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언의 문화들여다보기] 극장은 도시문명의 우주목(宇宙木)이 되어야

우리는 신화 속에서 인류 생명의 근원, 우주 창조에 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동서양 신화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 키워드는 나무와 하늘이다. 단군신화는 환웅이 하늘에서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인간세계를 경영했다고 설명한다. 웅녀가 기도하던 나무, 신단수는 인간세계의 중심인 태백산 꼭대기에서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사람으로 환생한 웅녀는 환웅과 함께 단군을 낳았고 단군은 고조선을 건국한다. 인도의 오래된 문헌 우파니샤드는 우주를 하늘에 뿌리를 두고 가지를 땅으로 드리운 거꾸로 선 나무라 했다. 구약성서 창세기는 에덴동산 중앙에 선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이 나무들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축이자 생명력이 흐르는 통로로다. 신화에 묘사되는 하늘은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자 하나님이고 신이며 인간의 고향이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고향인 하늘로 돌아간다고 여긴다. 그래서 하늘을 연구하는 천문학은 단순한 학문을 넘어서서 문명의 원류, 고대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발달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하늘을 이해하는 방법의 차이로 논쟁이 촉발되면서 종교와 과학이 발전했고, 마르지 않는 샘처럼 신화와 예술, 인문학에 꿈과 상상력을 제공한다. 시인은 지금도 여전히 별을 노래하고, 사람들은 꿈과 사랑을 키운다. 시인 천상병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그의 시 귀천(歸天)에서 노래했다. 우주목은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인류 문명의 보편적 가치를 상징하는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하늘로 치솟아 오른 산은 그 자체가 우주목이다. 산을 통해 하늘의 기운을 받고 영감을 얻으며 간절함으로 비는 신앙의 대상이 된다. 마을 문명에서는 아직도 실물 나무가 우주목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입구마다 있는 당산나무는 생명 근원인 하늘과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안녕과 번영을 비는 신앙의 대상이자 수호신이다. 산과 떨어져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우주목을 건설한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탑을 건설하기도 하고 누구나 바라볼 수 있는 종교 시설이 우주목 대용 기능을 해 왔다. 도시문명에서 문화적으로 연결된 우주목은 극장이다. 언덕 위에 극장을 건설하여 신과 소통하는 접점을 만든 그리스 극장과는 달리, 시민들이 거주하는 도시 한 가운데에 건설하기 시작한 로마시대 이래로 극장은 도시적 평면구조에 자리 잡으며 시민들의 우주목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극장은 다양한 공연예술이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그 시대의 정신과 태초 이래로 이어져 온 인간 세계의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는 곳이다. 신단수 아래 홍익인간의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하늘의 이념이 응집된 장소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는 어떤 극장 문화를 꿈꾸고 만들고 있을까. 화려한 조명만 좇는 문화, 돈 되는 것만 가치를 대접 받는 문화, 기계음으로 확성된 음악만 대접받는 문화, 비정규직과 용역직만 선호하는 문화, 실력보다는 정치권 줄서기와 선거용 공연과 행사문화가 극장을 가득 채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극장은 도시 문명의 꿈과 희망을 담아내는 우주목이 되어야 한다. 김동언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 대학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교수

[김동언의 문화들여다보기] 허수아비 의전문화는 바뀌어야

허수아비는 새 또는 다른 동물들이 씨, 어린싹, 열매 등 농작물을 쪼아 먹지 못하도록 경작지에 세워 놓은 장치를 말한다. 제구실을 못한 채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을 일컫는 허수(虛首)가 달린 아비에서 허수아비가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후자는 가짜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제구실을 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람 사는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독버섯 같은 존재를 일컫는다. 완전히 다른 의미의 두 가지 허수아비는 그 의미만큼이나 완벽하게 반대 상황을 대변한다. 가짜지만, 경작지 위에 세워 놓은 허수아비는 봄부터 여름까지 노동의 땀방울을 고스란히 품은 채 풍요로운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간절한 꿈을 담고 있다. 그런데, 제구실은 하지 않으면서 호랑이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리고 자리만 보전하려는 허수아비는 인간의 꿈과 희망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사고만 나면 현장으로 달려가 방송과 언론의 주목을 얻기에만 온통 신경을 쓰는 정치인, 고관대작 등등을 거론하고 싶다. 최근 416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헬기가 의전 때문에 본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채 터무니없이 사용된 사례가 논란을 낳고 있다. 위독한 상태인 승선자 중 한 학생을 구조했는데도 세 번이나 배를 갈아타며 이송하느라 5시간이나 걸려 병원에 도착했고 결국 사망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위해 준비된 구조 헬기는 높은 분들을 모시는 의전용 헬기로 둔갑해 맹활약을 펼쳤다 한다. 허수아비 구조용 헬기였던 셈이다. 문화예술계의 의전문화 폐해 역시 전방위적으로 펼쳐진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열정을 가지고 공들여 준비한 축제는 엉뚱하게도 개막 행사의 의전 문제로 시작부터 김을 빼기 일쑤다. 지나친 의전 행사의 진행은 시민과 예술계의 빈축을 사고 축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있지만 개막행사만 되면 등장하는 허수아비들은 아랑곳 않는다. 이 높은 분, 허수아비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한 말씀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집요한 집중력은 고도로 발휘된다. 때로는 참가한 시민들의 야유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축제를 준비하는 기획자들은 개막식 및 폐막식의 의전용 단계 요소를 과감하게 배제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높이고 행사의 본질을 스며들게 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지만, 그럴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이나 재정 지원 감소 등의 반대급부를 감수해야만 한다. 전국 곳곳에서 가을 축제가 한창이다. 폭염과 태풍과 아프리카 돼지열병이라는 악재를 딛고 가을의 풍요와 행복한 꿈을 담아내는 의미 있는 지역 문화예술계의 한 해 농사들이다. 이런 축제가 개인의 정치적, 상업적 목적을 위해 숟가락 하나 올려놓는 못된 허수아비들의 축제로 전락하는 중은 아닌지 걱정이다. 허수아비들의 쇼만 있는, 쇼가 끝나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축제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가을 들판에 홀로 선 허수아비가 그립다.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 이 가짜가 농부의 꿈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소박하고 넉넉한 꿈을 지켜주니 말이다. 세월호 의전 논란이 문화예술계 허수아비 의전행사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연결되길 바란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 대학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교수

