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양한 문화공간 품고…시민과 ‘예술 동행’ [동행공간, 문화도시 수원이 보인다]

‘서로를 살피고 문제에 맞서는 문화도시 수원.’ 수원특례시는 2021년 12월 제3차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됐다. 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는 문화도시 프로젝트의 첫 해에 이어 올해도 협력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여러 시도와 도전을 이어나갔다. 문화도시 수원에는 다시 불러낸 조선 후기 개혁군주 정조의 사상과 비전들이 맴돈다. 백성을 위했던 정조의 ‘위민도시’ 사상, 직면한 현실에서 진리를 찾는 ‘실사구시’의 마음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공간에 녹아드는 과정에서 문화도시의 정체성이 엿보인다. 문화도시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은 도시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인 ‘시민’과 ‘공간’에서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재단 관계자와 시민들이 사람과 공간을 연결하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 동행공간에 가면 문화도시 수원이 보인다 지난해 문화도시 동행공간은 2021년에 이어 한 번 더 손을 맞잡은 22곳, 모집공고를 거쳐 새롭게 합류한 36곳이 모여 총 58개소가 운영됐다. 올해도 동행공간은 시민들과 함께한다. 동행공간을 찾아나서기로 마음먹었다면, 실행에 옮기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카페, 독립서점, 공방 등 일상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동행공간이다. 동행공간은 공간별 개성에 맞게 지역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찾는다. 제로웨이스트, 마을활동, 공공예술, 로컬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활동을 하고 있어 그 공간에 가면 수원이 왜 문화도시인지 알 수 있다. 수원 시내 곳곳에선 문화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곧 문화 활동이자 문화생활이 되는 순환 구조가 생겨난다. 문화도시센터는 공간 운영자들의 역량을 키우고 네트워크 조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했다. 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인문도시주간과 동행공간 주간을 기획하는 등 다채로운 연계 프로그램도 지원된다. ■ 공간이 품은 가치를 시민과 연결…사업 간 시너지 촉진 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는 도시 곳곳을 수놓는 자원을 연결하고자 한다. 시내 곳곳에 퍼진 거점 공간, 공간을 오가면서 흥미와 욕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이어가는 사람들이 재단과 뜻을 모은다. 교류의 무대를 넓히는 과정 속에서 수원만의 고유한 브랜드가 피어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지탱하고 있다. 문화도시 수원은 시민가치·마을가치·지역가치·생태가치를 각각 담아내는 문화예술사업에 집중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개별 사업의 고유성을 연결해 시너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수원은 학교’는 지역의 문화예술 관련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문화예술교육에 중점을 둔다. 동행공간 운영자가 공간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수원은 학교’에 참여한다면 전문 지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얻는다. ‘수원은 실험실’의 경우 R&D를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인데, 동행공간 중에서 이슈 발굴과 문제 해결에 관심있는 곳이 참여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동행공간은 로컬콘텐츠 창제작, 인문도시주간, 수원공공예술 등 여러 사업 간의 다리가 돼 주면서 다양한 시민들의 교류를 촉진한다. 최용진 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은 “결국 동행공간을 오가는 이들끼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시민들이 서로 다른 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데에서 시작된다”면서 “문화도시센터만 있다고 해서 절대 문화도시 수원을 만들 수 없다. 시민들이 함께 구축해가는 것이기에 센터는 이들을 잘 연결하고, 지지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최용진 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 Q. 문화도시 사업에서 ‘동행공간’의 역할이 무엇인가.  A. “공간은 네트워크를 만든다.” ‘동행공간’ 사업을 시작하면서 떠올렸던 말이다. 동행공간은 문화도시 수원의 네트워크를 만든다. 사람이 계속 모이고 관계를 맺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거점이 되는 공간이다. 공간이 있어야 관계가 계속된다. 동행공간은 문화도시 수원에서 하는 다양한 사업이 실행되는 곳이다. 운영자의 개성이 담긴 기획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한 달 이상의 긴 호흡을 갖춘 프로그램으로 시민들과 만남을 지속한다. 