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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

생각의 발자취
[ 이 생각은 2024년 05월 07일 시작되어 총 95명이 참여하였습니다. ]
이 생각은 "속초시 종합민원실 비치도서 추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참여 의견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님의 의견정리2024.08.02
시민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민원실 비치도서 구매완료함
안녕하십니까?
속초시 종합민원실의 비치도서 추천을 받고자 합니다.
의견을 말씀하여 주시면, 속초시의 민원행정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료로 소중히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참여기간 : 2024-06-07~2024-06-21
  • 관련주제 : 일반공공행정>기타
  • 관련지역 : 강원특별자치도>속초시
  • 그 : #속초 #민원실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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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28

나는 혼자인 것을 잘 알면서 윤석열 대통령께 한시적 러브콜을 하고 있다. 우리 동기 네명 중 두 명은 반에서 1, 2번으로 키가 커고 담임이 순이 선생님이다. 반면 호동이와 나는 각 반 뒤에서 1번이고 전공이 다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호동이가 베프다. 호동이가 얼마나 똑똑한 놈인지 몇 가지 에피소드를 말하고 싶다. 아마도 이 말로 호동이가 잡혀 갈까 봐 걱정이 되겠으나 너는 국립고 학생이었고 대한민국은 공소시효가 있으니 염려마라. 넌 사립고 학생이었으면 공소시효 풀렸으니 잡혀간다. 식사 끝나고 매점을 지나면 규모가 적지 않는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울타리가 있는데 이곳에서 호동이가 다리를 흔들흔들하고 있었다. 호동아! 뭐하냐?, 조용히 해라 그래서 지켜보고 있었더니 얼마 후 다리를 뒤로 힘차게 당기니까 큰 비단잉어가 뭍으로 튀어 올라 왔다. 순간 옷으로 휙 감싸더니 잡아 훈련장에서 삶아 먹었다. 나는 배가 고파도 붉은 색 잉어를 잡아 먹는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이 친구는 너무도 당연하다. 한 번은 훈련을 한참 하고 있는데 꿩이 날아와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졌다. 후배들이 들고와 동배형 꿩이 방금 떨어졌는데요. 삶을까요?, 아니다. 우리가 잡은 것도 아니고 지도 얼마나 억울하겠냐? 그러니 산에 묻어줘라 후배들은 그냥 삶아 먹자며 내 눈치를 보다가 산에 묻었다. 한참이 지나 어둑어둑해지자 호동이가 들어 왔다. 후배들이 호동이형! 오전에 꿩이 유리창을 받아 죽었어요 하며 달려들어 일렀다. 어디 있어?, 동배형이 묻어 주라해서 저기에 하며 산속을 가르치자 호동이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냐며 즉시 산에서 꿩을 파내어 삶아 먹었다. 또, 한 번은 호동이가 옷인지 포대인지 뭘 나한테 주더니 따라 오라고 했다. 어디 가냐? 물었더니 너 몸보신 안 한지 오래됐지 내가 오늘 몸보신 시켜줄께 하며 그냥 따라오라고 했다. 도서관 근처에 규모도 적지 않고 울타리도 꽤 높은 선생님이 키우는 토끼장이 있다. 갑자기 그 울타리를 뛰어 넘어 가더니 뭐 하냐? 선생님 오겠다. 그 쪽 동굴에서 이 쪽으로 토끼를 몰아야 내가 잡지 하며 울타리를 넘어와 토끼굴을 쑤셔라고 성화다. 나는 선생님 토끼를 잡을 용기도 없지만 울타리를 넘을 용기도 없다. 애초에 이런 일인 줄 알았으면 따라 오지도 않았다. 또 울타리는 내 키보다 높다. 망설이고 있는데 잡았다 하더니 토끼를 잡아 넘어 왔다. 동배야! 수고했다 하더니 토끼를 잡아 훈련실에서 후배들과 삶아 먹었다. 나보고 ‘수고 했다’ 하고는 주지도 않았다. 언젠가 선생님이 잡아 먹는 것을 봤는데 우리는 왜 안되냐며 당당히 잘 먹더라. 넌 천재다. 이런 천재는 잘 사나 모르겠다. 이 친구는 이런 일이 일상이다. 여차하면 동배야! 따라와 하면 그날은 사고치는 날이다. 나는 절친을 거부 할 수가 없어 항상 따라 다녔다. 한 번은 빈 교실로 데려갔다. 선배들이 졸업하여 교실이 비었는데 먼저 가저 가는 사람이 임자라며 삼각자를 챙겼다. 넌 뭐하냐 빨리 챙겨 그래서 나도 삼각자를 엄청 많이 챙겼다. 가져 와서는 뭘해야 할지 몰라 처치 곤란이었다. 국립고등학교라 그런지 교련 선생님과 기숙사 사감 선생님은 군복을 입고 허리에 권총도 차고 다녔다. 516 기념탑 뒤에 육사 출신 교련 선생님이 살았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학교에 오면 항상 찾아가 만나길 청했으나 문을 걸고 나오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70년대는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기공을 1년에 두 번씩 방문하기도 했다. 