[김동언의 문화들여다보기] 부산 금정문화회관 수요음악회 700회가 주는 의미

거대한 물결이 밀려오고 물이 빠지면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1990년대부터 전국의 지역 문화예술회관들이 급속도로 건립이 되면서 지역문화의 시대가 성큼 다가올 것 같았다. 설립 당시 표방했던 지역문화발전과 세계적, 최고, 일류 공연장들을 지향하는 희망찬 비전은 건물 하나 지어 놓고 개관공연에만 몇억 들여 잔치 벌이고 나면 그 다음에 변변한 공연 콘텐츠를 올리지 못하는 현실로 바뀌어 버렸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구호로만 내건 셈이다. 또한, 새로운 디지털문명, 뉴미디어 시대로 일컬어지는 고도 정보화와 첨단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문화적 삶의 형태를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공연장과 전시장에서 관객과 적극적 상호작용이라는 장소 중심의 아날로그 방식 예술 창작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문화예술 거점 공간들은 점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공연예술의 기반시설인 공연장의 양적 증가에 따른 수요 공급의 불일치는 지역의 공연장 운영에 치열한 경쟁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기관 운영자의 입장에서 가시적 경영 성과를 단기간에 제시해야 하고, 대 국민 문화예술 향수권의 신장이라는 공공 기능도 동시에 충족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구 감소와 재정적 어려움이 커져 가는 지역의 공연장들은 재정 압박과 자생력 강화라는 삼중고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공연장 운영에 경영마인드와 예술적 가치 지향의 충돌을 가져오게 하는 이 문제는 지역 공연장 운영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지난달 25일 부산 금정문화회관에서 수요음악회 700회 공연은 그 자체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지역의 공연장들이 가야 할 중요한 방향을 발견할 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매주 수요일에 개최되는 이 음악회는 2004년 9월 8일 시작한 이래 15년을 이어왔다. 그동안 누적 관객 16만 명에 출연자 수만 3천 여명 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세월 한결같이 상설 프로그램을 운영한 공연장은 전국적으로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기간과 숫자로 표현되는 외적인 성과보다 더욱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내년이면 20돌을 맞는 금정문화회관 역사 속에서 그간 거쳐 간 지역의 구청장, 문화회관의 관장과 관계자들이 초심을 바꾸지 않고 한결같이 이 공연을 지켜온 열정과 의지로 지역의 공연장이 지역의 예술진흥을 위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사사로운 정치적 활용 수단으로 공연장을 바라보거나 수익 창출에만 급급하는 시대의 관행을 과감하게 떨쳐버린 정신의 집적물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른 것이다. 수요일을 택한 공연장 활용 전략도 의미 있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공연장 이용률이 가장 저조한 수요일을 택하여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음악이 있는 수요일로 정착시킨 점은 역발상의 성공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연장의 공공성과 문화적 가치는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운영의 주체는 관료나 극장 직원만이 아니다. 15년간 함께 출연한 예술가들과 공연장을 찾아온 관객들의 애정과 관심으로 가능하다. 부산 금정문화회관의 수요음악회가 기관장이 바뀌면 공연장의 프로그램도 쉽게 사라지거나 변경되는 경우를 너무나 자주 보아온 우리 공연예술계의 조변석개(朝變夕改)식 관행에 큰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옛것이 새롭다! 뉴트로 문화와 법고창신

추석 연휴 기간 동안 고궁은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로 넘쳐 났다. 무료입장이라는 혜택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수다.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한복 입고 고궁 나들이라는 방식은 이미 젊은 세대에게 색다른 데이트 방식의 하나로 인기가 높고, 외국인들 역시 환호하는 한국 문화 체험 코스 중 한 가지이다. 수 백 년 전 지어진 궁궐에서 한복을 입고 거닐며 오래된 공간과 문화를 즐기는 이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아름다운 추억을 쌓고 인생 사진을 남기는 모습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흐믓하다. 최근 젊은 세대는 새로운 문화인 뉴트로(New-tro)를 즐긴다.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레트로의 경우 중장년층이 이미 경험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기반이라면, 뉴트로는 겪어보지 못한 과거를 바라보는 새로움이나 신선함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트렌드 코리아를 연구하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뉴트로는 단순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 복고풍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새롭게 재해석해서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년 10월에 개봉하여 994만 명의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그리고 뮤지컬 맘마미아는 그룹 퀸과 아바가 낯선 젊은 세대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끌며 반향을 일으켰다. 인쇄소 골목과 노가리 안주와 생맥주로 잘 알려진 서울의 을지로 골목은 빈티지한 감성을 즐기려는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다. 이 열풍이 문화예술계 뿐만 아니라 식품, 패션, 주거, 도시 공간 등 우리 생활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은 논어의 온고지신(溫故知新)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암 박지원은 당대의 문장가들이 대부분 중국의 고전과 시를 토대로 안이하게 글을 쓰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박제가의 초정집(楚亭集) 서문에 문득 고어를 생각하고 억지로 경전의 뜻을 찾아서, 근엄함을 가장하고 글자 하나하나마다 위엄을 뽐낸다.라고 일갈하며, 이러한 관행이 대상에 대한 참다운 묘사를 방해할 뿐임을 지적했다. 연암은 작가가 처한 현실을 배경으로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글을 쓸 것을 주장하였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글을 쓰는 것, 즉 옛 것을 그대로 따라 쓰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나, 창작을 한다면서 동시대적 보편성에 어울리지 않는 허황되거나 괴상한 글쓰기의 양단을 모두 경계했다. 고전을 기초로 하면서도 시대적 감성이 담긴 창의성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박지원의 주장은 지금의 문화 전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뉴트로 문화는 아날로그 감성에 디지털 문명의 옷을 입으며 생활과 문화를 새롭게 창조한다. 단순히 옛 것의 외형적인 형태만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감각과 문명의 패러다임까지 결합된 형태로 진화 중이다.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일과성 유행이 아닌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산업과 문화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균형과 안목이 중요하다. 고전과 인문학과 역사가 훌륭한 법고(法古)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 창신(創新)에만 집착하면 특이한 발상에만 머무르게 된다는 사실 역시 경계해야 한다. 옛 것이 보물이고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문화예술콘텐츠학과 교수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소서팔사(消暑八事)와 도시에서 여름나기

