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한반도...경기도 남북교류협력기금 ‘안갯속’ [집중취재]

극단으로 치닫는 남북 관계의 영향으로 경기도가 북한 지원을 위해 조성한 남북교류협력기금의 사용처가 안갯속에 빠졌다. 애초 도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기금을 조성, 각종 사업에 활용했으나 북한이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를 폭파하는 등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본래 목적대로의 기금 사용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15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가 지난 2001년부터 조성한 남북교류협력기금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위해 적립된 예산을 의미한다. ‘경기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조례’에 따른 기금의 용도는 △문화, 관광, 경제 등 남북교류협력사업 △남북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 증진 사업 △북한 긴급구호에 관한 사업 등으로 규정됐다. 올해 본예산 기준 도는 남북협력기금 338억4천700만원을 적립했으며 이 중 88억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하지만 이는 애초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라는 주요 목적과 달리 도내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 등 국내만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사태 발생 당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한 것을 시작으로 남북 간 긴장 상태가 계속되면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 협력 사업의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북 관계 악화 이전에 도가 추진한 북한과 관련한 사업은 2018년 말라리아 공동방역(5억원), 2020년 남북의료협력(10억원) 등이 마지막이며 이후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사업은 중단됐다. 이런 가운데 내년 말 남북교류협력기금의 존속기한 만료를 앞두고 도는 2025년 초 조례 개정으로 이를 연장할 계획이지만 결과는 속단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의회에서 기금의 기능 재정립 목소리가 나온 데다 도내 기초지자체에서 관련 조례안을 폐기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수원특례시의회에선 기금의 존치가 의미 없다는 이유로 관련 조례안을 없애는 등 지난 2022년부터 도내 4개 지자체에서 이와 같은 조례를 폐기했다. 더욱이 수원특례시의회의 경우 이 과정에서 격론이 벌어진 만큼 전문가들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기금의 전용 시 공론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는 “당장 남북 관계가 개선될지 확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처한 재정 상황에 따라 기금의 존치 문제 등이 거론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전문가, 주민 등이 함께 참여해 기금에 대해 논의해야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대 열풍’에 요동치는 정·수시…최대 영향권은 ‘중상위권’ [집중취재]

30일 앞으로 다가온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의대 정원 확대를 노린 최상위권 고3·N수생들의 각축장이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수험생들의 과목별 표준점수, 최저 학력 기준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경기 지역 고3 수험생도 6년만에 15만명대를 돌파하고 N수생 수 역시 4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 진학을 둘러싼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1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수능에 응시한 52만2천670명 중 ‘N수생’은 18만1천893명으로 집계됐다. 2004학년도 수능(18만4천317명) 이래 21년 만의 최대치다. 교육계는 정부의 의대 증원을 노린 N수생, 반수생이 급등했다고 해석한다. 올해 전국 39개 의대(차의과대 제외)에서 전년 대비 1천497명 늘어난 4천610명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고3 수능 응시자도 34만777명으로 전년(32만6천646명)보다 1만4천131명 늘어났다. 특히 경기 지역의 경우 학생 인구 유입 영향에 15만3천600여명이 응시, 전년도(14만6천여명)보다 응시자가 7천여명 증가했다. 2019학년도 수능(16만3천200여명) 이후 6년만에 15만명대를 재돌파한 수치다. 재수생 역시 2021학년도 수능에서 4만6천800여명을 기록하며 저점을 찍은 이후 4년 연속 증가, 올해는 5만8천600명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수능 응시 인원이 늘면서 의대를 비롯한 대학 수시 경쟁률도 동반 상승했다. 올해 전국 의대 수시 모집에는 전년 5만8천463명보다 1만5천174명 늘어난 7만3천637명이 지원, 23.8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종로학원이 가천대·성균관대·아주대 의대 등을 포함해 조사한 경기 지역 대학 수시 평균 경쟁률도 12.61대 1로 집계되며 전년(12.11대 1)보다 상승했다. 경기 지역 안팎으로 의대 증원을 노린 최상위권 고3·N수생 간 정·수시 경쟁이 치열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자 입시업계는 이번 수능에서 원하는 성적을 받기 어려운 구간은 최상위권보다 중위권일 수 있다고 진단한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은 “상위권 고3·N수생이 수능에 대거 뛰어들면서 중위권 학생들은 수시 전형 최저 학력 기준을 맞추는 것조차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평소보다 더 낮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6·9월 모의평가 ‘극과 극’… 올해 난이도 ‘예측 불허’ [집중취재]

2025학년도 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난이도 전망은 안갯속을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도 급락을 보인 6·9월 모의평가 탓에 입시 업계 사이에서도 예측이 엇갈리기 때문인데, 전문가들은 ‘어렵다’는 가정하에 수능 준비에 임할 것을 제언한다. 1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에 따르면 이번 9월 모평에서 국어, 수학 표준점수 최고치는 129점과 136점을 기록했고 절대평가인 영어 1등급(90점 이상) 비율은 10.94%로 집계됐다. 표준점수는 난이도가 높으면 최고점이 상승하고 반대의 경우 낮아지는 비례 관계 지표다. 통상 최고점이 120점대면 평이한 시험으로, 140점대 중후반 이상이면 어려운 시험으로 인식된다. 영어 과목의 경우 적정 1등급 비율이 6% 안팎으로 통한다. 국어 148점, 수학 152점, 영어 1.47%로 ‘역대급 고난도’라는 평가를 받았던 6월 모평과 비교하면 9월 모평은 턱없이 낮은 난이도로 출제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9월 모평이 상대적으로 평이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수능 난이도 전망은 다소 엇갈렸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최상위권 N수생의 대량 유입으로 변별력 확보 문제가 부상, 수능 난이도 상향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우 소장은 경기일보와의 통화에서 “6월 모평, 이와 비슷했던 전년도 수능은 ‘매우 어려웠지만 변별력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받는다”며 “또 정부의 ‘킬러(초고난도) 문항 배제’ 방침도 따라야 하는 만큼, 국어와 수학 난이도는 6월 모평 수준이 될 개연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영어 과목에 대해서는 “이상적인 1등급 비율이 6~7% 선임을 감안하면 실제 그 정도 비율이 나온 2023학년도 수능 수준으로 맞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시험 난이도가 널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9월 모평에 가까운 난이도로 출제돼야 한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시험 난이도가 낮아지면 실수가 득점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지만, 대학별로 반영하는 과목과 점수 환산 방법 등이 달라 극단적인 변별력 확보 실패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이 소장은 “변별력 확보를 위해 국어 난이도는 (9월 모평 대비) 약간 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며 “또 수험생들은 난이도 전망과 관계없이 어려울 것이라는 가정하에 준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수능 꿀팁… 평소처럼 학습·건강 관리 ■ 김원중 대성학원 입시전략실장 "EBS교재·교과서 오답노트 활용" 2025학년도 수능이 30일 남은 가운데 전문가들은 ‘평소와 같은 학습·건강 관리’를 강조했다. 김성원 대성학원 입시전략실장은 수험생들에게 수능 전 최종 학습 정리와 건강 관리에 돌입할 것을 주문했다. 김 실장은 “수능이 한 달 남은 상황에서는 새로운 것을 공부하기보다는 평소 어려웠던 부분을 중점 정리하거나 실제 수능 시험 시간 연습을 하는 게 좋다”며 “EBS 교재, 교과서와 오답노트를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부 외에도 수능 시험 당일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무리한 계획보다는 틈틈이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맨손 체조, 충분한 수면 시간 등 건강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더 잘하겠다는 욕심보다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수능 시험 당일까지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자신감을 가지면 기대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최경윤 문산수억고교 교사 "조급함 버리고 평정심 유지 강조" 파주 문산수억고등학교에서 고3 대입을 지도하고 있는 최경윤 교사는 남은 기간 ‘조급함’을 버릴 것을 강조했다. 최 교사는 “이 시기 학생들은 밤샘 공부를 하거나 국영수를 위해 평소 잘 하던 탐구 과목을 소홀히하는 등 조급해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그간의 학습 리듬을 망칠 수 있고, 특히 탐구 과목은 잠시 손을 놔도 점수가 떨어지기에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 교사는 수시 전형에 응시하는 학생은 수능 이후 학생기록부 분석과 면접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기말고사와 출결 등 남은 학교 생활에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재학생 수시 전형에는 3학년 1학기까지의 내신, 출결만 반영되지만 재도전을 희망할 경우엔 상당수 학교가 3학년 2학기 내신과 출결도 요구한다”며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지만 혹시 모를 다음 기회도 열어두려면 수능 이후 학교생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은 뒷전… 싸움만 일삼는 의원님들 [집중취재]

