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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손 유서
  • 종목 : 보물 제 1289호
  • 명칭 : 이윤손 유서

    (李允孫 諭書)

  • 분류 : 기록유산/문서류/민간문서/분재기류
  • 수량/면적 :1장
  • 지정일: 1998.12.18.
  •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랑구
  • 시대 : 조선시대

보물 제1289호(1998.12.18. 지정)인 이윤손 유서는 세조 3년(1457년) 3월 12일 세조께서 친히 날인한 “제14밀부(第14密符)”를 내린다는 내용의 유서를 말한다.

이는 이윤손이 세조 원년(1455년) 8월 19일 평안도 도절제사(세조 12년 관제개편에 의해 병마절도사로 개칭)로 임명된 후 관례에 따라 유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윤손의 본관은 가평이며 이다림의 맏아들로 태종14년(1414년) 10월 3일 한양에서 태어났으며, 세종20년(1438년)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좌도 병마절제사, 강원도 관찰사, 한성부윤, 호조참의, 중추부지사(中樞副知事) 등을 지냈다.

유서는 국왕이 군사권을 가진 관원에게 내리는 명령서로 조선시대에는 관찰사, 절도사, 방어사, 유수(留守) 등이 왕명 없이 군사를 발동하거나 역모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다.

국왕이 밀부(密符)를 내릴 때는 유서를 함께 내렸으며, 관원에게서는 매우 귀중한 것이어서 항상 유서통에 넣고 지니고 다녔다.

본문 해석

『 유평안도도절제사이윤손 / 경수위일방체임비경범 / 병응변안민제적일/

(諭平安道都節制使李允孫) / (卿受委一方體任匪輕凡) / (兵應變安民制敵一)

응상사자유구장려혹 / 유여여경독단처치 / 사즉비밀부막가시위

(應常事自有舊章慮或) / (有予與卿獨斷處置) / (事則非密符莫可施爲) /

고사친압제십사밀부경 / 기수지고유 / 천순원년삼월십이일 /

(故賜親押第十四密符卿) / (其受之故諭) / (天順元年三月十二日)

평안도도절제사 이윤손에게 하유(下諭)한다. 경(卿)이 한 지역의 위임을 받았으니 책임이 크다.

군사의 동원과 변란의 대처, 백성의 안전과 적(敵)의 제압 등에 관한 것은 모두 별도의 구장(舊章)이 있으나,

만일에 과인이 경(卿)에게 독단처치(獨斷處置)하게 할 일이 있게 되면 밀부(密符)가 아니하고서는 행할 수 없다.

그래서 친압(親押)한 제십사밀부(第十四密符)를 내리니 경(卿)은 이를 수령(受領)하라. 이런 이유로 하유(下諭)한다. 』

천순원년 3월 12일

6보루터

사적 제455호 아차산 일대 보루군

  • 종목 : 사적 제455호
  • 명칭 : 아차산 일대 보루군 (阿且山 一帶 堡壘群)

    - 용마산 3~7보루, 망우산 1보루 -

  • 분 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시설
  • 수량/면적 : 용마산 일대 987,881㎡
  • 지정일: 2004.10.27.
  •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랑구·광진구·노원구 및 경기도 구리시 일원
  • 시대 : 삼국시대
  • 관리자 : 서울특별시

사적 제455호(2004.10.27. 지정)인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중랑천과 아차산, 용마산일대, 3번 국도변에 남북 방향으로 집중 분포하고 있는 둘레 100~300m의 소규모 보루들로 아차산보루, 용마산보루, 시루봉보루, 수락산보루, 망우산보루 등 총 17여개의 보루로 이루어진 유적이다.

출토유물이나 축성방법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조성된 유적으로 그 중 일부를 제외한 약 10여개의 보루는 고구려 보루로 추정된다.

고구려가 5세기 후반 한강 유역에 진입한 이후 551년에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 유역을 상실하기까지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삼국의 역사상을 밝혀 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삼국시대 특히 고구려 국경지대 요새의 구조와 성격, 국경방위체계, 군 편제 등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 자료로서 고구려의 남하과정, 한강유역에서의 대치와 관리방식, 한강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과 발전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현재 남한 내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고구려 관련 유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 중인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고구려 군사시설의 면모가 규명되고 있다.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총 17개로 홍련봉 1ㆍ2보루, 아차산 1ㆍ2ㆍ3ㆍ4ㆍ5보루, 용마산 1ㆍ2ㆍ3ㆍ4ㆍ5ㆍ6ㆍ7보루, 시루봉 보루, 망우산 1보루, 수락산 보루가 이에 해당한다. 이 중 중랑구 관내 소재 보루는 용마산 3~7보루와 망우산 1보루이다.

용마산 3보루

용마산 3보루 원경

용마산 3보루 원경

용마산 3보루 동벽

용마산 3보루 동벽

용마산 3보루는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산1-2번지와 광진구 중곡동 산143-127번지에 걸쳐있으며, 면목동 용마폭포공원 뒤편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용마산의 최고봉에 위치한다.

용마산 3보루는 용마산의 최고봉(해발348.6m)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역 ‘Y’자 상으로 배치된 용마산 보루군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이다. 용마산 6보루와 약 250m, 용마산 2보루와 약 600m 가량 떨어져 있어, 서쪽의 중랑천 일대와 남쪽의 한강 일대, 동쪽의 왕숙천 일대가 한눈에 조망되는 요지에 위치한다.

봉우리의 정상부는 북서쪽으로 연결되며 길쭉한 평탄면을 이루고 있으며, 보루는 정상부를 돌아가며 축조되었다. 보루의 평면형태는 남북으로 긴 장타원형이며, 전체둘레는 235m, 내부면적은 2,289㎡ 정도로 추정되어 아차산 일대 보루군 중에서 규모가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보루의 성벽은 봉우리 정상부에서 3~4m 아래쪽을 돌아가며 축조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잔존성벽은 보루의 서쪽에서 주로 확인된다. 성벽은 3~5단정도 잔존하며, 30~40㎝ 크기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바른층 쌓기로 축조하였다. 석축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부분도 있으나, 등산로 등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훼손된 것이 확인되었다.

용마산 4보루

용마산 4보루 원경

용마산 4보루 원경

용마산 4보루 근경

용마산 4보루 근경

용마산 4보루는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산1-2번지와 광진구 중곡동 산143-127번지에 걸쳐있으며, 용마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돌출된 봉우리에 위치한다.