인문클럽 회원들이 모이고, 공연 행사가 열리며, 로컬 콘텐츠를 전시하거나 촬영하는 곳들을 떠올려 보면 이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자연스레 문화도시 수원의 존재감을 시내 곳곳으로 퍼뜨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Q. ‘동행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작업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A. 동행공간으로 지정된 공간들은 이미 지역 안에서 일상 속 문화예술활동을 계속해왔다. 그렇기에 기존의 색채에 더해 동행공간으로서 입힐 수 있는 컬러에 관해 치열한 고민들이 이어진다. 과연 동행공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모여서 많은 논의를 한다. 문화예술계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동행공간 운영을 컨설팅하면서 사업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매달 2회 동행공간 운영자들의 모임을 마련해왔다. 1~2월에 모였던 ‘슬기로운 겨울나기’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올해의 구상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러다 단순 친목 모임을 넘어 협업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 동참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어진 3~4월 모임 ‘봄동(봄타는 동행공간) 캐기’에서는 서로의 공간을 방문하며 각자 꾸려가는 콘텐츠를 공유하는 등 서로 연결을 도모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커피 향 품은... 지역 예술인 아지트 [동행공간, 문화도시 수원이 보인다]

문화도시 수원을 걷다 보면 저마다 색다른 이야기를 품은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매일 걷는 골목, 매일 마주하는 건물.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낯선 공간 혹은 우리가 이미 알았던 공간에서 ‘동행공간’이란 이름으로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야기들이 또 다른 생명력을 잉태해 우리가 마주한 여러 고민을 함께 논의해 나가고 있다. 이번에 만날 동행공간은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에 자리한 카페 B’side(이하 비사이드)다. 겉보기엔 고급스러운 카페 그 자체지만 문을 열면 그 안에선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안고 있는 여러 어려움을 해소하고, 함께 상생하기 위한 미래가 매일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천천동의 길목을 따라가다 보면 감성적인 카페 하나가 눈길을 끈다. 깔끔한 외부 인테리어와 감각적인 간판. 겉보기엔 일반 카페인 듯하지만 이곳에선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 문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하나의 작은 예술생태계를 잇고 있다. ‘커피 내리는 옆에서 모든 일이 이뤄진다’라는 뜻을 담은 ‘비사이드’다. ‘비사이드’는 지난 2016년 7월 문을 열었다. 카페인 동시에 문화 창업 플랫폼 역할을 하는 이곳은 1층 고급 커피전문점, 지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설계됐다. 1층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테이블에 앉아 일상을 나누는 손님들의 대화 음률 사이로 향긋한 커피 냄새가 기분 좋게 스며든다. 세련된 분위기의 인테리어 속 벽의 한쪽 면은 책으로 가득하다. 벽면 곳곳에는 작은 쪽지가 붙어 있어 아늑한 감성을 준다. 길게 뻗은 가판대 위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핸드메이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커피를 내리는 옆에서 무언가를 이뤄지게 하는 비사이드의 첫 번째 핵심 콘셉트인 ‘제품 임대공간’이다. 비사이드는 전각과 비누, 컵 굿즈, 블록, 가죽 소품 등 지역 공방 예술인 20여팀이 만든 제품을 이곳에 진열해 대행 판매를 한다. 윤일노 비사이드 대표는 “동행공간에 참여하는 곳의 제품을 위주로 선보이며 제품은 6개월에 한 번씩 교체된다”며 “공방 대부분 외진 곳에 자리잡아 온라인 등을 제외하곤 자신들의 제품을 선보일 기회가 없는데, 유동인구가 많은 카페에 진열해 홍보와 판매가 이뤄지게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가판대 바로 앞엔 지역 공방이나 소규모 클래스를 알리는 홍보물과 수업 일정이 꽂힌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카페를 방문하는 이들이 소규모 클래스를 보고 직접 참여할 수 있게 자연스럽게 홍보를 해준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에선 다양한 형태의 강의와 모임 등 목적성 있는 공간이 운영된다. 캘리그래피, 수채화 등의 소규모 문화 예술 수업이 열리거나 기업체의 강의가 진행되기도 한다. 기업체의 강의나 행사도 이뤄지지만 대부분 다른 동행공간의 공방 수업이 이뤄진다. 동행공간의 수업이 이뤄질 땐 장소 대여비가 무료이고 커피값만 받는다. 또 영화 상영 공간도 있어 영화와 책, 음악 무엇이든 함께 즐기고 고민할 수 있다. 100평 남짓한 공간에 3분의 1만 채워진 테이블에선 여백의 미와 여유, 느긋함을 이곳에서 느끼길 바라는 윤 대표의 철학이 녹아 있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연결하고, 창업을 연결하는 이곳은 문화 창업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비사이드는 사실 ‘콘텐츠를 자생해서 만들지 못한다’는 게 최대의 장점이다. 