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피로 쌓여가는 관저 앞 농성…시민 잡는 ‘윤석열 버티기’

배시은·오동욱 기자

체포영장 집행 무산 12일째

탄핵 찬반 가릴 것 없이 고통

태극기 노인 “곧 쓰러질 판”

이구동성 “나라가 더 걱정”

<b>바람은 막지만…</b>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 일신홀 앞에 설치한 체포 텐트. 이들은 지난 13일부터 텐트를 치고 이곳에서 밤을 새웠다. 오동욱 기자

바람은 막지만…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 일신홀 앞에 설치한 체포 텐트. 이들은 지난 13일부터 텐트를 치고 이곳에서 밤을 새웠다. 오동욱 기자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지연되면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시민들의 밤샘 농성도 길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1차 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시작한 수성전 탓에 애꿎은 시민들이 극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14일 관저 앞 탄핵·체포 찬반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오전 7시쯤 한남동 관저 앞 농성장에는 밤새 현장을 지킨 윤 대통령 지지자 100여명이 은박 담요를 두르고 대형 스크린에서 나오는 대국민 담화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전날 내린 눈과 비로 흥건한 아스팔트 바닥 위에 돗자리와 스티로폼 등을 깔고 앉아 있었다. 젖은 소매와 신발은 영하권을 오르내리는 날씨 탓에 차갑게 굳은 듯했다.

대다수가 고령층인 이들은 체력의 한계를 호소했다. 태극기를 가슴 쪽 주머니에 꽂고 지나가던 한 노인은 “솔직히 오늘은 어질어질하고 머리가 울리기도 한다”며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다”고 말했다. 은평구에서 왔다는 A씨(85)는 “나이가 많으니 밤을 새우거나 오래 있지는 못하고 오후 5시면 집에 갔다가 다시 나온다”며 “그래도 나라 걱정에 안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웃옷을 다섯 겹 껴입은 한 중년 여성에게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누구 놀리냐, 당연히 힘들어 죽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b>찬 바람에 그대로…</b> 윤석열 대통령 지지 집회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14일 오전 7시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농성장에서 스크린을 보며 대기하고 있다. 배시은 기자

찬 바람에 그대로… 윤석열 대통령 지지 집회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14일 오전 7시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농성장에서 스크린을 보며 대기하고 있다. 배시은 기자

한강진역 인근에 텐트를 치고 가스버너로 떡국을 끓이던 한 여성은 “추워서 가스도 다 얼었다”며 성에가 낀 부탄가스를 들어 보였다. 이들은 “하지만 힘든 게 문제가 아니다”라며 “내일 집행한다고 하니 잡아가 볼 테면 잡아가 봐라”고 했다.

윤 대통령 체포 촉구 집회 참가자들도 장기화되는 길바닥 생활에 피로감을 나타냈다. 김모씨(37)는 “월요일 오후부터 나와서 밤을 새웠다”며 “계엄 이후에는 집보다 밖에 더 많이 나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성장을 지키는 시민들은 전기난로와 화로 주위에 모여 추위를 녹였다.

전날부터 관저 인근 일신홀 앞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새웠다는 박재송씨(45)는 “체포될 때까지 지켜볼 것 같다”며 “체포가 당연히 돼야 하는데 안 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궁금하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와 누적된 피로, 진영 간 대치 탓에 이들의 불만은 사방으로 튀었다. 이날도 방송사 카메라가 윤 대통령 지지 집회를 촬영하려고 하자 지지자들이 경찰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한 참가자가 “다들 몇날 며칠 밤을 새우고, 잡아간다고 하니 예민해져서 그래”라며 충돌을 막았다. 윤 대통령 지지 집회 인근 길목을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가 지나치자 “이상한 여자다” “이 양반 좌파네”라며 고함치고 어깨를 밀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측은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연이어 내놓았다. 윤 대통령 지지 집회 사회자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되풀이했고, 연단에 오른 발언자들도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이날 발표한 호소문을 반복해서 읽었다. 한 시민은 연단에서 “강남 타워팰리스 등 서울의 절반을 중국인들이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면서 “이게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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