용마산 4보루는 용마산 3보루가 있는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약 260m 떨어진 주능선상의 돌출된 봉우리(해발 327.3m)에 위치한다. 용마산 3보루에 비하여 해발고도가 더 낮은 곳에 위치하나, 이곳에서는 용마산 줄기와 아차산 줄기, 그리고 서쪽의 중랑천 일대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유적이 위치한 봉우리 정상부는 동서로 긴 평탄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루는 정상부 평탄지의 외곽을 따라가며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잔존형태는 동-서로 긴 장타원형이다. 규모는 전체둘레 약263m, 내부면적 3,075㎡로 추정되며, 아차산 일대 보루군 중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남동쪽 외곽에서 성벽으로 추정되는 석축이 확인되었다. 등산로 및 헬기장 등이 조성되면서 상당부분 훼손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용마산 5보루

용마산 5보루 원경

용마산 5보루 원경

용마산 5보루 근경

용마산 5보루 근경

용마산 5보루는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산1-2번지와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7-1번지에 걸쳐있으며, 아차산 4보루에서 마주하는 봉우리 북쪽의 돌출된 봉우리에 위치한다.

용마산 5보루는 용마산과 아차산의 두 능선이 만난 후 북쪽으로 뻗어가는 능선상의 첫 번째 봉우리에 축조되어 있다. 북쪽으로 평탄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북쪽보다 약간 높은 소규모 구릉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서쪽의 중랑천 일대를 포함한 주변지역이 잘 조망된다.

보루의 평면형태는 북동-남서향에 장축을 둔 장타원형에 가까우며, 전체둘레는 약 132m, 내부면적은 936㎡ 정도이다.

용마산 5보루가 위치한 봉우리의 정상부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헬기장 조성을 위한 평탄화 작업과 등산로 이용 등으로 인해 보루의 상당부분이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보루의 북동쪽에서는 성벽으로 추정되는 석축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남쪽의 낮은 구릉과 같은 지형의 하부에는 구릉 주변을 감싸듯 석축이 남아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용마산 6보루

용마산 6보루 원경

용마산 6보루 원경

용마산 6보루 근경

용마산 6보루 근경

용마산 6보루는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산75번지에 해당하며, 용마산 주봉의 서쪽에 있는 봉우리에 위치한다. 용마산 주봉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능선이 돌출하여 형성된 봉우리(해발230m)의 정상부에 축조되었다. 북쪽으로는 용마폭포계곡공원의 경계와 접하며, 주능선을 제외한 서쪽의 중랑천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정상부의 평면형태는 북서-남동향의 오각형에 가까운 장타원형으로 등산로가 보루의 중간을 관통하고 있다. 전체둘레는 195m 정도이며, 내부면적은 2,420㎡로 추정된다.

채석장의 경계를 따라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나 지형 불안정으로 인해 현재는 폐쇄하고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보루의 내부에는 민묘 1기와 민묘를 둘러싼 석렬이 조성되어 있으며, 보루를 관통하는 등산로로 인해 유적의 훼손이 심하다. 특히 성벽의 경우 대부분 붕괴되어 넓은 범위에 걸쳐 산재되어 있다.

성벽은 자연암반을 활용하여 필요한 곳에만 유적 외곽을 따라 쌓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보루의 동쪽 암벽지역에서 3~4단으로 쌓은 것이 확인되었다. 성돌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강암을 30~40㎝ 크기로 다듬은 방형석재가 사용되었다. 보루 안팎으로 산재된 성돌을 이용해 쌓은 돌탑이 유적의 곳곳에 서 있으며, 돌탑을 쌓기 위한 성돌의 이동과 유적의 훼손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용마산 7보루

용마산 7보루 원경

용마산 7보루 원경

용마산 7보루 근경

용마산 7보루 근경

용마산 7보루는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산4-1번지에 해당하며, 용마산 3보루가 있는 최고봉(해발 348m)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위에 돌출된 작은 봉우리 정상부(해발250m)에 위치한다. 능선을 따라 400m 거리에 용마산 3보루가 위치하며, 남쪽으로 계곡을 건너 340m지점에는 채석장을 사이에 두고 용마산 6보루와 마주보고 있다. 용마산 6보루와 더불어 한강 유역에서 북쪽의 양주분지로 통하는 고대 교통로에 해당하는 중랑천 일대를 조망하는데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보루의 평면형태는 남서-북동향의 타원형으로 전체둘레는 약 74m 정도이며, 내부면적은 400㎡로 아차산 일대 보루군 중 규모가 가장 작은 편에 속한다.

용마산 7보루는 용마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 상에 위치하고 있어 등산로 개설이나 등산객들의 발길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훼손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보루의 성벽은 협소한 봉우리의 정상부를 돌아가며 축조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보루의 남쪽 사면에는 부분적으로 3~5단의 성벽이 노출되어 있다. 성돌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강암을 30㎝ 정도 크기로 다듬은 석재가 사용되었다. 보루의 내부에는 성돌이나 내부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일부 산재되어 노출되어 있다.

망우산 1보루

망우산 1보루 원경

망우산 1보루 원경

망우산 1보루 근경

망우산 1보루 근경

망우산 1보루는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산1-1번지와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7-1번지에 접하여 있다. 이곳은 용마산에서 연결되는 주능선과 연결되며 몇 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으며, 보루는 해발 280.3m 지점의 소봉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용마산 5보루와는 직선거리로 85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광장동 일대와 구리시가 잘 조망되는 전망 좋은 곳으로 헬기장이 조성된 상태이다.

보루의 평면형태는 원형에 가까우며, 전체둘레는 126m, 내부면적은 1,120㎡로 아차산 일대 보루군 중 중간 규모의 보루이다.

망우산은 화강암지대인 아차산과 달리 호상편마암지대로서 장기간에 걸친 화학적 풍화로 인하여 두꺼운 토양층이 많이 형성되어 흙산을 이루고 있다.

망우산 1보루에 조성된 헬기장의 외곽부분을 보면 석축이 일부 노출되어 있으며, 정상부 바로 남쪽 완경사면에는 타이어를 사용하여 대규모의 군용 교통호가 만들어져 있어 유적이 상당부분 파괴된 것으로 생각된다. 보루 주변 및 교통호 등지에서 많은 수의 고구려계 토기편이 수습된 바 있다.

아차산 봉수대 터 전경

아차산 봉수대

  • 종목 : 서울특별시 지정 기념물 제15호
  • 명칭 : 아차산 봉수대 터(峨嵯山 烽燧臺 터)
  • 분 류 : 유적건조물/교통통신/통신/봉수
  • 수량/면적 : 114.5㎡
  • 지정일 : 1993.12.10.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산46-19 일원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관리자 : 서울특별시/중랑구

아차산 봉수대 터는 서울시지정기념물 제15호로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산46-19 일원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전국 5개 봉수로(烽燧路) 중에서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를 거쳐 포천 잉읍현(芿邑峴)에서 올린 봉수를 받아 남산으로 연결하는 제1봉수로의 마지막 봉수대인 아차산 봉수대가 있던 자리다. 현재의 봉수대는 터만 남아있던 것을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94년 11월 7일 모형을 설치한 것이다.

