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체육대회를 통해 '스타'가 탄생한다. 빼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는 물론,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선수는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된다. 아시안게임이 올림픽에 비해 비중이 낮다고 하지만, 아시안게임을 통해 여러 선수들이 혜성처럼 '국민 동생'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최윤희가 1986년 9월 23일 여자 수영 배영 100m 시상식에서 한복을 차려 입고 금메달을 받은 뒤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최윤희가 1986년 9월 23일 여자 수영 배영 100m 시상식에서 한복을 차려 입고 금메달을 받은 뒤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과거 한국에서 아시안게임을 통해 떠오른 대표적인 인물은 수영의 최윤희다. 그는 15세였던 1982년 제9회 뉴델리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 여자 배영100m,여자 배영200m, 여자 개인혼영200m에서 금메달을, 여자 혼계영4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수영의 불모지였던 당시 15세 최윤희의 활약은 열광적 환호를 받았다. 최윤희의 언니 최윤정도 출전해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땄다. '수영 국대 자매'라는 특별한 이야기로 인해 더욱 깊은 인상을 줬다. 한국의 언론은 최윤희를 '아시아의 인어'로 부르기 시작했고, 최윤희 자매에 대한 뉴스와 스토리가 폭풍처럼 이어졌다.
최윤희가 1986년 9월 23일 여자 수영 배영 100m 경기에 앞서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최윤희가 1986년 9월 23일 여자 수영 배영 100m 경기에 앞서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최윤희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땄다. 긴 생머리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상대에 오른 최윤희는 또한번 국민적 관심과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21세기 김연아급 인기였다.

최윤희는 한국의 첫 '스포츠 스타'였다. 그전에도 인기 있는 운동선수들은 많았다. 하지만 TV광고에도 등장하는 등, 운동선수가 연예인 수준의 관심과 인기를 누린 것은 최윤희가 최초였다.
최윤희가 1986년 9월 26일 여자 수영 배영 200m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최윤희가 1986년 9월 26일 여자 수영 배영 200m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탁구의 현정화도 아시안게임을 통해 스포츠스타로 등장했다. 만 16세의 나이로 현정화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선발돼, 양영자 등과 함께 여자 탁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현정화(오른쪽)과 양영자가 1986년 9월 24일 탁구 여자 복식에서 중국팀을 맞아 공격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현정화(오른쪽)과 양영자가 1986년 9월 24일 탁구 여자 복식에서 중국팀을 맞아 공격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피노키오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애띠고 귀여운 용모에 날카롭고 당찬 실력을 갖췄던 그는 대중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기시작했다. 현정화는 서울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우승, 서울올림픽 2관왕 등 수 많은 국제 대회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게다가 1993년 운동선수 최초로 화장품광고 모델로 TV에 등장하기도 했다.
현정화(왼쪽)과 양영자(오른쪽)가 1986년 9월 25일 탁구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이 확정된 뒤 감독과 축하를 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현정화(왼쪽)과 양영자(오른쪽)가 1986년 9월 25일 탁구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이 확정된 뒤 감독과 축하를 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서울아시안게임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받은 또하나의 인물이 있었다. 육상의 임춘애였다. 그는 여자 800m, 여자 1500m, 여자 3000m에서 금메달 3개를 땄다. 한국 육상선수가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이룬 3관왕이었다. 신문과 방송은 임춘애가 어린 시절 밥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어야 했고 돌아가신 아빠 얼굴과 고생하는 엄마 생각을 하며 뛰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게다가 임춘애의 가족이 성남의 무허가 삭월세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감동' 그 자체였다.
임춘애가 1986년 10월 5일 여자 육상 1500m에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임춘애가 1986년 10월 5일 여자 육상 1500m에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유난히 마른 체형에, 혼신을 다해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임춘애의 사진은 그 감동에 감동을 더했다. 훈련 중에 라면을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임춘애는 '라면소녀'로 불리며, 가난을 이기고 성공한 신데렐라로 대중의 마음에 각인되었다.
임춘애가 1986년 10월 5일 여자 육상 1500m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임춘애가 1986년 10월 5일 여자 육상 1500m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임춘애가 1986년 10월 5일 여자 육상 1500m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뒤 관계자들의 부축을 받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임춘애가 1986년 10월 5일 여자 육상 1500m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뒤 관계자들의 부축을 받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탁구 대표선수 신유빈이 국내외에서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 띠동갑 전지희와 짝을 이뤄 여자 복식에서 북한을 누르고 금메달을 땄다. 무려 21년만에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것이다. 33년 만의 남북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여자복식 뿐 아니라 여자 단식, 혼성복식, 여자단체에서 각각 동메달을 수확했다. 금 1, 동3의 성적이다.
신유빈(오른쪽)과 전지희가 2일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신유빈(오른쪽)과 전지희가 2일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신유빈은 여러 개의 금메달을 딴 다른 선수들 보다 훨씬 더 화제를 모았다. 경기에서 승리한 뒤 또는 시상식에서 보여준 귀엽고 발랄한 갖가지 세리모니가 보는 이의 입가에 큰 미소를 띠게했다. 또한, 시상식에서 뒤집힌 태극기를 바로잡고, 경계심이 가득했던 표정의 북한선수들을 가까이 부른 태도 등이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어린시절부터 탁구 신동으로 알려지며 '삐약이'로 불리다, 한국 역사장 최연소인 15세에 국가대표가 됐고, 19세에 드디어 금메달을 땄다. 그런 스토리에 어여쁜 태도와 표정이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