내가 다닐 때는 전두환 대통령도 우리 학교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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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35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G전자는 연구원 여러 명을 풀어 나를 찾아 다녔단다. 시골에서 형님도 올라 오고 장난이 아니다. 삼성 친구들도 돌아가라고 성화여서 할 수 없이 G전자로 다시 들어 갔다. 김 본부장이 엄청 혼낼 줄 알았는데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자 만 했다. 이 분은 진짜 프로다. 모르긴 해도 그 일로 석준이 교수는 나를 다시 봤을 것이다. 말이 코치지 그냥 가만히 있는게 돕는 것이다. 대학에서도 학생들 가르치지 말고 그냥 가만히 밥만 축냈으면 한다. 평가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몇일 휴가를 다녀 오라 했다. 이 일을 좀 전의 그 일과 연결하면 약간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지난 번 부산기공을 갔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이제는 그곳을 갈 수가 없다. 친구들 말로는 정문과 후문에 내 사진을 붙여 놓고 학교 출입을 금지 시켰다. 그래서 시골로 가려 했는데 어떻게 만났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나 고등학교 동기 중 입시반이었던 준기를 만났다. 요즘처럼 휴대폰도 없던 시대에 그렇게 만난 것도 아이러니다. 기능훈련 하면서 특활생들끼리 가끔 해운대 백사장을 산책하곤 했다. 돌아올 때는 뒷문 앞의 분식집에 들렀는데 그 가계 사장은 나를 ‘미래의 대통령’이라 불렀다. 그래서 그곳을 가면 사람들은 항상 ‘미래의 대통령님 오신다’고 했다. 어쩜 찰라의 대통령을 한 번 해 본 것도 같다. 가계 딸이 근수형 하고 결혼 할 정도니 얼마나 자주 갔는지 알 수 있다. 처음으로 기능장려금(?) 이름이 같나? 암튼 기능 선수가 되면 학교에서 월 만원 정도의 장려금이 나왔다. 딱 한 번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졸업 할 때 준다. 나는 이 돈으로 라면땅이라는 것을 사서 지나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준기에게 주곤했다. 라면땅은 100원이나 하려나 하는 아주 싼 과자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를 받고 눈물을 글썽였다. 태어나 남에게 이유 없이 받은 첫 선물 같은 거라나! 처음 생긴 내 돈으로 분식집에서 라면 같은 것을 사먹을 여유는 없었지만 과자라는 것을 사서 그 친구에게 줬다. 장려금은 만원 정도였지만 나에게는 아주 큰 돈이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라면땅을 선물했다. 서로 시작은 다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라고…, 준기는 대학 준비를 했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큰아버지 밑에서 컸는데 어렵게 공부해서 경상대 경영학과에 들어 갔다. 경상대 경영학과 과대표를 맡았는데 이도 참 아이러니다. 성격이 워낙 조용하여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기능올림픽으로 단련 됐지만 이 친구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그냥 돌아 갔나? 나를 경상대학으로 데려 갔는데 그곳에서 법학과 총학생회장을 만났다. 이 둘은 경남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화 운동권이다. 동배야 저것 좀 봐라, 나는 뭘 말하는지 모른다. 다만 글씨가 저게 뭐냐 비뚤 삐뚤…,, 못 읽을 정도로 현수막들이 엉망이다. ‘독제 타도! 전두환 개끼새!’ 보다 휠씬 심한 내용들이다. 그래서 너를 이리 데려왔다, 동배씨! 저런 글 잘 쓴다면서요. 그래서 부탁 좀 하려고 하는데요, 아! 나는 잠깐 휴가 나온거라 곧 돌아가야 합니다. 저런 글을 쓰려면 계속 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대학생도 아니고…,, 나라가 이 모양인데 국가대표가 되면 뭐합니까?, 나는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릅니다. 저런 글을 쓰더라도 뭘 알고 쓰야지? 나는 기능올림픽 밖에 모릅니다., 민주주의가 없는데 어떻게 기능올림픽이 있습니까?, 그 민주주의라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 온 겁니까? 우리나라 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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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35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G전자는 연구원 여러 명을 풀어 나를 찾아 다녔단다. 시골에서 형님도 올라 오고 장난이 아니다. 삼성 친구들도 돌아가라고 성화여서 할 수 없이 G전자로 다시 들어 갔다. 