아차산 봉수는 지금까지 아차산성 정상부에 있었다는 견해가 있어 왔으나, 『대동여지도』나 조선시대 읍지의 지도에 나타난 아차산 봉수의 위치는 아차산 서쪽에 있어 그 위치가 현재의 봉화산 일대임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가구산은 양주부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북쪽으로는 대이산과 서쪽으로는 도성의 목멱(지금의 남산)에 이어진다.”는 기록이 있어 봉화산의 원지명이 가구산이었으며, 이미 세종 때부터 봉수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아차산 봉수는 북으로 대이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도성의 목멱(남산) 제1봉에 응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아차산 봉수는 조선시대 서울로 이어지는 5개로의 봉수로 가운데 제1로의 제1횃불 길목에 속하며, 북쪽으로는 대이산(한이산)에서 연락받아, 서쪽으로 남산 봉수에 연락을 주는 구실을 했던 중요한 봉수였다.

해발 160.1m의 봉화산 정상에 봉수대를 설치한 까닭은 인근에 높은 산이 없어서 봉화를 올리면 눈에 잘 띄었기 때문으로, 이곳에서는 북쪽으로 불암산과 양주 방면, 동쪽으로 아차산 능선, 남쪽으로는 장안평과 한강 일원, 서쪽으로는 남산 일대가 잘 조망된다.

봉수제도는 변경의 급한 사정을 불이나 연기를 이용하여 중앙이나 또는 변경의 다른 요새에 알리는 동시에 해당 지방의 주민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된 것이다. 봉화는 평상시 1번, 적이 나타나면 2번, 경계에 접근하면 3번, 경계를 침범하면 4번, 접전하면 5번을 올려 보고토록 하였다.

봉수제도는 조선전기에 발전하였으나 임진왜란 후에는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다가 고종 31년(1894년) 폐지되었다.

숙선옹주(선빈)안씨 묘

숙선옹주(선빈)안씨 묘

  • 종목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3호
  • 명칭 : 숙선옹주(선빈)안씨 묘 (淑善翁主(善嬪)安氏 墓)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 수량/면적 : 분묘 1기, 묘표 1기, 상석 1기, 산신제석 1기, 문석인 2기, 장명등 1기 / 2,308㎡
  • 지정일 : 2019.6.7.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산37-13
  • 시대 : 조선시대 전기

묘의 주인인 숙선옹주 선빈 안씨(?~1468)는 순흥 안씨 의(당시 檢校漢城尹)의 딸로, 궁인으로 입궁하여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의 후궁이 된 왕실여성으로 태종과의 사이에 익령군 이치(1422~1464)와 소숙옹주(생년 미상~세조 2년, 1456), 경신옹주(생몰년 미상)의 1남 2녀를 두었다.

일반적으로 옹주라 함은 후궁의 딸을 일컫는 명칭이지만 조선 초에는 왕의 후궁도 궁주, 옹주로 칭했다.

세종 3년(1421)에 숙선옹주로 봉해졌다가 고종 9년(1872)에 정1품 선빈에 봉작되었다.

본 묘는 묘 1기와 석물 8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피장자 사망 당시(1468년) 현 위치인 봉화산 기슭에 조성되었다.

『경국대전』반포 이전 후궁에게도‘옹주’라는 명칭이 사용된 사실을 알려주는 실물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있고, 조선 세조 때 예장된 묘제 석물이 잘 남아있어 연구 자료로서 그 가치가 인정되었다.

충익공 신경진 묘역1

충익공 신경진 묘역1

충익공 신경진 묘역2

충익공 신경진 묘역2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95호
  • 명칭 : 충익공 신경진 묘역(忠翼公 申景禛 墓域)
  • 수량/면적 : 신도비 1기, 묘 1기 등 / 4,458.2㎡
  • 지정일 : 1995.01.25.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산69-1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관리 : 평산신씨 전첨공 종중/평산신씨 충장공 종중

충익공 신경진 묘역(忠翼公 申景禛 墓域)은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산69-1(용마공원입구)에 위치한다.

신경진은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 장군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선전관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오위도총부 도사로 임명된 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정사공신 1등이 되어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인조 14년(1636년)에는 훈련원, 호위청, 포도청의 3대장을 겸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공적으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인조 18년(1640년) 평성부원군(坪城府院君)에 임명되었다가 인조 20년(1642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병으로 사퇴하였고, 이듬해 다시 영의정으로 임명된 지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신도비는 화강암에 조각된 거북 위에 세워졌으므로 거북비라고 불렀는데, 비의 주인공이 신경진임이 밝혀져 신경진 신도비가 되었다.

원래 신도비는 조선시대에 왕이나 이품 이상의 공신들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事蹟)을 기리는 비석으로서 무덤 동남쪽에서 남쪽을 향해 세웠다고 한다.

신도(神道)라는 말은 죽은 자의 묘길, 즉 신령의 길이라는 뜻이다. 신도비는 높이가 368㎝나 되는 거대한 석비(石碑)로 화강암으로 조각된 거북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으며, 비(碑)몸 위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용머리 장식이 정교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비문을 짓고 박태유(朴泰維)가 글씨를 썼으며 머리글인 두전(頭篆)은 이정영(李正英)이 썼다.

봉화산 도당굿 모습

봉화산 도당굿 모습

  • 종목 :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제34호
  • 명칭 : 봉화산 도당굿
  • 지정일 : 2005.01.10.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산46-19
  • 시대 : 조선~현대
  • 소유/관리 : 봉화산 도당굿 보존회(중랑문화원) 관리

서울특별시지정 무형문화재 제34호(2005.1.10. 지정)인 봉화산 도당굿은 400여년 동안 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고 대동의식을 고취시켜 온 서울의 마을굿으로, 서울시 중랑구 신내동 산 141번지에 위치한 봉화산의 도당에서 음력 3월 3일(삼짇날)에 지내는 마을 굿이다.

봉화산 도당굿은 처음에 중화동, 상봉동, 신내동이 함께 힘을 합쳐 지내왔었으나, 근래에는 마을을 나누어 한 해는 신내동이 다음 해에 는 중화동과 상봉동이 도당굿을 주관하였다. 그러나 2000년도부터는 중랑문화원과 봉화산 도당제 보존위원회를 중심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봉화산 도당굿은 하루 전날 당주가 도당에 직접 올라와 도당굿에 필요한 제물을 점검하면서 시작되며, 다음 날에는 산신할머니 신상이 있는 제당과 아래 공터의 제단에 제물이 차려진다.

왕십리 무녀와 잽이 5명이 제단 바로 아래쪽 길에서 잡신의 부정이 들지 못하게 막아주는 부정거리로 시작하여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진행되며 온갖 잡귀를 풀어먹이는 뒷전을 끝으로 도당굿을 마무리한다.

봉화산 도당굿은 경기도 북부 지역의 마을굿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사례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 굿에서 유교식 제례와 무속식의 굿이 합쳐지면서 이 두 가지가 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가돌기와 대내림 등의 행사는 개성 덕물산의 도당굿에까지 이어지는 마을굿의 전형적 특징이다.

