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 선일금고제작 대표(오른쪽)와 김은영 부사장이 경기 파주시 본사에서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임형택 기자
김영숙 선일금고제작 대표(오른쪽)와 김은영 부사장이 경기 파주시 본사에서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임형택 기자
금장 독수리 상표가 부착된 선일금고는 1980~1990년대 사무용 금고의 대명사로 통했다. 발톱으로 먹잇감을 잡으면 놓치지 않는 독수리처럼 금고에 들어온 귀중품은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를 담았다. 선일금고제작은 국내 최초로 금고를 국산화한 회사다. 고(故) 김용호 회장이 1972년 ‘조선의 으뜸(鮮一)’으로 키우겠다며 설립했다. 구마히라, 다케우치 등 일본 제품이 국내 금고 시장을 장악한 시절이었다.

조선 제일의 ‘금고 박사’가 설립

굿 lock 굿 luck…'금고지기 모녀' 고객 마음을 열다
6·25 전쟁 고아인 김 회장이 금고와 인연을 맺은 건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열두 살 때부터 서울 을지로의 금고점에서 일하면서다. 손재주가 좋은 그는 베트남전 때 미군 금고를 관리하는 금고병으로 차출되는 행운을 얻는다. 이후 10여 년간 미국과 독일을 돌며 금고 기술을 배웠다. 선일금고 설립 후엔 일본의 금고 공장을 방문했다가 내부를 보여주지 않자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고 통풍기를 뜯고 들어가 생산 현장을 엿보기도 했다. 기술 개발에 미쳐 있던 그를 업계에선 ‘금고 박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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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표 선일금고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970년대 금고를 불태우는 공개 테스트를 통해서다. 금고 겉면은 불에 몽땅 탔지만, 안쪽 서류는 멀쩡하게 보존된 장면이 당시 대한뉴스에 보도되며 대중에게 널리 각인됐다. 철판을 잘라 연탄재를 채워 만든 ‘막 금고’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국산 내화(耐火) 금고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다.

선일금고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1976년 호주를 시작으로 중동, 미국 등 수출길도 열렸다. 1987년 ‘수출 백만불탑’을 수상한 이후 선일금고는 수출 기업으로 우뚝 섰다. ‘좌로 3㎜, 우로 5㎜’ 식으로 돌리던 다이얼 금고를 벗어나 집적회로(IC) 칩을 장착한 전자식 버튼이 달린 디지털 금고도 국내 최초로 내놨다.

김 회장은 사세를 넓히기 위해 1996년 접경 지역인 고향 경기 파주시 월롱면 일대에 대규모 공장을 지었다. 김 회장은 파주 공장을 발판으로 1999년 미국 UL 인증에 이어 2002년 스웨덴 품질 규격 인증(SP), 러시아 규격인증(GHOST) 등 내화금고와 관련한 세계 3대 인증을 모두 따냈다. 수입 금고에 의존하던 국립중앙박물관, 정부종합청사, 육군·해병대 사령부 등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은행 산업은행 농협 등이 점차 선일금고를 찾기 시작했다.

투박한 금고에 여성 감성 입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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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고 시장의 80%를 석권하며 승승장구하던 선일금고의 경영 승계는 갑작스레 이뤄졌다. 김 회장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다. 선일금고에서 재무회계를 담당하던 김 회장의 부인 김영숙 대표가 2004년부터 경영 전면에 나섰다.

28일 파주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남편의 사고로 충격이 컸던 데다 해외 거래처에 선일금고가 곧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퍼져 고민과 갈등이 많았다”며 “하지만 금고밖에 모르던 분의 사업을 접는 건 죄를 짓는 일인 것 같아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2001년 입사해 승계를 준비하던 김 대표의 장녀 김은영 부사장도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김 부사장은 ‘제조업은 현장경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부친의 뜻에 따라 공대를 졸업한 터였다.

최고경영자로 올라선 김 대표는 거친 제조 공정에 여성 특유의 감성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는 “여자가 금고를 만들면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는 제2의 창업이라는 각오로 시대에 맞는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2008년 출시된 인테리어 디자인 금고 브랜드 루셀이 그 결과물이다.

사무용 금고 일색이던 금고 시장은 루셀의 등장 이후 가정용 시대로 진입했다. 금고 전면은 투박한 단색 철판에서 고흐의 ‘해바라기’, 클림트의 ‘키스’ 등 명화와 다양한 디자인 패턴을 입혔다. 금고업계 최초로 2009년 현대백화점에 입점, 3개월 만에 300대가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금고도 가구’라는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먹혀든 셈이다. 이 같은 판로 혁신에 힘입어 2000년대 초반 70억원을 밑돌던 매출은 이 무렵 180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디자인 혁신으로 금고 대중화에 성공한 선일금고는 여세를 몰아 김 부사장 주도로 스마트 혁신에 나섰다. 2015년 SK텔레콤과 함께 세계 최초로 사물인터넷(IoT) 금고 개발에 뛰어들었다. 선일금고는 이후 LG유플러스 KT 등과 제휴해 국내 금고 제조회사 중 유일하게 통신3사의 서비스와 결합한 IoT 스마트 금고를 출시했다. 금고의 이상 상태를 감지하면 자동 알람이 울리는 보안 기능을 적용했다.

혁신경영 거듭하는 ‘독수리 모녀’

김 부사장은 가구시장으로 진입한 금고의 영역을 더 넓혀 가전제품 시장으로 확장 중이다. 선일금고가 역점적으로 내세우는 ‘보안 가전’ 분야다. 카메라 센서를 부착했거나 명품 스피커 하만카돈 제품이 달린 프리미엄 금고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엔 또 다른 브랜드 메타셀을 출시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페인트 공정(도장)과 용접이 필요 없는 친환경 공법으로 만든 제품이다. 하반기엔 1인 가구를 겨냥한 빨간 돼지저금통 콘셉트의 미니 금고도 선보일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CCTV가 없어도 소중한 물건을 지키고 블루투스 기능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복합기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시장을 개척하는 김 대표와 김 부사장의 공격적 행보로 인해 붙은 별명은 ‘독수리 모녀’다. 척박한 제조업에서 보기 드문 모녀 경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김 대표는 “선일금고가 손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작지만 강하고 건강한 100년 기업의 발판을 닦고 싶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의 승계와 관련해 김 부사장은 “산업현장의 흐름이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는 만큼 설비가 낙후된 제조업체들이 현장 설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확대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파주=이정선 중기선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