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시스템 반도체 전문가’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핵심 타깃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인력. 내년 본격 양산할 것으로 전망되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4’ 성능을 끌어올리고 차세대 메모리인 3차원(3D) D램, 프로세싱인메모리(PIM)를 개발하려면 실력 있는 파운드리·팹리스 인력을 대거 확보해야 해서다. 파운드리와 팹리스 사업을 하지 않는 SK하이닉스가 ‘삼성맨’에게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공들여 키운 인재가 SK하이닉스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에 삼성전자는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HBM 패권 사수" 하이닉스, 삼성맨 영입

파운드리 전문가 대거 충원

SK하이닉스는 오는 15일까지 48개 직무에 대해 경력사원 채용 접수를 하고 있다. 채용 설명서의 첫 페이지를 차지한 건 HBM 부문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HBM 채용 대상의 주요 업무로 ‘파운드리 공정 개선을 통한 HBM 로직 다이의 수율 확보’ ‘HBM 로직 다이 테스트’ 등을 제시한 점이다. 요구 역량에도 ‘파운드리 기술에 대한 분석’ ‘파운드리 소자 개발’ 등이 적혀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의 전력 효율을 높이는 파운드리 공정 기술인 ‘핀펫(FinFET)’ 전문가도 총 9개 직무에 걸쳐 채용한다. SK하이닉스가 핀펫 전문 경력 직원을 별도로 뽑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HBM 경력직 지원 요건을 ‘4년 이상 근무 경력’, 핀펫은 ‘10년 이상 경력’으로 적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인력을 노린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PIM, 3D D램 등에 투입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팹리스 전문가 채용에 나선 건 HBM4 때문이다. D램을 쌓아 만드는 HBM은 맨 밑에 까는 로직 다이(베이스 다이)와 D램 단품칩을 뜻하는 코어 다이로 구성된다. 로직 다이는 중앙처리장치(CPU) 같은 프로세서처럼 HBM을 컨트롤하는 역할을 한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5세대 HBM인 ‘HBM3E’까지는 로직 다이를 직접 제조했다. 하지만 로직 다이에 기능을 추가하고 전력 소모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HBM4부터는 초미세공정에 능한 파운드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와 HBM4를 함께 개발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HBM 로직 다이 제작을 전문 기업인 TSMC에 맡기는 것이다. TSMC와 손을 잡았다고 해도 HBM4 로직 다이 설계는 SK하이닉스가 맡는다. 저전력·고성능 칩 설계에 능숙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TSMC와의 협업 과정에서 파운드리 공정을 잘 알고 검증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 것도 경력직을 채용하는 이유로 꼽힌다.

삼성, HBM4 개발에 300명 투입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노조 파업 등으로 조직 분위기가 느슨해진 데다 SK하이닉스에 HBM 주도권을 빼앗긴 점을 감안할 때 인력 이탈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서다.

삼성전자는 관련 인력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메모리사업부에 ‘HBM개발팀’을 신설하고 HBM4 개발에 300명의 엔지니어를 배치하는 등 인력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개발·양산에 특화한 SK하이닉스와 달리 D램 개발·양산, 로직 다이 설계, 파운드리, 최첨단패키징(여러 칩을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공정)까지 HBM4 관련 모든 공정을 혼자 할 수 있다. HBM4 시대가 열리면 삼성이 HBM 패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HBM4는 SK하이닉스·TSMC 연합군과 삼성전자의 대결 구도로 전개될 것”이라며 “복잡한 업무를 하나하나 협업해야 하는 SK하이닉스와 달리 모든 걸 일관생산할 수 있는 삼성의 강점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