아미타괘불도

아미타괘불도

복장주머니

복장주머니

복장유물

복장유물

발원문

발원문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320호
  • 명칭 : 법장사 아미타괘불도 및 복장유물

    (法藏寺 阿彌陀掛佛圖 및 腹藏遺物)

  • 분류 : 유물/불교회화/괘불화/석가불도
  • 수량/면적 : 일괄
  • 지정일 : 2011. 09. 08.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소재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아미타괘불도는 19~20세기에 서울 경기지역에서 대활약을 펼쳤던 고산 축연(古山竺演)이 1923년 수화승(首畵僧)을 맡아 자월(慈月), 학송(鶴松), 덕주(德柱)를 거느리고 조성하여 경성부 숭인동 감로암(甘露庵)에 봉안한 불화이다.

19~20세기에 서울·경기 지역에서 활동했던 고산축연이 그린 아미타불괘불도로서 세련된 필선을 구사하여 인물의 형태를 구현해내고 입체감을 적절히 표현함으로써 작품성이 뛰어나다. 조성시기와 화사, 봉안처, 시주와 화주 등을 밝혀주는 발원문과 화기가 온전히 남아 있고, 복장주머니 또한 거의 완전한 형태로 구비되어 있어 20세기 전반 괘불도 조성의 실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서광조 묘소 사진
  • 종목 : 국가등록문화유산 제691-5호
  • 명칭 :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 - 서광조(徐光朝) 묘소
  • 분류 : 국가등록유산/기타/인물기념시설
  • 수량/면적 : 114㎡
  • 지정(등록)일 : 2017.10.23.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산1-1
  • 시대 : 근현대

서광조(徐光朝)는 1917년 3월 23일 평남 평양(平壤)에서 장일환(張日煥)·강석봉(姜錫奉) 등과 함께 조선국민회(朝鮮國民會)를 비밀결사하고 전라도지역 책임자로 선임되어 항일활동을 독립 운동가이다.

서동일 묘소 사진
  • 종목 : 국가등록문화유산 제691-6호
  • 명칭 :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 - 서동일(徐東日) 묘소
  • 분류 : 국가등록유산/기타/인물기념시설
  • 수량/면적 : 35㎡
  • 지정(등록)일 : 2017.10.23.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산57-3
  • 시대 : 근현대

서동일(徐東日)은 1923년 1월 중국 북경(北京)으로 망명하여 국권회복을 위하여 군대를 양성하고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국민당(國民黨)을 조직하자 가입하여 경북 대구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북경에 전달하였으며, 1925년 무언실행(無言實行)을 행동지침으로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는 다물단(多勿團)이 조직되자 이에 가입하고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 운동가이다.

서동일 묘소 사진
  • 종목 : 국가등록문화유산 제691-7호
  • 명칭 :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 - 오재영(吳哉泳) 묘소
  • 분류 : 국가등록유산/기타/인물기념시설
  • 수량/면적 : 31㎡
  • 지정(등록)일 : 2017.10.23.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산 57-3
  • 시대 : 근현대

오재영(吳哉泳)은 1920년 9월 14일 의열단원인 박재혁(朴載赫)이 중국서적상으로 가장하고 부산경찰서장을 방문하여 폭탄을 투척, 서장이 중상을 입힌 거사를 도운 공동혐의자로 지목되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독립 운동가이다.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 표지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 표지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 본문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 본문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393호
  • 명칭 :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

    (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1책
  • 지정일 : 2016. 10. 6.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소재
  • 시대 : 조선시대(1483년)

이 책은 수륙재(수륙무차평등재), 즉 물과 땅에서 죽은 고혼(孤魂)들을 달래고 부처님의 세계인 극락(정토)에 태어나도록 불보살님께 기도와 불공을 드리기 위한 의식절차를 요약한 의례서이다.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수륙재의소방문첩절요(水陸齋儀疏榜文牒節要)”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전개는 윗부분에 수인(手印)을 두어 간략히 설명하고, 해당되는 진언을 함께 수록하였다.

처음 설회인유편(設會因由篇) 제1부터 봉송육도편(奉送六道篇) 제37까지 모두 37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말미에는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 1권(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一卷)」이라는 동일한 제명 아래 “수륙재의소방문첩절요”가 있다.

여기에는 문방(門榜)‚ 단방(檀榜)‚ 욕실방(浴室榜)‚ 간경방(看經榜)‚ 소청사자소(召請使者疏)‚ 개통오로소(開通五路疏)‚ 소청상위소(召請上位疏)‚ 소청중위소(召請中位疏)‚ 소청하위소(召請下位疏)‚ 원만회향소(圓滿廻向疏)‚ 행첩(行牒)‚ 제소수행봉피양(諸疏首行封皮樣) 등이 있는데 의식을 행할 때의 절차를 소개한 것이다.

마지막에는 “여러 경전을 판각하는 공덕으로 온 세상에서 괴로움에 빠져있는 모든 중생(생명)들이 함께 부처님의 나라(淨土)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친견하고고 진실한 가르침을 듣고 중생을 교화시키기를 바란다.”는 글이 있다. 조선초기에는 왕실에서 수륙재를 개최한 기록이 많이 전한다.

이 책은 성화 19년 계묘년(성종14, 1483) 3월에 전라도 진안의 성수산(聖壽山)에 있던 중대사(中臺寺)에서 간행한 판본이다.

현수제승법수 표지

현수제승법수 표지

현수제승법수 본문

현수제승법수 본문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394호
  • 명칭 : 현수제승법수

    (賢首諸乘法數)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1책
  • 지정일 : 2016. 10. 6.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소재
  • 시대 : 조선시대(1572년)

『현수제승법수』는 숫자가 포함된 불교의 용어를 설명하는 일종의 간이 사전(辭典)이다. 현수(賢首 643~712)는 당나라 승려로, 이 책을 처음으로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제승(諸乘)이란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모든 교리, 다시 말해 모든 진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법수(法數)란 불교의 진리를 뜻하는 법과 숫자가 합쳐진 용어를 말한다.

예를 들면 삼계(三界), 사체(四諦), 오온(五蘊), 십이인연(十二因緣), 칠십오법(七十五法)과 같은 어휘이다. 이 용어를 따라서 불법을 탐구하면 종지(宗旨)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제목의 뜻은 현수가 편찬한 모든 경전의 숫자가 들어간 불교의 진리를 말하는 중요한 단어들의 해설집이라는 말이다.

즉 이런 어휘를 모두 수집하여 숫자를 오름차순으로 배열하고 그 아래에 간단한 설명이나 도식을 붙인 것이다. 서문에 의하면 이 책은 편찬이 완료된 후 40년이 지난 1427년 9월 난야(蘭若)에 머물고 있을 때 간행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 책에는 해인사 燈谷(등곡)이 쓴 발문이 있고, 간기와 왕실에 대한 축수, 그리고 등곡을 비롯하여 시주명단, 각수명단, 공양주, 간선등의 간행 관계자의 명단이 있다.