‘민의의 전당’으로 불리는 국회와 경기도의회가 국민을 잊은 채 연일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감장은 현 정권의 각종 리스크에 대한 맹공과 차기 대권주자를 향한 정치적 공세가 이어졌고, 도민의 삶을 살펴야 할 경기도의회는 국회의 축소판으로 전락했다. 10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역시 국회 국감장은 정치적 이슈에만 휩싸여 민생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 우선 행정안전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명태균씨의 김건희 여사 총선 개입 의혹이 최대 쟁점이 됐다. 2022년 보궐선거 당시 김 여사가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경남 창원의창 공천은 물론 이번 4·10 총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모든 국정 점검을 대신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실과는 무관한 의혹이라며 명씨의 발언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고,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제2의 국정농단이라며 맞섰다. 이 같은 행태는 국방위원회 국감장에서도 반복됐다. 북한이 우리와 연결된 도로와 철도를 끊고 요새화 작업에 돌입하겠다며 입장을 내놓으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현 정권의 대북정책, 전 정권의 대북정책을 들먹이며 서로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국정감사는 해마다 국정 운영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그 속에서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으로 국회의원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국정감사장이 사실상 정쟁장으로 변모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는 비단 국감 현장만은 아니다. 22대 국회는 첫 본회의부터 의장단 구성을 두고 충돌하기 시작해 심우정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 김문수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장이 서로를 비난하는 현장으로 전락하는 등 셀 수 없이 많은 충돌과 갈등을 이어왔다. 이 같은 행태는 경기도의회에서도 반복됐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2014년 지방의회 최초로 도 산하기관장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열지 못한 채 최근 산하기관장 임명을 바라만 보는 사태를 맞이했다. 양당이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서로 비난만 하느라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인사청문회 무산까지 포함하면 7월 시작된 제11대 도의회 후반기에만 3번의 파행 사태를 겪어야 했다. 대표적으로 인사청문회를 포함, 모든 의사일정을 미뤄지게 했던 K-컬처밸리발(發) 파행 사태는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에 합의하고 본격적인 절차가 시작된 이날까지 갈등을 반복했다. 이날 도의회 K-컬처밸리 행조 특위는 당초 오전 10시 도 집행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비롯, 증인 선정, 의사일정 합의 등의 절차를 거칠 예정이었다. 그러나 특위 2차 회의를 앞둔 지난 8일 도의회 국민의힘 소속인 김영기 특위 위원장(의왕1)이 보도자료를 내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김동연 경기도지사를 증인으로 소환하겠다고 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양당 합의 하에 세부 내용을 정하기로 한 행조 특위 추진 당시의 합의를 무시했다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회의 시간은 오전 11시로 밀렸고, 우여곡절 끝에 양당 의원들 모두가 회의에 참석했지만 고성이 오가며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웠다. 도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김 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김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회의를 진행하려 하자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결국 회의는 파행됐고,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아무것도 의결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남았다. 이에 대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22대 국회와 11대 경기도의회는 현재 온전한 의미가 아닌 ‘정치적 내전 상태’”라며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사는 적대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불리한 이슈나 현안에 대한 대화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중앙정치가 협치를 이루지 못하고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지방정치도 협치를 이루기 어렵다”며 “국회가 정쟁이 아닌 협치를 이끌어내면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야당과 머리를 맞댄 대화에 나서 민생을 살피는 게 국회 본연의 자세”라고 말했다.

마약 치료 인프라 수도권 쏠렸지만… 효과는 글쎄 [집중취재]

마약류 중독자를 치료하기 위한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됐지만 상당수 기관의 실적이 전혀 없는 등 실제효과는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마약 근절을 위한 범정부적 대책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종태 의원실(더불어민주당·대전서구갑)이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경기일보가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현재 식약처는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복지부는 이 중 전국 9개 권역 치료보호기관을 별도 선정해 예산을 지원한다. 사실상 권역 치료보호기관은 마약 중독 치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들로, 국립정신건강센터(서울),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경기), 인천참사랑병원(인천)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6월 기준 전국의 치료보호기관은 총 32개로, 이 안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69명과 정신건강전문요원 232명 등이 함께한다. 여기서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전문요원의 자격을 가진 간호사,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 작업치료사로 구성된다. 특히 이러한 기관과 인력은 수도권에 쏠려있는 상태다. 전국 치료보호기관의 34.3%(11개)가 경기·인천·서울에 소재했고, 전문의 80명(47.3%)과 전문요원 105명(45.2%)이 몸담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실적이 ‘0’에 그친다. 해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마약류 사범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정작 치료보호기관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모호한 셈이다. 그나마 인천참사랑병원은 지난 1~6월 실적이 205명으로 전국에서 독보적 1위를 달성했다. 서울의 경우는 2개의 치료보호기관에서 11명을 치료해왔다. 경기도는 치료보호기관 7곳을 다 합쳐도 실적이 전무하다. 도내 치료보호기관 전문의와 전문요원이 각 44명, 60명 규모임을 고려하면 저조한 성적표다. 근본적인 이유는 마약류 중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지 않는다는 점과 의료기관들도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지 않는 점이다. 마약류 중독자의 치료보호에 투입되는 예산은 2019년 2억4천만원에서 2023년 17억6천800만원까지 훌쩍 뛰었는데, 실효는 크지 않아 개선이 요구된다. 장종태 의원은 “마약류 사범 중 ‘살고 싶어서’ 치료보호기관 등을 찾는 사람들에겐 제대로 된 치료·재활·교육 등이 제공돼야 하는데 현재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중독자들은 난민 신세고, 병원에선 마약 치료에 손대지 않는 게 합리적 경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마약류 사범을 줄이고 재범률 등을 낮추기 위해선 치료 중심의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 ‘마약청정국’ 옛말…사범 둘 중 하나가 수도권·재범자 [집중취재] https://kyeonggi.com/article/20241009580266

‘마약청정국’ 옛말…사범 둘 중 하나가 수도권·재범자 [집중취재]

#1. 지난 3월, 마약 유통 조직원이었던 40대 남성 A씨가 의정부의 한 주택에서 긴급 체포됐다. 본인의 어머니에게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다. 경찰은 A씨 자택의 여행용 가방에서 필로폰 3㎏을 찾아 압수했다. 일반적인 필로폰 1회 투약량이 0.03g임을 고려하면 이 필로폰은 10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으로, 시가 9~10억원에 달한다. #2. 최근 인천공항세관은 국제우편물로 밀반입한 엑스터시(MDMA) 20g을 통관 과정에서 적발했다. 이 택배를 받은 건 10대 B씨였지만, 실제 주인은 B씨의 친오빠인 C씨였다. C씨 개인금고에선 LSD 마약 550장 등이 발견됐다. C씨는 본인 투약 목적으로 지난 6월 텔레그램을 통해 독일에서 MDMA를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속망에 걸리더라도 ‘오배송’으로 진술할 목적으로 친동생 B씨의 명의를 이용했다. 마약류 사범 2명 중 1명이 수도권에서 적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중 절반이 재범자로, 마약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 요구된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종태 의원실(더불어민주당·대전서구갑)이 경찰청·보건복지부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경기일보가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3년간 전국 마약류 검거인원은 1만626명, 1만2천387명, 1만7천817명 등 해마다 늘어왔다. 올해만 해도 1월부터 8월까지만 9천498명에 달한다. 이때 마약류 검거인원은 마약사범, 향정사범, 대마사범 등을 모두 합친 개념이다. 시·도별로 자세히 보면 마약류 검거인원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도다. 2021년 2천819명, 2022년 3천167명, 2023년 4천235명, 올해(1~8월) 2천520명 등 연평균 3천185명이다. 전국 마약류 사범 4명 중 1명이 경기도민이거나 경기도에서 붙잡혔다는 의미다. 이어 2위는 서울(연평균 2천854명), 3위는 인천(1천61명)이다. 국내 마약류 사범 둘 중 하나가 수도권 안에서 걸린 셈이다. 반면 전국에서 마약류 사범이 가장 적은 지역은 세종으로 분석됐다. 2021년 18명, 2022년 29명, 2023년 59명, 올해 57명 등 연평균 검거인원이 40명 수준이다. 경기도와는 약 80배 차이가 난다. 문제는 이같은 마약류 검거인원의 절반은 초범, 나머지 절반은 재범이라는 점이다. 마약류의 중독성 및 의존성이 완전히 치료 되고 있지 않다는 게 절대적 이유지만, 음지에서만 번지던 마약류가 점점 SNS 등을 통해 양지 가까이 나오면서 진입장벽을 낮춘 것도 한몫 한다. 전국의 마약류 재범인원만 따로 분석해도 2021년 5천357명(재범률 50.4%), 2022년 6천178명(49.9%), 2023년 8천821명(49.5%), 올해(1~8월) 4천918명(51.8%) 규모다. 불법마약 예방교육을 진행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전국적으로 치료보호기관, 중독재활센터 외에도 ‘마약사범재활전담교정시설’, ‘24시마약류전화상담센터’ 등 범정부적 예방·재활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마약류 범죄가 전국에서 성행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여러 사회적 지표에서 ‘1등’을 기록하기 쉽지만 범죄만큼은 ‘예외 상황’이 돼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부터 ‘마약류 사범을 처벌하기 앞서 치료부터 하자’는 목소리가 많았기에 사회도 점차 그렇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딱 과도기 상태”라며 “처벌도, 치료도 지금 제대로 방향을 못 잡으면 ‘마약청정국’이 옛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관련기사 : 마약 치료 인프라 수도권 쏠렸지만… 효과는 글쎄 [집중취재] https://kyeonggi.com/article/20241009580263

