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가지 않은 길

일요일도 일 나간다. 전문 용어로 스튜디오, 이놈의 일터는 일의 양과 시간을 규정할 수 없다. 보장된 임금도 휴일도 없다. 나는 미술 노동자다. 살모사의 혓바닥같이 이글대는 땡볕 속을 한 시간쯤 걸었다. 늘 같은 길이 지루해 다른 골목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뜻밖의 멋진 풍경과 마주했다. 반갑다. 이 풍경만으론 도시의 이미지가 아니다. 오래된 시골 정경이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같지만 단란했던 한 시절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고향 집이 떠오르면 가슴 저린다. 부모 형제 떠난 빈집이 많이 손상돼 잡초만 무성하다. 그립지만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함께 살아왔던 아픈 추억들이 무너져 가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어쩌면 자연의 현상계는 스스로 무너지거나 잊혀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비 오는 날 어머니는 부추전을 부치셨다. 홍고추가 살짝 들어간 매콤한 전을 아버지는 주문하셨다. 막걸리 안주에 이만한 게 없다. 그 추억이 점점 멀다. 사람의 힘으로도 잡지 못하고 순응해야 하는 게 세월, 이런 시 한 편이 기억 난다. “내 인생 단 한 권의 책/속수무책/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냐 묻는다면/척하고 내밀어 펼쳐줄 책/썩어 허물어진 먹구름 삽화로 뒤덮여도/진흙 참호 속/묵주로 목을 맨 소년 병사의 기도문만 적혀있어도/단 한 권/속수무책을 나는 읽는다 (중략)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냐 묻는다면/ 독서 중입니다, 속수무책.” –김경후 ‘속수무책’ 중에서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H의 망중한-청남대에서

산골 소년으로 자란 나의 꿈은 여행이었다.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고, 찔레꽃 복사꽃 핀 봄은 무엇이고 그리웠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해그림자도 일찍 졌다. 문지방에 걸터앉아 생각에 빠질 때가 많았다. 산 너머엔 누가 살까. 남풍 불어오는 그곳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H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수많은 편지를 여행 얘기로 채워 보냈다. ‘휴일이면 자전거를 타고 이슬 맺힌 풀잎 길을 함께 달려가요, 나의 고향은 아름다워요, 가을이면 홍시가 온 마을을 붉게 사르고, 망개나무 잎 푸른 산자락에서 여치 소리 들으며 헤르만 헤세를 읽을 수 있지요.’ 그러나 현실은 늘 혼자다. 여행도 혼자고, 식사도 혼자고, 생활도 혼자다. 이젠 동행의 설득도 포기했다. 인생관과 환경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름을 인식하며 산다. 동네 새마을금고의 인재개발원 견학에 초청받았다. 일정에 청남대 견학도 있어 나섰다. 대청호의 맑은 물과 아름다운 숲은 데이비드 소로우의 윌든 호수가 연상되는 산책길이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H가 동행해 즐겁다. 처음 나의 고향에 온 그때, 반딧불이 날고 물소리 들으며 별이 쏟아지는 여름 밤을 보냈다. 차양 모자에 줄무늬 원피스를 차려입고 시냇가 언덕에서 꼴 베던 나를 따라 나온 모습이 환영 같았다. 장난치며 웃음 쏟으며 숲속을 함께 걷는다.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H는 여행을 소꿉장난처럼 즐겼다. 인생이 소꿉놀이 같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아버지의 정미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 어머니는 솔바람 거친 좁다란 논두렁 길을 걸어 양푼 대야를 이고 오셨다. 촉촉한 삼베 보자기를 걷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우리를 황홀케 했다. 조청에 찍어 먹는 달콤한 가래떡은 1년에 한 번 설날에만 맛봤다. 나는 항상 윗마을 정미소를 동경했다. 건장한 주인 아저씨가 쌀가마를 들었다 놨다 하시며 도정을 살피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다소 권위적이고 무서웠지만 가래떡을 뽑을 땐 거룩해 보였다. 세월이 흘렀다. 방앗간 아저씨도, 어머니도 고인이 됐다. 양철지붕은 녹슬고 기울어졌다. 지난 수업에 김계남 님이 보여준 친정집 정미소를 오늘 함께 그렸다. 선 드로잉 실습엔 양철 지붕이 적격이다. 그림을 모아 놓고 평가할 때 계남 님은 사인 위에 ‘아버지의 정미소’라고 썼다. 모두 잔잔하지만 큰 그 의미를 좋아했다. 아마 아버지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순간 뭉클했기 때문이리라.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지랄같이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눈물을 짜며 허공에 대고 ‘아버지!’라고 낮게 소리친다. 걷다가도, 자다가도. 계남 님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직장으로 달려간다. 짬을 내 취미 생활하는 열정이 멋지다. 천안 본가는 한때 4대가 함께 살았다는데 누구나 옹기종기한 그 시절이 그리울 것이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도 문화센터에 가시게 해 요즘은 스케치 그림을 일기처럼 보내 오신단다. 그립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함께한 그 시절도.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봉천동 가는 길

