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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변화로 만드는 미래 구민과 도약하는 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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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민센터

우리동 소개

동유래
  • 화곡동은 땅이 기름져 벼가 잘되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으나 관개시설이 부족하여 춘경기에는 마른땅에 파종하는방법을 주로하였기 때문에 올베벼가 수도작 보다 사실상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21년 양도토지개량조합이 설립됨에 따라 양수장, 배수갑문 등이 설치되어 쌀생산량이 증가되었다.

    개발되기 이전의 화곡동은 비만오면 온통 신에 엉겨붙는 진흙 무게로 겨우 발걸음을 뗄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화곡동의 진흙땅은 1925년 이후부터 항아리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되었다. 진흙땅으로 농경지였던 화곡동의 옥토가 농작물대신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 것은 서울시에서 인구가 증폭되자 1967년경 한강남쪽에 주택사업을 펼치면서 비롯되었다.
연혁
  • 조선시대 경기도 남양군 남산면 능동, 반곡리, 역촌리, 화곡리
  • 1914.03.01 경기도김포군 양동면 화곡리
  • 1963.01.01 서울시영등포구양동면화곡리(양동출장소관할)
  • 1968.01.01 서울시영등포구화곡동
  • 1975.10.01 화곡1동에서 화곡2동 및 신월동으로 분동
  • 1977.09.01 서울시강서구화곡동(대통령령제8666호)
  • 1980.07.01 화곡2동에서 화곡2, 4동분동
  • 1991.10.01 화곡2동에서 화곡2, 8동으로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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