손님들에게 자연스럽게 지역 예술인들의 소규모 클래스나 공방 일정을 홍보하고, 본인의 공방 없이 활동하는 청년 예술인 등을 위해 대관료를 받지 않고 장소를 내어 준다. 그 예술인들이 공방 수업을 진행할 때는 인원에 맞는 커피값만 받는다. 이곳에서 공방 수업을 하던 예술인들은 소규모 클래스를 성장시켜 본인만의 공간을 얻어 독립하기도 한다. 공간 임대와 제품 판매에서 지역 예술인 ‘인큐베이팅’까지 이뤄지는 셈이다. 비사이드의 문을 열면서 윤 대표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지역 예술인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로나 전 3일간 지하 1층의 공방 장소 대여와 1층의 상품 진열 판매 홍보를 했는데 무려 270팀이나 문의를 했어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만, 그걸 홍보하고 판매할 장소가 없는 젊은 예술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죠.” 윤 대표는 비사이드를 한 단어로 “아지트”라고 표현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모든 활동이 이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을 통해 활동하는 분들의 다양한 문화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사람과 공간, 동행공간 등을 연계해 지역의 문화생태계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인터뷰] 비사이드 윤일노 대표 “비사이드 2호점 준비… 상생·연계 활성화” Q. 플랫폼으로서 비사이드가 동행공간에서 맡은 역할도 중요한 것 같다. A. 사실 역할이란 게 없다. 동행공간은 같은 사업을 하는 동등한 분들이 동행공간이라는 플랫폼에 모여 각자의 탤런트를 가지고 다양한 이벤트와 기획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공간이 동행공간에 어떤 도움이 되고 수원의 브랜드에 도움이 된다면 그 자체로 상생하는 관계인 것 같다. 이런 상생과 연계에 관심이 많다. 그동안 수원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인문클럽’, 문화직거래장터 ‘수문장’에 이어 동행공간까지 방향이 잘 맞는 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다. Q.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A. 근처에 마음 맞는 분들과 조합을 만들어 마켓 문화를 만들고 싶다. 클래스 활동을 함께 이뤄 조합화한다면 고정된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이걸 프랜차이즈화해 또 하나의 조합을 만들면 전국 플랫폼이 될 것이다. 우선 비사이드 2호점을 준비하고 있다. 비사이드는 커피와 옆에서 함께할 수 있는 공간, ‘비사이드 컬처플레이스’다. 누군가는 이 얘길 듣더니 ‘민간문화재단이 아니냐’고 반문하던데, 실제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동네 깃든 사연 예술로 풀며... 끈끈한 정 잇다 [동행공간, 문화도시 수원이 보인다]

원도심의 끈끈함이 서려 있는 행궁동 일대는 한 번 빠져들면 쉽사리 떠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곳이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이 자리잡은 행궁동엔 신풍동, 매향동 등 12개의 법정동 주민들이 함께 살아간다. 행리단길 등의 인기로 이 지역의 유입 인구가 많아지면서 지역의 정체성이 새롭게 재편됐지만, 오랜 기간 마을과 호흡해온 사람들이 마음에 맞는 이들과 구축해온 커뮤니티 역시 행궁동을 지탱해 오고 있다. 사람이 소통하는 곳에는 언제나 문화와 예술이 피어나기 마련인데, 특히 행궁 권역에선 관광 명소와 일상 공간 사이에 빈틈이 발견된다. 느슨하게 벌어진 틈새로 동네 곳곳이 품어온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번에 만나볼 동행공간은 행궁동 주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복합문화공간인 근데미술관이다. ④ 근데미술관 매향동의 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근데미술관. 2층에 올라 문을 열면 한 작가의 평범한 개인 작업실처럼 보이기도 하고, 군데군데 걸려 있는 그림과 각종 예술 작품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평상시 이곳에서 반려동물들과 시간을 보내고, 작업에 대해 생각하며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송은지 작가(42)는 펜드로잉 작업을 중심으로 작가 활동을 이어온 데 이어 동네 공동체 문화를 꾸려나가는 문화 기획자의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 얽힌 이름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생각보다 단순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기가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으니 미술관인 거 같기는 한데, 그런데 마냥 미술관처럼은 안 보이고 근데 또 작업실이나 모임공간으로도 쓰이는 것 같기도 한...그런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나온 이름이죠.” 원래 근데미술관은 신풍동에 있었지만 지난해 1월 매향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작가들의 굿즈도 팔고, 작품도 전시하고 작업실이자 모임 공간으로 입소문이 났던 신풍동 시절과 지금은 사뭇 달라진 공기와 상황이 그의 앞에 놓여 있다. 이사 이후 정신 없이 짐을 정리하고, 재정비하는 기간이 이어졌다. 