지지대 고개의 한 야외 웨딩홀에서 수강생 P님이 자식을 장가 보낸다고 초대했다. 마침 남태령 너머 한양으로 시집간 딸을 보러 갈 겸 들렀다. 예복을 차려 입은 한 쌍의 남녀가 무대 앞에 섰다. 주례사가 끝나고 신부는 부모님께 절을 올렸다. 딸을 껴안은 아빠는 눈시울을 붉혔고 엄마는 옷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아빠의 포옹은 어쩌면 처음일 수도 있다. 아빠는 무뚝뚝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흔치 못했던 것처럼 표현에 익숙지 않은 채 빠른 세월을 건너왔기 때문이다. 나도 딸의 손을 잡고 단 위를 걷는 동안 수북이 흐르는 눈물을 대책 없이 질질 방류하고 말았다. 딸의 손을 사위 손에 올려놓고 나는 그를 껴안았다. 그러고는 희미하지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제 노를 자네에게 넘긴다. 큰 바다로 잘 항해하여 나아가거라. 잘 살아야 한다.’ 광활한 인생 무대를 열어주며 딸과 살아온 모든 추억을 떠올렸던 것 같다. 가파른 봉천동 언덕을 올라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비탈길 끝 산자락에 집들이 모여 있다. 딸이 사는 곳은 높다란 새 아파트 단지다. 난곡이라는 애환의 판자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겨울 비탈길은 어둡고 힘들었던 과거를 소환한다. 곧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면 사랑스러운 나의 이란성 쌍둥이 이한이 이서가 탄알처럼 뛰쳐나와 안길 것이다. 나의 호주머니엔 아이들의 과자와 독주회를 앞둔 딸에게 전할 축의금과 격려의 편지 한 통이 들어 있다. 몇 번을 고쳐 쓴.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접시꽃 필 때

남도 여행을 나섰다. 남쪽 바다 먼 장흥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하는 박진화 작가의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칠월에 해움미술관에서 함께 전시하기로 한 이흥덕, 나종희, 송창 작가가 동행했다. 내 차를 직접 운전해 여행하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가는 길에 영암에 들렀다. 47년 만에 고향을 찾은 김준권 작가의 판화전이 열리고 있어서다. 하정웅 미술관이라는 이 지역 연고 작가의 상설 소장전도 볼 수 있었다. 부럽다. 유명 작가가 돼 고향에서 전시하는 작가들, 금의환향 전이다. 차 한잔 나누고 다시 장흥으로 향한다. 언덕 위의 미술관엔 박 작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형 작품들이 시선을 끌었다. 좋은 작품의 여운을 담아 작가가 안내하는 시내의 한 식당으로 향한다. 여름 보양식이라는 갯장어 하모가 나왔다. 남도의 상차림이 넉넉하고 맛깔스럽다. 작가가 마련해 놓은 숙소에서 투박한 말 보따리를 풀었다. 고등학교 미술부 시절 얘기가 화두였다. 작가의 후배가 들려주는 무용담 같은 학창 시절의 이야기는 여름 밤을 더욱 깊고 그립게 했다. 술안주는 고향만으로 충분했다. 예술은 내가 내게 빠져들어야 관객도 내게 빠져드는 것, 나의 그림은 전혀 다른 곳에서 나를 바라본다. 피할 수 없는 그 불편함으로 다시 붓을 잡는다. 해장국집으로 가는 길에 접시꽃 한 무더기가 단아하게 피어 있는 작은 뜰과 마주했다. 여름이 익어가고 있다. 접시꽃, 내 안의 그대가 분홍빛 수액으로 스며든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월화원에서

