 지원금 축소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제조사가 정부에 제출한 판매장려금 정보가 외부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제조업체가 판매장려금을 적극적으로 쓰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국내 단말기 제조 시장은 10년 전 단통법 시행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 LG전자가 몇 년 전 짐을 싸면서 삼성전자와 애플 과점 체제로 바뀐 상황이다.
애플은 한국 정부 규제에 무신경하다. 별다른 제재가 먹히지 않아 안하무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차례 국감장에 선 애플코리아는 항상 '쇠귀에 경 읽기'였다.
통신 3사에 지급하는 판매장려금 자료를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기업은 사실상 삼성전자뿐이다. 시장에선 판매장려금 경쟁이 전무한 형국인데 그나마 판매장려금에 힘쓰는 삼성전자의 의욕만 떨어뜨릴 수 있다. 정부가 아무리 기밀을 요한다고 해도 기업 입장에선 머리 위에 언제 떨어질지 모를 돌덩어리를 이고 있는 것과 진배없다.
이는 단통법 폐지 취지를 퇴색시켜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보조금 경쟁을 활성화해 생활의 필수품인 단말기 가격을 낮추자는 의도지만 판매장려금 공개는 엇박자를 내게 만들 것이다.
만일 판매장려금 내역이 유출되면 삼성전자가 해외 시장에 선보이는 단말기 가격 책정도 순탄치 않다. 가뜩이나 고가의 프리미엄 라인업에 힘을 쏟고 있어 판매장려금을 통한 가격 인하에 주저하고 있는데 이번 일로 일말의 여지마저 사라질까 걱정이 앞선다.
이벤트성 성과주의가 만든 규제의 함정이 문제다. 정치권이 가시적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정책의 본질적 효과를 놓쳤다고 본다.
정책은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시기를 놓쳤다는 단통법 폐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부차 조항과의 연결성을 긴밀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시장 환경을 면밀하게 살펴 정책을 입안해야 규제 리스크를 넘어설 수 있다.
개정안은 규제를 덜어주는 척하면서 새로운 부담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설왕설래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 이후 정치권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각자 수권정당이 될 욕심에 '반대를 위한 반대'가 난무하고 생산성 있는 논의는 힘을 쓰지 못한다.
정치권은 숲이 아닌 나무만 보는 조급함에 갇혔다. 단발성 성과주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진정한 소비자 후생과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