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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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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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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 지도 신내동 묵동 중화동 상봉동 망우동 면목동

신내동

구의 북동쪽에 위치한 동이다.

동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이곳의 자연촌 중에서 신현리와 내동리의 한 글자씩 따서 합성하여 만든 것이다.

신현리는 새우개마을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옮겨 신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신현 일대의 마을을 신현리라고 하였다.

내동리는 봉화산 안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1914년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 신현리•능후동•능내동•내동리•직곡리, 호원면 묘동리의 일부가 합해져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신내리로 바뀌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로 편입되면서 신내리에서 신내동이 되었다. 1988년 중랑구가 신설됨에 따라 이에 속하게 되었다.

묵동

구의 북서쪽에 위치한 동이다.

묵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때 이 지역에서 먹을 만들었기 때문에 생겼다고 전해진다.

또 문방사우인 먹을 지명으로 사용해야 마을의 학문이 발달한다고 여겨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전해진다.

묵동은 조선시대에는 송계동이라고 하였다. 당시 이 지역에 공무상 강원도 지방으로 떠나는 관리들이 묵었던 국립여관인 송계원(松溪院)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종실록』에는 송계원이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는 송계교가 나타나고 있다. 1914년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 묵동리•내동리•하리의 일부를 합하여 양주군 구리면 묵동리라 칭하였다.

1963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편입되었고 1988년 중랑구가 신설됨에 따라 이에 속하게 되었다.

중화동

구의 서쪽에 위치한 동이다.

동 이름은 이 지역에 있는 자연촌이 중리(中里)와 하리(下里)에서 한 글자씩을 합하여 만든 것이다.

중리는 마을이 상리와 하리 중간에 위치한다고 해서, 또 하리는 마을이 아래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중리와 하리가 서울특별시에 편입됨에 따라 중화동으로 바뀌었다.

당시 지역주민들이 아래(下)를 나타내는 글자 대신 화합(和)을 뜻하는 글자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중화동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에 속하였다.

1914년 양주군 구리면 중하리로 바뀌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됨에 따라 중하리에서 동대문구 중화동으로 바뀌었다.

1988년 중랑구의 신설로 중랑구 중화동이 되었다

상봉동

구의 중앙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 이름은 이 지역에 있던 자연촌에서 유래하였다.

여러 자연촌 중에서 지역의 위쪽, 높은 지대에 위치한 상리(上里)라는 마을이 있었다. 또한 지형이 봉황의 날개모양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봉황동(鳳凰洞)이 있었다.

동 이름은 상리와 봉황동을 합성하여 만든 것이다. 상봉동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에 속하였다.

1914년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 상리•봉현리•봉황동•중리의 일부를 합하여 양주군 구리면 상봉리(上鳳里)로 바뀌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속하였으며 1988년 중랑구로 편입되었다.

망우동

구의 동쪽에 위치한 동이다.

동 이름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지점에 있는 망우고개에서 유래하였다.

관련 지명으로 망우리•망우면•망우리면이 있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는 망우리면이 나타나 있다.

『대동지지』에는 “망우리는 동남쪽으로 처음이 20리, 마지막이 60리이다”라고 되어있다. 『호구총수』에는 경기도 양주군 망우면이라고 되어있다.

1914년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면 양원리•방축리•입암리•능곡리 일부를 합하여 구리면 망우리라고 개칭하였다.

1963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로 편입되었고, 1988년 중랑구에 속하게 되었다

면목동

구의 중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 이름의 면목(面牧)은 목장을 앞에 두고 있다는 뜻 그대로이다. 이 지역은 전관평(箭串坪)에 속하였고 전관평에는 목마장이 있었다.

현재의 면목동 일대는 당시 구문계•고문계•문계•곰계 등으로 불리었다. 계라는 말이 어느 곳의 중심 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면목동 일대에는 목장으로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면목이라는 지명이 유래한 것이다. 면목동은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23주제 실시로 한성부 남서 두모방(성외) 전관중•하계•면목리동으로 바뀌었다.

1914년 면목리와 양주군 망우리면 봉황동 일부를 합하여 경기도 고양군 독도면 면목리라 하였다.

1949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성동구 면목동으로 바뀌었다. 1963년 동대문구에 속하였다가 1988년 중랑구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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