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을 날린다고 한들

손제민 논설위원

‘바이든-날리면’ 논란이 좀 이상하게 현실화됐다고 해야 할까. 뉴욕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가 사설 등을 통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TV토론에서 바이든이 보인 노쇠함을 이유로 들었다. 민주당 내 사퇴 요구가 이어졌지만 바이든은 거부했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으로 두 사람이 대비되며 바이든 사퇴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의 열망을 담아내는 데 정치인의 나이와 건강은 중요하다. 트럼프가 사기꾼, 선동가인 것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영미권 주류 언론의 사퇴 요구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런 요구가 정말 민의를 대변하는 것일까. 그게 좋은 언론의 역할일까.

두 매체가 지난 수십년간 앞장서 설파한 가치가 트럼프 현상을 낳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을 성찰하지 않고, 단지 좀 더 젊은 후보로 트럼프 집권을 막겠다는 정치공학의 한계를 짚고 싶다.

2016년 이후 트럼프 현상은 최근 유럽의 극우정당 약진과 통한다. 이탈리아·네덜란드·유럽연합·프랑스·영국 의회 선거에서 극우가 가장자리에서 중심으로 진입했다. 각국 극우는 스스로 ‘냇콘(NatCon·국가보수주의)’으로 칭하며 모여서 국제회의를 여는 등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이 회의엔 트럼프의 이데올로그 스티브 배넌도 참여했다.

이들은 이민 제한에 강경하고, 보호무역을 옹호하며, 인종·성적 소수자를 차별하며, 생태·환경운동을 혐오한다. 수가 늘었다고 해도 극우는 극우이다.

극우의 주류화는 지난 30~40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의 후과이다. 시카고학파의 1973년 칠레 실험으로 시작해 1980~1990년대 영국, 미국을 거쳐 세계로 퍼진 신자유주의는 정부 개입 최소화, 시장 역할 극대화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교리이다.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철폐, 노조 탄압으로 구현됐다. 제1세계가 저렴한 소비재의 달콤함을 누렸고, 제3세계의 절대빈곤이 줄었다고들 했다. 어느 뉴욕타임스 기자 얘기처럼 세상이 평평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겉만 본 것이었다. 세상은 근저에서 뒤틀렸다. 초국적 자본의 독과점이 심화됐고 불평등이 극심해졌다. 호혜와 상호부조의 공동체가 무너지고 지구환경 수탈, 기후변화가 가속화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을 거치며 우리가 아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종언을 고했다. 훙호펑 존스홉킨스대 교수(<사회 생태 전환의 정치>)에 따르면 미·중 무역전쟁도 결국 미·중 협력의 단물을 흡수한 미국 재계가 중국 저성장 등으로 협력 유인이 줄어들자 디커플링하라고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어났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극대화한 자유는 자본의 몫이었다.

트럼프 지지 백인 노동계급은 값싼 수입 소비재를 향유했지만, 일자리가 멕시코·중국으로 유출되며 실직한 이들이 많다. 더 나은 기회를 찾아서건, 미국 사회가 필요해서건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들에게 미국이 침략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세계화가 이렇게 끝날 줄 예상 못했을까. 아니다. 1999년 시애틀, 2003년 칸쿤, 2006년 서울과 워싱턴, 2011년 뉴욕에 모인 노동자·농민·활동가들이 계속 경고했다. 글로벌보다 로컬을 우선하고, 효율·성장·경쟁·개발보다 평등·분배·연대·생태를 중시해야 한다고. 하지만 많은 정부는 그런 목소리를 외면했다. 뉴욕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는 각국 엘리트를 그 방향으로 이끈 주역이다.

트럼프 피격을 보며 양극단 정치가 문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미국 거대 양당이 어떤 정책을 두고 양극단에 서 있는지 따져보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대중의 불만을 다문화주의, 정치적 올바름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그런 면도 있겠지만, 문제의 근본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무너진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토론해야 한다. 극우는 그 자리를 국가주의와 혐오·차별로 채우려 한다. 극우가 아닌 세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신자유주의 블록화’ 정도로 바꿔 땜질하려고 한다. 좀 더 원대해져야 한다. 세계화가 부과한, 위로부터의 힘이 아니라 지역,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힘에 기초해 대안을 상상해야 한다. 냉전, 신냉전 같은 외부 위협을 과장하는 게 아니라 내부 불평등을 줄이고 기후위기 같은 모두의 과제에 협력하는 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삶을 가져온다는 걸 보여줄 때 극우의 전진을 막을 수 있다.

손제민 논설위원

손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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