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사유변] 위기의 필수의료, 의대 증원만이 해법인가

이준엽 대구시의사회 홍보본부장.
이준엽 대구시의사회 홍보본부장.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장기간 지속되어 걱정이다.

정부는 의사가 적어 필수의료가 붕괴되니 의사를 늘려야 한다고 한다. 병원뿐 아니라 관공서 등 편의 시설을 늘리겠다면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쉬이 늘리지 못하는 이유가 종국에는 세금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고는 한국은 건강보험에 의해 의료비가 강제 지정되어 있어 의료비가 증가하면 보험료 인상으로 돌아온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의료는 예외다. 한국 의료는 질 좋고 싼데다 거의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기로 유명하다. 집앞 곳곳에 병원이 있는데 저렴하기까지 하니 언제든지 방문 가능하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 연간 진료 횟수는 15.7회이나 우리보다 의사가 2.5배 많은 그리스는 2.7회에 불과하다. 반면 국민이 한 해 동안 의료에 지출한 돈의 총액인 '경상의료비'는 국내총생산의 8.4%로 OECD 평균인 9.7%보다 오히려 낮다.

정부는 OECD 대비 의사가 적어 필수의료가 무너진다며 증원한다는데 치료 가능 사망률, 진료 대기 시간 등 OECD 각종 통계에서 한국 의료는 접근성 및 질 면에서 최상위권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 의사가 진료를 많이 해 근무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초기, 선심성으로 진료비를 낮게 책정하고 의료기관 이용 횟수에 제한을 풀었다. 건강보험은 원가의 91%에 불과한 저수가이나 의사들은 노동강도를 높혀 진료하며 저수가를 만회하였다. 그러나 저수가로 인한 폐혜가 점점 떠오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보상 적은 일은 기피하는데 최근 소송까지 남발하니 힘들고 보상 적은 필수의료 기피현상이 심화되어 응급실 뺑뺑이등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를 발표하며 의대 증원과 함께 적정 보상도 해줄테니 전공의에게 돌아오라고 한다. 내막을 보면 재원 마련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니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필수의료의 아이콘인 이국종 교수마저 구체적 대책 없는 정부의 행태에 실망해 "의대생 늘린다고 소아과 하겠나"라고 말한다.

정부는 의사만 많이 뽑으면 낙수효과로 누군가는 필수의료를 할 것이라고 국민들을 호도한다. 아이러니하다. 정치인마저 지방 거점병원 무시하고 최고 명의를 찾아 서울로 가는 마당에 국민에게는 낙수의사에게 심장수술을 받으란 말을 공공연하게 하니 말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이 의료개혁이라며 국민을 기만한다. 진짜 의료 개혁은 그것이 아니라 외국의 2.5배나 되는 의료 이용을 줄이고, 의사들이 소신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적정 원가를 보상해주어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기영합주의 정치인은 4천400만 유권자에게 다른 OECD 국가처럼 병원 덜 가고 건강보험료 더 내야 한다고 말하기 싫어한다. 국민에게 싫은 소리는 하기 싫으니 심장수술 할 의사가 소멸돼 가도 나 몰라라 하며 의대 증원이라는 선심성 정책만 들고 나온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문케어'라는 선심성 정책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시켰고 결국 폐기되었다. 여기에 더해 윤석열 정부는 의료 개혁이 아닌 의료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남발되는 선심성 정책으로 건강보험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 확립 없이 선심성으로 의대만 증원하면 종국에는 건강보험이 고갈돼 질 좋고 저렴했던 한국의료는 기억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

이준엽 대구시의사회 홍보본부장·이준엽이비인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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