행정절차 ‘발목’… 성남 공공청사 건립 ‘난항’ [집중취재]

성남시가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공사)에 위탁해 추진 중인 2건의 청사 건립 대행 사업이 각종 행정 절차 문제 등으로 용역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인·허가와 사업지 주변 재개발 조합 측과의 협의가 각각 발목을 잡았기 때문인데, 사업 지연에 따른 주민 불편이 우려되고 있다. 7일 성남시와 공사 등에 따르면 공사는 지난 2022년 12월 시와 위·수탁 협약을 맺고 야탑3동 주민센터, 상대원2동 복합청사 건립대행사업을 추진 중이다. 야탑3동 주민센터는 야탑동 307번지 일원에 주민센터(668.1㎡)·주민자치센터(759.6㎡)를 건립하는 내용으로 지하 2층~지상 3층 규모로 지어지며, 사업비는 195억1천600만원이다. 상대원동 4천219번지 일원에 신축될 예정인 상대원2동 복합청사(2천284㎡)는 지하 2층~지상 5층 규모로, 415억4천300만원이 투입된다. 두 청사 건립에 들어가는 예산은 전액 시비로 부담되며, 준공은 2027년 예정이다. 문제는 두 청사 건물의 실 공사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각종 인·허가, 재개발 조합과의 협의 등 문제가 발생하면서 용역이 중단돼 행정절차가 지연됐다는 점이다. 공사는 올해 1월 야탑3동 주민센터에 대한 실시설계에 착수했는데, 생활환경(BF) 예비인증과 에너지효율등급 예비인증 등 법적 필수절차를 이행해야 하면서 용역이 지난 7월부터 중단된 상태다. 특히 해당 주민센터는 주민 의견을 수렴해 ‘장애물 없는 건물’로 지을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BF 인증이 수개월간 사업 추진을 위한 행정절차를 지연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다. 상대원2동 복합청사는 지난해 12월 설계용역에 착수했지만, 지반조사 등 기초조사가 불가한 데다 시의 건축계획 변경 관련안이 확정되지 않아 5개월가량 지연됐다. 이어 올해 7월에는 해당 지역에 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인 한 조합이 구역 내 기반 시설과 도로 레벨 등의 사업계획이 변경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결국 설계 기준이 되는 기반 시설 등의 자료가 변경 예정됨에 따라 설계 과업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 용역이 다시 중단된 것이다. 이와 관련, 공사 관계자는 “현재 용역을 중단해 관련 절차, 협의 등에 나서고 있다”며 “용역이 중단됐다고 해서 공기가 지연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말했다.

발의 법안 4천607건 중 철도 관련 21건뿐… 지하화는 달랑 1건 [집중취재]

경기도와 서울시 등 수도권 중심의 철도 지하화 사업이 여야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2대 국회 출범 후 이날까지 발의된 법안 총 4천607건 중 철도 관련 법안은 고작 21건에 그쳤다. 또 그나마 발의된 철도 법안 내용도 ▲철도사업법(숭차권) ▲부산·양산·울산광역철도(시설유지관리) ▲철도산업발전기본법(유휴부지 활용방안) ▲도시철도법(사업시행자 최소 운영수입 보장) ▲철도공사법(국유재산 무상 대부) 등으로 지하화 사업과는 무관하다. 지하화 사업에 대한 법안은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지난 6월12일 발의한 ‘도시철도 지하화 및 도시철도 부지 통합개발 법안’이 유일하다. 고 의원은 당시 법안에 대해 “지난 1월 철도지하화통합개발법이 공포됐다”며 “생활권을 단절시키는 철도의 상부 개발사업과 연계해 철도의 지하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도 지하화를 포함한 모든 법안은 접수 후 위원회 심사를 거쳐 연말까지 체계 자구 심사와 본회의 심의, 정부 이송, 공포로 이어진다. 법률 공포 후에는 본격적인 사업추진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 하지만, 여야의 4·10 총선 공약에도 불구하고 철도 지하화 사업은 정쟁에 밀린 ‘시급하지도 않고 언제 추진할지도 모르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특히 정부가 내년도 SOC 분야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도 철도·고속도로 지하화 논의가 최소 다음 정부로 넘겨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전국 지자체별로 광역철도 등 기존 사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경기도를 중심으로 전국 8개 시·도에서 상부 개발까지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건축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단 10개월 만에 무너진 셈이다. 앞서 도는 철도 지하화 관련 최대 수혜지로 꼽혔다. 경부, 경인, 경의, 경원, 경춘, 중앙, 경강, 안산선 등 총 8개 노선에 걸쳐 360㎞가 개발대상에 포함되면서다. 안산시가 지난달 3일 ‘안산선 지하화 토론회’를 연 것도 수도권 전철 4호선 안산 구간 지하화로 신·구 도심 간 생활권 단절 해소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관련, 철도공단의 한 전직 임원은 이날 경기일보와 통화에서 “글로벌 재정위기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이 경직된 상황에서 민자를 조달하겠다는 얘기를 믿지 않았다”며 “여야 정치권은 이제라도 철도 지하화 공약에 대해 사과하고 여·야·정이 힘을 모아 중장기 플랜을 다시 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관련기사 : 예산 삭감 1순위… 경기도 ‘철도 지하화’ 거짓공약 우려 [집중취재]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1006580149

예산 삭감 1순위… 경기도 ‘철도 지하화’ 거짓공약 우려 [집중취재]

