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 죽겠는데 때아닌 가죽 재킷 타령?’이냐며 의아할 이들도 많겠으나 바야흐로 도래한 AI의 시대에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 엔비디아(NVDIA)의 수장, 황 선생님께서 매번 가죽 재킷을 입고 등장하고 있으니…. 서늘한 바람이 불기 전에 그에게 서둘러 배우고 익혀 다가올 계절을 미리 준비해 보면 어떨까 한다.

공식 석상에서 수차례 젠슨 황(Jensen Huang)은 형태는 다르지만 검정 가죽 재킷을 입고 등장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의 시그니처 룩으로 정착된 가죽 재킷은 어떻게 세상에 소개되었을까? 그가 자신만의 스타일 아이템으로 가죽 재킷을 고른 이유도 함께 추측하면서 가죽 재킷의 스타일 인문학으로 들어가 보자.
대만 IT박람회 기조연설하는 젠슨 황 / 사진. 연합뉴스
대만 IT박람회 기조연설하는 젠슨 황 / 사진. 연합뉴스
동물의 가죽은 인류 문명이 직조라는 공예적 행위를 통해 옷으로 입을 천을 생산할 수 있게 되기 전, 이미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질기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였다. 따라서 아마도 가장 오래된 옷, 혹은 의복의 재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고학적 논의보다 좀 더 현대적인 형태와 기능성 측면에서 가죽 재킷의 등장에 초점을 맞춰보면 놀랍게도 가죽 재킷은 인류가 일궈낸 놀라운 기술적 진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행기의 발명이다. 비행기가 운송과 여행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덕에 인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하였다. 비행 전과 후의 세상은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AI 역시 새로운 시대를 여는 획기적인 기술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터. 그 새로운 기술의 핵심에 선 젠슨 황이 가죽 재킷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꽤나 의미심장하다. AI가 가져올 변화의 첨단에 선 그가 인류 문화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 초기 비행기 조종사들의 옷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 아니었을까?
엔비디아 황제 패션 대해부! 젠슨 황은 왜 한여름에도 가죽재킷만 입나?
그럼 좀 더 본격적으로 비행기와 가죽 재킷의 연결 고리를 확인해 보자. 추진력을 얻기 위한 효율적인 엔진이 아직 발명되기 전, 초창기 비행기는 충분한 부력을 얻기 위해 가능한 한 가벼워야 했다. 따라서 높은 고도의 추위와 바람을, 비행기 조종사들은 온열기는커녕 창문과 뚜껑조차 사치이던 시절 온몸으로 버텨냈다. 1900년대 초, 기술이 점점 발전하여 더 높고 멀리 안정적으로 날게 되자 급격한 온도 차를 막아줄 보온복으로 가죽옷 선택은 불가피했고, 안쪽엔 보온을 위한 두툼한 털이 달린 황갈색 양 가죽 재킷이 비행기 조종사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한다.

