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통째로 불바다 된다” 지하실서 폭탄 해체한 그들

  • 카드 발행 일시2024.06.18

전두환 비사

전두환 비사를 내 관심에도 추가해드렸어요.

 3부 금남로의 총소리

5회 ‘해방 광주’와 ‘파리 코뮌’

5·18의 전개 과정은 두 국면으로 나뉜다.
전반은 5월 18일 전남대 시위와 공수부대의 과잉 진압에서부터 21일 시민군의 무장과 공수부대의 도청 철수까지 4일간의 공방전이다. 후반은 계엄군이 물러간 22일부터 재진입한 27일까지의 사이, 광주의 ‘시민 자치’ 기간 6일이다.

후반은 다시 두 국면으로 나뉠 수 있다. 후반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22일부터 25일까지는 온건파가 주도한 국면이다. 반면에 후반의 뒷부분에 해당하는 25일 밤부터 계엄군이 재진입한 27일 새벽 사이는 강경파가 주도한 국면이다. 온건파는 ‘무기 반납’을, 강경파는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시리즈 전회(6월 11일자)에서 다룬 전반 상황에 이어 이번 회에선 후반 상황을 일자별로 정리했다.

22일 ‘대동세상’ 광주  

계엄군이 물러난 22일 오전 시민군 기동대가 시내를 순시하고 있다. 현장에 있던 중앙일보 이창성 기자가 찍었다.

공수부대가 외곽으로 물러나면서 광주시내는 평온을 되찾았다. 아침부터 시민들이 도청 앞 광장에 모여들었다.
어느새 시민군이 도청을 점거하고 사실상 자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도청 1층에 작전상황실을 만들고 차량통행증과 유류보급증 등 임시 허가증을 발급했다. 기동순찰대를 만들고, 외곽에 시민군을 배치했다.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유혈이 낭자한 거리를 청소하고,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에 나섰다. 빵과 음료수, 직접 만든 주먹밥을 시민군에게 제공했다. 도청 앞 광장에 모여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공론을 정하는 ‘직접민주주의’도 펼쳐졌다. 운동권에선 흔히 ‘모두가 하나 되는 이상적 자치공동체’란 의미에서 ‘대동(大同)세상’이라고 칭송하는 장면들이다.

이후 수습을 위해 온건파 유지들이 나섰다. 이날 낮 12시30분 독립유공자를 위원장으로 추대한 ‘5·18 일반수습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기독교 강세 지역인지라 천주교의 윤공희 대주교와 개신교의 한완석(광주제일교회) 목사 등 종교지도자들이 참여하면서 수습위원회에 무게가 실렸다.

수습위원회는 오후 1시30분 상무대에 있는 전남북계엄분소를 찾아가 책임자인 소준열 전교사령관을 만나 일곱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과잉진압 인정, 연행자 석방, 피해 보상, 발포 책임자 처벌과 사과, 시민장으로 사망자 장례, 수습 후 보복 금지 등. 그리고 ‘이상의 요구가 관철되면 무기를 자진 회수해 반납하겠다’고 약속했다.
계엄사는 선후가 바뀐 대답을 내놓았다. 소준열 전교사령관은 ‘선(先) 무기회수’를 조건으로 수습위원회의 요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온건파 저명인사들인 수습위원들은 긍정적인 반응으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