집중취재 ‘철도 지하화’ 긴급점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여야의 지난 4·10 총선 공약인 경기도 중심의 철도 지하화 사업이 10개월 만에 공약(空約)으로 전락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65조원의 민간 자본이 필요하다던 철도·고속도로 부문 정부 예산이 SOC 12개 분야 중 유일하게 삭감됐기 때문이다. 6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정기국회에 앞서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이 25조5천억원에 그쳤다. 이는 올해 26조1천억원보다 3.6%나 감액한 수치로, 정부가 재정 구조조정 1순위로 SOC를 선택했다는 의미다. 특히 철도부문은 올해 8조1천21억원에서 7조16억원으로 SOC 전 분야 중 가장 크게 줄었다. 이어 도로 부문도 7조9천779억원에서 7조1천998억원으로 감소했다. 세부적으로는 고속도로가 1조8천272억원에서 1조520억원, 국도는 1조8천530억원에서 1조7천731억원으로 각각 줄었다. 이처럼 정부가 철도 부문 예산을 대폭 줄이면서 대통령의 공약 사업이자 양당의 공약이던 철도 지하화 추진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월31일 철도 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철도지하화통합개발법)이 시행되면서 자신의 대선공약인 철도 지하화를 위한 전국 순회 6번째 민생토론회(1월 25일)를 통해 신속한 후속 조치를 주문한 바 있다. 이에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곧바로 철도 지하화를 4‧10 총선 제1 공약으로 제시했다. 또 4‧10 총선 지역구에 출마한 전국 696명의 후보 중 181명(26%)도 철도 지하화 공약에 동참했다. 특히 전국 537㎞에 달하는 철도 지하화와 관련해 최대 수혜지역으로 경기도를 꼽았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8개 노선 360㎞가 지하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야가 ‘수원역~세류역’ 지하화를 약속하면서 기대감을 더했다. 이후 국토교통부도 지난 5월4일 전국 16개 광역단체, 관련 공공‧연구기관 및 철도기술‧도시개발‧금융 등 다양한 분야별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철도 지하화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협의체에는 철도공단을 비롯해 한국철도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국토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6개 기관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와 여야의 철도 지하화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조달 방식에 대한 국내 1군 대형 건설업체들의 부정적 의견도 쏟아졌다. 정부가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는 철도 지하화뿐 아니라 고속도로 지하화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65조원 규모의 재원 대부분을 민자유치로 충당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다. 이와 관련, 수도권의 한 1군 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날 경기일보와 통화에서 “철도와 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에 65조원을 조달하겠다고 해 놓고 정부 예산을 대폭 감액한 것은 지하화 사업을 하지 않거나, 아예 몇십 년 뒤로 미루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관련기사 : 발의 법안 4천607건 중 철도 관련 21건뿐… 지하화는 달랑 1건 [집중취재]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1006580158

편견에 내쫓긴 한센인… 악취·발암물질에 갇혀 산다 [한센인에게 낙원은 없다]

정부의 격리 정책과 사회적인 편견으로 형성된 한센인 정착마을에서 살고 있는 경기도내 한센인들이 정부의 무관심 속에 열악한 주거환경에 방치된 채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국민권익위원회가 한센인의 권익보호를 위해 정착마을 환경을 개선하도록 권고한 지 3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1급 발암물질인 석면 폐건축물이 방치돼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4일 한국한센총연합회 등에 따르면 경기도내 한센인 정착마을은 양주 천선마을, 포천 장자마을, 남양주 성생마을·협동마을, 양평 상록마을, 연천 다온마을 등 총 6곳이다. 과거에는 불치병으로 알려져 치료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온갖 피해와 차별을 받아야 했던 한센인들이 정부의 정책 등으로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정착마을을 형성한 것이다. 현재 경기지역 한센인 정착마을에 살고 있는 한센인은 총 163명으로, 평균연령은 80세다. 정착마을 거주민들의 고령화와 축산 폐업 등에 따라 폐가 및 폐축사가 방치되는 등 환경개선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지난 2021년 국가권익위원회는 전국의 한센인 정착마을을 대상으로 환경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이를 토대로 ‘한센인 권익보호 및 정착촌 환경·개선 종합대책’을 마련해 관계 중앙부처 및 관할 지자체에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도내 6개 지자체 모두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당시 권익위는 양평군 상록마을에 있는 폐축사 7동에 2천15㎥에 이르는 석면 물량이 추정된다고 경고했지만, 경기일보 취재진이 방문한 상록마을은 지적받은 폐축사를 포함해 곳곳에 1급 발암물질인 석면 폐축사가 방치돼 있었다. 또 다른 지자체에 문의한 결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개선 권고를 받은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사업이나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국민건강 피해 방지를 위해 노후 석면슬레이트 주택의 철거 처리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철거 후 개량하기 위한 추가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이마저도 무허가 건물이 많은 한센인 정착마을 특성상 지원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길용 한국한센총연합회장은 “정부의 차별 정책으로 형성된 한센인 정착마을이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며 “대부분 고령의 취약계층인 만큼 유해물질과 악취 개선뿐 아니라 기본적인 생활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경기도 관계자는 “한센인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전문가제언 한센인 정착마을의 새로운 방향, “소외된 섬 아닌 함께 사는 세상” 지난 20년간 한국 한센인권변호인단을 이끌어온 박영립 단장은 한센인들이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누리기 위해선 각 마을별로 얽힌 토지 소유권 문제, 사회적 낙인 등 다양한 현실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60~70년대 한센인들이 정착마을을 만들면서 대부분 축산업에 종사하거나 일부는 염색 가공업과 같은 공장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현재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남은 폐축사와 폐공장 등 잔해들이 마을에 그대로 남아있다”며 “주거지 또한 당시에 지어진 집들이 대다수라 석면 플레이트, 악취, 개보수가 어려운 집 등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권익위원회의 실태조사 이후 현실적으로 당면한 토지 소유권 문제나 예산 문제 등을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었다”며 “한센인 정착마을이라는 개념 자체에 낙인과 편견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에 생활환경을 개선하려고 해도 주변의 반대에 부딪히는 등 뿌리 깊은 차별적인 인식이 남아있는 것도 걸림돌”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다만, 정착마을마다 직면한 문제들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주거환경 및 생활환경 개선에 나서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각 마을마다 엮인 문제의 매듭을 풀어가지 않으면 앞으로도 권익위의 권고는 실효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와 지자체, 시민사회 등이 계속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 단장은 정착마을의 주거 및 생활 환경 개선뿐 아니라 한센인들이 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그는 “정착마을은 육지의 소록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만의 경우 한센인들을 위한 정착마을을 따로 구분해서 두지 않고 기존 주민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도 정착마을로 구분 지어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책에 불과하다. 한센인들이 우리 사회와 어울려서 살 수 있는 주거 및 생활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센병은 적기에 치료받으면 완치될 가능성이 높고 전염력도 낮다”며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 한센병이 전염성이 높은 무서운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한센인들의 인식과 차별 해소를 위한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센인들에게 밝은 빛을 비춰주는 진정한 의미의 주거 및 생활 환경 개선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 지자체의 의지와 더불어 우리 이웃과의 적극 교류를 통해 차별과 인식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관련기사 : 폐가·폐축사 뒤섞인… 위기의 한센인 마을 [한센인에게 낙원은 없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924580281

폐가·폐축사 뒤섞인… 위기의 한센인 마을 [한센인에게 낙원은 없다]

한센인. 이따금 언론에 등장했지만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진 지 오래된 존재. 평생을 사회적인 편견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이 더해지면서 방치의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워졌다. 공장이나 축사로 사용되거나 오래전 지어진 건물들은 개보수조차 어려워 한센인들의 생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나, 지자체의 관심은 이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경기일보는 차별과 방치 속에 고통받는 한센인들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 주 “평생 격리돼 살아왔는데, 방치된 폐건물이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24일 오전 10시께 찾은 양주시 천성마을. 이곳은 1960년대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형성된 한센인 정착마을 중 하나다. 갈 곳이 없는 한센인들이 땅을 일구며 마을을 만들었다. 현재 마을에 남아 있는 한센인은 모두 36명, 평균연령은 81세다. 대부분 소규모 가축사육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으나 고령화와 축산업 불황 등으로 인해 하나둘 폐업하면서 폐축사가 늘어났다. 마을의 입구를 따라 굽이굽이 언덕길을 오르는 길에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허름한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거동이 불편해진 한센인들에겐 지팡이에 의지해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도 하세월이다. 떠나간 사람들로 마을 곳곳에 생긴 빈집들은 외벽이 갈라지고 철근이 드러난 채로 위태롭게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천성마을은 그린벨트 규제에 묶여 있어 당장 시설 개보수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김매수 천성마을 대표(80)는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포함된 슬레이트가 포함된 건물들이 곳곳에 있지만, 나이 들고 병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그린벨트 규제에 막혀 마을이 점점 폐허가 돼 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같은 날 양평군에 있는 상록마을도 마찬가지. 상록마을의 경우 경기도가 지난 2013년 마을 안에 주택 15세대를 지어줬지만, 정부의 관심이 끊긴 지 오래인 듯 마을 곳곳에서 무너져가는 폐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상봉씨(71·여)의 집 주변에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들어진 폐축사 2동이 벽면이 내려앉은 채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철거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상태다. 위로지원금 명목으로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은 월 19만원이 전부. 더욱이 토지 소유권도 없고 건물은 무허가이기 때문에 철거를 할 수도, 복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한센인 정착마을 주민들은 이곳에서 남은 삶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생을 사회로부터 차별받으며 움츠러든 채 살아왔다”며 “하나씩 손으로 일궈가며 평생을 살아온 이곳에서 하루라도 인간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울먹였다. ●관련기사 : 편견에 내쫓긴 한센인… 악취·발암물질에 갇혀 산다 [한센인에게 낙원은 없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924580238