매향동 근데미술관은 다시 기지개를 켜면서 앞으로 나아갈 채비를 마쳤다. 송 작가는 신풍동에 ‘두석이네 미술관’이라는 전시 공간을 얻어 그의 철학이 두 거점 공간을 통해 확장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오는 4월1일부터 한 달간 동료인 김가리, 임은빈 작가와 함께 ‘워밍업; (둥근모서리)’라는 전시를 통해 주민들과 만나게 된다. 전시가 시작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이 덧칠되면서 근데미술관과 두석이네 미술관을 오가는 형형색색의 색채가 입혀질 예정이다. 근데미술관의 역사는 곧 송 작가의 행보와 맞닿아 있다. 동네 주민을 만나고, 동네에 깃든 사연을 예술로 풀어내는 작업들에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동참했다. 송 작가는 2020년 수원 공공미술프로젝트 ‘사람이 있다 미술로 잇다’에서 행궁 권역을 맡아 기획자로서 동료 예술가들과 작업을 했다. 당시 거점 공간인 근데미술관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갔고, 활동을 준비할 수 있었다. 작가들이 시민들과 만나 만들어낸 창작 프로젝트, 동네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 발간 등 마을 공동체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들이 그를 중심으로 피어났다. 지난해 10월에 진행됐던 ‘행궁동 마을시장: 행궁동 주민 공동체 문화를 위한 커뮤니티 마켓’은 ‘마을, 행궁동, 일상문화’라는 키워드로 각자의 일상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련된 프로젝트다. 평상시 생활 속에서 느꼈던 주차문제, 쓰레기나 담배꽁초 무단 투기 등의 고민과 애로 사항을 동네 주민들이 자주 가는 땅콩카페에서 털어놓는 소중한 마을 문화 형성의 장이었다. 이처럼 행궁동 주민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젠트피리케이션 문제를 비롯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적 사각지대 등 언제나 송 작가의 관심사는 일상에서 출발해 함께 고민하고 나눌 수 있는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다. 언제나 그의 눈에 띄었던 건, 세련된 화이트큐브가 아니라 낡고 버려진 유휴공간이나 동네 사람들이 소박하게 모여드는 허름한 장소들이었다. 그런 마음이 쓸모 없고 버려진 소재들, 제로웨이스트 같은 친환경 이슈와 연결된다. 흔히 꺼내기 힘든 화두를 다루는 작업 역시 송 작가에겐 동네 주민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된다. 송 작가의 곁을 지켜줬던 사람들을 포함해 그의 삶에 불쑥 들어와 한 두 번씩 얼굴을 비치면서 가까워졌던 동네 주민들은 지금까지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특히 송 작가가 20대 후반에 알게 된 노영란 작가(55)는 가족처럼 편안한 사이여서 시간 날 때마다 얼굴을 보고 있다. 노 작가는 “자주 보는 멤버 6~7명이 있다. 근데미술관에서 서로 즐겁게 대화도 하고 밤에는 술 한잔을 기울이며, 놀이터처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낸 적이 많다”고 말했다. 송 작가는 “만약 이들과 쌓아놓은 관계가 없었다면 근데미술관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을 애정으로 가꿔낸 공간에서 계속 마주할 수 있다는 기쁨이 근데미술관을 운영해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근데미술관 송은지 작가 “주민들과 나누는 공동체 의식… 진솔한 내면 공유” Q. ‘함께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A. 20대에는 개인전이나 그룹전 등 전시 활동에도 참여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시만 위해 작업 활동에 몰두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동체 속에서 소통하는 작업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겨 현장의 공기를 만끽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가만히 엉덩이를 붙여 작업에 몰두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진솔한 내면을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곤 한다. 마음이 맞는 동료 작가들과 전시를 할 때는 너무 즐겁다. 글을 쓰는 이,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이들과 함께 매체를 넘나드는 전시를 선보였던 적도 많다. 다양한 분야에서 테마를 공유를 할 수 있다면 다양한 매체, 표현 방식을 함께 품은 기획이 가능해진다. Q. 행궁동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A. 여기서 이 공간을 꾸려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주민들과 나누는 공동체 의식 덕분이다. 행궁 일대에 깃든 느릿한 시간의 미학, 이곳만이 가지는 이웃과의 관계가 있기에 공간을 운영하는 게 가능하다. 결국 중요한 건 공동체다. 공동체 문화가 없다면 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수원역이나 인계동 일대에 작업실이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공간을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끼리의 끈끈한 정을 이어주는 이런 공간이기 때문에 결국 여기에 사람이 모여들게 되고 여기를 떠날 수 없는 이들이 생기고 사람과 사람이 계속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 선순환 구조가 생겨나는 게 아닐까.