돌담 아래 앵두가 빨간 옥구슬처럼 맺혔다. 먼 야생의 두메별꽃이 유월을 전한다. 고귀하고 경이로운 추억의 무늬를 새기며 계절은 반환점을 돌았다. 중간고사를 치듯 지난 반년을 정리해본다. 찰나에서 영원까지 작은 꿈도 커다란 동심원을 그린다. 오월의 마지막 사생은 효원공원 월화원에서 마쳤다. 소풍처럼 즐겁게 마지막 봄을 저마다의 느낌으로 채색했다. 짧지만 집중의 행복이 보인다. 아름다움은 바라보는 눈이 그립고 맑기 때문이듯 행복은 그것의 지향점이 즐겁고 자애롭기 때문이 아닐까. 월화원은 중국 광둥성과 경기도가 2003년 우호 교류 협약을 체결해 한국과 중국의 전통 정원을 상대 도시에 짓기로 한 약속의 산물이다. 2006년 4월 문을 열었다니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났다. 나도 지난해 알게 됐고 수강생들도 모르고 있는 분이 대부분이다. 늘 일상의 범주에서 살아가는 일들이 야생의 근원적 습성을 잊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중국의 전통 양식 이화원을 연상케 하는 작은 회랑과 폭포와 연못 등이 휴식하기 좋은 공간이다. 광둥성 광저우에 조성됐다는 우리나라 소쇄원을 본떠 만든 해동경기원을 상상해본다. 소쇄원의 선비적 풍경이 나는 좋다. 안이 보일락말락 한 담 안의 선비는 바깥세상을 오직 학문의 힘으로 소통하며, 넓은 이상의 공간을 들여놓는 여유 때문이다. 유월, 시냇가 녹음에 일렁이는 바람을 그린다. 창포향 머금은 그대의 초록빛 눈동자 같은.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창룡문 옆 카페-로스 안데스

계절은 밤비처럼 고요히 또 한 장면을 옮겨간다. 자줏빛 오디가 땅바닥에 낭자하고 붉게 타오르는 장미는 봄을 전송하고 있다. 동문 언덕길은 동화책을 펼쳐 놓은 듯 아기자기한 카페가 어깨동무하고 있다. 봉돈 앞 파란 대문 담장 위에 흐드러진 분홍 장미가 흐린 시야를 선명케 한다. 어반스케처들이 그림을 그리고, 화사한 드레스에 추억을 담는 오월의 신부가 청초하다. 창룡문 잔디밭을 마당처럼 들여놓은 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장은 틈 없는 분주함에 고객과의 소통을 간결하게 통제했다. 나는 볼리비아 드립 아메리카노를, 동행자는 과테말라 디카페인 냉커피를 주문했다. 중남미를 두 달 정도 여행한 추억이 있어 몇 가지 들췄으나 받아치듯 빠른 단답이 고달픈 갈증으로 돌아왔다.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라는 주인장의 책을 발견하고 훑어봤다.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안데스 음악에 심취해 10여차례 남미 음악 여행을 다녀온 것, 삼포냐 강습을 매주 한 번 하고 봄, 가을 안데스음악회를 연다는 정보를 편집이 잘된 그의 책과 포스터에서 얻을 수 있었다. 악기와 의상 등 남미 소품들은 과하지 않았지만 기계적 소통은 소프트한 공간이 필요해 보였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마니아들처럼 좋아하는 그것만의 범주에서 도전할 때 진정한 행복이 있지 않을까. 상상력이 실제의 삶과 결탁하는 순간 의미를 상실하는 이율배반을 나도 느끼며 인생을 자라왔기 때문이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지동시장이 보이는 수원천

