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원 가량의 퇴직연금을 놓고 은행권이 고객 유치 경쟁에 돌입했다./그래픽=김은옥 기자

400조원 퇴직연금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은행권의 경쟁이 치열하다. 오는 10월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가 시행되면서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수익률이 높은 상품으로 손쉽게 갈아타는 '머니무브'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1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분기 기준 은행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207조1945억원으로 전 분기(202조3522억원)보다 4조8423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말(198조481억원)에서 상반기에만 9조1464억원이 유입됐다.

2분기 기준 퇴직연금 수익률이 가장 높은 곳은 하나은행, 퇴직연금 적립 규모가 큰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42조2031억원으로 가장 크다. 시중은행 중에서 적립금이 40조원을 넘어선 곳은 신한은행이 유일하다.


이어 ▲KB국민은행 38조9360억원 ▲하나은행 36조1297억원 ▲IBK기업은행 25조9735억원 ▲우리은행 24조6650억원 ▲NH농협은행 21조7920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퇴직연금 수익률인 가장 높은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의 DC형 원리금비보장 상품의 1년 수익률은 14.83% 기록했다. 이어 ▲국민은행 13.73% ▲우리은행 13.04% ▲농협은행 12.90% ▲신한은행 12.81% 순이다.

개인형 IRP형 원리금비보장상품의 운용 수익률은 국민은행이 13.62%로 가장 높았다. 이어 하나은행 13.26% ▲우리은행 12.71% ▲농협은행 12.9% ▲신한은행 12.25% 순이다. DB형은 ▲국민은행 9.42% ▲신한은행 9.33% ▲농협은행 7.57% ▲우리은행 7.33% ▲하나은행 6.62%로 집계됐다.

은행-증권, 합종연횡 '로보어드바이저' 출격

은행권은 저마다 퇴직연금 상품 수익률 제고를 위해 투자 포트폴리오 강화에 나섰다. 2분기 적립금 증가율에서 증권사가 전 분기 대비 3.7%로 은행(2.4%) 높아 고객들의 유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다.

증권사와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국민은행은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손을 잡고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RA) 일임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RA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고객의 투자성향에 맞게 자산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운용까지 해주는 서비스다.


현재는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RA를 적용할 수 있다. 현행법상 RA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맞춤형 포트폴리오 제안만 가능했으나 올 하반기부터는 기획재정부의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돼 투자 일임까지 가능해졌다.

신한은행은 하반기에 퇴직연금 일임형 로드어드바이저 서비스도 도입한다. 우리은행은 이달 중 원리금과 비원리금 상품을 결합한 저위험 신포트폴리오를 출시할 계획이다. 기업은행은 퇴직연금 가입 고객에게 여행숙박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행업체 익스피디아와 손을 잡고 고객 유치에 나섰다.

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퇴직연금은 안전성이 중요했으나 점차 수익률이 높은 상품의 니즈가 커지고 있다"며 "자산관리 컨설팅과 고객 관리 등 대면 서비스를 강화해 차별화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추진하는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가 오는 10월15일부터 시행된다. 은행과 증권사 및 보험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 대부분 새로운 제도 준비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한창이다.

퇴직연금 현물이전은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금융사로 이전할 때 기존 포트폴리오 그대로 옮길 수 있는 제도다. 사업자 간 계좌 이전 처리 시 ▲예금 ▲수익증권 ▲ELB(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 등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 퇴직연금 현물이전이 퇴직연금 계좌의 금융사 및 금융업종 간 이동을 위한 허들을 낮춘 만큼 연말 제도 시행과 함께 머니무브가 가속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