서로 보듬는 살고 싶은 마을 [동행공간, 문화도시 수원이 보인다]

서로 마음은 있으나 말 한 번 걸기 어렵고 눈길 주는 게 조심스러워진 시대다. 너와 나의 거리두기가 자연스럽고 개인의 삶이 사회의 흐름이자 진리가 돼버린 요즘, 사실 많은 이들은 누군가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 수원 곳곳에서는 이러한 느슨한 연대의 동행공간들이 각자 피어나 큰 줄기를 잇고 있다. 이번에 만나본 동행공간은 권선구 서둔동의 마을공동체 벌터온이다. 벌터온은 지역 주민들 스스로 ‘서로를 살피고 문제에 맞서며’ 살고 싶은 마을, 기억하고 싶은 동네로 가꿔 나가고 있었다. ③벌터온 지난 16일 찾은 수원특례시 권선구 서둔동 벌터마을회관은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의 도란도란 대화 나누는 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마을회관을 빌려 지역공동체와 돌봄공동체를 운영하는 벌터온의 취미 활동 모임 ‘코바늘 수업’이 한창이었다. 내부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부엌과 아이들이 쉴 수 있는 방, 아이들과 마을 주민들이 만든 작품으로 빼곡했다. 이날 코바늘 강사로 나선 신평옥씨(48), 코바늘을 배우러 온 염미화씨(44), 김선례씨(53) 모두 벌터온 주민이다. 강사로 나선 신평옥씨는 ‘무보수’로 주민들에게 코바늘을 알려준 지 3년째. 신 씨는 “처음엔 코바늘을 할 줄 몰랐지만 문화사업을 할 때 강사가 외부에서 와 배우게 됐다. 이후 관심 있는 동네 엄마들과 서로 시간을 맞춰 취미반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 “우리가 해보자” 문제에 맞서고 바꿔 나간 주민들의 힘 벌터마을은 나지막한 지붕과 담벼락이 정겨운 동네다. 오래된 집들이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골목골목이 이야기를 머금은 채 살아있다. 하지만 지역산업 쇠퇴와 전투기 소음 등으로 비교적 낙후된 동네로 꼽혔다. 동네에 유일한 놀이터는 가꿔지지 않아 막걸리병 등이 굴러다녔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아이들이 배회하던 장소였다. 인근 서호초등학교의 전교생은 260명 남짓, 고령 인구가 많아 동네 여기저기엔 홀로 앉아 시간을 때우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주민들은 마을이 안고 있는 장점을 살리고 싶었다. 아이들이 나고 자란 동네가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랐다. 2018년 송진영 벌터마을 대표를 비롯한 주민들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노는 곳, 살기 좋고 정이 넘치는 마을로 만들자고 마음 먹었다. 시작은 동네에 유일하게 있던 놀이터였다. 때마침 진행되던 수원시지속가능재단의 놀이터 구조대 공모사업에 참여해 후원을 받았다. 낡은 미끄럼틀, 고양이 똥으로 가득한 흙바닥을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꿨다. 엄마들은 소매를 걷어올려 직접 놀이터 청소를 하고, 미니 책장을 설치해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놀이터는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했고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주고 받는 어른들이 늘었다. 늦은 시각, 아이들이 놀이터를 배회하면 모른 체 지나가던 어르신들도 애정어린 잔소리와 관심을 건넸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마을이 키워냈다. “모이면 힘이 된다”, “우리도 시도하면 바꿀 수 있구나!” 벌터어린이공원에 스위치를 켠다(ON)는 의미의 벌터온의 도전이 시작됐다. ■ 더 많은 이웃이 담장 밖으로 나와 ‘무언가’를 나누길 스스로 동네 환경을 바꿔낸 힘을 경험한 주민들은 마을 축제를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운영하는 ‘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던 팀과 협업해 벌터마을축제를 공동 주최했다. 외부인들이 와서 하던 축제는 오롯이 지역주민들이 만드는 축제로 바뀌었다. 5월과 9월엔 계절을 반영한 마을축제를 열어 기타 연주와 주민들이 선보이는 공연, 음식 나눠먹기 등이 진행된다. 마을 축제가 열리고 연일 동네가 들썩들썩 하자 문을 닫고 있던 홀몸 어르신,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던 이웃이 한 걸음씩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엔 외로운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 누군가와 나누면 더 행복하고 즐거운데,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벌터온은 동네의 어른 공동체, 학교 공동체와 끊임없이 마을의 연속성을 위해 무언가를 해나가고 만들어 나갔다. 경로당 어르신들과 아이들은 함께 텃밭 가꾸기, 마을 정원을 진행했고 학교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환경 수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 주민들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마을 안에서 소소한 무언가를 배우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강사는 주민들이다. 