들판엔 모내기가 한창이다. 논물 속의 개구리처럼 봄비가 울고 가더니 눈부시게 갰다. 신록은 봄의 가장 선명한 대명사, 향수적인 시어들과 옛 노래가 버들피리처럼 유려하다. 잎들은 윤기가 흐르고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거나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이라는 꽃의 제전이다. 오월의 크리스마스인가. 감사하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계절, 난초 돋아난 토담가에 앉아 옆집 동무랑 감꽃 목걸이 만들던 추억도 생각난다. 이런 시조를 봤다. “시든 감꽃 목걸이 담 위에 걸어놓고/탱자꽃 시린 오월 해맑은 하늘길로/뉘 모를 물안개 속을 돛단배 가듯 간 이.’ –김연동 ‘감꽃 목걸이’– 일전에 교탁 위에 카네이션 바구니가 놓여 있어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며 야학하는 J님의 마음이었다. 리본에 새긴 ‘고맙습니다’라는 꽃말은 더욱 따뜻했다. 어떤 반은 향기로운 카네이션에 생크림이 가득한 케이크를 모두가 나눠 먹게 해 축제 같았다. 가족에게도 흔치 않은 일이라 감동이다. 무엇으로 답해야 할지 부담이지만 참 아늑한 세상이다. 오월은 기념일로 가득한 은혜의 날들이다. 신이 주신 꽃과 싱그러운 신록만으로도 축복 충만한 계절, 수원천을 거닐며 다리 아래로 흐르는 아련한 봄을 바라본다. 내 건너 지동시장 추억의 장날 만두도 그립고, 긴 줄 선 통큰 칼국숫집에서 콩국수 한 그릇을 먹고도 싶다. 송학다방에서 낭만적으로 커피 한잔 마실까.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세류동에서

궂은비 자욱한 아침이다. 공휴일은 피트니스클럽이 늦게 문을 열므로 늘 작업실까지 걷는다. 권선동 언덕을 넘으면 옛 세류삼거리다. 세류동은 아기자기한 가게와 주택들이 밀집한 보물창고다. 40년 전 수원에 첫발을 딛고 자취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그만 골방에 연탄불과 재래식 부엌이 있던 곳, 허기져도 끝없는 앞만 보며 질주하던 청년 시절이었다. 이 세류동 스케치는 9개월 전 그림을 동기로 나의 교실 구성원이 된 진흙 속의 보석 박혜찬님이 그렸다. 그녀는 디자인 계열의 미술을 전공한 실력자다. 80억 지구별에서 한 사람을 알고 이웃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다. 나는 강의 후 삶의 근원인 음식을 매개로 한 유대를 위해 수강생들과 밥을 먹는다. 어차피 점심시간이 살짝 지나 함께 한 끼 때우는 정도다. 그 멤버의 혜찬님은 매사에 명확하고 인간미 깊다. 하긴 순한 살모사처럼 딱 한 번 과용한 곡차로 이유 없이 내게 대든 적이 있다. 체납된 연체료처럼 찜찜했던지 그녀는 쿨하게 사과하는 예법을 지켰다. 나도 쩨쩨하게 한 잔말을 거뒀으니 탈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화요일 이사하는 님의 집에 가루비누라도 들고 함께 가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선약이 있어 못 가게 됐다. 이래서 수강생들이 머리 나쁘다고 자꾸 대드는 것 같다. 아무렴, 인생 별건가. 옥잠화 잎처럼 생생한 나의 멋진 수강생들을 위해, 더디게 이루더라도 후회는 없을 한결같이 아름다운 수업을 준비하자.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내 건너 빨간 집-삼일학교

신록의 계절이다. 청보리 익어가고 모란꽃, 유채꽃, 아카시아꽃이 짙은 향을 쏟는다. 눈으로 향기를 맡는 느낌이다. 시냇가도 푸르름이 흐른다. 화홍문을 지날 때, 내 건너 버드나무 사이로 빨간 벽돌집 한 채가 시선을 잡았다. 고색창연한 서양식 건축의 옛 삼일학교다. 삼일학교는 1903년 미국인 선교사 W 서웨어리가 15명의 소년을 모아 시작한 교회부설 학교로 처음엔 교회 건물을 빌려 사용했다고 한다. 미국 아담스 교회의 도움으로 건립돼 벽 꼭대기에 ‘ADAMS MEMORIAL’이라고 새겨져 있다. 삼일학교는 교사와 학생들이 1920년대 항일 비밀결사운동을 전개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학생운동 발상지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 임면수 선생은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인간교육을 건학이념으로 삼일학교 창립에 기여했다. 솔로몬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기념관은 문이 잠겨 있어 이마에 손바닥을 얹어 빛을 가리고 실내를 들여다본다. 친구들 목소리가 들려올 듯한 목조 마룻바닥에 책걸상이 놓여 있는 옛스러운 풍경이다. 풍금 소리에 맞춰 스와니강을 부르던 중학교 적 생각이 난다. 마룻바닥에 반들반들 초칠을 해 놓고 선생님이 미끄러지는 모습을 깔깔대며 바라보던 기억, 추억은 분필로 쓴 칠판 위의 낱말 같다. 널따란 운동장을 건너 교문을 나서며 책가방을 든 소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아! 벌써 내 건너 오월의 향훈이 코끝에 닿는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반복의 매너리즘-나의 아파트