성남 79개·김포 6개… 청년 정책, 사는 곳따라 ‘천차만별’ [집중취재]

경기도가 지원하는 청년 정책의 수가 도내 일선 시•군별로 제각각인 데다 시•군별 청년 정책의 수 역시 천차만별이다. 특히 지원하는 청년 정책이 적은 시•군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주거 안정 지원, 취업•창업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과는 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 도내 시·군 청년 정책 불균형 19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내 31개 시·군이 지원하는 청년정책 수 차이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에서 가장 많은 청년 정책을 보유한 성남의 경우 79개의 정책을 지원하고 있지만 김포는 고작 6개의 청년 정책밖에 없어 약 13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청년정책 수 상위 시·군은 △성남 (79개) △용인 (70개) △안양 (64개) △수원 (59개) △구리 (56개) 등의 순이다. 하위 시·군의 경우 △김포 (6개) △광명 (10개) △오산 (11개) △여주 (12개) △동두천 (15개) 등의 순이다. 결국 많은 청년 정책을 보유한 성남에 거주하는 청년들의 경우 일자리, 주거, 교육, 문화·복지, 참여·권리를 아우르는 다양한 지원을 받을 기회가 있지만 김포에 거주하는 청년은 일부 일자리 지원 사업만 지원받을 수 있다. 이에 청년 정책 수 하위 지자체는 “자체적인 예산이 부족해 기존에 하던 사업만 유지하는 데 그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늘리기에는 현재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 도내 청년의 실태 경기복지재단이 지난 2021년 12월29일부터 2022년 1월21일까지 도내 청년(만 19~34세) 5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2년 경기도 청년실태조사’에 따르면 도내 청년의 27.8%는 경제활동 경험이 없는 것으로 4명 중 한 명꼴이다. 이러한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주거 안정 지원이 37.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취업·창업 지원(26.9%), 금융 지원(15.2%) 등이 순서를 이뤘다. 이 중 취업•창업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청년은 광명, 오산, 여주 등 청년 정책이 비교적 적은 시·군으로 나타났다. 이는 청년 정책이 적은 시·군에 거주하는 청년들이 더 많은 지원을 바라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청년정책 불균형 일어나선 안 돼” 경기도내 청년 정책과 관련, 전문가들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시·군의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같은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다면 최소 비슷한 수준의 복지를 누려야 하지만 현재 격차가 너무 크다”며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닌 실질적으로 청년들에게 필요한 중요 정책에 대해 시·군 분담 비율을 줄이는 등의 방안을 구상해 지자체의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피력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도 “도민들 입장에서 ‘왜 좋은 사업을 우리 지역에서 지원 안 하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으므로, 예산 확보와 성과 홍보를 통해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청년 정책 ‘불공평’... 경기도 고른 기회 ‘헛구호’ [집중취재]

오는 21일, 매년 9월 셋째 토요일은 국가에서 지정한 ‘청년의 날’이다. 민선 8기 경기도는 ‘기회의 경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청년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고른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도의 방침에도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는 청년 정책은 ‘천차만별’이었다. 이에 경기일보가 도내 청년 정책의 현실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경기도의 청년 정책 사업이 31개 시·군마다 차이를 보이면서 도내 청년 간 지원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진로 개척 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 정책을 도가 시·군과 매칭해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지만 시·군의 재정 부담에 따른 미참여 등의 이유로 고른 기회가 돌아가지 않고 있다. 19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도에서 시·군과 사업비를 매칭해 운영하는 청년 정책은 △경기청년 사다리 프로그램 △경기청년공간 조성 및 운영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경기청년 역량강화 기회 지원 △청년월세 한시 특별지원 등 16개다. 도에서는 시·군 매칭 사업 16개를 운영 중이지만 실제 각 시·군에서 지원 중인 도 매칭 사업의 수는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도와 매칭한 사업이 가장 많은 시·군은 광주로 15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어 용인·화성 13개, 평택·구리 11개 순이다. 반면 가장 적은 시는 의왕으로 단 2개의 사업만 지원하고 있다. 이어 △동두천·파주·오산·광명·김포·군포·시흥·여주·연천 (3개) △과천·의정부·안양 (4개) 순이다. 민선 7기 대표 정책인 청년기본소득의 경우 성남과 의정부가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부는 재정적인 문제, 성남의 경우 자체적인 사업 운영 때문이다. 또 청년들의 접근성 높은 공간을 확보해 스터디룸, 창작·휴식, 취업·창업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기청년공간’ 사업은 평택, 의정부 등 10개 시·군에서만 참여하고 있다. 특히 청년들에게 해외연수와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경기청년 사다리프로그램’은 민선 8기의 주요 정책인 ‘경기청년 기회패키지’에 속해 있지만 평택, 안성, 포천 등 세 곳만이 참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는 예산상의 문제로 공모를 통해 3개 시·군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같은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더라도 지역별 지원하는 경기도 청년 정책이 달라 성남에 거주하는 청년의 경우 ‘청년기본소득’을, 수원의 경우 ‘경기청년 사다리프로그램’을 지원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도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도 사업이라도 50%, 70%에 달하는 비용을 시·군에서 지원해야 하다 보니 재정적인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도비 매칭 사업은 각 시·군이 참여에 대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강제할 수 없다”며 “도 보조금 조례상 매칭 비율을 낮추기는 어렵다. 또 현재 세수 부족으로 인해 도에서 각 시·군에 지원을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년 사업 예산을 매년 늘리기 위해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K-컬처밸리 행정사무조사’ 뭐길래…힘겹게 성사된 행조 AtoZ [집중취재]

경기도의회를 멈춰 세운 ‘K-컬처밸리 계약 해제’와 관련, 도의회 교섭단체 양당이 행정사무조사 추진에 합의하면서 ‘K-컬처밸리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행조특위)’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K-컬처밸리 행조특위 구성이 어렵게 합의됐지만, 국정감사와 달리 조례에 근거한 행조특위는 추진상의 한계가 있는 만큼 이를 극복해 도민의 의문을 해소할 내실있는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조례 기반한 행조특위, 핵심 당사자 CJ 부를 수 있나 12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의회가 이번 행조특위를 구성할 수 있는 건 ‘경기도의회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에 관한 조례’에 기반한다. 해당 조례 제4조 1항에서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는 경우 본회의 의결을 거쳐 도의 행정사무 중 특정사안에 관한 행정사무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앞서 도의회 국민의힘 김정호 대표의원(광명1)과 같은 당 소속 의원 등 총 70명이 ‘도 K-컬처밸리 사업협약 부당해제 의혹 행정사무조사 요구의 건’을 발의, 이 요건은 충족했다. 게다가 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역시 주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기 위해 행정사무조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 만큼 본회의 처리를 통한 행조특위 구성은 문제가 없다. 다만 최대 쟁점은 경기도 만큼이나 핵심적인 당사자인 CJ의 조사 출석을 강제할 수 있는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조특위는 CJ 출석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국감의 경우 관련 법에 따라 기업인을 포함 관련 증인의 출석을 요구할 경우,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출석 요구에 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행정사무조사에 관한 조례에는 이 같은 규정이 없다. 이와 관련 김중권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런 조항이 없으니 권고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면서 “조사에 필요한 자료 제출이나 증인 출석 요구를 거절했을 때 강제력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손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K-컬처밸리 국감' 다음 달 검토하는 국회, 중복 개최 가능한가 도민들이 갖는 두 번째 의문은 국감과 행조가 한가지 사안에 대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가다. 앞서 고양 주민들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린 국정감사 요구 글은 ‘30일 내 5만명 동의’ 요건을 충족해 소관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돼 다음 달께 국감 추진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 때문에 동일 사안에 대한 행조와 국감이 차례로 진행되는 게 가능한지를 묻는 반응도 많다. 이와 관련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현행법상 동일 사안에 대해 국감과 행조를 동시에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없다”며 “명문화된 규정이 없으니 진행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다만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는 행조 추진 시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육 명예교수는 “현재 국정감사 추진 논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먼저 행조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다만 행조 이후 도에 시정권고나 예산삭감 등의 조치는 도의회도 가능한 만큼 (국감 추진 논의 후) 행조를 진행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 도의회 양당 “CJ 증인 출석 꼭 필요…조사 세울 방안 간구” 이 같은 한계에 대해 도의회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입을 모아 극복 의지를 전했다. 도의회 국민의힘 관계자는 “CJ와 경기도의 입장이 첨예한 상황에서 당연히 CJ도 불러 협약추진 과정 등에 대해 들을 필요가 있다”며 “출석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사업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게 입증되는 것인 만큼 재참여 의사를 밝힌 CJ의 사업참여권을 박탈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CJ의 출석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의회 민주당 역시 “CJ를 유인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든 마련할 것”이라며 “이번 조사의 목적은 결국 조속히,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K-컬처밸리를 추진하는 것인 만큼 최대한 공정하고 꼼꼼하게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줄어드는 기금…전문가들 “엄격한 관리, 도민 부담 줄여야” [집중취재]

