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52)가 마침내 오랜 도피와 수형 생활을 뒤로하고 자유를 되찾았다.
외신들은 27일(현지시각), 어산지가 마침내 고국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해 가족과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고 전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체적 분위기는 어산지의 귀환을 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방면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아끼지 않은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어산지와 직접 통화하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그렇지만 보수 진영에선 어산지를 순교자로 치켜세우려는 움직임에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어산지는 2010년 4월 미군 정보분석병 첼시 매닝 일병으로부터 받은 이라크·아프간전 기밀문서 수십만건을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여기에는 3년 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 헬기가 비무장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 기총소사를 해 기자 2명을 포함해 민간인 12명을 살해하는 영상도 포함돼 있었다.
사건 당시 미군은 무장세력의 기습에 맞서 반격해 무장세력 9명 등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폭로 영상 속에서 숨진 이들은 총기 등의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발표가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당시 폭로 문건에는 2008년 5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에게 동생 이명박 대통령을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라고 말했다는 한국 관련 외교전문도 들어 있었다.
폭로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는 그해 10월 스웨덴 당국으로부터 여성 두 명에 대한 성폭행 및 추행 혐의로 기소된다. 스웨덴은 2019년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기소를 취소했지만, 이번엔 미국 당국이 그를 기밀문서 불법 수집 및 폭로, 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영국에 머물던 그는 스웨덴의 송환 요청을 피하기 위해 2012년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7년을 지냈다. 그리고 2019년 대사관에서 추방돼 영국 교도소에 수감된 뒤엔 미국의 송환 요청에 맞서 법정 투쟁을 벌였다.
어산지가 이번에 자유로운 몸이 된 건 미국 당국과의 플리바겐 합의에 따른 것이다. 플리바겐은 유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감형을 해주는 미국의 제도이다. 이에 따라 그는 타이 방콕을 거쳐 사이판으로 날아간 뒤 그곳 미국 연방법원에 출석해 방첩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판사는 5년형을 선고하면서 실형을 영국 교도소 수감으로 갈음했다.
그를 둘러싼 세간의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언론자유를 실천하고 대중의 알권리를 옹호한 인물로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무책임하게 기밀을 폭로하는 범법자라고 폄훼한다. 미국 당국은 그의 폭로에 대해 “이라크·아프간의 많은 협조자들이 위험에 빠지게 됐다”고 주장해 왔지만, 사이판의 연방법원 판사는 이번 재판에서 “어산지의 폭로로 확인된 희생자는 없다”고 일축했다.
두 아들의 아빠인 어산지는 당분간 되찾은 일상을 즐길 계획이라고 한다. 그의 부인 스텔라 어산지는 “줄리언이 날마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걸 꿈꾼다. 매일 진짜 침대에서 자고 진짜 음식을 맛보고 자유를 즐기려 한다”고 말했다.
이후 그가 무엇을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가 2006년 창립한 위키리크스의 온라인 사이트는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