여름철 폭염도 막바지다. 아침저녁으로 다소 시원한 바람과 매미 소리가 곧 가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해마다 여름 최고기온을 경신하는 시대를 사는 도시민들에게 여름나기는 보통 일이 아니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 보다 무섭다던 옛날에는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여름을 이겨냈을까. 조선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 8가지를 소서팔사(消暑八事) 라는 제목의 한시에 담아내었는데,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피서(避暑)가 아니라 무더위를 불 끄듯 없애버리는 소서(消暑)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소서의 내용으로는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를 즐기는 송단호시(松壇弧矢),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를 즐기는 괴음추천(槐陰?韆), 넓은 정각에서 투호를 하는 허각투호(虛閣投壺), 대자리 깔고 바둑을 두는 청점혁기(淸?奕?), 연못의 연꽃을 구경하는 서지상하(西池賞荷), 숲 속에서 매미 소리를 듣는 동림청선(東林聽蟬), 비오는 날 한시를 짓는 우일사운(雨日射韻), 달밤 개울가에서 발 씻는 월야탁족(月夜濯足)이 있다. 8가지 방법 모두 운치가 있고 한가롭게 더위를 즐기는 모습이다. 올해에도 서울 북촌문화센터와 용인의 한국민속촌 등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여름을 즐겼던 조상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다산의 소서팔사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운영하였다. 하지만 아파트와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도시를 근거지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소서팔사와 같이 자연과 더불어 한가로운 여름나기가 일상생활에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잠시나마 여름휴가를 얻어 피서를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취약계층이나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소서팔사는 그저 옛날 양반들의 호사로만 보일 뿐이다. 도시에서 여름나기는 비상상황이다.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잇따른 폭염 대책을 놓고 있다. 가을이 오기까지 폭염대비 비상체제를 가동해야 하는 현실이다. 서울시는 각종 무더위 사고를 관리하는 폭염 상황 관리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현장을 점검하고 피해 지역 복구를 돕는다. 서울 주요 간선도로와 중앙버스전용차로에 물 청소차 160대를 운영하고 있다.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추고 아스팔트 변형을 막는 등 그야말로 재난에 대비하는 수준으로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지자체들도 저소득층과 독거노인들을 위해 폭염대피소를 운영하고 있다. 구청 강당ㆍ경로당ㆍ복지센터 등의 공공시설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에어컨을 가동한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과 환자들에게 에어컨을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복지플래너와 방문간호사가 직접 방문하여 폭염에 취약한 서민들을 관리하고 있다. 올해에는 이들 대피소에서 지역 예술가들의 공연이나 영화 상영 서비스도 제공하는 등 더욱 진화된 프로그램도 찾아볼 수 있다. 자연의 현상인 여름철 폭염을 우리가 인위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를 하느냐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옛사람들의 여름나기를 현대 도시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창의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문화예술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공연장에서 여름나기 8가지 방법이라는 기사와 뉴스가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기대를 해본다.

[김동언의 문화들여다보기] 학교를 합창교육·생활합창의 거점으로

생활합창 활성화를 위한 기반 조성 및 프로젝트 운영을 위한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시 자치구 대상 지원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합창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시민으로서 소양을 쌓을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정책 사업이다. 두 사람 이상이 같이 부르는 노래, 합창(合唱)은 사회성을 높이고 공동체의 정체성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음악 활동인 동시에 개개인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우는 효과도 가지고 있어서 인성 개발 교육 수단으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합창이 일상의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고 학업 능력과 지능개발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오래전부터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합창의 효과를 학생교육과 시민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합창의 오랜 전통을 가진 독일은 정규 공교육 과정 및 특별활동에서 합창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독일합창단협회에 가입된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생활합창단만 약 2만 3천개에 이르고 140만여 명이 생활합창을 일상으로 즐긴다고 한다. 합창의 교육적 효과가 학문적으로도 입증되면서 프랑스도 합창을 정규 교육 과정에 반영하고 있다. 2018년 9월부터 초등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주 2시간씩 합창 수업을 하고, 중학교는 선택 과목으로 운영하고 있다. 합창을 무상예술교육으로 공교육 과정에 전면 반영한 사례이다. 부러운 일이다. 합창의 기본 원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같이 노래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는 데에 있다. 간단한 이 원리는 인간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도, 개인과 공동체가 원만하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단초로 활용될 수도 있다. 2011년 성탄절 특집으로 방영된 한 지상파 방송의 기적의 하모니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합창을 통해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 감동의 장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범죄를 저지른 소년교도소 수형자들의 이야기였다. 가수 이승철과 함께 합창을 하며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희망의 합창을 완성했다. 파란 수의 대신 합창단복으로 갈아입은 이들이 천여 명의 관객 앞에 눈물로 노래했다. 후회와 용서, 그리고 꿈을 노래한 기적의 하모니였다. 그 어떤 종교지도자나 교화 프로그램도 이루지 못한 변화를 합창이 끌어냈다. 합창의 힘이 그렇다. 학교를 합창교육과 생활합창의 거점으로 만들자. 인성과 교양을 갖춘 사람을 키우는 곳이 아닌, 입시가 전부이며 서열 경쟁의 현장일 뿐인 곳이 학교의 현주소 아닌가. 학교가 인간을 만들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성을 기르며 지역사회의 문화시민을 양성하는 장소로 변했으면 좋겠다. 공교육 교과과정에 합창을 정규 과정에 도입하자. 다른 예술교육과 비교해도 예산은 적게 들고 이미 검증된 바대로 교육적 효과는 대단히 높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무상급식보다 무상합창교육이 절실하다. 합창은 학업에만 치우쳐 있던 아이들의 삶에 균형을 가져올 것이고, 자존감과 성취감을 높여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학교의 체육시설을 지역주민에게 공유하는 것처럼 생활합창의 활성화를 위해 학교의 유휴공간을 지역의 생활합창단에게 연습실로 제공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역민들이 더불어 합창 축제를 벌이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벅차게 기쁜 일이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들여다보기] 달항아리 최고 경매가를 보면서

