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인을 통해 보도 심의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는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기본서류조차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류 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 사건을 결론 없이 방심위로 반송한 권익위의 졸속 심의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경향신문이 25일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지난 8일 권익위 제13차 전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권익위는 문제의 민원을 넣은 당사자들이 류 위원장의 가족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서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조사를 종결했다. 류 위원장에게 ‘가족관계증명서’ 제출을 요청했지만 받지 못한 것이다.
회의록을 보면 한 위원이 “가족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지금 제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냐”고 묻자 권익위 실무자가 “그러하다”고 답했다. 이어 “본인이 동의를 하지 않아서 제출하지 않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러하다”고 답했다.
한 위원이 재차 “구글링을 통해서 (가족인 줄) 알게 됐다 이런 식으로 나와 있으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관계증명서인데, 지금 여기 ○○○이 동의하지 않아서 제출이 안 되는 것이 맞는지?”라고 물었을 때도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맥락상 ○○○는 류 위원장을 가리킨다.
“역대 조사과정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받은 사례가 있냐”는 질문에 실무자는 “있다”고 답했다. 한 위원은 “가족으로 의심되는 ○○○, ○○○, ○○○, ○○○ 등이 있는데, 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게 가족관계증명서인데 제출하지 않고 있고, 서로 말이 상반되고 하니 최소한의 조사가 필요하지 않냐”며 “조금만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으니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답함을 표시했다.
권익위에 류 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이 접수된 건 지난 1월이다. 권익위가 7개월가량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고 매듭지은 것은 애초에 사실 규명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권익위원은 회의에서 민원을 넣은 류 위원장의 가족·지인·친인척을 ‘공익신고자법’으로 보호해야 할 공익신고자라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류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들이 방심위에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에 관한 뉴스타파의 인터뷰 녹취파일을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을 심의해 달라는 민원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류 위원장은 자신이 민원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며 “민원인 개인정보 유출은 범죄”라고 주장했다.
권익위는 지난 8일 류 위원장이 민원을 심의하기 전에 사적 이해관계자들의 민원 제기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민원사주 사건을 방심위에 돌려보냈다. 권익위는 류 위원장의 가족 등 민원인의 개인정보가 언론사에 유출된 것은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서울경찰청에 이첩했다. 민원사주 의혹의 당사자는 사실상 면죄부를 받고 이 의혹을 제보한 익명의 방심위 직원만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