전라도 담양 용천사에서 1572년 간행된 이 책은 「장승법수초록」 이하가 부록으로 첨가 되어 있다. 이는 1500년도에 봉서사에서 간행된 책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 책은 다른 판본에는 없는 내용을 증보하여 간행한 것으로 개장의 흔적이 없고, 낙장도 없으며,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고봉화상선요 표지

고봉화상선요 표지

고봉화상선요 본문

고봉화상선요 본문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22호
  • 명칭 : 고봉화상선요

    (高峰和尙禪要)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1점
  • 지정일 : 2018. 2. 19.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소재
  • 시대 : 조선시대(1573년)

송나라 고봉선사 원묘(原妙, 1238~1295)가 선(禪)수행의 요령을 간추려서 해설한 선종의 지침서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불교 강원의 사집과(四集科) 교재로 채택되어 비교적 많이 개판되었는데, 그 중 법장사 신청본은 1573년 황해도 구월산 월정사에서 간행된 판본이다.

범어사본 외에는 동일본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표지가 간행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고, 권말에 간행 배경과 관련이 있는 발문이 추가되어 있는 등 원형이 잘 보존된 희귀본이다.

특히 본문에는 구결과 한글 훈독이 묵서로 기재되어 있어 국어학 연구에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지장보살본원경 권수

지장보살본원경 권수

지장보살본원경 권말

지장보살본원경 권말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29호
  • 명칭 : 지장보살본원경

    (地藏菩薩本願經)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1책
  • 지정일 : 2018.10.18.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소재
  • 시대 : 조선시대(1574년)

『지장보살의 본원공덕(本願功德)을 설한 경전으로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천도하여 극락에 오르게 하는 의식에 대한 방법이 수록되어있다.

우리나라 지장신앙의 기본경전으로 널리 신봉된다.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된 법등(法燈)의 한역본이며, 한문본과 한문구결본, 한글 언해본 등으로 구분되는 지장경의 계통 중 이 책은 한문구결본 계통으로, 15세기 후반 충청도 만수산 무량사(無量寺) 간본계열로 판단된다.

권말 ‘萬曆二年甲戌(1574)十月日 全羅道綾城地双峰寺開板’의 간기를 통해 전라도 능성 쌍봉사에서 1574년에 판각한 인본임이 확인되며, 1574년 능성 쌍봉사본은 현재까지 전라도 고흥 능가사 소장본이 알려져 있지만 그 전래가 매우 드문 편이다.

따라서 그 전존본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판본임과 동시에 16세기 한문구결본 지장경의 계통을 이어주는 국어사연구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발원문 및 간기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발원문 및 간기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권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권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권말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권말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34호
  • 명칭 :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1책
  • 지정일 : 2018.12.13.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소재
  • 시대 : 조선시대(1554년)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1209(熙宗 5)년 당나라 종밀의 저술인 <법집별행록(法集別行錄)>에서 핵심 내용을 선편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사기(私記)로, 1554년 강원도 유점사에서 개판한 목판본 1책이다.

조선시대 사집과의 교재로 채택되어 널리 활용되었으며, 1486년 전라도 규봉암(圭峯菴)에서 처음 개판된 이후 전국의 주요사찰에서 28종 이상 간행되었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그 중 1554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개판된 판본은 법장사 소장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 가치가 높다.

묘법연화경 표지

묘법연화경 표지

묘법연화경 변상도

묘법연화경 변상도

묘법연화경 권말

묘법연화경 권말

  • 종목 : 보물 제1306-2호
  • 명칭 : 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7권 2책, 26.8×18.0cm
  • 지정일 : 2019.3.6.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소재
  • 시대 : 1405년(태종 5) 경 판각, 후쇄본(後刷本) 개장

「묘법연화경」은 조선 초기 명필(名筆) 성달생(成達生)․성개(成槪) 형제가 부모의 명복을 기원할 목적으로 법화경을 정서(精書)한 판본(板本)을 바탕으로 1405년(태종 5) 전라도 안심사(安心寺)에서 도인 신문(信文)의 주관으로 간행한 불경이다.

7권 2책으로 구성된 완질본으로 권4에는 변상도(變相圖)가 6면에 걸쳐 수록되어 있고 판각도 정교하다. 특히 안심사판 「묘법연화경」의 변상도 안에 그려져 있는 신중상(神衆像)은 구도가 크고 정교한 판각으로 다른 법화경에 있는 변상도 비해 높은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체에 걸쳐 구결(口訣)이 표기되어 있으며, 두주(頭註) 형태와 한글 현토(懸吐) 등 조선 초기 국어 사용의 현황을 보여주는 자료가 수록되어 있어 향후 심도있는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기 보물 지정본과 비교하여 완질로 구성되었고 비교적 초기 간행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발문을 통해 조선 초기 불경의 간행 방식과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등 서지학 및 불교사 연구에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묘법연화경 표지

묘법연화경 표지

묘법연화경 권수

묘법연화경 권수

묘법연화경 권말

묘법연화경 권말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45호
  • 명칭 : 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7권 2책, 24.0×16.3cm
  • 지정일 : 2019.4.4.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소재
  • 시대 : 1236년 개판, 조선시대 후쇄

「묘법연화경」은 고려 고종 23(1236)년에 정분(鄭奮)이 진양후 최우(崔瑀)의 무병장수와 가문의 안녕을 기원할 목적으로 개판한 목판본이다. 팔만대장경(재조본)의 조성 초기부터 각수로 깊이 관여한 중요 인물인 명각(明覺)이 개판 전 7권 2책의 완질본으로, 판각 이후 다소 시일이 흐른 조선전기에 다시 인출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와 동일한 판본으로 경주 기림사 소장본이 전 7권 중 3권만 유일하게 국가지정유산(보물 제959호)으로 일괄 지정되어 있으나, 4권이 빠져 있는 결본 상태이기 때문에 동일본이 단독으로 완질본이 지정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음. 후쇄본이긴 하나, 전7권이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높다.

선종영가집 간기

선종영가집 간기

선종영가집 본문

선종영가집 본문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52호
  • 명칭 : 선종영가집

    (禪宗永嘉集)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2권 1책
  • 지정일 : 2019. 8. 1.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72년

선종영가집은 중국 당나라 선승인 영가 현각(永嘉玄覺, 665~713)이 지은 대표적인 저서 가운데 하나로 8세기 초에 찬술되었으며, 이 법장사 소장 판본은 1572년 부여 임천(林川) 지역의 김론번(金論番) 댁에서 판각된 것임. 희귀한 자료로서 동일한 판본은 2~3종에 불과하다.

개인이 판각한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고 발문과 간기 등이 붙어 있는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본문 내용에 구결이 묵서 되어 있는 등 학술적 가치가 있다.