지난 달 26일 높이 45cm 백자대호(달항아리)가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내 도자기 최고 경매가를 갱신하며 31억 원에 낙찰됐다. 엄청난 몸값이다. 보름달처럼 풍만하고 넉넉한 형태에 담백한 유백색이 특징인 달항아리. 그 중 제작기법이 까다롭고 왕실 행사에 주로 사용되었던 높이 40㎝ 이상의 대형 달항아리는 국보와 보물 등을 포함해서 20여 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같은 경매에서 김환기의 그림도 9억 원에 낙찰되었는데 이 작품 역시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이달 17일에는 김환기의 항아리와 날으는 새가 케이옥션 경매에 등장한다고 한다. 추정가 11억~17억. 푸른색으로 가득 찬 화폭 속에 청아한 달항아리 위로 힘차게 비상하는 한 마리 새. 달항아리의 몸값이 이리도 높고 오래도록 각별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은 우리 민족에게 그저 자연물 중의 하나가 아닌 정신문화와 생활문화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그 무엇이다. 동양사상에서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은 천체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달(月)과 해(日)는 음과 양을 상징하며, 수많은 별들 중에서 화성(火星), 수성(水星), 목성(木星), 금성(金星), 토성(土星)이라 이름 지은 다섯 개의 움직이는 별을 오행(五行)이라 불렀다. 음양(蔭陽)사상은 밤과 낮, 땅과 하늘, 여와 남, 짝수와 홀수, 어둠과 밝음, 무거움과 가벼움, 추위와 더위 등 세상 모든 것이 대응하여 존재하며 서로 보완하고 균형 잡힌 상태를 조화롭게 유지하면서 세계를 이룬다는 데에 기초한다. 성경 창세기의 첫 구절에 나오는 천지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하느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에는 하늘과 땅의 구별이 없는 어둠의 혼돈 상태였다. 인간의 출현 이전에 가장 먼저 창조된 하늘과 땅, 빛과 어둠은 결국 음양의 이치가 이 세상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 사상에 따르면 동양은 양, 서양은 음으로 구분되며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 동양은 음의 문화를, 서양은 양의 문화를 지향하게 된다. 건축물의 경우 서양은 하늘을 지향하고 동양은 땅을 향하는 지향성을 보이고, 춤 역시 서양은 하늘로 치솟는 도약이, 동양은 땅에 발을 단단하게 딛는 동작이 기본이다. 달은 우리 농경문화를 지탱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농사는 달의 삭망주기(朔望週期)를 한 달의 기준으로 하는 음력에 맞추어 진행되었고, 전통사회의 생활문화를 잘 알 수 있는 세시풍속은 음력의 24절기와 명절로 구분 지어져 있다. 달은 연인이고 어머니이다.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통로인 달은 음을 지향하는 우리 문화의 뿌리이자 생활 곳곳에 스며있는 상징화된 문화 코드라고 할 수 있다. 달을 품고 태어난 민족이었던 셈이다.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다. 1년 중 가장 극성을 피울 양의 기운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음의 기운이 필요하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시달린 뒤에는 달을 보는 피서가 필요하다. 한동안 여름 한낮의 열기 속에서 맹렬하게 펼쳐지던 축제의 기세가 한 풀 꺾이면서 이제는 전국 곳곳에서 달빛 음악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여름밤 선선한 바람결에 음악을 들으며 달빛을 넉넉하게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이 오고 있다. 달항아리 경매 소식을 보면서 떠오른 올여름 피서 계획이다. 동네 뒷산으로 강릉 경포대로 지리산 섬진강으로 달마중 가기로.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소설 ‘데미안’ 출간 100주년이 던지는 교훈

고대 그리스로부터 전통을 이어온 유럽문명은 이성과 기독교를 기저에 깔고 있다. 이성과 기독교를 가늠자 삼아 세계를 바라보고, 옳고 그름을 구분했으며, 오직 이 두 가지 가치와 기준만이 올바른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창했다. 이성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와 기독교적인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식의 이분법은 유럽문명을 이끌어 온 수레바퀴였으며 유럽문명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아름다운 원리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자기중심적 오만과 편견으로 둔갑했고, 이성과 기독교외의 다른 원리나 존재들은 잘못되거나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심지어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떠밀어냈다. 그 결과 노예, 마녀, 이단, 유대인, 이교도 등 유럽 역사에서 가장 아름답지 못한 단어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성과 기독교는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차츰 이익과 욕망의 무한궤도를 질주하려는 수단과 명분으로 차용되었다. 이 명분과 탐욕은 마침내 식민지, 약탈, 학살, 전쟁이라는 인류 역사의 가장 치욕적이고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야 비로소 멈추게 된다. 12차 세계대전이 그 거대한 비극의 종점이었다. 그제야 유럽은 성숙한 문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는 직접 처절하게 이 두 개의 전쟁을 겪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집필한 데미안은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19년에 출판되었다. 올해 탄생 100년이 된다. 헤세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자기구현 과정을 보여준다. 유럽 사람들이 세계를 대립의 공간이 아니라 통합과 단일의 공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헤세는 이성과 기독교를 중심에 둔 채 양극사상에 빠져 한쪽만 인정하고 다른 한쪽은 무조건 부인하던 유럽이 개조되고 다시 태어나기를 바랐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를 알을 깨고 나오는 새로 상징한 이 소설은 수많은 독자에게 영감을 주고 자기성찰을 할 수 있게 했다. 최근에는 월드스타 방탄소년단이 이 책에서 받은 영감으로 2집 앨범 윙스(WINGS)를 만들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58년에 걸쳐 구시대를 뚫고 새로운 세계와 인간내면의 자기구현을 일관되게 작품에 담아낸 헤세. 데미안 출간 100주년을 맞아 데미안의 주인공처럼 이 시대를 살아낸 사회명사 58인의 글로 엮은 내 삶에 스며든 헤세가 출간되었다. 영화문화콘텐츠 비평가 전찬일이 기획한 이 책의 58인 필진들의 삶에는 한국전쟁과 419혁명이 있고, 516과 유신, 80년 광주와 서울의 봄이 스며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형인 치열한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뚫고 나오려는 자기성찰의 노력이 생생하게 엿보인다. 이들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데미안에 담아낸 헤세의 메시지를 더듬어 보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협력이 사라지고 오만과 편견, 약육강식의 원리에 빠져 있던 유럽문명이 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재앙을 만들었지만, 다시 처절한 반성을 시작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며 평화적 통합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자기 논리와 명분에 허우적거리며 알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알을 깨뜨리기 위한 병아리의 노력과 바깥에서 알을 깨주려는 어미 닭의 노력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병아리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는 줄탁동시(?啄同時)의 교훈이 데미안 출간 100주년을 보내며 새롭게 다가온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들여다보기] 악취와 향기, 사람 냄새의 딜레마

