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켓(판매·구매자 중개) 모델을 주로 내세운 국내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이들 기업에 투자했거나 투자하려던 자본시장의 분위기도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거래액만 키워도 투자금을 대거 끌어올 수 있었던 과거 오픈마켓의 성공 방정식이 티메프 사태를 계기로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매각 방침을 정한 11번가는 투자자 물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1번가 모기업인 SK스퀘어는 2018년 국민연금 등 재무적 투자자(FI)들로부터 5000억원을 투자받고 지분 18.18%를 넘겼다. 당시 SK스퀘어는 보장 수익률 연 3.5%, 5년 내 기업공개(IPO)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11번가는 2020년부터 4년째 적자를 내면서 상장에 실패했다. FI 주도로 매각을 시도 중이지만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최근 신선식품 유통기업 오아시스가 11번가 인수 의향을 밝히기는 했지만 티메프 사태로 오픈마켓의 기업 가치가 하락하면서 매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2019년 2조원을 웃돌던 11번가의 기업가치는 최근 500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신세계그룹 SSG닷컴도 올초 같은 이유로 FI와 갈등을 빚었다. 앞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블루런벤처스(BRV)캐피탈 등 FI는 SSG닷컴에 상장을 전제로 1조원(지분 30%)을 투자했다. 하지만 SSG닷컴이 상장을 무기한 연기하면서 FI는 신세계그룹에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권리)을 요청했다. 올 6월 양측이 극적으로 풋옵션 행사 대신 FI가 보유 중인 SSG닷컴 주식을 제3자에 넘기기로 했지만, 올해 새로운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신세계그룹이 이를 되사야 한다.

업계에선 e커머스 기업들이 쿠팡처럼 차별화된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e커머스업계 1위인 쿠팡도 처음에는 단순 중개 모델이었지만,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를 투자받으면서 ‘로켓배송’ 등 물류시스템과 직매입 사업을 키웠다. 그 결과 ‘규모의 경제’를 이뤄 지난해 설립 13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흑자(6174억원)를 달성했다.

상장을 추진 중인 e커머스들은 자본시장의 냉랭한 분위기를 감안해 흑자 전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비용 절감에 나선 컬리는 올 1분기 영업이익 5억원을 올려 첫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11번가도 최근 들어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경영에 들어갔다.

이선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