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감정을 마주할 용기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최근 출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소년을 발견했다. 쉴 새 없이 다리를 떨며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가끔 고개를 들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더위에 짜증이 난 것인지, 학교에 가기 싫은 것인지, 게임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마다 살벌하게 주위를 관찰하며 화풀이 대상을 찾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삶터로 향하는 주변 어른들의 비장한 모습에 이내 시선을 내리며 다리를 떠는 행동을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곧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같은 패턴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했다. 아마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듯 보였다.

사춘기의 나 또한 새로운 변화와 자극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불안한 심리상태로 인해 생겨나는 다양한 종류의 부정적 감정들을 이해하거나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저 짜증과 분노로 불편함을 배출하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직설적인 가사와 날카로운 고음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록 음악을 주로 들으며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내곤 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Appassionata)'을 접하게 되면서 어리고 예민했던 사춘기 소년은 처음으로 격정과 혼란 속에 감춰져 있던 감정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특히 제1악장(Allegro assai)은 마지막 이성의 끈(너무나 인간적인)에 의해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고 93.5%로 농축한 우라늄 235(원자폭탄의 제조를 위한)처럼 고통과 절규 같은 비극적 감정의 에너지가 폭발 직전의 상태로 응축된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향후 고조될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으며, 이는 다소 정적이고 명상적인 제2악장(Andante con moto)을 지나 종국의 감정적 폭발에 이르는 제3악장(Allegro ma non troppo – Presto)까지의 서사를 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남긴 에밀 길렐스(Emil Gilels, 1916~1985)의 녹음은 요동치는 감정 속에서도 그 어떤 불명확함이나 흔들림을 찾을 수 없는 묵직한 여운을 전하고 있다.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이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의 개발은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감정의 깊이와 다양성을 탐구하는 클래식 음악의 향유를 통해 감정의 세분화와 연결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 또한 감정 조절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부정적 감정이 촉발되더라도 이 감정을 조절하고 소화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문제다. 내 감정의 주인은 나 자신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