수원역 인근까지 마음을 먹고 나가 무언가를 배워야 했던 주민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원하는 취미활동을 동네에서 나눴다. 수공예, 독서모임, 도자기 만들기, 미술활동 등등이 벌터온에서 이뤄졌고 서로가 서로의 강사, 말벗이 돼줬다. 취미활동이 이어지는 공간 한 편에는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취미활동뿐만 아니라 급히 아이를 맡겨야 하는 엄마들, 맞벌이 가정이지만 지역아동센터에 들어가지 못해 늦게까지 마을을 배회하던 아이들, 돌봄의 손길이 부족한 아이들, 놀이터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아이들에게 문을 열었다. 주민들이 보살피고 아이들이 서로에게 친구가 돼주자 동네 아이들이 모였다. 밥을 짓고 돌봄 활동은 주민들이 날짜를 맞춰 무료 봉사를 했다. 늦은 시각까지 동네를 배회하던 아이들도 벌터온에서 쉬어갔다. “돌봄은 아동뿐만 아니라 그 가정이 아이 걱정 없이 안심할 수 있도록 가정을 돌봐주는 역할을 하더라고요.” “이렇게 큰 청사진이 이뤄질거라고 처음엔 꿈도 꾸지 못했지만 끝없이 시도를 이어왔다”는 벌터온은 앞으로도 새로운 이웃, 또 아직 문을 열지 못한 주민들과 함께 소소한 삶의 재미를 나눌 예정이다. 살면서 힘들 때 견딜 수 있게 지탱해주는 것은 누군가에게 받았던 지지와 위로, 돌봄이란 것을 송 대표와 벌터온을 꾸려나가는 주민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송진영 벌터온 대표 “외로운 사람 없게… 마음 나누는 동네 만들고파” Q. 공동체 활동으로 마을에 생긴 변화는 무엇인가. A. 마음을 열기 어려웠던 이웃들이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보고 어울린다. 어르신들이 무료한 시간을 벤치에 앉아 때우시다 마을 행사에 함께 참여하려고 일어서실 때 정말 감동적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 모두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전업주부이거나 평범한 직장을 다니던 엄마들이었다. 서로 변화를 꿈만 꾸다 모이니 힘이 나고, 무언가 이뤄졌다. 동네의 힘, 주민의 힘을 우리가 알았다. Q. 6년째 공동체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 궁금하다. A.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마을의 내일이 계속 기대됐다. 참여하는 아이들은 커 가면서 동네 동생들을 돌봐주고 가르쳐 주고 함께 하더라. 이런 활동이 있기 전까지 옆집에 사는 주민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이제는 함께 취미활동을 하고 우리 마을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함께 고민한다. 때론 고민을 나누며 같이 엉엉 울기도 하면서 인간과 연결되는 느낌, 그 소소하고 자잘한 감동이 계속 이어져 왔다. 위로와 돌봄, 지지를 우리 마을 아이들과 어르신들, 또 아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주민들과 함께하고 싶다.

'자유로운 공간' 속 '삶의 이야기꽃' 활짝 [동행공간, 문화도시 수원이 보인다]

문화도시 수원에서 ‘동행공간’을 찾아나서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혼자가 아닌, 함께할 때 빛나는 순간들을 위해 지금도 시내 곳곳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들이 엔데믹 시대를 맞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찾아가 볼 공간은 수원특례시 영통구 망포동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잡은 ‘서른책방’이다. ②서른책방 커피 머신이 원두를 분쇄하는 소음, 재즈 뮤지션 쳇 베이커의 애달픈 트럼펫 선율,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일정한 리듬으로 울려 퍼지는 노트북 타자 소리.... 다양한 사람들이 지닌 삶의 흔적이 스며드는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은 다소 어수선한 느낌에 붕 뜬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소통하고, 서로의 생각과 의사를 사려 깊게 존중하는 분위기가 서른책방을 지탱하는 핵심이다. 서른책방의 주인장인 서장원 책방지기(32)는 원래 서울에 거주하며 직장을 다녔다. 지친 일상의 위안이 되는 힐링 스폿을 찾아다니는 게 그의 취미였다. 서울엔 유명한 책방과 핫플레이스가 많았지만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거나 시간을 보내기엔 어려운 경우가 있고, 인근 수도권에 관심을 가지면서 수원에 있던 이곳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트렌디하고 힙한 매력보다는 한 줌의 낭만이 서려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책방이 주는 여유에 매료된 그는 전임 사장에게 2019년 10월께 가게를 넘겨받아 손님에서 주인장이 됐다. 