비바람 불고 꽃비 내리더니 누리 가득 새 잎이 번졌다. 레인지의 연두부가 익는 동안 창밖을 본다. 부감법 형식의 멋진 장면이 사유 없이 노출됐다. 다닥다닥 붙은 방들이 벼랑 끝 바위에 집을 지은 카파도키아 괴르메의 비둘기집 같다. 전원 속에 살겠다던 나의 꿈은 30년째 이 아파트에 살아온 공허한 헛꿈이 됐다. 그래도 화단의 교목과 담 너머 가로수들은 봄마다 싱그럽다. 아침 요기로 달걀을 팬에 올린다. 먹는 것도 정성을 다해야겠지만 늘 성가시다. 조각가 류인이 아내에게 주문했다는 계란프라이가 떠오른다. 불의 세기, 기름의 양, 시간을 따져 마지막에 프라이팬 뚜껑을 덮어 달걀의 윗면을 살짝 익힌, 바삭하고 촉촉한 궁극의 계란프라이 하나를 얻기 위해 10개를 연달아 부쳤다는. 나는 수년째 계란프라이 하나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물리적 계란프라이가 아닌, 궁극의 작품을 얻지 못한 회한이다. 달래 향 가득한 된장찌개가 그립지만 아침마다 똑같은 조찬을 부뚜막에 기대어 선 채 때운다. 먹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일하고 추구하라는 엄중한 장치 같다. 오늘도 따뜻한 물 한 컵에 연두부, 낫토, 닭가슴살, 파프리카 4분의 1개, 계란프라이, 사과 4분의 1쪽, 그릭요구르트 하나를 먹는다. 반복되는 아침 의식이 귀찮고 싫지만 세월에 저항 없이 나는 일상의 패턴을 형식화한다. 피트니스센터까지 걸어가서 운동하고, 작업실에 걸어가서 종일 작업하다가 밤이 돼 귀가한다. 잠자는 나의 거룩한 아파트.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개심사 가는 길

해마다 봄 되면 고사리 산나물 뜯어 가마솥에 삶아 널었다. 구수한 참나물 냄새가 마당 가득 번졌고, 쑥 보숭이와 돌나물 물김치도 입맛을 돋웠다. 수필 한 땀 같은 고향의 봄을 그리며 개심사 갈 때마다 들렀던 풍전뚝집으로 향한다. 파릇한 풀 돋은 논두렁길이 싱그럽다. 그새 깨끗하고 넓은 공간으로 변했다. 추어튀김에 곡차 한잔 축이고 어죽으로 얼큰하게 몸을 달군다. 파김치와 열무김치도 이 집의 별미다. 바닥을 드러낸 죽 대접을 뒤로하고 숨겨 놓은 애인처럼 봄 되면 보고픈 개심사로 간다. 14개의 보물과 청벚꽃, 겹벚꽃, 왕벚꽃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그저 봄볕처럼, 어머니의 옥양목 치마처럼, 개심사의 소박한 향수 때문이다. 개울물 소리와 산자락 소나무길 따라 걷는 느낌이 좋다. 비탈길 접어 올라 하늘 담긴 경지(鏡池)에 찌든 마음을 반추해 본다. 안양루로 조성된 넓은 계단은 어색하고 낯설고 아쉽지만 일제강점기 서화가 해강 김규진의 글씨라는 상왕산 개심사 현판은 장중한 운필의 멋이 깃들어 다시 보게 된다. 올해도 도달할 수 없는 연정의 춘몽처럼, 심검당 옆 뜰 안에 홍도화가 도도히 피었다. 춘삼월 하늘에 팔을 뻗고, 사랑을 태우는 봄 처녀 같기도 하다. 텃밭엔 수선화가 병아리 떼처럼 노랗게 피었다. 마음을 연다는 개심사의 의미같이 심호흡으로 가슴을 펴본다. 만개한 내 안의 화단에도.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도청 벚꽃 길

