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배터리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접어들면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핵심 광물 가격이 떨어지면서 배터리 판매가가 동반 하락한 영향이다. 고금리에 전기차 구매 보조금 축소가 더해져 전기차 구매하려는 이들의 부담도 커졌다. 올해 하반기부터 캐즘이 완화될 것이란 이야기가 들리지만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수요 둔화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K-배터리, 전기차 캐즘 '직격탄'

한국 배터리 3사는 올해 1분기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31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 전환했다. 삼성SDI의 1분기 영업이익은 2207억원으로 전년 동기(4502억원) 대비 50.1% 줄었다. SK온은 331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10개 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배터리 기업들의 실적 악화 원인은 핵심 소재 가격이 떨어진 영향이다. 원가가 하락하면 부담이 줄 것으로 보이지만 '역래깅 효과'가 발생해 손해를 본다. 역래깅은 원재료 투입 후 실적까지 시차가 걸리는 현상을 말한다. 배터리사들은 광물 가격과 배터리 판매가격을 연동해 고객사와 납품 계약을 체결한다. 리튬 가격이 하락하면 저렴한 가격에 배터리를 납품해야 해 이익 감소가 불가피하다.


배터리 기업의 핵심 수익 지표인 리튬 가격은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6월27일 기준 탄산리튬 가격은 ㎏당 87.5위안(1만6600원)으로 연중 최고치인 110.5위안(만900원) 대비 20.8% 하락했다. 초호황기로 꼽히는 2022년 11월엔 581.5위안까지 오른 바 있다.

리튬가격 하락에 따라 국내 배터리 3사의 올해 2분기 실적도 전년 대비 악화할 전망이다. 금융정보기업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의 2분기 영업이익은 275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497억원) 대비 21.2% 줄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삼성SDI 영업이익은 4502억원에서 3805억원으로 15.5% 축소될 것으로 분석됐다. SK온은 광물 가격 하락과 신규투자에 다른 재무부담으로 2분기 적자가 확실시된다.

하반기부터 좋아진다(?)... 업계 "낙관 어려워"

인터배터리 2024에서 관람객이 SK온의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임한별 기자

전기차 캐즘이 완화될 것이란 시장의 전망과 달리 업계에선 캐즘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전기차 가격을 비롯해 고금리, 미흡한 전기차 충전 시설, 전기료 상승, 내연기관 대비 비싼 보험료 등 복합적인 요인이 캐즘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전기차 캐즘의 핵심은 가격이다. 글로벌 자동차 정보업체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5월 기준 미국의 신형 전기차 가격은 평균 5만7000달러(약 7900만원)로 내연기관차(4만8000달러·약 6600만원)보다 약 18.8% 비싸다.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포드의 내연기관 픽업트럭 'F-150' 가격은 4만4000달러인 반면 전기차 버전인 'F-150 라이트닝'은 5만5000달러로 25% 더 비싸다.


충전 인프라 보급 속도가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 것도 캐즘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지목된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데다 충전 시설도 충분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전기차 시장 육성 시 인프라 보급에 집중 투자해 캐즘 극복에 성공했다. 중국 전부는 자동차 산업 굴기에 일환으로 전기차 충전기 보급에 주력했다. 중국 전력기업연합회(CEC)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중국의 전기차 충전기는 전년보다 56% 늘어난 92만개로 세계 최대 규모다. 이 같은 중국 정부의 노력은 전기차 보급을 늘렸다. 중국승용차협회는 중국의 신재생에너지차(NEV) 점유율이 올해 44%에서 2026년 50%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고금리 상황 속에 소비자 구매력이 약화된 것도 전기차 캐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해 7월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끝으로 7회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5.25~5.50%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4.50%에서 4.25%로 한 차례 인하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캐즘에 영향을 주고 있어 수요 회복 시기를 단정하긴 어렵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이고, 전기차 판매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낮아진다면 소비자들이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차를 선택할 유인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