그가 이곳을 운영한 지도 어느덧 4년째인 만큼 그의 취향과 감성이 제법 묻어날 법도 하지만 재밌게도 서 책방지기는 이 공간이 자신만의 감성으로 물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서른책방은 방문객 각자가 지닌 색이 뒤섞이고 더해지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긍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남기고 간 사진과 그림, 각종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만든 포스터나 에코백, 추억이 깃든 잡동사니 등 다양한 사연을 지닌 물건들이 책방 곳곳에 스며들었다. 서 책방지기는 책을 큐레이션할 때도 특별한 기준이나 섹션에 얽매이지 않는다. 단골들의 취향을 고려하면서 책장을 정리하는 그는 책방이자 카페인 이곳의 여유 공간을 활용해 작가들과 협업 전시를 펼치기도 한다. 그는 “책방을 거쳐가는 손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좋다”며 “창가 쪽 자리에 걸려 있는 외투가 오늘은 하얀색 점퍼지만 내일은 검은색 코트일 수도 있지 않나. 사소하지만 매일 이곳은 달라지고 또 달라진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새로움과 생동감으로 가득 채워지는 셈”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의 철학이 반영된 독서·필사 모임, 소설시·그림책·나만의 책 만들기·공예 클래스 등의 다채로운 연결망 속에서 사람들이 각자 교류의 의미를 되짚어 보며 공간에 녹아든다. 특히 지난해 8월 임발 작가(소설가)와 김승일 시인이 함께했던 ‘소설시 클래스’는 소설과 시를 융합한 이색 프로그램이다. 김 시인이 책방 측에 “이곳은 언제나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들었다”라며 “소설과 융합한다면 이색적인 시도이자 도전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고, 서 대표 역시 강의를 이끄는 주체나 배우러 온 시민들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우당탕 시작된 클래스를 무사히 마쳤고, 참여했던 이들의 이름으로 11월에 출판물도 발간하는 뜻깊은 성과도 냈다. 글을 써 왔든 써오지 않았든 누군가는 작가가 됐고, 누군가에겐 소중한 추억이 생겼다. 각자 인생 스토리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데 서른책방이 중요한 거점이 된 셈이다. 지난달 28일 오후엔 방문객 7명을 데리고 박소담 작가(32·여)가 그림책 클래스를 진행했다. 박 작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을 찾는데, 그는 서른책방이 삶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그는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슬럼프에 직면했을 때가 있었다. 그 때 여기서 클래스를 진행하며 사람들과 만나다보니 위안과 치유를 얻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했겠지만, 소통하다보니 달라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박 작가는 이곳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책장에 꽂힌 그의 책, 여기저기 걸려 있는 그의 그림들에선 공간과 사람을 잇는 소통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망포동에 사는 오세인씨(34·여)는 서른책방의 주인이 바뀌기 전 오픈 당시부터 이곳을 찾았던 단골 중의 단골이다. 바쁠 때는 자주 찾지 못하지만 SNS로 팔로우를 해놓고 틈틈이 소식을 확인한다. 오 씨는 “서른책방의 묘미는 자주 오는 사람들이 또 찾게 되는 데 있다”며 “무언가 열중해서 시간을 보내기에 참 좋다. 각자의 삶의 방식을 긍정하는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서장원 책방지기 “딱딱한 서점 이미지 탈피... 가치 존중 있는 화합의 장” Q. 서른책방을 운영하는 철학이 궁금하다. A. ‘화합’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단지 내 이야기로만 채울 수 없는 곳이기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자 한다. 언제든 찾아와 사색에 잠겨도 좋고, 밀린 과제와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고, 책을 집어들고 잠깐 읽어도 좋다. 그저 각자 지향하는 가치와 목적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품을 수 있는 공간이다. 또 많은 이들과 격식없이 소통하기 위해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오늘 도넛을 만들고 싶다면 판매할 메뉴는 도넛이 된다. 매일 선곡하고, 메뉴를 고르고, 책을 큐레이팅하고, 인테리어를 신경쓰는 데 있어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는다. Q. 코로나19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있다. 올해의 계획이 있다면. A. 코로나19의 긴 터널은 마음을 단단하게 먹는 계기였다. 내부 취식 금지, 모임 제한 등의 악재를 딛고 꾸준히 방문하는 고마운 단골들을 보면서 버텼다. 집 앞의 프랜차이즈 카페를 마다하고 먼 거리를 달려온 손님부터 서울에서 먼 거리를 달려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이 공간의 핵심이 ‘사람들’에 있기 때문에 특히 이들에게 더 고맙다. 공간과 사람을 잇는 데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올 한 해는 책방 운영의 내실을 다지고 손님들께 진심을 다하겠다.