벚꽃 필 무렵 해마다 도청 길을 걸었다. 가끔 놓쳐버린 버스처럼 봄이 지고 마지막 꽃비가 흩날릴 때도 있었다. 봄은 짧고 평범한 세월처럼 인색하다. 그래도 보고 나니 올 한 해가 덜 억울할 것 같다. 거룩한 순례처럼 꽃길 돌아 지석묘가 있는 팔달산 기슭에 올랐다. 다시 화양루가 있는 성벽 따라 서장대로 향한다. 시내 풍경은 해마다 다르다. 내가 사는 매교동이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길가엔 명자꽃, 서양수수꽃다리꽃, 조팝나무가 향을 쏟는다. 홍도화는 아직 색이 옅다. 화서문,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까지 와서 행궁동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왕대포집이 이사를 와서 아직 거꾸로 된 간판을 뒤집어쓰고 있다. 매향통닭은 잔칫집처럼 손님이 넘쳤다. 지동시장 순댓집에서 막걸리 한잔 걸친다. 전율처럼 빈 속이 짜릿하게 흐른다. 엉켜 있던 마음이 스르르 해체되는 기분, 봄날 하루가 저문다. 남수문 아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와 몇 해 전 성급히 하늘로 떠난 후배가 떠올랐다. 수원천에서 깃발 전을 설치하며 밤길을 걸었던 아우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이사할 때 심어준 왕벚나무는 잘 자라고 있을까. 많이 보고 싶다. 봄마다 돋아나는 시 한 편이 스친다. ‘전송하면서/살고 있네/죽은 친구는 조용히 찾아와/봄날의 물속에서/귓속말로/속살거리지,/죽고 사는 것은 물소리 같다/그럴까, 봄날도 벌써 어둡고/그 친구들 허전한 웃음 끝을/ 몰래 배우네.’ –마종기 ‘연가 9’ 중에서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물향기 수목원에서

코끝에 와 닿는 촉촉한 꽃 내음, 길가의 풀잎이 봄비에 더욱 파릇하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이슬비에 야외 스케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의외로 모두 참석했다. 긴 겨울을 지나며 바깥 나들이를 가고픈 마음이 비가 오고 황사가 친다고 해도 큰 장애가 되지 않았나 보다. 함께 우산을 쓰고 공원길을 걸었다.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산림전시관 테라스에서 비 오는 바깥 풍경을 들여놓았다. 한눈팔 겨를 없이 진지한 모습, 언제 어디서 하루의 세 시간쯤을 잘라내어 온 마음을 집중할 수 있겠는가. 스케치북이 모이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그림들이 다양하고 느낌 있게 펼쳐졌다. 산수유도, 진달래도, 매화도, 연둣빛 버드나무도 봄비에 더욱 산뜻하다. 그 가운데 이름 모를 꽃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개나리처럼 길게 늘어선 관목인데 하얀 꽃이 매화를 닮았다. 학명이 미선나무다. 이름도 예쁘고 향도 진한 이 꽃은 한국의 고유종이라니 더욱 귀하게 보인다.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꽃말처럼 이 봄이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미선을 닮은 매화를 그렸다. 매화는 고전적인 향기가 있다. 매화를 사랑한 퇴계 선생은 임종 때 “매화에 물 주어라”고 유언하셨다고 한다. 대피소에서 그림 평을 마치고 함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화무십일홍, 한나절을 동여맨 오늘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봄날이다. 보티첼리의 세 개의 그림에 소리의 색채를 입힌 레스피기의 관현악곡 봄을 듣고 싶은 봄봄봄이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남문 언덕에서