특히 획기적으로 비행 기술이 발전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Type A1'이라 불리는 목과 허리 부분을 니트로 감싼 단추 여밈 재킷이 탄생했으며, 또한 폭격기 승무원들에게만 허용된 것이 아님에도 폭격기 재킷(bomber jacket)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곧 'Type A2'라 불리는 개량형 항공 재킷이 도입되면서 2차 대전이 한참이던 1943년까지 미 육군 항공단의 표준 보급품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곧 합성섬유 기술과 항공기 보온 기능의 강화로 폭격기 재킷은 가죽에서 합성섬유로 대체된다.
[위] 1920년대 비행 재킷을 입은 비행사 리처드 버드 / [아래] B-17F 승무원 대다수가 입고 있는 옷이 A2 가죽 재킷이다.
[위] 1920년대 비행 재킷을 입은 비행사 리처드 버드 / [아래] B-17F 승무원 대다수가 입고 있는 옷이 A2 가죽 재킷이다.
어쩌면 더 이상 가죽 재킷의 운명은 여기까지였을 수도 있었으나 A2 가죽 재킷의 인기는 대단해서 군수 보급이 공식적으로 중단되자 수많은 민간 제조자들이 유사한 형태의 제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한국전쟁에서도 이미 공식 유니폼에서 제외된 이 가죽 재킷이 조종사들은 물론, 심지어 인천상륙 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 장군에게도 애용될 만큼 대대적인 인기를 얻는다. 아마도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숱한 승리를 부른 전공의 조종사들과 함께, A2 가죽 재킷의 이미지는 승리의 상징이 되어 줄곧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것 같다.
A2 가죽 재킷 광고
A2 가죽 재킷 광고
이후 가죽 재킷은 20세기 후반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는 물론 비교적 최근까지 등장한 영화 속 주인공의 캐릭터를 부각하면서 남성미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옷으로서의 존재감을 갖게 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의 주인공 게리 쿠퍼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헤리슨 포드를 떠올린다면 가죽 재킷이 만들어 낸 탐험가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갈색 가죽 재킷은 젠슨 황이 구축하고자 한 이미지와는 필요충분한 연결 고리를 갖는다고 보긴 힘들 것 같다. 지난 6월 초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에서 역시나 검정 가죽 재킷을 입은 그에게 한 기자가 “안 더워요?”라고 물은 질문에 “아뇨, 전 언제나 쿨합니다(I’m always cool)"라고 답한 것을 보면 분명 쿨한. 그러니까 어쩐지 도시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려는 의도가 다분함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차가운 도시 남자의 쿨함은 황갈색보다는 검정색이 더 어울리니까 말이다.
영화 속에서 가죽 재킷을 입은 주인공들, [위]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게리 쿠퍼 / [아래] '레이더스'의 헤리슨 포드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속에서 가죽 재킷을 입은 주인공들, [위]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게리 쿠퍼 / [아래] '레이더스'의 헤리슨 포드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검정 가죽 재킷의 의미 있는 첫 등장은 어빙 쇼트(Irving Schott)라는 러시아 이민자 출신 의류업자의 ‘퍼펙토(Perfecto®)’ (어빙 쇼트가 좋아했던 니콰라구아산 시가의 이름, 완벽하다는 뜻의 스페인어로 [뻬르뻭또]가 맞는 발음이다) 재킷이다. 모터사이클 라이더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좀 더 멋진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1928년 처음 탄생한 이 재킷은 말론 브란도가 주연을 맞은 ‘위험한 질주’를 통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제임스 딘을 스타로 만들어 준 ‘이유 없는 반항’에서는 권위에 반항하는 폭주하는 젊은이들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소위 ‘블란도 룩’이라 불리던 복장이 한때 미국의 학생들에겐 금지 복장이 되기도 했었다니 그 영향력과 인기를 가늠할 만하다.

그만큼 검정 가죽 재킷은 반항적 이미지로 캐릭터를 만드는 데 강력한 힘을 과시했고 이후에도 다양한 캐릭터에 검정 가죽 재킷은 반복적으로 활용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꼽기에 의문의 여지 없는 앤디 워홀도 같은 검정색 가죽 재킷을 즐겨 입었으며, ‘전격Z작전’의 데이빗 핫셀호프나, ‘터미네이터’에서 T-800을 맡은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검정 가죽 재킷으로 캐릭터의 이미지를 굳혔다. 사실 영화사에서 가죽 재킷은 주로 폭력적이거나 강력한 힘을 지닌 악역에 적극 활용되었는데, ‘매트릭스’ 주인공들이 매우 적절한 예이며, ‘블레이드’의 웨슬리 스나입스 역시 긴 가죽 코트로 선과 악이 모호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 속 가죽 재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속 가죽 재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젠슨 황은 쟁쟁한 존재들 사이에서 미래 기술에 꼭 필요한 그래픽 처리 장치를 공급하는 회사의 CEO로서 분명 강력한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정 가죽 재킷은 얼마나 쉽고도 탁월한 그야말로 뻬르뻭또(Perfecto)한 선택인가? 이민 온 아시안은 수학에 능해도, 모범생일지라도 이리저리 미국 주류들에게 치이고 밟히고를 반복했으리라.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처럼 ‘다른 일에 집중하기 위해 옷의 선택을 단순하게 했다’는 패션과 스타일을 모독하는 진부한 답변을 넘어서, 과거의 강력한 캐릭터들이 선택했던 유사한 방법론을 택하되 매번 조금씩 다른 디자인으로 그만의 변조를 보여주며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다.

획기적인 기술의 변화를 리드하면서 그만의 색을 드러내기로 한 이 박수 받을 선택은, 옷 따위를 선택하느라 자기 두뇌 용량이 부족할 리 없는 그런 사람, 고용량의 그래픽 처리 장치를 세상에 소개하는 엔비디아의 창업자다운 선택이었다. 다음 공식 석상에서 그가 선택할 검정 가죽 재킷의 디자인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획기적이고, 완벽한 선택을 기다리며 엔비디아의 주가를 슬쩍 확인해 본다.
그림. ⓒ한국신사 이헌
그림. ⓒ한국신사 이헌
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