여행자들의 쉼터... 설레는 추억 선물 [동행공간, 문화도시 수원이 보인다]

①낯설여관 수원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서 ‘동행공간’을 만날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한 카페, 작가들의 흔적이 맴도는 공방, 아날로그의 온기로 채워진 독립서점 등 다양하다. 2021년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된 수원특례시가 지난해부터 곳곳에 가꿔놓은 ‘문화도시 동행공간’은 지역주민이 주도하는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이 연일 피어난다. 우리가 안고 있는 일상과 도시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줄기를 잇고 있다. 수원화성, 북수원, 서수원, 영통, 광교 다섯 개의 생활권역으로 나뉜 수원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58개의 동행 공간을 방문하면 문화도시 수원을 엿볼 수 있다. 먼저 들여다볼 공간은 수원특례시 장안구 정자동에 자리 잡은 ‘낯설여관’이다. 계단을 올라 2층의 복도 끝에 다다르면 203호와 204호가 눈에 띈다. 203호는 동네 사진관이면서 작은 영화관으로, 204호는 동네 책방이자 제로웨이스트숍으로 운영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203호로 들어서자 주인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여관은 ‘나그네 여’와 ‘집 관’, 그러니까 여행자들이 묵어가는 집이잖아요. 일상 속 여행자들이 평상시 소화하던 리듬에서 잠시 벗어나 쉬어가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우선식 대표(37)와 한지혜 책방지기(35) 부부는 ‘낯설여관’을 운영해온 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수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직장생활을 하는 등 오랜 시간 이 지역과 함께해온 부부는 사실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터를 잡을 때 고민이 많았다. 부부의 마음은 자연스레 어릴 적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 느슨한 여유로 둘러싸인 정자동 한구석으로 향했다. 당시 동네에 시민들이 편하게 와서 책을 구경하거나 읽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부부의 마음에 걸렸다. 증명사진을 마음 놓고 찍을 곳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일상 여행자들이 이 공간을 통해 지친 마음을 달래고 쉼을 얻길 바랐다. 부부는 그런 마음을 하나하나 모아 지역민들을 향한 애정으로 빚어냈다. 우 대표는 자주 오는 단골에게 1년 전 모습과 오늘 찍은 모습을 비교할 수 있게 서비스 컷을 제공한다. 또 매년 인근 지역의 어린이집을 찾아 매 계절에 한 번씩 아이들의 모습을 찍어 졸업 앨범으로 엮어내고 있다. 그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고, 사람 사이의 틈을 머금는 순간들이 오래도록 잔상처럼 지속된다. 204호로 발길을 옮기면 비슷한 듯 색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독립 출판물과 잡지, 인터뷰집 등이 배치된 책방이다. 여기에 비건 그래놀라 크래커, 대나무 칫솔, 삼베 마스크 등 친환경 생태 가치를 품은 물품도 진열돼 있다. 주인 부부의 친환경 의식이 녹아들어 있는 이곳은 다른 가게와 다르게 세제나 먹거리 등을 원하는 용량에 맞춰 살 수 있다. 영화동에서 방문한 이종훈씨(38)는 “혼자 살아 제로웨이스트숍 코너에서 생필품을 자주 사는 편”이라며 “이곳은 다른 가게와 다르게 생활용품 등을 내가 원하는 용량에 맞춰 구매할 수 있어 자원 낭비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3호와 204호는 콘셉트와 규모에 따라 모임과 활동 등이 매달 여러 차례 열린다. 테이블을 치우고 영화를 본 뒤 서로 생각을 나누는 자리, 외부의 작가와 함께하는 북토크, 양모펠트 공예 클래스 등 다양한 방문객 참여형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여행자들은 잠시 머물며 생각을 나누고,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고 교류를 확장하기도 한다. 낯설여관에서는 이 공간만이 뿜어내는 고유한 리듬과 속도가 몸을 기분 좋게 감싼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역시 그 점에 매료됐기 때문일까. 손님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이곳을 방문했지만, 하나같이 여행자의 휴식을 존중하는 느슨한 배려 덕분에 환대 받는 기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얼마 전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온가족이 모여 203호에서 사진도 찍었다는 김민지씨(40·수원시 천천동)는 이날도 딸의 손을 잡고 낯설여관을 찾았다. 출판업계 경험이 있는 김 씨는 “이곳은 생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주인장의 따스한 마음이 잘 느껴지는 공간”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며 “제로웨이스트는 혼자서는 실천하기 어렵다. 지역 단체, 관련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주위에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저와 타인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고마운 곳”이라고 설명했다. 물건을 사러 오지 않아도 좋다.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책방을 찾는 사람도 있다. 서둔동에 사는 고지현씨(25·여)는 힘들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마다 낯설여관을 떠올린다. 그는 “사장님과 간단히 근황을 나누고,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인터뷰 우선식 낯설여관 대표 “소박·따스함이 가득한… 마음을 달래는 곳” Q. 낯설여관에 녹아든 가치관이나 철학이 궁금하다. A. 누구에게나 ‘일상 여행자들의 쉼터’였으면 한다. 각자의 바쁜 상황 속에서 손님들이 많이 온다. 대개 주말에 찾는 분이 많다. 그래서 평일에 열심히 각자의 삶을 꾸려가다가 주말에 쉬어갈 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곳이면 좋겠다. 화려함, 풍족함, 편리함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낯설여관에선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 빠르게 뒤바뀌는 현실과 다르게 소박함, 따스함, 불편함이 묻어나는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공간이다. Q. 지역주민들과 어떻게 녹아들고 있나. A. 그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함께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사업을 진행할 때는 되도록이면 가까운 곳에 계시는 분들을 선발하려고 한다. 이 지역 주민들이 공간과 함께하는 문화를 만끽하길 바란다. 누구나 쉽게 유입돼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대는 공간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이곳을 찾는 소수의 사람들이 환대받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특히 이곳을 찾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오시는 분들이 책이나 물품을 사지 않아도 좋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로 나가셔도 좋다. 어떤 목적으로 이곳을 찾았고, 어떻게 여기로 흘러들어 오셨든 그저 몇 분간이라도 잠시 머물면서 잘 쉬다 가시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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