전문가들은 경기도가 지역개발기금을 포함한 모든 기금에 대해 엄격한 관리로 주민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놨다. 특히 경기도의 기금 규모는 최근 3년간 매년 감소 중인 만큼 미래 세대를 위해 현 지방자치단체장이 책임 의식을 갖고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2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역개발기금을 포함한 경기도 기금 조성 규모는 세수 부족에 따라 지난 2021년부터 감소 폭을 그리고 있다. 2021년 도 기금의 전체 조성 규모는 5조6천837억원, 2022년 4조4천189억원, 지난해는 4조3천988억원으로 집계된 것이다. 이달 올해 1회 추가경정예산안이 도의 계획대로 경기도의회 문턱을 넘을 경우 올해 기금 규모는 4조1천882억원으로 확정된다. 지난 2021년과 비교하면 1조4천955억원이 적은 수치다. 더욱이 취득세 부족 등으로 세수가 덜 걷히면서 기금의 일반회계 편입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일례로 기금 중 하나인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일부는 일반회계로 편입됨에 따라 재정안전화계정은 2021년 1조5천296억원에서 지난해 4천169억원으로, 통합계정은 7천87억원에서 5천560억원으로 각각 감소했다. 여기에 지역개발기금처럼 융자 형태로 일반회계로 편입, 다른 목적 사업으로 사용되면 융자 상환에 따라 도의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는 “기금은 특수한 목적을 위해 자금을 쌓아 놓은 일종의 원금 성격인데 지자체가 유동성 자금 부족으로 이를 빼서 쓰는 경우 결국 주민들에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며 “기금과 관련, 중앙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당장은 기금 부족이 피부에 와닿지 않아도 이를 다시 메우기 위해선 결국 주민 부담을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육 교수는 또 “기금을 자꾸 전용하면 차기 단체장에게 재정 부담을 주는 등 결국 미래 지자체에 짐을 떠안기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현 지자체장은 책임 의식을 갖고 기금을 관리해야 하며 정부나 지방의회에서도 이를 철저히 감시해야 할 것”이라며 “미래 세대와 미래 지방정부에 부담을 주게 될 기금 전용의 내용과 계획에 대해 도민들은 알 권리가 있고, 도는 이를 알릴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기금은 특수한 목적에 따라 탄력적인 운용이 가능한 만큼 도가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박석희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세금은 국가에서 법으로 명시한 사안인 만큼 지자체가 이를 늘릴 수 없으며 세수 부족에 따라 지자체의 차입금 규모 확대도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기금에 대해선 일부 지방채를 발행하는 등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지자체 역시 기금 사용의 세부 명세를 보고 과연 필요한 사업에 재원이 투입됐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실효성이 적은 사업에 관행적으로 사용됐는지를 검토하는 등 지출 구조 조정을 단행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조언했다.

민선 7기 기본소득 ‘빚의 굴레’⋯ 경기도 지역개발기금 ‘곡소리’ [집중취재]

민선 7기 경기도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 시리즈 추진을 위해 사용한 지역개발기금의 융자액 상환이 올해부터 시작, 약 3조2천억원에 달하는 도민 혈세가 빚을 갚는 데 쓰일 전망이다. 지역개발기금은 도로건설, 주택개발 사업 등 주민의 삶과 밀접한 사업에 사용되고 있어 도민 편익에 써야 할 기금이 부족해질 우려가 제기된다. 2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는 올해 본 예산안에 2조1천727억원으로 편성했던 지역개발기금을 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1조8천723억원으로 3천4억원 감액했다. 감액된 지역개발기금은 올해 추경안 기준 28종의 기금 전체 규모(4조1천882억원) 중 44.7%를 차지한다. 더욱이 이번 추경안이 통과될 경우 지역개발기금은 2019년 이후 처음으로 2조원 밑으로 떨어진다. ▲2019년 2조9천421억원 ▲2020년 2조4천152억원 ▲2021년 2조5천348억원 ▲2022년 2조2천88억원 ▲지난해 2조4천8억원이다. 이처럼 지역개발기금이 감소한 이유는 도가 민선 7기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지역개발기금의 재원을 융자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경제 악화로 인한 세수부족과 맞물려 기본소득에 사용한 지역개발기금 예탁금을 당장 올해부터 갚아나가야 해 재정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지역개발기금에서 끌어다 사용한 부채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불어났다. 도가 지역개발기금에 상환해야 하는 원리금은 올해 본예산 기준 약 3조1천844억원으로 나타났다. 지역개발기금 예탁금은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하도록 돼 있어 당장 올해부터 도는 약 2천350억원, 2025년 3천928억원, 2026년 4천259억원, 2029년 이후에는 무려 1조원 이상을 지역개발기금에 상환해야 한다. 이채영 경기도의원(국민의힘·비례)이 경기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도는 재난기본소득지급을 위해 지역개발기금에서 1조5천억원을 융자한 것으로 밝혀져 이에 대해서만 올해 1천583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결국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지역개발기금을 무리하게 끌어다 사용하다보니 도의 융자금 상환액이 매년 불어나고 있고, ‘기본소득의 빚’이 도민의 편익 등에 사용돼야 할 예산을 줄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 셈이다. 더욱이 1조원이 넘는 금액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차환자금을 추가로 융자해야 해 기본소득의 빚이 또 다른 빚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채영 의원은 “도지사 역점사업이 발생할 때마다 지역개발기금의 목적에 맞지 않는 사업들에 큰 금액의 규모가 융자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결국 기본소득의 여파로 도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공공투자사업, 도로건설사업, 공동주택 노후배관 교체사업 등에 사용돼야 할 지역개발기금이 재정난을 겪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문제없이 지역개발기금 예탁금 상환을 진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작은 서울이어도, 끝은 우리 동네이길 [무너지는 지역 연극 完]