지난달 30일 개봉 이후 10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킨 기생충의 누적 관객 수가 9일 기준 651만 명을 돌파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볼지 궁금하다. 올해 제 72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이 작품은 그의 영화 살인의 추억의 비릿한 피 냄새, 괴물의 하수구 냄새, 옥자의 단백질 타는 냄새에 이어 역시 냄새가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가까운 사이라도 쉽게 말하기 어려운 냄새를 통해 인간에 대한 예의와 그 예의가 붕괴되는 순간 벌어지는 것들을 다루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 그 사람들이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동선이 다르다. 비행기를 타도 클래스가 나뉘고, 일하는 곳과 가는 곳이 다르다.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라는 감독의 설명처럼 냄새는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계급을 구분하는 일종의 상징성으로 작용한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은 악취와 향기에서 근대 역사를 냄새라는 매우 흥미로운 관점에서 조망했다. 물질이 부패하며 발생한 독기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다는 독기론이 의학을 지배했던 18세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후각적 경계심이 높았던 시기로 당대 사람들은 일종의 집단적 신경과민 증상처럼 도시의 역겨운 악취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한다. 사람들의 민감해진 후각은 배설물이나 오물의 악취를 견디지 못하게 되었으며, 악취를 제거하기 위한 새로운 신체위생과 공중위생의 개념들도 이 시기에 생겨났다고 한다. 변화된 후각이 사회적 위계를 세분화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고 보고 있다. 소위 지배계층은 도시와 빈민의 악취로부터 벗어나려고 했고 도시 공간도 그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계획됐다. 타인의 체취에 대한 불쾌감이 커지면서 개인이라는 관념이 강조되고, 독립된 공간과 침대에서 살아가는 개인적 생활양식의 등장은 후각적 관점으로 설명된다. 냄새가 제거된 부르주아와 악취를 풍기는 민중으로 구분되는 냄새의 역사학, 냄새의 사회학이다. 영국의 작가 캐서린 애셴버그는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에서 지나치게 청결과 냄새 제거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몸 냄새가 치명적인 무례가 되기 시작한 현대인들. 미국으로 옮겨간 후각의 사회적 민감성은 구취와 체취가 파혼, 해고 등의 이유가 되어 사회생활도 어렵게 만들고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각종 냄새를 없애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냄새가 계급, 인종, 국적 차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각종 세정액, 방향제, 향수 등의 과도한 사용은 문명병이라 할 수 있는 알러지 질환뿐 아니라 류머티즘성 관절염, 당뇨병, 크론병, 심장병 등 각종 질병을 증가시키는 주범이다. 후각의 선택적 피로 현상은 다행스럽게도 인간이 공생할 근거를 마련한다. 같은 냄새를 맡고 있으면 매초 2.5%씩 민감성이 감퇴해서 1분 이내에 70%가 소멸한다니, 좋은 향기든 아주 고약한 냄새든 간에 짧은 시간 내에 후각은 마비가 된다. 즉,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후각은 이미 충분히 진화되어 있다. 영화 기생충에 관객이 몰리는 이유가 단지 칸느의 후광뿐만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며 냄새로 둔갑한 신계급사회로의 재편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고 불편하게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깨끗해지면서 잃어버리는 것들. 인간에 대한 예의. 가지지 못한 자들의 절망을 넘어서 함께 사는 사람 냄새 나는 사회에 대한 희망.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남는 단어들이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거리로 나온 예술

예술이 거리로 나왔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거리예술축제가 한창이다. 거리마다 광장마다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남녀노소 불문이며 펼쳐지는 내용은 아주 다채롭다. 간단한 길거리 공연의 대명사가 된 버스킹에서부터 거대한 구조물로 환상적인 공간과 장면을 연출하는 대형 공중곡예까지. 거리예술축제는 언제나 다양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맞춤하다. 예술에 대한 식견이 없어도 걱정 없다. 남사당패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신명나는 놀이판, 현대무용, 마임, 인형극, 아크로바틱, 현대적으로 진화한 서커스, 그리고 연극과 설치 미술 등 동서양 예술의 거의 모든 장르가 섞여 있어서 취향과 입맛에 따라 즐기면 그만이다. 직업적인 거리예술 전문가부터 일상에서 함께 생활하는 평범한 시민들, 생활 속에서 익히고 표현하는 생활예술인들까지 출연자 또한 다양하고 친근해서 심리적 거리감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라도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으면 슬며시 자리를 뜨면 그만이다. 거리예술이 축제의 중요한 콘텐츠가 되는 중요한 이유들이다. 거리예술은 인류의 문명과 생활 속에서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나치게 건물 안에서 예술 자체의 형식과 내용에만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예술 스스로가 기득권이 되고 관료화되었다. 예술을 위한 예술에 빠지는 구조적인 문제들로 인해 예술은 대중과, 또 대중의 삶과 멀어지면서 소수 기득권층들의 전유물이 되어갔다. 더군다나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 과정에서 대중은 일에 매몰되고 예술은 점점 건물 안에 갇혀버려 예술도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1968년 독일과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미국 전역으로 퍼진 68혁명은 권위주의보수체제 등 기존 사회질서에 강력히 항거하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남녀평등과 여성해방, 히피운동, 반전운동과 같은 다양한 양상을 띠면서 전개되었다. 특히, 문화혁명으로서 대중문화의 엄청난 발전을 촉진한 덕분에 일상생활에서 비로소 개인이 탄생할 수 있는 발판이 놓였고, 이로 인해 예술이 삶의 현장인 거리로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만들어졌다. 공연장과 미술관, 박물관 등 제도권 건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이 거리로 나오면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실험과 모색은 현대 예술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프랑스는 거리예술을 문화정책의 주요한 과제로 삼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여 오늘날 거리예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거리예술은 바람직하지 않은 기존의 질서와 권위에 저항하며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문화민주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거리와 광장은 고립을 벗어나 타인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삶의 현장이자 플랫폼이다. 로마인은 이집트에서 터키에 이르는 방대한 로마로 향하는 길을 닦았다. 차마고도(茶馬古道)와 실크로드는 유목민과 상인들이 일군 대표적인 길 문명이다. 고립은 생존 불능을 의미한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필요와 협력을 중시하는 친구이자 동반자이다. 개방과 상호존중이 필요한 다문화, 혼혈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거리예술이 현대의 길 문명이다. 거리로 나온 예술이 현대문명의 컬쳐로드(culture road)가 되어 우리에게 일상의 활력과 특별한 체험을 누리게 하고 일상 세계를 변화시켰으면 좋겠다. 또, 이러한 관심과 인기가 거리예술이 체계적으로 발전하게 하는 문화정책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네가 곧 부처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부처와 같이 일체 만법의 근본인 자성(自性)을 깨칠 수 있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분별 망상에 가려서 성불하지 못할 뿐이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은 인간을 절대적 존재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노력하고 개발해서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중생이 곧 부처, 우리 모두 불성을 가진 부처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지금 있는 그대로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임을 깨닫는 데에서 머무르지 않고, 수행과 노력을 통해 마음의 어두움을 밝히고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의 길로 가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불교의 진리를 깨우치고 성자의 반열에 도달한 사람들이 나한이다. 나한은 arhan이라는 말을 음역한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 부처의 제자로 뛰어난 수행 끝에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일컫는다. 석가모니가 입적한 뒤 가섭을 비롯한 제자 500명이 모여 석가모니의 생전 말씀을 경전으로 만들었는데, 그 때 모인 500명을 오백대아라한이라 한다. 깨달음을 얻은 불제자 나한이 재앙을 물리치는 신통력을 갖춘 존재로 인식되면서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나한 신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석가모니 부처의 십대 제자, 16나한, 500나한 등을 나한 신앙의 주 대상으로 삼고 있다. 큰 사찰마다 영산전, 나한전, 응진전 등의 별도의 전각에 나한을 봉안하는 등 역사적으로도 나한 신앙이 성행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해 춘천에서 3만여 명이 관람하고 전문가들로부터 압도적인 평가를 받아 국립중앙박물관이 뽑은 2018년의 전시로 화제가 되었던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창령사 터 나한상은 2001년 5월 영월에서 농사를 짓던 김병호 씨가 땅을 일구다가 우연히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강원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벌여 형태가 완전한 상 64점을 포함해 머리 118점, 신체 일부 135점 등 총 317점을 찾아냈다. 그 과정에서 창령사(蒼嶺寺)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를 찾아 그곳이 바로 고려 시대에 지어진 창령사가 있던 자리임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됐다. 이 나한상들의 모습은 무엇보다 한국인의 얼굴이 고스란히 조각되어 있어 친근하게 느껴진다. 저 멀리 인도인의 모습을 지닌 부처가 아니라 우리의 얼굴이다. 밀랍처럼 생기 없이 썰렁한 모습의 조각상도 아니다. 숨소리가 들리고 체취가 느껴진다. 부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고 노력하여 성자가 된 보통 사람의 모습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질박하게 정으로 쪼아 만든 조각에 투영된 부처를 향한 마음이 오늘날 서민의 얼굴로 다시 살아나 일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다. 네가 부처다. 네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스스로 마음의 어두움을 떨치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밝고 희망찬 평화의 세상으로 나아가라 창령사 터 오백나한이 부처님 오신 날 나에게 속살거린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진화하는 고택음악회(古宅音樂會)