강의실 교탁에 경주빵과 커피 한잔이 놓여 있다. 학창 시절의 교실이 떠오른다. 교탁엔 항상 화병에 꽃이 피어 있고 출석부와 교과서가 있었는데 가끔 우리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올려놓기도 했다. 교단과 칠판과 그 옆에 풍금이 놓여 있는 교실, 참 정감있었다. 요즘은 전자교탁이 있다는데 아마 PC와 빔프로젝트용 AV 시스템 장치가 있을 것 같다. 경주빵과 함께 놓여 있는 과자 꾸러미는 이번 신입생들이 올려놓은 것이다. 성인들의 교실은 그들이 살아온 방식의 따뜻한 정이 남아 있다. 아무튼 수강생의 강사가 아닌 학생의 스승이 된 기분이어서 오랜만에 보람을 느낀다. 오늘은 정영훈님이 남문 옆 거리를 그렸다. 항상 함박꽃 같은 엷은 미소를 짓는 조용한 성격, 편협하지 않고 이해심 많은 도량을 소유하고 있다. 그녀의 그림은 순수하고 재미있다. 어반스케치의 형식인 건물과 사람과 자동차가 들어간 구성이 잘 짜여 있다. 남문 언덕엔 남창초등학교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다. 운동회에 달리기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딸은 일등을 했고 엄마도 학부모 달리기에 일등을 했다. 온 힘을 다하던 일그러진 얼굴,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런데 학교가 조용하다. 어린이가 없는 구도심 학교의 전형이다. 중앙극장이 사라지고 유동골뱅이와 동막골 전집과 50년 넘긴 중화요릿집 영화루가 남았다. 영화루의 짜장면이 당긴다. 차라리 이모네 포차에서 소주 한잔 걸칠까.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길가에 파릇한 새싹이 분주히 돋았다. 하얀 볕 눈부신 봄나들이다. 버드내를 거슬러 오를 때 화홍문을 관통하는 물보라가 약동하는 봄을 안내한다. 오늘이 선물이다. 고귀한 은혜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나날을 성찰케 한다. 노란 산수유도 보이고 길섶에 개나리도 보인다. 장안문 지나 성곽 따라 걷는 길이 탄력을 더한다. 화서문 돌아 골목마다 예쁜 카페가 기대어 있는 행궁길로 들었다. 시대를 표상하는 무인사진방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시간은 정체하지 않고 자주 얼굴을 바꾼다. 계획한 점심은 골목집이다. 뒤편 골방과 막걸리 주전자가 사라지고 젊게 바뀌었다. 묵은지김치찌개와 막걸리 한잔 곁들인다. 공방 길에 기와집 한 채가 고전처럼 서 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촬영지다. 대문 안이 궁금했다.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옥희와 달걀 장수의 신파극 같은 향수가 묻어난다. 카페 단오에서 커피 한잔 마주했다. 주인장은 연극하는 후배로 이곳에서 미얀마를 위한 전시를 연 바 있다. 벽에 시 한 편이 걸려 있다. 수원 출신 최동호 시인의 시 화령전이다. “첫사랑 임의 입맞춤 누가 몰래 지울까/말 없는 화령전 기둥 뒤에 새겨두고/나비 날아간 붉은 꽃밭 사잇길 뛰어와/누가 볼세라 잠들지 못해 뒤척이던 보름밤/ 첫사랑 임의 입맞춤 누가 몰래 지웠을까/화령전 기둥은 여전히 말이 없는데/꿈결에도 빛나던 작약꽃 사라진 옛 마당/누가 그리워 나 지금 여기 홀로 서 있나.”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인사동에 가면