옥추경 본문1

옥추경 본문1

옥추경 본문2

옥추경 본문2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53호
  • 명칭 : 옥추경

    (玉樞經)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1책
  • 지정일 : 2019. 8. 1.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70년

옥추경은 중국계 도교 경전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玉樞寶經(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옥추보경)』을 줄여부른 서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신앙 때문에 가장 많이 읽혔던 민간도교의 경전이다. 이 법장사 소장 판본은 안심사 간행본이고, 말미에는 ‘隆慶四禩庚午仲春全羅道同福地無等山安心寺開板(륭경사禩경오중춘전라도동복지무등산안심사개판)이라는 간기와 각수가 표기되어 있다.

대부분의 옥추경 현존본들은 오랜기간 의식 때마다 사용하여 오손과 훼손이 심한 상태이지 때문에 편제가 완전하지는 않으나, 남아있는 판본 중 가장 오래된 판본이고 현존본도 흔하지 않아 가치가 있다.

옥경합부 표지

육경합부 표지

옥경합부 변상도

육경합부 변상도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70호
  • 명칭 : 육경합부

    (六經合部)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1책
  • 지정일 : 2020. 8. 13.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449년

본 육경합부는 금강경 발원문 말미에 금사사에서 개판했던 간행 사찰로 명기되어 있고, 발원문 연화질에는 혜돈 등 3인의 승려가 발원하고 김계신 등 3인이 판각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관세음보살예문』말미 극경의 발문에 선사 정심이 선본 1부를 구하여 혜돈이 출자하고 효령대군이 함께 발원하였으며, 혜돈, 성린, 정심이 간선하여 간행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특징적인 점은 금강경 권수변상도에 위태천을 앞뒤로 모두 배치한 것으로, 하단 왼쪽 끝에‘金戒信刀’라고 표기하여 각수 3인 중 김계신이 변상 각수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김계신은 1448년 효령대군과 안평대군 등이 발원한 법화경에도 각수로 참여한 사실이 있어 궁중소속 각수일 것으로 추정되며, 금사사 육경합부 변상은 1338년 원대 금강경 판본의 복각본이 아닌 김계신이 새로이 판각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후쇄본이지만 1449년 금사사 육경합부는 현존 사례가 극히 드물며, 인쇄 상태가 양호하고 간행기와 변상도가 남아있는 등 주목되는 판본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다.

옥경합부 표지

선문염송집

옥경합부 변상도

선문영송집(시주질)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74호
  • 명칭 : 선문염송집

    (禪門拈頌集)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7책(21권)
  • 지정일 : 2020. 11. 5.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68년(선조1년)

본 선문염송집은 고려시대 수선사 2세 국사를 지낸 혜심이 역대 선사들의 어록을 모아 편찬한 공안집이다. 고려 고종때 분사도감에서 보유편으로 간행한 판본을 저본으로하여 조선시대 왕실의 지원을 받아 1568년에 평안도 법흥사에서 중간한 목판본으로 21권 7책(영본)이다.

간행에는 당시 법흥사의 주지였던 불현의 주관으로 대선사 영준이 교정을 보고 화사 및 간선 지경과 경종이 책임을 맡아 육색장과 각수 일섭 등이 개판에 참여하였다. 권30의 말미에는 광의왕대비의 장수를 축원하는 당시 법흥사 주지 불현의 발원문과 간행에 참여한 조연자 명단이 수록되어 있으며, 맨 끝에는 ‘隆慶元年戊辰(1568)4月日 平安道順安地法弘山法興寺開板’이란 간기가 기재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1568년 평안도 순안의 법흥사에서 개판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규장각에 이와 동일한 완질본이 수장되어 있으나, 일반 사찰에서 소유하고 있는 사례로선 유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록 30권 10책 가운데 21권 7책에 불과한 실정이지만 권수에 찬자 혜심의 서문이나, 개판 사실과 왕실의 발원 내용이 모두 수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황명이학명신언행록 권수

황명이학명신언행록 권수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87호
  • 명칭 : 황명이학명신언행록

    (皇明理學名臣言行錄)

  • 분 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
  • 수량/면적 : 1책(30.7cm×20.9cm)
  • 지정일 : 2021. 6. 10.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62년

『황명이학명신언행록(皇明理學名臣言行錄)』은 명대 관료학자인 양렴의 저술로 조선에 유입되어 읽혀진 책이다. 특히 『황명명신언행록(皇明名臣言行錄)』과 더불어 16세기 조선 유학 도통(道統)의 정립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책으로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책이며, 조선에서 간행된 초기간본은 매우 드물게 남아있다. 해당 판본은 1562년경 경주에서 판각하여 인쇄한 책으로 초기 간본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법장사 소장본 『황명이학명신언행록(皇明理學名臣言行錄)』은 1책 59장이 남아있으며 양렴의 서문, 이정의 발문이 온전하다. 16세기 후반에 인쇄된 목판본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것 중에 동일한 판본은 규장각, 고려대, 영남대 등에 남아있다. 특히 법장사 소장본에는 광산김씨 예안파 김부의(金富儀, 1525-1582)의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어서 책의 인쇄시점이 16세기 후반임을 추정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의 간본으로 남은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전적은 보물 1091호로 일괄지정 되어있다.

법장사 소장 『황명이학명신언행록(皇明理學名臣言行錄)』은 인쇄상태가 양호하고 16세기 인물의 장서인이 남아있는 등 주목되는 내용이 많아 연구가치가 있으며, 간행과정이나 그 시기가 조선유학사상사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동일한 시점에 간행된 판본이 매우 드문 상황으로, 가치가 있다.

배자예부운략 내지(하평성 목차)

배자예부운략 내지(하평성 목차)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88호
  • 명칭 : 배자예부운략

    (排字禮部韻略)

  • 분 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
  • 수량/면적 : 1책(27.6cm×19.3cm)
  • 지정일 : 2021. 6. 10.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658년

『배자예부운략』은 중국 송나라의 정도(丁度) 등이 1037년에 칙명으로 편찬한 것을 바탕으로 조선에서 간행한 책이다.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이후 후대에 만들어진 다른 운서의 체제와 내용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 중요성으로 인해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목판과 활자로 간행되었다. 조선에서 간행된 초기간본은 매우 드물게 남아있으며, 법장사 소장본은 목판본 중에서도 1658년(효종 9)에 평양에서 간행한 책으로 간행당시의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법장사 소장 『배자예부운략』은 1책으로 부록 형태의 「신편직음예부옥편」까지 온전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 중에 동일한 판본은 고려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에 남아있다. 규장각 소장본은 동일한 시기에 간행한 판본이지만 마지막 간기의 기록이 약간 다르다.

인쇄상태가 양호하고 조선시대 운서(韻書)의 여러 유형 중에 많은 영향을 끼친 책으로, 완질로 전해지는 동일본의 희소성 등을 고려했을 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동일한 시점에 간행된 판본이 매우 드문 상황으로 그 가치가 뛰어나다.