#6장: 기라성 같은 연극인들이 울었다. 한국 공연예술의 산실이라 여겨지던 ‘(옛)학전’이 재정난 등으로 운영 33년 만에 폐관(3월)한 데다가, 학전의 대표였던 가수 김민기가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7월)이다. 연극인들은 과거의 일부분이 지워지는 심정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론 극단 하나가 문 닫은 거지만, 실질적으론 그 극단을 통해 새롭게 생겨날 수 있었던 연극인과 연극문화가 실종된 셈이다. 그만큼 연극은 어제·오늘·내일의 수많은 문화 요소를 담고 있다. 지역 연극계는 진작 ‘학전 신세’였다. 하지만 큰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연극이 끝나고 홀로 객석에 앉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지키는 지역 연극인들을 비추는 이유는, 그들 안에 지역 정체성이 살아있어서다. ■ part1. 서울에서 대구·부산으로 전파…1980년대 부흥 29일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재 연극 문화는 1902년 첫 발을 뗀 것으로 전해진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뒤이어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기악, 신라의 처용무 등이 '고대 연극' 기원이라 볼 수 있지만, 지금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연극 틀은 일제강점기에 신문화가 도입되면서 잡히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부분이 있다 보니 비교적 도심이던 ‘서울’ 중심으로 연극 문화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국내 연극의 르네상스라 여겨진 1950년, 서울 국립극장 개관공연(4월29일) <원술랑>에만 6만여 명의 관객이 모였을 정도다. 하지만 얼마 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립극장은 대구로 이전했고, 전속극단은 부산으로 흩어졌다. 어쩔 수 없던 일이었지만 ‘지역 극단’ 입장에선 초석을 쌓게 된 계기다. 이후 1960년 ‘실험극장’ 창설, 1973년 ‘연극인회관’ 신설 등 알음알음 우리나라만의 연극이 꽃을 피워나갔다. 그리고 1981년 공연법이 개정되면서 비로소 소극장 개설 및 극단 조직이 활성화·자유화 됐다. 이때 메인이 된 지역이 서울의 동숭동과 신촌 일대, 지금의 ‘대학로’다. 여기에서 뻗어나온 가지는 1983년 전국지방연극제로 연결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지방 연극 성장 시대’가 열렸다. 더불어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연극의 국제 교류가 이뤄지면서부터는 괄목할 만한 연극계 성장이 이뤄졌다. ■ part2. "지역 연극 소멸은 곧 지역 문화의 말살" ㈔경기도생활문화예술총연합회 대표이사이자 극단 ‘성’의 대표인 김태섭(61)은 지역 연극계의 역사를 몸소 겪어왔다. 1983년 4월 수원에서 창단하고 올해로 만 41년째 운영 중인 ‘성’을 통해서다. 그는 “지역 소극장이 없어진다는 건 지역 문화 자체가 말살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화면이 아닌 현장에서 관객과의 호흡을 생생하게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대상이 지역민이라는 점에서 지역 연극이 가치 있다는 설명이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로는 1998년 팔달구 방화수류정 인근에서 진행한 공연을 꼽았다. 김 대표는 “방화수류정 수변 위에 무대와 객석을 설치했어요. 저희는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고, 관객들은 연못에 발을 담근 채 옹기종기 공연을 봤죠. 지역 연극만이 할 수 있는 형태의 공연 아니겠어요?”라며 “저는 연극이 삶을 투영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극단의 경우 나혜석·정조대왕·홍사영 등 지역의 인물과 역사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데, 지역 연극 안에 지역 삶이 투영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요. 그렇게 '성'이 지역 안에서 100년을 가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지역 극단 미래는 캄캄하다고도 본다. 나날이 관객들 눈높이는 높아지는데 지역 예술단체들은 '고가의 작품 시장'을 쫓아갈 여력이 안 돼서다. 김 대표는 “문학이나 미술처럼 개인적인 예술 작업은 ‘나의 노력’에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지만 연극은 ‘공동 작업’이라 좀 달라요. 예전엔 연극인들이 본인의 욕심과 사명감으로 지하에서 라면만 끓여 먹고 생활하면서 소극장을 지켜왔는데 이젠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이 적죠. 협업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작품이 나오는데 이제 그런 환경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지역 연극인들이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게 지금의 제가 갖고 있는 책임감이자 소임이라고 생각해요. 지방정부가 나서서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는 한 앞으로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 part3.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연극인들은 무너지는 지역 연극, 벼랑 끝에서 힘겹게 버티는 연극인. 지역 문화를 계승하고 지역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지역 연극의 건재를 응원한다. 경기도 외 다른 지역 극단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풀어낸 지역 문화 작품을 소개한다. 최근 폐막한 ‘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의 본선 경연 진출작 중 하나인 <프로젝트 이어도-두 개의 섬>은 제주도만의 역사와 색깔이 짙게 담긴 이야기를 다뤘다. 그동안 제주도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온 예술공간 오이가 제주도의 과거와 미래를 소재로 이야기를 전했다. 이 안에는 독립군 출신 도하와 미래를 보는 어도가 만나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특히 제주의 구전민요 ‘이어도사나’를 통해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연결짓는 점에서 지역 문화를 엿보였다. 또 경남 통영의 극단 벅수골이 연극제에 출품한 <하얀 파도>는 통영 바다 냄새를 물씬 풍겼다. 해안가에 있는 가상 공간인 ‘담류마을’이 배경이다. 오염으로 인해 조업이 금지된 담류마을에서 주민들은 재활용이 가능한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바다에서 쓰레기를 건지던 사람들은 그물에 걸리는 물고기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 당황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통영의 색으로 풀어냈다. 연출을 맡은 장창석 대표는 “우리는 <하얀 파도>를 통해 해양오염의 실태와 삶의 갈등 속에서 바다를 살리고자 하는 은근과 끈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서울 연극의 관점에서 지역 연극은 비주류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수의 구석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역 연극인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스스로 특정 시대의 중요한 기록을 남기면서 세대 비전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9월1일부터 8일까지 용인에서 열리는 ‘제3회 대한민국 시민연극제 용인’에서도 전국 시·도 시민연극단체의 목소리가 더해질 예정이다. 김태섭 극단 성 대표의 인터뷰 내용 일부를 전하며 끝을 맺는다. “이 기사는 연극에만 포커스를 맞춘 기획물 같지만 사실 무용에도, 음악에도 해당되는 전체 예술의 이야기입니다.” <무너지는 지역 연극> 인터랙티브 기사보기 / http://kyeonggimedia.netlify.app ※ 지금까지 보도된 ‘무너지는 지역 연극’ 기사들은 경기일보 홈페이지에서 영상 및 인터랙티브 기사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무대와 매체 사이…우리는 '지역 극'에 남는다" [무너지는 지역 연극⑤]

인터뷰 줌-in 연출가 겸 극단 예성 대표 박재운 “한평생 무대 짓고 연극… 꿈이자 현실” #5장: 깔끔하고 세련된 호텔에도, 바퀴벌레와 곰팡이가 덮인 초가삼간에도 저마다의 삶이 있다. 잘난 척 우쭐대며 뽐내는 이에게도, 손가락질 당하며 폄하 당하는 이에게도 저마다의 인생이 있다. “그래서 그 삶과 인생이 도대체 뭔데”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몰라? 몰라도 돼, 그게 연극이야”란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호탕하게 웃던 극단 예성의 연출가 겸 대표인 박재운(61·한국연극협회 파주지부장)이 선배에게 건네들은 연극 지론이다. 1982년 서울 신촌에서 연극에 첫발을 디딘 그는 대학로를 거쳐 2006년 무렵 경기도에 왔다. 세트를 짓고, 각본을 쓰고, 배우를 가르치고, 극장을 운영하는 등의 모든 연극 행위를 경험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던 그는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건 작가·연출가·배우의 합이 잘 맞는다는 말”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지역 연극계에서 그게 쉬운가. 출세하러 한양길에 오르는 선비처럼, 경기도 연극인들도 서울을 향하는 마당에. “히딩크 감독 덕에 대한민국 축구가 달라진 것처럼 리더가 누구인지에 따라 업계는 달라집니다. 10년, 20년에 한 번씩 어디선가 그런 리더들이 툭툭 튀어나와요. 그런데 세상을 깜짝 놀래키는 리더가 탄생해도 우리나라 구조상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어요. 역사적으로도 그래왔고요. 성공하러 간다는데 ‘가지 마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그래, 가서 한판 잘 놀아봐라’ 하죠. 지역 연극계도 같은 사정인 겁니다. 좋은 리더가 나와도 서울로 가니까 다른 연극인들도 함께 서울을 바라보게 되는 거죠.” 멈칫, 펜을 쥐어 든 그는 종이에 서울과 경기도를 그렸다. “어쩌면 대학로의 치열한 경쟁을 피해 지역에 안주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맞수가 있어야 상생할 수 있는데 라이벌을 피하니까 자극도, 동기부여도 못 받고요. 지역 연극이 침체하는 원인에는 이 이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을 지키는 연극인들. 재운은 “전부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세트도 짓고, 옷도 꾸미고, 벌이에 비해 드는 돈이 많은 ‘값비싼 예술’인데 그저 연극을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계속 활동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세상을 읽은 마음을 글로 적고, 무대로 형상화해, 인물이 마음껏 소리치는 것이 곧 연극. 그리고 그 연극만의 생동감을 ‘생계’ 뒤로 미루긴 싫은 재운. 무대와 매체 사이에서 그가 지역 극(劇)을 선택한 자존심이자 자부심이다. “한평생 변하지 말리라 다짐하는 게 있어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한평생 망치 들고 장갑 끼고 일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무대 짓고 조명 달면서 계속 연극을 할 거에요. 이 연극이 제겐 꿈이자 현실이거든요. 다만 ‘생활’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생활이면 비겁해지니까.” 살짝 웃던 재운은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재미 있는 상업극, 주제 의식은 부족하지만 화려한 인기극, 무료 공연 없는 전 회차 유료 공연, 그런 거 하면 돈 벌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깊이 있는 연극을 토대로 메시지도 있고, 고고함도 있는 것 하고 싶어요”라며 “그게 바로 지역 연극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역에 남은 연극인으로서 지역 연극이라는 예술에 예의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연극 활동이 지속되려면 지자체나 문화기관 등이 창작의 자유로움을 인정해주고 주제 폭을 정하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시민들도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죠. 또 무용이건 음악이건 연기건, 연극인을 트레이닝하고 인재 풀을 갖출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동반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연극인이 분명히 지역에 모이게 될 거에요. 별다른 변화 없이 지금 이대로라면 차차 연극 관객은 도망가서 없어질 겁니다. 저희는 여기 남아 ‘꿈의 무대’를 지켜야죠. 연극 예술에 예의를 갖추면서.”

