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은 가족과 임직원에게 일평생 정직과 신용을 강조하며 식품종사자로서 책임감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사진=삼양라운드스퀘어

"식족평천(食足平天). 먹는 게 족하면 천하가 태평하다. 지금 내 동족에게 필요한 것은 한끼의 밥이지 보험이 아니다."

삼양식품 창업 일화는 이제는 전 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하다. 보험회사 부사장이었던 창업주 전중윤 회장이 1960년대 초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서민들을 우연히 마주하고 가슴을 쳤다는 이야기다.


7월10일은 2014년 별세한 삼양 창업주 전 명예회장의 기일이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미군이 버린 음식이라도 먹기 위해 줄 서 있는 노동자들을 본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삼양식품을 창업했다. 끼니 걱정 없는 나라, 굶지 않는 동족. 그의 바람은 단순했다.

전 회장은 1919년 강원도 김화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는 체신국 보험과에서 일했고 해방 직후 경력을 살려 보험회사 창업에 뛰어들었다. 오늘날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에서 1961년까지 부사장을 지냈다.
삼양식품 창업 초기 하월곡동 공장의 모습. /사진=삼양라운드스퀘어

삼양식품을 창업하며 '굶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그가 떠올린 것은 라면이었다. 전 회장은 1950년대 말 일본에서 경영 연수를 받았는데 그때 라면을 처음 접했다. 회사를 설립하고 일본에서 귀인의 도움으로 기술을 들여온 뒤 삼양라면을 만들었다.

초기에는 라면이 워낙 생소한 음식이었던 탓에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았지만 무료 시식과 라디오 광고 등을 통해 전 회장이 발로 뛰며 홍보하자 점차 입소문이 났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경제개발기 내내 삼양라면은 그야말로 국민주식이 됐다.


전 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국민들에게 소고기와 우유 등으로 단백질을 공급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식품 분야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라면 외에도 스낵, 우유, 유제품, 축산물, 농수산가공물 등 품목을 확대하며 종합식품기업으로 발돋움했다.

K푸드 선두주자가 된 '삼양'

창업 이후 30년 내내 1위를 달리던 삼양식품이 고꾸라진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우지파동' 때다. 1989년 어느 날 삼양라면에 사용된 기름이 공업용 우지라는 투서가 날아들었고 사실과는 별개로 여론이 무섭게 악화됐다.

당시 60%에 달하던 시장 점유율은 하루아침에 10%대로 떨어졌다. 100만 상자가 넘는 라면을 폐기했고 직원 3000여명 중 1000여명이 일터를 잃었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1995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회사는 무너진 뒤였다. 업계 1위 자리를 내준 뒤에도 순위는 계속 떨어져 만년 꼴찌가 됐고 1998년 IMF가 오자 이어지는 적자와 함께 부도 위기까지 맞닥뜨렸다.
박정희 대통령을 응대하는 전중윤 회장. /사진=삼양라운드스퀘어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뒤 전 회장은 초심으로 돌아가 제2의 창업을 시작했다. 그를 믿고 끝까지 따라와 준 이들과 함께 처음부터 하나씩 회사를 재건해나갔다. 10여년이 지난 뒤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전 회장은 2010년 3월 일선에서 은퇴했다.

전 회장이 생전에 가족과 직원들에게 유난히 강조했던 덕목이 있다. 바로 '정직과 신용'이다. 무엇보다 식품기업 경영인으로서 바르고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항상 마음에 새겼다. 임직원들에게도 "식(食)은 생명입니다. 식은 건강입니다. 완전한 식품만을 생산해야 합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의사이지만 발병을 예방하는 것은 식품산업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식품산업 종사자는 곧 의사입니다"라며 책임감 있게 제품을 만들 것을 당부했다.
삼양라면은 1969년 대한민국 최초로 베트남에 라면을 수출했다. /사진=삼양라운드스퀘어

자국민을 굶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삼양식품이 이제는 세계에 한국 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K푸드' 대표주자가 됐다. 2012년 며느리 김정수 부회장이 출시한 불닭볶음면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1세대 삼양식품은 먹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 든든한 한끼가 되어주었다. 2세대 삼양식품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세계를 잇는 즐거움이 되고 있다. 이제는 끼니를 넘어 문화가 된 라면을 보며 '라면의 아버지' 전 회장의 따스한 마음을 추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