불조삼경 표지

불조삼경 표지

불조삼경 서문(일부)

불조삼경 서문(일부)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89호
  • 명칭 : 불조삼경

    (佛祖三經)

  • 분 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1책(24.0cm×16.7cm)
  • 지정일 : 2021. 6. 10.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41년

이 책은 원나라의 고승인 몽산 덕이(德異)가 불교의 교주인 석가가 설법한 <佛說四十二章經>과 부처가 열반에 들어가기 직전에 최후로 설법한 <佛遺敎經>, 그리고 중국 선종의 일파인 위앙종의 개창조로 알려진 위산 영우의 어록인 <潙山警策>을 선정하여 합집한 것이다. 이를 몽산은 통칭 ‘佛祖三經’으로 이름하였다. 몽산이 편찬한 이 책이 고려에 전래된 이래 우리나라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데, 현재는 우리나라에만 유전(遺傳)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책은 모두 목판본으로 고려시대 판본이 3종, 조선시대 판본이 10종으로 모두 13종이 현전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법장사 소장본은 1541년에 신안사에서 간행된 판본으로 간기에 ‘嘉靖20年辛丑(1541)6月日 神陰山身安寺開板’으로 기재되어 있어 이 책이 1541년 전라도 금산의 신안사에서 개판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간기면에는 장옥동(張玉同) 등 다수의 시주자가 새겨져 있고 이어서 부모의 천도를 위해 자비로 개간한다는 발원문과 그 아래로 영준(英峻)과 각수 희신(熙信)과 혜순(惠淳)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상의 기록을 통해서 본 불조상경은 1541년 장씨 집안의 시주로 신안사에서 화사 영준의 주관으로 희신과 혜순이 판각하여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신안사판은 법장사 소장본이 유일하며, 임란 이전에 간행된 판본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장세호 유서

장세호 유서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92호
  • 명칭 : 장세호 유서

    (張世豪 諭書)

  • 분 류 : 기록유산/문서류/관부문서
  • 수량/면적 : 1점(141.1cm×53.0cm)
  • 지정일 : 2021. 6. 10.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40년

유서(諭書)는 왕명으로 발급된 문서로서 관찰사나 절도사 등 왕이 중책을 맡긴 관원에게 내린 것이다. 이 문서는 1540년(중종 35) 5월 9일에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장세호에게 발급된 유서이다. 장세호는 1540년 5월 7일자 󰡔중종실록󰡕에 병조에서 왕에게 장수로서 가당한 인물을 뽑아 보고하는 기사에서 장세호의 성명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인사를 통해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제수된 장세호에게 내려진 유서의 원본으로 추정된다.

전래 과정에서 훼손 및 임의적 가필과 변형이 일어난 상태이다. 다만, 본문 내용을 판독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고, 말미에 날인된 ‘유서지보(諭書之寶)’의 인영도 온전하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서 원본은 약 200점 미만이고, 그 가운데 임진왜란 이전에 발급된 것은 10점 미만이다. 장세호 유서는 비록 이 자료만 홀로 전래되었고, 전래과정에서 임의적 가필 및 변형이 있어났으나, 임진왜란 이전에 발급된 원본 유서로서 사료적 가치가 인정되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 표지

불설대보부모은중경 표지

불설대보부모은중경 권수

불설대보부모은중경 권수

불설대보부모은중경 간기

불설대보부모은중경 간기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496호
  • 명칭 : 불설대보부모은중경

    (佛說大報父母恩重經)

  • 분 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
  • 수량/면적 : 1책(19.1㎝×14.4㎝)
  • 지정일 : 2021. 7. 29.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34년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화암사본 계통으로 1443년 전라도 고산 불명산 화암사(花岩寺)에서 개판된 판본을 모본으로 복각 간행된 15종의 판본이 존재하고 있다. 이 중 해당 판본은 1534년 전라도 광주의 서석산 도솔암(兜率菴)에서 간행된 판본이다.

전체 2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의 크기는 28.2×17.8㎝로 선장본이다. 권수제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며 경문은 ‘상도하문(上圖下文)’과 ‘전도후문(前圖後文)’ 형식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여래정례도(如來頂禮圖)> 등 모두 21도가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진언, 발원문, 간기 등이 차례로 판각되어 있는데, 간기에 ‘嘉靖13年甲午(1534)元月日 全羅道光州地瑞石山兜率菴開板’으로 기재되어 있어 이 책이 1534년에 전라도 광주의 도솔암에서 개판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간기 아래에 ‘化主 自黙’이 새겨져 있어 이 기록으로 보아 자묵이 전체적인 개판 작업을 주관한 인물로 보인다.

도솔암본의 서지적 특징을 살펴보면, 변란은 사주단변으로 되어 있으며, 계선은 없는 상태이다. 제1장을 기준으로 한 장의 크기는 19.1×14.4㎝이며, 반엽을 기준으로 8행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매 행의 자수는 15자씩 배자되어 있는 행자수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중앙의 접히는 부분에 별도의 판심이 없어 본래 권자본 형식으로 판각되어 도상 부분이 접히는 단점이 보이고 있다. 그래서 화암사본 계통의 판본은 판수제가 경문의 빈 공간에 ‘恩 一’의 형식으로 기입되어 있어 다른 계통의 판본과 구분된다.

이 도솔암본은 종래 유일하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만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법장사 소장본은 이번에 새로 소개되는 희귀본이다.

법장사 소장본은 국내에 2부만 잔존하고 있는 희귀본으로, 임란 이전인 1534년에 개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판화자료가 수록되어 있어 그 가치가 높다.

법장사 목조여래좌상(정면)

법장사 목조여래좌상(정면)

저부 복장구

저부 복장구

복장품 전체

복장품 전체

  • 종목 : 서울특별시 문화유산자료 제81호
  • 명칭 : 법장사 목조여래좌상

    (法藏寺 木造如來坐像)

  • 분류 :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 수량/면적 : 1구(높이 36.5㎝, 폭 21.0㎝)
  • 지정일 : 2020. 11. 5.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9세기(조선말)

본 목조여래좌상은 선정인의 수인을 한 소형의 목조물상이다. 조선후기 불상에서 보이는 편단우견의 착의방식을 하고 있는데, 두상이 과하게 크고 양쪽 귀가 다르게 표현되어있다. 귓바퀴가 둘러지는 투박함, 법의의 둔중한 표헌, 불완전한 선정인 자세, 뭉툭한 손발 표현 등은 조선후기 목조불상의 말기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불상의 밑 부분은 속을 파고 뚜껑 판을 덮어 세 군데에서 못을 끼우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현재는 원해릐 뚜껑 판이 결실되고, 저부 전체에 맞게 밑판이 보완되어 있다. 소형의 선정인 불상은 53불과 같은 다불에서 종종 볼 수 있으며, 바닥 앞쪽에 ‘二’라고 새겨져 있어 복수의 불상이 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복장물은 오곡과 오향을 담아 오색실로 묶은 꾸러미 5종, 장신구 2종 4점, 원문 1매가 명주에 싸여있으며, 근대에 주묵으로 인출한 금강경탑다라니 1매, 안국사 간행 4매의 다라니, 원문 1매가 있다. 조성시의 원문이라면 이 불상의 조성시기는 1872년으로 추정할 수 있으므로, 보존가치가 높다.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권수 부분)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권수 부분)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권미 부분)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권미 부분)

  • 종목 : 보물
  • 명칭 :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

    (初雕本 阿毗達磨大毗婆沙論 卷一百七十五)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
  • 수량/면적 : 1권1축(43.8㎝×889.3㎝)
  • 지정일 : 2021. 12. 22.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고려12세기 전후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는 1011년(현종 2)부터 1087년(선종 4) 사이에 완성된 고려 초조대장경에 속한 경전으로서, 총 200권 중 권175의 1권에 해당하는 두루마리 형태의 경전이다.

