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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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장지수증권(ETN) 시장의 소수 종목 의존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월 거래대금이 1억원도 안 되는 상품은 계속 느는 반면,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일부 원자재 ETN은 평균치의 100배에 가까운 거래대금을 기록하는 형국이다. 증권사들이 상품군 다양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경쟁 시장인 상장지수펀드(ETF)의 팽창으로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국내 상장 ETN 385개 중 거래대금이 1억원 미만인 상품은 166개(43.1%)로 나타났다. 월간 신규 상장 상품은 제외한 수치다. 이 같은 소외 ETN들은 지난 4월 147개(40.1%)까지 줄었다가 최근 3개월간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비교적 안정적 투자 상품으로 분류되는 공사채·은행채·국채 등 채권 관련 ETN, 미 S&P500과 영국 FTSE100 지수 관련 ETN 등의 거래가 저조했다. 대부분이 ETF를 통해 투자 가능한 상품들이다.

반면 원자재 인버스·레버리지 상품엔 투자자가 몰렸다. ‘삼성 인버스 2X 코스닥150 선물’ ETN은 이달 거래대금이 4829억원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달 월평균 거래대금(50억원)의 96배다. ETF 시장엔 없는 대표적 상품으로, 코스닥150 선물지수를 역으로 2배 추종한다. 서부텍사스유(WIT)와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내리며 관련 인버스 ETN에 베팅하는 거래도 잦았다. 10위권에 위치한 ETN 상품들 평균 거래대금은 1249억원을 기록했다.

ETN은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장지수펀드(ETF)와 유사한 상품이다. 저마다의 기초지수를 추종한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발행 주체가 증권사라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거래 과정에서 자산수탁사가 끼지 않기 때문에 위험도가 더 높은 대신, 안전성 규제 때문에 ETF가 다루지 못하는 실물자산 관련 상품이 많다. 다만 이 과정에서 변동성이 특히 소수 ETN을 향한 쏠림 현상이 고질적 문제로 대두됐다. 실제로 올들어 월간 거래량 10위권 ETN 중 1위는 바뀐 적이 없고, 나머지도 인버스·레버리지 차이가 있을 뿐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3개 사의 천연가스·원유·코스닥150 관련 ETN이 채웠다.

올들어 금리 인하 기조에 발맞춘 미 국채 관련 ETN, 신흥국 우량 기업에 투자하는 ETN 등 새로운 형태의 상품이 쏟아지고 있지만, 지형지도를 바꾸기엔 어려움이 따른다는 평가다. 한 대형 증권사 ETN 개발 담당자는 "원자재 중심의 소수 상품 고착화로 ETN을 고위험·고수익 상품으로만 인식하는 투자자가 많아져 내부에서도 고민이 크다"며 "대안으로 제시되는 ETN의 퇴직연금 편입이나 미국과 같은 ‘3배형 상품’ 허용 등은 제도와 관련된 문제다 보니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민경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ETF 시장 성장이 가파른데다, 겹치는 종류의 상품이면 상대적으로 위험한 ETN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근본적 한계점"이라며 "규제로 인해 ETF가 다룰 수 없는 신선한 실물자산 관련 상품을 적극 개발하는 것이 남은 현실적 해결책"이라고 짚었다.

이시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