짧게는 백 년, 또는 수백 년 역사를 지닌 고택(古宅)은 우리의 건축양식뿐만 아니라 전통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건축물로서 교육과 관광자원으로의 활용가치가 높다. 현재 남아있는 전통가옥 대부분은 조선시대 이후 축조된 것으로, 당시 양반가문의 주거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어서 지역문화와 전통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고택이 지닌 유형, 무형의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서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가치는 계속 커질 것이다. 특히 고택을 공연장으로 활용한 음악회는 한옥의 건축적 아름다움과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음악회의 프로그램도 이전까지는 한옥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국악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특색을 가미해 발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북촌의 대표적 한옥인 윤보선 고택의 살롱음악회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양의 바로크, 클래식 음악과 음식을 곁들인 고택브런치콘서트는 인기 상품이 되었다. 대대로 전해오는 명문가의 음식문화과 음악회를 결합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강릉의 선교장도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공연장소로 활용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2018년에는 이 고택의 사랑채인 열화당에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여 정기적으로 오르간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시인묵객들이 연주하던 거문고가 오르간으로 변신한 채 여전히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의 실제 주인공 테너 배재철은 5월11일 하동의 악양면 화사별서(조씨고택)에서 공연을 갖는다. 유럽에서 극찬을 받던 최정상의 오페라 가수 배재철은 갑상선암이라는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고 무대로 다시 돌아와 희망과 기적을 노래하는 불굴의 테너다. 오페라 가수와 고택의 조합이 매우 신선하다. 고택음악회를 방송의 정규 프로그램으로 기획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사례도 있다. 고택음악회는 사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명문가들은 지역의 축제나 중요한 행사에 물질적인 지원을 하는 등,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재능 있는 예술가들에게 금전적 지원과 거처를 제공하는 등 서양의 메디치 가문처럼 예술의 후원자로서 역할을 하였는데, 그 중심 공간이 사랑방이었다. 사랑방은 실내공연장이었고 앞마당은 야외공연장이었다. 서구 문명의 전래와 급속한 산업화ㆍ도시화로 인한 주거양식의 전면적인 재편은 안타깝게도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한옥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음악 역시 서구식 공연장 중심으로만 연주됐는데 최근 한옥의 가옥 구조가 건축음향학적으로 매우 우수하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한옥을 공연장소로 활용하는데 큰 자신감을 부여하고 있다. 한옥의 마루와 벽, 서까래가 울림통 역할을 하고 악기와 사람의 소리는 나무 마루와 구들 골을 통해 증폭되고 벽과 창호 문은 소리를 흡수ㆍ반사라는 들숨과 날숨 구실을, 천장 서까래는 음을 모아주는 장치가 된다고 한다. 소리의 잔향 시간도 음악 감상에 최적인 1.2초 정도로 소리의 울림이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설계된 음악당 수준이라고 한다. 화사하게 꽃들이 만개한 봄날 한옥의 그윽한 정취와 아름다운 소리가 어우러지는 특색 있고 다양한 고택음악회가 활성화되고 이런 기회가 명문가들의 예술 후원 정신이 더욱 꽃피는 계기로 이어지면 좋겠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역경·놀이문화서 피어난 신바람 문화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의 뉴스가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12일 발매된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가 공개 직후 국내 주요 음원 차트는 물론 전 세계 86개 지역 아이튠스 톱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업체인 스포티타이에서는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가 글로벌 톱 200 4위까지 올랐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 공개한 지 37시간37분 만에 조회 수 1억 회를 돌파하며 세계 최단 시간 기록을 세웠다.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은 이용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12일과 13일 이틀 연속 1시간여 동안 모바일 접속 오류가 나기도 했다. 온 세상에 방탄소년단 열풍이다. 외국 팝송을 듣고 따라 부르며 성장한 장년층들에게는 충격이자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급박했던 세대에게 서양 문화란 우리보다 한참 앞서 있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인식에 더해 대중가수는 소위 노는 아이들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부모의 반대로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직업으로 선택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노는 아이들 방탄소년단은 이제 우리나라의 문화적 자부심이자 바람직한 성공 모델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부모 세대의 척박한 문화적 환경 속에 자라난 이들이 어떻게 모든 문화권에 통용되는 보편적이며 동시대적인 정서를 담아내는 세계적 인기 그룹이 되었을까? 이들의 열풍에 뛰어난 노래 실력과 숨이 막힐 듯한 칼 군무, 그리고 서사를 담은 노래의 메시지가 기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기존의 자본과 유통구조를 장악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팬들과 SNS를 활용해 직접 소통하며 자발적인 팬덤과 입소문을 노린 전략이 성공했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기계문명의 발전에 따른 간편한 네트워크 상의 연결과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문화 트렌드, 지구문명의 패러다임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구석이 남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여서 춤추며 놀기를 좋아한다. 3세기경 중국의 진서가 쓴 역사서 〈위지동이전〉에 우리 민족이 크게 모여 며칠 간 계속해서 술 마시고 밥 먹고 노래 부르고 춤추었다고 한 기록에서 보듯, 정말이지 춤추고 노래하며 노는 데는 뛰어나다고 느껴진다. 모진 시련과 탄압의 시기에도 모이면 노래고 춤이었다. 힘든 노동과 시위의 현장에서도 노랫소리가 퍼진다. 회식이 노래방까지 이어지는 것은 기본이다. 꽃놀이 단풍구경 때도 노래와 춤이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공부하라는 교재의 제목도, 방송 프로그램도 00야 놀자가 즐비하다. 부모 세대가 살아온 각박한 시대상과 첨예한 이념 갈등으로 새겨진 상처와 아픔이 창작의 풍부한 소재가 되었던 것은 아닌지. 입시 지옥과 서구 중심의 문명 속에서 발아한 저항정신과 긍정적인 도전의식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 이면에는 동서양 문명이 충돌하고 결합하면서 확장된 문화적 다양성과 세계를 보는 안목이 민족의 기질적 원형질인 잘 노는 문화와 결합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조심스레 해 본다. 장시간 노동을 미덕으로 여기던 시절의 비아냥 대상이었던 노는 아이들의 춤과 노래에 지구적 평화와 상생의 메시지를 담아 신문명 신바람 문화가 더욱 확산되길 기대한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희망 부르는 ‘4월의 노래’