   『대비바사론(大毗婆沙論)』 등으로 줄여 부르는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은 『아비달마발지론(阿毗達磨發智論)』의 주석서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소승불교의 한 분파)의 이론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다른 부파와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교리를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도 쿠샨왕조의 카니시카(Kaniska) 국왕 때 5백인의 아라한(阿羅漢ㆍ羅漢)이 주석을 달고 저술하였으며,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玄奘)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후대에는 아비달마의 이론을 체계화하는 논서(論書)의 모범이 되었다.

   법장사 소장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 1축은 고려 11세기에 판각된 초조대장경판 가운데 포함된 해당 경판을 바탕으로 간행한 것으로, 팔공산 부인사(符仁寺)에 소장되어 있다가 1232년(고종 19) 몽골 침략군에게 불타버린 초조대장경판에 편입된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의 목판에서 인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권175의 유일본으로서 희소 가치가 있으며, 기 지정된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38’의 1축보다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원형도 비교적 잘 유지되어 있다.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는 고려 12세기 전후 경에 인출한 불교경전으로, 초조대장경판 조성 불사(佛事)의 성격과 해당 경전의 유통상황 등을 파악하고 경판을 복원할 수 있는 원천자료이다.

불설예수시왕생칠경(표지)

불설예수시왕생칠경(표지)

불설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

불설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

불설예수시왕생칠경(시주질)

불설예수시왕생칠경(시주질)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555호
  • 명칭 : 불설예수시왕생칠경

    (佛說預修十王生七經)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
  • 수량/면적 : 1책(27.6㎝×21.3㎝)
  • 지정일 : 2023. 6. 22.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64년(명종 19)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은 시왕경이라고도 약칭하는 불서이다. 중국 당나라 시기 성도부(成都府) 대성자사(大聖慈寺) 승려 장천(藏川)이 경문의 단락마다 7언4구의 찬(讚)을 붙여 찬술하였다. 예수시왕생칠경은 불교의 사후관을 바탕으로, 생전에 미리 부처와 시왕을 공양하고 죄업을 참회하는 재(齋)를 개최한다면 그 공덕으로 사후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반영하였다. 한국 불교의 칠칠재(七七齋) 및 예수재(預修齋)와 관련된 대표적인 경전이다.

   법장사 소장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은 조선시대 성행한 칠칠재와 예수재의근거가 되는 경전인 예수시왕생칠경의 간행과 유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왕실본을 변용한 변상도를 보여주는 판본 중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바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판본이다. 중봉이 갈라지고, 책을 새로 제책하는 등 책 외형에는 일부 훼손이 있으나 변상도, 경문, 시주질과 간기 등에 결락이 없는 등 내용이 잘 갖추어져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왕실본과 함께 유통된 또 다른 변상도의 저본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아울러 19세기 실제 이 책을 소지했던 인물과 소장처가 확인되어 조선 후기 불서가 간행되어 유통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법화영험전(표지)

법화영험전(표지)

법화영험전(간기)

법화영험전(간기)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559호
  • 명칭 : 법화영험전

    (法華靈驗傳)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
  • 수량/면적 : 1책(24.8㎝×16.6㎝)
  • 지정일 : 2023. 9. 14.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65년(명종 20) 이전

   법장사 소장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은 고려 승려 요원의 편찬서로 여러 불교 영험문헌 중에서 법화경의 영험담(靈驗談)만을 뽑아 간행한 책으로 고려 후기 법화 신앙과 불교 설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그 내용 중에는 현전하지 않는 고려 진정국사(眞靜國師)의 『해동전홍록(海東傳弘錄)』일부 내용을 알 수 있고, 신라와 고려 승려의 전기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현재 전해지는 여러판본 중에 법장사 소장 황해도 수안 대청산 중암 판본은 1565년경에 판각한 책으로 확인된다. 전체적으로 본문의 결락이 없고, 현존하는 판본 중에 동일본으로 동국대 1종, 일본에 1종 정도만 확인되어 희귀함이 있는 등 조선 전기의 서지학 및 불교학 연구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법화영험전(표지)

고봉화상선요 표지

법화영험전(간기)

고봉화상선요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522호
  • 명칭 : 고봉화상선요

    (高峰和尙禪要)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1점(26.4cm×16.4cm)
  • 지정일 : 2022. 6. 2.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70년

   『고봉화상선요(高峯和尙禪要)』는 송나라 고봉선사 원묘(原妙, 1238-1295)가 선(禪)수행의 요령을 간추려서 해설한 선종의 지침서이다. 고봉화상이 수행중 겪은 갖가지 선(禪) 수행 체험을 바탕으로 삼아 지혜를 담은 내용으로 방황하는 수행인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이 책이 전래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1358년에 최초로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당 판본은 29편 61법어로 구성된 책으로 1570년 전라도 무등산 안심사(安心寺) 간본이다. 『고봉화상선요(高峯和尙禪要)』의 고려간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399년에 간행된 지리산 덕기사 간본이며, 법장사 소장 판본인 무등산 안심사본은 현전본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매우 희소하며 보존상태가 좋은 편으로 본 자료는 조선 전기의 서지학 및 불교학 연구 등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법화영험전(표지)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표지

법화영험전(간기)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 종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523호
  • 명칭 :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 분류 :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 수량/면적 : 1점(26.8cm×17.3cm)
  • 지정일 : 2022. 6. 2.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숙선옹주로69
  • 시대 : 1570년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고려의 선승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1209년에 당나라 종밀의 저술인 ‘법집(法集)’에서 간추려 뽑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사기(私記) 형식으로 찬술한 것으로, 조선시대 승가교육기관인 강원에서 사집과의 학습교재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전국 주요 사찰 등에서 30여 종 이상이 간행되어 널리 유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장사 소장본은 1570년 평안도 상원지 대청산 해탈사 개판본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이른 시기에 출판된 판본으로 동일 판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만 소장되어 있는 매우 희귀한 판본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전본이 희소할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본문의 구결을 통한 국어학 연구와 불교학, 인쇄술 및 서지학 분야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자료 관리 : 문화관광과 [ 문화관광팀 ] 전화:02-2094-1818
최종수정일 : 2024년05월29일
만족도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