삼월도 벌써 깊다. 갇혀 있던 작업실을 벗어나 인사동길에 올랐다. 존경해온 서양화가 송창 선배님의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전철 밖으로 봄기운이 흐르는 풍경들을 덧없이 바라본다. 허기처럼 고향 생각도 나고 봄날 하늘 가신 부모님도 그립다. 인간미 풋풋한 송 작가님은 뵙기로 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셨다. 멋진 작품을 둘러보고 이미 가득한 작가들과 오늘 저녁 뒤풀이를 맞이해야 하는 선배를 놓아드렸다. 대신 친구와 풍습처럼 식사와 반주를 곁들였다. 대학원 동기이자 서양화가인 그녀는 인사동에 갈 때마다 마주했다. 우리라는 단어를 품을 만한 다양한 레퍼토리로 10년의 희로애락을 결속한 동료다. 초창기는 서로의 작품관과 예술에 대한 담론이 화두였지만 요즘은 일상적 넋두리와 자식 담화가 대부분이다. 이야기가 익을수록 술잔의 속도가 빠르다. 술은 너와 나의 내면을 표현하는 익숙한 수단 같다. 인사동에 저녁이 내린다. 오늘 밤 문화센터의 야학을 위해 부랴부랴 전철에 몸을 실었다. 한 시간 반, 지루한 길이다. 외롭지 않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대체할 시 한 대목을 떠 올렸다. ‘참새들에게 호랑가시나무 덤불이 천국이듯 우리의 겸손한 천국도 갸륵한 슬픔으로부터 온 것이다. 나를 울게 한다. 그것은 먼 곳에 있고 가질 수 없지만, 그것은 분명 내 몸속에 있다. 수평의 먹줄을 튕기며 번지는 기억. 시간이 벗어두고 간 외투는 잘 보관하기로 하자.’ –박서영 ‘우리의 천국’ 중에서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낙수 소리-선교장 열화당

겨울 바다로 갔다. 평창의 후배 전시 관람 때문이지만 나선 김에 동해로 향한 것이다. 혼자 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웅장한 설산을 바라보며 작가들과 동행하니 흥이 오른다. 오죽헌에서 초충도를 본 후 바로크 시대에 등장하는 최초의 서양 여성화가 젠틸레스키보다 신사임당이 앞선 시대에 활동한 사실에 놀랐다.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은 출판사 열화당의 모태로 경운궁의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시던 고종의 카페를 연상케 하는 테라스가 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한 것이라고 하는데 녹색 지붕을 서양식 기둥이 받치고 있다. 선교장은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이 지은 99칸 사대부의 살림집으로 300년을 이어 온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 유형문화재이다. 우람한 소나무가 도열한 뒷동산과 입구의 활래정은 크되 넘치지 않는 소박함이 묻어난다. 성실한 이내번은 소금을 판 돈으로 영동지방을 개간해 농토를 농민에게 제공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다. 길게 늘어선 행랑채 추녀에서 흘러내리는 낙수의 영롱한 파열음을 듣는다. 낙수는 먼 세월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멍하니 생각과 시간을 멎게도 한다. 고드름 타고 흐르는 밤의 낙수 소리는 행랑채 묵객의 하룻밤 시조일까. 거친 겨울 바다를 바라본다. 밀려오는 파도는 가슴과 시각을 심호흡처럼 열어준다. 유리창을 통과한 바다를 투명한 소주잔에 담았다. 젊은 날의 꿈은 사라진다 해도 영광의 추억은 자라고 있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겨울비-로데오 뒷골목

겨울비도 봄비도 아닌 촉촉한 이슬비를 맞으며 교동의 뒤안길을 걸었다. 사실은 마음이 꿀꿀해 술 한잔하고 오는 길에 잘못 이탈한 길이다. 우연히 큰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전혀 다른 이색적 풍경을 보게 된다. 한때 젊은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수원 남문과 향교를 잇는 로데오의 뒤안길이다. 남문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젊은이들이 신도시로 떠나 휑한 공간이 됐다. 시간이 남긴 낡은 무늬엔 일전에 본 파묘의 정령들이 생각날 정도다. 요즘 가수 이효리가 모교인 국민대 졸업식에서 ‘인생은 독고다이다. 누구에게 위안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쭉 가시라’는 축사가 임팩트 있게 유통되고 있다. 젊은 시절은 누구나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예술가는 오직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위해 벽만 보며 살아간다는 것.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며 내면세계를 확장해 가는 것이다. 무수한 홀로의 실패기로 프로필을 쓰면서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것에서 많이 배우고 자극받고 힘이 될 때가 있다. 홀로 살다 홀로 죽는 홀몸노인들의 고독사가 현대 문명 속에서도 크게 자라고 있다. 나도 아버지의 임종마저 보지 못했다. 공광규 시인의 시 ‘소주병’의 한 대목이 떠 오른다. ‘(중략)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나가보니/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빈 소주병이었다.’ 문득 그립다. 아버지의 소주병.

문화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