법적 보호 못 받는 시청각 장애인… 조례 ‘유명무실’ [헬렌켈러의 그늘]

경기지역에 가장 많은 데프블라인드들이 거주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을 위한 경기도내 맞춤형 지원은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청각중복장애인의 권리보장 및 지원 조례’ 제정 이후 4년이 지났으나 기본계획조차 없는 유명무실한 조례가 됐기 때문이다. 28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는 지난 2022년 9월 시행한 자체 조사를 통해 도내 데프블라인드 인구를 1천945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데프블라인드들이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전국에서 제일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도는 2020년 6월 데프블라인드 급증에 따른 지원 필요성에 공감해 ‘경기도 시청각중복장애인의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해당 조례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의 특성에 따른 지원과 복지정책 마련 등에 대한 도지사의 책무를 규정하고, 의사소통 전문 인력 지원 등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조례가 제정된 지 4년이 지나도록 데프블라인드들을 위해 도가 세운 실질적인 지원 사업은 없는 상황이다. 관련 예산 역시 ‘0’원이다. 기본계획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이들을 위한 지원은 보조 기구인 점자정보단말기 제공뿐이지만 이용률은 10%를 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적인 의사 표현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청각중복장애인 인구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시청각중복장애인 위원회를 설치하고 전수조사를 실시해 정책 등 지원체계를 만들고 ▲권역지원센터 ▲의사소통 방법 교육 ▲촉수화 통역사 지원 전문 기관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촉수화 통역사는 100명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는 데프블라인드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 사업 대신 기존에 시행하던 장애인복지 및 지원사업 등과 포괄해서 지원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현재 시청각중복장애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사업은 없다. 기존 장애인 정책과 포괄해 지원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원석 한국시청각장애인협회 회장은 “경기도에서 지원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은 조례 제정 이후 시청각중복장애인들의 특성과 의견이 충분히 취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조례도 생겼는데, 기존 장애인 정책의 포괄 적용이 아닌 시청각중복장애인들의 특성을 반영한 장애 유형 인정과 별도의 교육 및 지원 기관 등 맞춤형 정책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전문가 제언 “보편적 복지 누리게… 의사소통 인력 양성을” 홍유미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장(시청각중복장애인 지원 기관)은 데프블라인드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보편적 복지와 지원을 누리기 위해 먼저 의사소통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유미 센터장은 “시청각중복장애인들은 의사소통의 욕구가 굉장히 강한데, 촉각을 통해 소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존의 시각, 청각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 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의사소통 활동 지원사를 양성한다고 해도 수화라든지, 점자라든지 배워야 하는데 젊은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것들을 교육시켜 지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의사소통을 돕는 촉수화 통역사 같은 경우 기준도 없고 전문 양성 기관도 전무한 동시에, 통역사를 양성할 수 있는 근거도 없는 실정”이라며 “시청각중복장애인들 특성상 보통 1명에 2명 정도의 촉수화 통역사가 필요한데, 정부 지원 없이는 비용도 비싸져 의사소통 교육 및 인력 양성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홍 센터장은 또 정부와 지자체가 기존의 장애인 정책과 포괄하려고 하지 말고 시청각중복장애인을 별도의 장애 유형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달장애인들의 경우도 기존 장애인 정책과 포괄 적용이 안 되니 특별법이 나온 것인데, 시청각중복장애인들 역시 기존 정책에 포괄 적용시키려고 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홍 센터장은 ‘헬렌켈러법’ 제정을 통한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시청각중복장애인 지원이 30년 정도 앞서 있다. 시청각중복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법과 제도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고, 지자체별로 예산을 지원해 통역 의사소통 전문 지원 인력을 양성하고 배치하고 있는 맞춤형 교육, 서비스 제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이를 본받아 데프블라인드들의 사각지대를 포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헬렌켈러법’이라 불리는 시청각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진흥과 지원에 관한 법이 폐지된 만큼, 다시 법제화를 위해 나서 시청각중복장애인들에 대한 섬세한 보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관심 속 방치… 세상과 단절 ‘데프블라인드’ [헬렌켈러의 그늘]

최초의 데프블라인드(시청각중복장애인)인 헬렌 켈러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제도 마련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하지만 오늘날 국내 데프블라인드들은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장애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현재 전국 최다 규모의 데프블라인드인들이 경기도에 있는 만큼, 경기일보가 이들의 현주소를 살피고 지원책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주 #1. 윤세웅씨(50)는 청각장애를 앓다가 40대 초반에 시각을 잃으면서 20년 넘게 다닌 직장조차 포기해야만 했다. ‘촉감’으로 세상을 읽는 그는 길을 걷다가 뭔가에 부딪혀도 무엇과 부딪혔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길이 없다. 이 때문에 활동지원사가 옆에 있어야만 외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활동지원사도 수화를 하지 못해 윤씨의 의사가 100% 전달되지는 못한다. 그가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사람과의 의사소통이다. #2. 시흥시에 사는 백민우군(가명·5세)은 제대로 공부를 해보는 것이 소원이다. 선척적인 데프블라인드인 백군은 공부를 하려고 해도 보지도, 듣지도 못해 또래보다 말과 글에 대한 배움이 늦다. 언어 교육을 제때 받지 못하면 원래 없던 지적장애나 자폐까지 올 수 있지만, 전국 어디에도 데프블라인드를 위한 학교는 없다. 민우군의 어머니 한모씨는 “아이의 맞춤형 교육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 ‘데프블라인드’들에 대한 기본적인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외면 속에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경기도,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데프블라인드란 시각과 청각 장애를 동시에 앓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을 일컫는다. 하지만 현재 데프블라인드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이들을 하나의 장애 유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형평성’을 이유로 이들을 장애 유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른 중복 장애들이 많을 수 있는데, 이 중 데프블라인드만 별도로 인정하면 다른 중복 장애인들과의 형평성이 깨진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대로 된 지원책도 없다. 지원을 하려면 예산이 필요하고, 예산을 짜려면 실태조사부터 선행돼야 하지만 조사의 근거가 없는 탓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등록 장애인 인구 통계는 시청중복각장애인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있어, 현재 국내 데프블라인드 인구는 약 1만명 규모로 추산되고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데프블라인드들이 중복 등록 방법을 모르거나 중복 등록 요건이 까다로운 탓에 한 가지 장애로만 등록된 경우가 빈번해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회에서 2년 전 ‘시청각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진흥에 관한 법률안’과 ‘시청각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계류에 그치다 지난 5월 폐기된 바 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시청각중복장애인에 맞는 지원은 전혀 없다”며 “일반 시각, 청각 장애인들은 교육, 의사소통 지원책이 있지만 시청각중복장애인들은 없는 만큼 법을 통한 지원책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데프블라인드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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