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테슬라 주주총회를 앞두고 X에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주식 보상안 재의결 등의 안건에 대한 투표를 독려하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AFP
지난 6월 테슬라 주주총회를 앞두고 X에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주식 보상안 재의결 등의 안건에 대한 투표를 독려하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AFP
“존경하는 재판장님, 머스크의 ‘광대 쇼’가 보상안 판결에 영향을 끼쳐선 안 됩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주 형평법 법원. 수십명의 변호사들이 재판장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피고 측 테슬라 이사회와 원고 측 ‘테슬라 소액 주주’가 각각 고용한 이들입니다. 델라웨어와 뉴욕 최상급 로펌의 선수들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돈나무 언니’로 유명한 캐시 우드의 아크 인베스트먼트와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 등 기관 측 변호사들까지 참관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지난 1월 충격의 ‘보상안 취소’ 판결

지난 1월 델라웨어 법원은 2018년 테슬라 이사회가 승인한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스톡옵션 3억주 성과 보상 패키지가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최근 주가 기준 690억달러(약 96조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캐서린 맥코믹 판사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막대한 보상액”이라며 “일반 주주에게 이해상충”이라는 9주 주주 리처드 토네타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머스크는 “델라웨어를 떠나겠다”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테슬라는 지난 6월 주주총회에서 CEO 보상안을 재투표에 부칩니다. 이 안건은 머스크 형제를 제외한 주주 72%의 찬성으로 통과됐습니다. 테슬라 법인을 델라웨어에서 텍사스로 옮기는 안건도 함께 가결됐습니다.
지난 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인공지능 컨퍼런스(WAIC)의 테슬라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 2세대를 살펴보고 있다. /AFP
지난 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인공지능 컨퍼런스(WAIC)의 테슬라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 2세대를 살펴보고 있다. /AFP
여기까지가 올해 상반기 머스크 보상안 관련 이슈를 요약한 것입니다. 주식 보상안이 취소되면 그의 테슬라 지분율은 13%(기존 약 20%)로 쪼그라듭니다. 경영권이 흔들릴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지요. 자칫하면 그가 테슬라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20년간 피땀 흘려 키운 테슬라에 대한 애착이 각별한 머스크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주총에서 새롭게 보상안을 통과시켰으니 모든 문제가 끝난 걸까요.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안은 굉장히 복잡한 법적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테슬람이 간다>와 <테슬람 X랩>은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이 문제를 집중분석 해왔습니다(2024년 1월 20일, 2월 3일, 2월 6일, 6월 13일 자 참조). 테슬라의 1심 패소 판결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주엔 이 보상안 소송이 어떻게 진행 중인지 중간 점검합니다.
미국 델라웨어 형평법 법원의 법관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보상안 사건 재판을 맡고 있는 캐서린 맥코믹 판사다. /델라웨어 형평법 법원
미국 델라웨어 형평법 법원의 법관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보상안 사건 재판을 맡고 있는 캐서린 맥코믹 판사다. /델라웨어 형평법 법원

원고 측 변호사 “수수료 10조원 달라”

앞서 소개한 지난 8일 법원 심리는 변호사비 산정 때문입니다. 미국은 일반적으로 승소에 상관없이 소송 당사자가 각자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합니다. 하지만 주주 대표소송은 예외입니다. 이 때문에 패소한 테슬라가 원고 측 변호사의 수수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를 지급해야 할까요. 여기서 양측의 견해차가 크게 갈립니다. 비용 산정은 법원이 결정합니다.

원고 토네타를 변호한 로펌은 총 4곳입니다. 이 사건에 참여한 변호사가 무려 37명입니다. 이들은 변호사비로 테슬라 주식 2900만주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총 73억달러(약 10조원) 규모로 미국 주주소송 역사상 최대 수수료입니다. 시간당 보수 37만달러(약 5억원)를 책정했습니다. 델라웨어 최저임금(13.25달러)의 2만8000배를 받겠다는 얘기입니다. 이들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해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2023 뮌헨 오토쇼 IAA 모빌리티'에 전시된 테슬라 모델3. /REUTERS
지난해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2023 뮌헨 오토쇼 IAA 모빌리티'에 전시된 테슬라 모델3. /REUTERS
“소송을 준비한 지난 6년간 보수를 받지 못했고, 패소했다면 한 푼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금액이 커서 테슬라에도 부담일 수 있으니 주식으로 받겠다. 회사 재무제표 측면에서 현금보다 나을 것이다. 머스크에게 3억주 지급할 걸 우리가 막아줬으니 주주들에겐 오히려 이득이다. 주식 지급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현금으로 14억달러(약 1.9조원)를 받겠다.”

이에 테슬라 측 변호사는 터무니없는 금액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델라웨어 변호사 수수료 역사상 최고 금액보다 17배 많다는 것입니다. 테슬라 측은 최고 1360만 달러(약 188억원)면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들이 2900만주를 받는다면 테슬라에서 세 번째로 큰 비(非)기관 주주가 될 것이다. 이는 CEO의 성과를 가로챈 횡재다.”
지난 1월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유럽 유대인 협회 주관 컨퍼런스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REUTERS
지난 1월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유럽 유대인 협회 주관 컨퍼런스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REUTERS

주총 보상안 재승인은 유효한가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맥코믹 판사는 양측의 의견을 경청했지만, 즉각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결정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주주들은 지난 6월 보상안을 재의결했지요. 이날 테슬라 측은 “보상안이 주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하게 알리는 등 오류를 수정한 만큼 새 주주투표가 이전 판결을 번복할 중요한 근거”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원고 측 변호사들은 재승인 투표를 ‘머스크의 광대 쇼’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의뢰인은 9주가 아닌 200주 미만을 보유하고 있다”며 “테슬라 지지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맥코믹 판사는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별도의 심리를 열어 주총 재승인 결과가 판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양측의 의견을 들을 예정입니다. 맥코믹 판사가 결정을 번복할 정도로 주주투표를 비중 있게 여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판결문에 따르면 그가 지적한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천문학적 규모의 보상액과 불투명한 이사회 구성입니다. 사실상 지난 2018년 상황과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캐시 우드 아크 인베스트먼트 CEO.
캐시 우드 아크 인베스트먼트 CEO.
법조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로버트 잭슨 뉴욕대 법학교수는 “머스크에게 너무 많은 스톡옵션을 부여하면 기존 투자자들의 보유 주식 가치가 희석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다니엘 피셸 시카고대 법학교수는 “원고 측 변호사들이 부당한 폭리를 취한 것 외에 보상안 철회가 투자자에게 무슨 이익을 가져다줬는가”라고 했습니다. 기업분쟁 전문 교수였던 래리 하머메시는 “우리는 미지의 영역에 있다”며 “이러한 변호사 비용에 대한 명확한 법적 지침이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FT는 맥코믹 판사가 연말께 변호사 비용과 주주투표와 관련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만약 테슬라의 패소가 그대로 확정된다면 항소심은 내년께나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10조원이라는 엄청난 변호사비에 테슬라 주주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지난 2월 우드는 머스크 보상안 취소 판결이 나온 뒤 다음과 같이 일갈했습니다. “이 판결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기업에 대한 모욕이자 투자자의 권리에 대한 공격이다.”

※ <테슬람이 간다>는 이후에도 머스크 보상안 소송을 지속해서 추적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모빌리티 & AI 혁명’을 이끄는 혁신기업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X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