전국 곳곳에서 봄꽃 축제가 시작됐다. 하동 화개장터 벚꽃축제와 섬진강변 벚꽃축제가 한창이고 진해 군항제도 1일부터 열흘간 펼쳐진다. 서울에서는 여의도 벚꽃축제와 석촌호수 벚꽃축제가 5일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봄꽃 축제의 간판격인 벚꽃 축제를 시작으로 철쭉, 진달래축제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예년보다 포근한 기온 때문에 벚꽃의 개화시기가 앞당겨져서 그에 맞춘 준비들이 한창이라고 한다. 온 세상이 꽃으로 뒤덮이는 4월은 1년 중 가장 화사하고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할만하다. 4월에는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저절로 풀리며 평소 노래를 즐겨 부르지 않던 사람들도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몇 년 전부터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라는 노랫말의 벚꽃엔딩은 공식 봄맞이 노래가 된 듯하다. 장년의 세대라면 봄 노래는 박목월의 시에 김순애가 곡을 만든「4월의 노래」를 먼저 떠올릴 수 있겠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이 어린 무지개 계절아~. 김순애가 625 피난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1953년에「학생계」 잡지의 창간 기념 촉탁으로 작곡했다고 알려진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가곡이다. 곡의 구성과 멜로디가 간단하고 길지 않아 따라 부르기도 쉽고 편하다. 전쟁과 피난살이 속에서도 생명과 삶의 희망을 4월의 목련에서 찾은 시인과 작곡자의 간곡한 뜻이 고스란히 전해진 듯, 어려운 전후 상황에서 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겨울이 가고 기적처럼 문득 눈앞에 나타나는 하얀 목련 꽃송이들의 생명력이 시대의 꿈과 희망으로 잘 버무려진 것이다. 경제적 성장이 급속도로 진행되던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까지의 기간은 한국 가곡의 전성기라고 할만 했다. 봄맞이 가곡의 밤은 어느 공연장이든 관객들의 발길이 몰리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한국 가곡 음반도 많이 팔리고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은 대중적인 인기를 가진 성악가들도 다수 등장하였다. 그 중 테너 엄정행이 부른「목련화」(조영식 시, 김동진 작곡)는 선풍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생명의 등불 이미지에서 화려하면서 희고 순결한 사랑의 이미지로 변신한 목련화는 한동안 국민애창곡 수위를 지켰다. 다소 투박하고 감상적인「4월의 노래」를 부르며 꿈을 키운 세대들에게 엄정행의 밝고 화려하면서 힘찬 목소리에 얹혀진「목련화」는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무지개였을지도 모른다. 운동선수로 학창시절을 보내다 뒤늦게 성악을 전공하고 외국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성악가라는 남다른 이력과 대중 친화적인 감정 표현 창법으로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4월의 노래가 엄정행의 목련화로 진화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꽃을 노래하는 4월이 고스란히 아름답고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4ㆍ3 제주항쟁, 4ㆍ16 세월호 참사, 4ㆍ 혁명을 비롯하여 70~80년대 반군사정권 투쟁에서 희생된 아픔의 역사와 문화가 각인된 잔인한 4월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상생, 번영의 꿈과 무지개가 되어줄 새로운 4월의 노래를 다시 한 번 기대한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무늬만 축제, 평균 예산 3천만원 밑돌아

