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떠놓고 달 보며 기도만하는 심정이다.”(카카오 계열사 임원)
“리스크·쇄신 얘긴 상반기에 끝내고 하반기엔 미래 얘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 장대규)가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을 불러서 조사한 9일, 카카오의 미래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들이다. 지난해 2월 사건이 불거진 뒤 1년 반. 지속된 수사 와중에도 비상경영과 쇄신 노력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카카오의 미래로 향하는 시계는 멈춰있는 상태다.
무슨 일이야
검찰이 김 위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지난해 2월 SM엔터테인먼트(SM) 경영권 확보를 두고 카카오와 경쟁하던 하이브가 주식 공개매수 의사를 밝히자, 방해할 목적으로 카카오가 사모펀드와 공모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것. 이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는 이미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남은 건 김범수 위원장이 배 전 대표에게 시세조종을 지시하거나, 최소한 보고 받고 승인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다.
이게 왜 중요해
이번 수사는 2022년 10월 SK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과 함께, 카카오의 비상경영 사태를 부른 결정타가 됐다. 이후 카카오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과 쪼개기 상장, ‘주식 먹튀’ 등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 지인을 주요 경영진으로 기용한 이른바 ‘브러더십(brothership)’ 경영, 기술 기업으로서의 정체성 상실 등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고속 성장이란 숫자 속에 가려졌던 카카오의 고질병들이 줄줄이 도마에 오른 것. 쇄신 자체는 이미 불가피했지만, 사법 리스크로 더 수동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비상상황에 돌입할 수 밖에 없었다. 카카오 직원들 사이에선 “SM 사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수사만 끝나면 지긋지긋해서라도 SM은 정리하고 싶을 것”과 같은 자조가 나올 정도.
카카오는 뭐했어
지난해 11월 경영 전면에 나선 김범수 위원장은 “회사 이름까지 바꿀 수 있다는 각오”(지난해 12월 11일 임직원 간담회)로 카카오를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자율은 있는데 견제·감시·책임은 없다는 비판을 받은 계열사 경영은 컨트롤타워 ‘CA협의체’를 중심으로 개편했다. 한 계열사 임원은 “이전에도 사업 진행 과정을 공유했지만, 느슨하고 자율적인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CA협의체에 보고하고 리스크 검토 받으며 함께 협의하는게 의무”라고 설명했다.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직책 구조는 ‘C레벨-성과리더-리더’로 단순화하고 부문장·실장 등은 없앴다. 또 외부 인사로 구성된 감시조직 ‘준법과 신뢰위원회’를 발족하고 책임경영, 윤리적 리더십 등에 대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계열사 줄이기와 인공지능(AI) 조직 정비도 주요 과제였다. 지난해 12월 138개였던 계열사는 지난 5월 128개, 한달 뒤인 지난달 26일 기준 125개가 됐다. 6개월여만에 13개를 정리한 것. 또 AI 전담조직 ‘카나나’를 신설, 카카오브레인과 통합을 추진하며 구조 자체를 손봤다.
기술 기업 카카오는 어디로
연이은 강도 높은 쇄신에도 카카오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 건 사법 리스크로 인해 ‘기술 기업 카카오’의 정체성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사법 리스크 대응 과정에서 AI라는 글로벌 메가트랜드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정신아 대표가 새로 취임한 뒤에도 여전히 미래 준비에 시간을 제대로 쏟지 못하고 있다. “사업부문을 관통하는 AI전략 및 세부 액션플랜 수립에 있어 주요 경영진 교체 후에도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김진구 키움증권 연구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 정 대표는 지난달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 공개 당시 “말로만 하면 공허하다. 결국 카카오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연내에 카카오에 맞는 AI 서비스를 내는 것”이라며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지만, 끝나지 않은 사법 리스크로 인한 시장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는
정치권·여론 등 전방위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카카오는 국내에서 이미 사업 영역 확대나 수익성 향상 등을 꾀하기 힘든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사업·기술·지역으로 반전을 만들어야 하지만 사법리스크의 지속은 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미래 10년 먹거리로 내세운 ‘비욘드 코리아’, 해외시장 개척의 길도 멈춘 상태. 김범수 위원장 등이 시세조종으로 처벌을 받을 경우 카카오뱅크 대주주 적격성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카카오 안팎에선 하루라도 빨리 리스크를 정리하고, 멈춰있는 미래 시계를 재가동 하는 것만이 ‘뉴카카오’의 유일한 길이라는 시각이 많다. 카카오 관계자는 “투자든 인수든 결국 사법 리스크가 어느정도 해결돼야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환 조사 단계에서 기소까지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일단은 우리가 해야하는 쇄신을, 강하고 신속하게 추진하면서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정민·윤상언·정용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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