미세먼지가 제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봄은 왔다.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생기가 오르고 코끝을 스치는 훈풍에 절로 꽃향기가 기다려진다. 때맞추어 남쪽으로부터는 꽃축제 소식이 들려오고 전국의 지자체들은 1년 축제 농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최근 한 일간지의 1만 5천개 지역축제의 진실4천372억 써서 818억 번다는 헤드라인이 눈에 띄었다. 봄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불편했다. 기사의 논지는 지역이 처한 위기 극복의 처방전으로 너도나도 축제를 선택했지만 차별화에 실패했고, 체류형 관광으로 연결하지 못해 적자 축제만 양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 축제 성공사례로 화천 산천어축제와 함평 나비축제를 소개하고 있다. 내용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축제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문화적 토양이 얼마나 거칠고 열악한지,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참으로 형편없는 마구잡이 논리 속에 매몰되어 있는지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소위 돈 버는 축제를 생각하고 시작했다면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사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축제는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돈 먹는 하마다. 문화예술 분야에 경제적 논리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문화예술기관이나 예술축제에 돈 잘 버는 대기업 출신 임원 등이 지휘봉을 잡았다는데 성공 사례는 없고 문제점만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양산한 채 실패로 끝나고 있다. 그런데도 해외 유명 축제나 앞서 말한 기사에서 소개한 성공 축제 사례 등을 거론하며 모든 축제가 조금만 조이고 몰아붙이면 단기간에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착각을 부추기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외국에서 성공한 유명 축제들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하고 공을 들여 현재에 이르렀는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는 반증 아닌가. 모든 사업가들이 재벌기업으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든 고등학생이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당연지사인데 지자체장을 비롯한 관료조직이나 언론은 왜 유독 우리나라 축제에 대해서만 어이없는 시각을 내내 유지하는 것일까. 한편, 지역축제에 경제 논리를 들먹이는 상황의 기저에 썩 유쾌하지 않은 정치적 의도 역시 작용한다는 의심도 있다. 지자체장이나 관료조직이 인구 감소로 위기에 처한 지역의 돌파구를 찾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방안으로 축제를 선택했다면 비록 실패한다 해도 취지만은 높이 살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선거에서의 표나 부풀려진 가공의 실적만이 중요한 사람들이 훨씬 많은 현실에서 지역축제는 저예산을 투자하고 너무 많은 단 열매를 수확해야 하는 안타가운 현실에 방치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축제는 그들에게 내세워야 할 문화관광도시의 간판이고 구호일 뿐, 내용은 구색 갖추기와 짝퉁으로 전락할 뿐이다. 그다지 편하지 않은 편의시설과 볼거리 즐길 거리 없는 지역의 축제에 아이들 손잡고 봄나들이로 먼 길 달려가는 서민들의 기대와 정성을 생각한다면 지자체들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지역 축제의 부실과 문제를 지적하려면 이런 생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1만 5천개 축제예산 고작 평균 3천만 원. 무늬만 축제, 대한민국 문화관광 앞날 어두워.... 김동언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신춘음악회 공연장 로비에서

사회가 발전하면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진입장벽도 낮아지고 있다. 그만큼 문화 분야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진 셈인데 이들을 위한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김동언 교수는 5일부터 12월까지 매주 격주 화요일마다 독자들에게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로 문화 관련 최근 경향과 문제점 등 다양한 이슈를 들려줄 예정이다. 현재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 2008년부터 수년간 수원화성국제연극제를 총괄 기획했으며 로봇 에버를 주인공으로 한 창극을 선보이는 등 문화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다. 김 교수와 함께 문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편집자 주 봄이 왔다. 3월이면 우리 일상과 마음은 이미 봄날의 생기가 가득 차오른다. 공연장의 봄은 신춘음악회로 시작한다. 3월이 되면 대부분의 공연장에 신춘음악회를 알리는 각종 홍보물이 나붙고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활기가 넘친다. 본격적인 신년 프로그램의 출발점이 되는 신춘음악회는 참신하고 다양한 공연장의 자체 기획프로그램에 봄이라는 계절의 후원을 더한 첫 번째 공연 상품으로 무대에 오르고, 많은 음악가나 단체들 역시 의욕적으로 공연을 마련한다. 문화예술기관, 공연장, 언론사 등이 주최하여 음악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음악가들에게 데뷔 무대를 제공했던 동명의 행사도 신춘음악회였다. 공연장 여건이나 음악 활동 환경이 여러모로 열악했던 시절, 신인 발굴을 위한 신춘음악회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무대가 되었고, 명망 있는 음악가로 발돋움할 중요한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 필자를 비롯한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공연장에서 일하려는 꿈을 품고 예술경영을 공부하거나 현장 입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이렇듯 신춘음악회는 우리의 음악 수준을 높이고 공연장이 발전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지난 주말, 한 공연장의 신춘음악회를 다녀왔다. 공연 시작 전, 겨울 동안 만나지 못했던 문화예술계 지인들과 모처럼 반가운 안부를 나눴다. 대부분 7,80년대 푸른 꿈을 안고 공연예술계 일을 시작하여 수십 년간 활약해 온 중진들이다. 오랜 세월 공연장에서 일하며 우리나라 공연예술 발전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분 중 많은 수가 지금은 어찌하다 보니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잘못 돌아가는 작금의 문화예술계 인사 관행이 속내를 불편하게 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내내 무거웠다.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문화재단과 주요 공연장에서 벌어진 기관장과 예술조직 및 단체장의 최근 인사 행태야말로 참사 수준이라고 할 만큼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방 선거가 끝나고서 벌이는 논공행상의 인사 관행 수준이 도를 넘어 상식 이하로 전락했다. 지역의 문화재단 대표를 뽑는 선임 과정과 결과에 파행이 반복되면서 지역문화의 앞날에 대한 우려와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모양과 무늬만 공모일 뿐,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만들어 낙하산 인사를 앉히는 방식에 신춘음악회 로비에서 만난 공연예술계 중진들은 모두 들러리만 서고 말았던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인사를 지역의 단체장 선거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대표 자리에 앉힌다고 해서 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인사 방식이 얼마나 많은 폐해를 가져왔는지는 이미 학습 된 사례들만으로도 수두룩하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이러한 보은 인사나 낙하산 인사가 지역문화재단과 예술단체들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인 문제의 중심이 되고, 법인으로 독립된 문화재단이 지자체의 택배회사나 외주업체가 담당하는 심부름 역할만을 하게 하여 조직 전체가 무기력에 빠지고 퇴행을 일삼는 심각한 상황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자치단체장이 사유화할 수 있다고 오판하고 자행하는 지역문화재단과 예술단체의 파행적인 인사 방식은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봄이 오고 신춘음악회가 열리지만, 이 생각만 하면 날씨도 마음도 여전히 봄 같지가 않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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