김 본부장이 엄청 혼낼 줄 알았는데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자 만 했다. 이 분은 진짜 프로다. 모르긴 해도 그 일로 석준이 교수는 나를 다시 봤을 것이다. 말이 코치지 그냥 가만히 있는게 돕는 것이다. 대학에서도 학생들 가르치지 말고 그냥 가만히 밥만 축냈으면 한다. 평가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몇일 휴가를 다녀 오라 했다. 이 일을 좀 전의 그 일과 연결하면 약간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지난 번 부산기공을 갔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이제는 그곳을 갈 수가 없다. 친구들 말로는 정문과 후문에 내 사진을 붙여 놓고 학교 출입을 금지 시켰다. 그래서 시골로 가려 했는데 어떻게 만났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나 고등학교 동기 중 입시반이었던 준기를 만났다. 요즘처럼 휴대폰도 없던 시대에 그렇게 만난 것도 아이러니다. 기능훈련 하면서 특활생들끼리 가끔 해운대 백사장을 산책하곤 했다. 돌아올 때는 뒷문 앞의 분식집에 들렀는데 그 가계 사장은 나를 ‘미래의 대통령’이라 불렀다. 그래서 그곳을 가면 사람들은 항상 ‘미래의 대통령님 오신다’고 했다. 어쩜 찰라의 대통령을 한 번 해 본 것도 같다. 가계 딸이 근수형 하고 결혼 할 정도니 얼마나 자주 갔는지 알 수 있다. 처음으로 기능장려금(?) 이름이 같나? 암튼 기능 선수가 되면 학교에서 월 만원 정도의 장려금이 나왔다. 딱 한 번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졸업 할 때 준다. 나는 이 돈으로 라면땅이라는 것을 사서 지나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준기에게 주곤했다. 라면땅은 100원이나 하려나 하는 아주 싼 과자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를 받고 눈물을 글썽였다. 태어나 남에게 이유 없이 받은 첫 선물 같은 거라나! 처음 생긴 내 돈으로 분식집에서 라면 같은 것을 사먹을 여유는 없었지만 과자라는 것을 사서 그 친구에게 줬다. 장려금은 만원 정도였지만 나에게는 아주 큰 돈이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라면땅을 선물했다. 서로 시작은 다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라고…, 준기는 대학 준비를 했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큰아버지 밑에서 컸는데 어렵게 공부해서 경상대 경영학과에 들어 갔다. 경상대 경영학과 과대표를 맡았는데 이도 참 아이러니다. 성격이 워낙 조용하여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기능올림픽으로 단련 됐지만 이 친구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그냥 돌아 갔나? 나를 경상대학으로 데려 갔는데 그곳에서 법학과 총학생회장을 만났다. 이 둘은 경남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화 운동권이다. 동배야 저것 좀 봐라, 나는 뭘 말하는지 모른다. 다만 글씨가 저게 뭐냐 비뚤 삐뚤…,, 못 읽을 정도로 현수막들이 엉망이다. ‘독제 타도! 전두환 개끼새!’ 보다 휠씬 심한 내용들이다. 그래서 너를 이리 데려왔다, 동배씨! 저런 글 잘 쓴다면서요. 그래서 부탁 좀 하려고 하는데요, 아! 나는 잠깐 휴가 나온거라 곧 돌아가야 합니다. 저런 글을 쓰려면 계속 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대학생도 아니고…,, 나라가 이 모양인데 국가대표가 되면 뭐합니까?, 나는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릅니다. 저런 글을 쓰더라도 뭘 알고 쓰야지? 나는 기능올림픽 밖에 모릅니다., 민주주의가 없는데 어떻게 기능올림픽이 있습니까?, 그 민주주의라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 온 겁니까? 우리나라 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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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28

나는 혼자인 것을 잘 알면서 윤석열 대통령께 한시적 러브콜을 하고 있다. 우리 동기 네명 중 두 명은 반에서 1, 2번으로 키가 커고 담임이 순이 선생님이다. 반면 호동이와 나는 각 반 뒤에서 1번이고 전공이 다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호동이가 베프다. 호동이가 얼마나 똑똑한 놈인지 몇 가지 에피소드를 말하고 싶다. 아마도 이 말로 호동이가 잡혀 갈까 봐 걱정이 되겠으나 너는 국립고 학생이었고 대한민국은 공소시효가 있으니 염려마라. 넌 사립고 학생이었으면 공소시효 풀렸으니 잡혀간다. 식사 끝나고 매점을 지나면 규모가 적지 않는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울타리가 있는데 이곳에서 호동이가 다리를 흔들흔들하고 있었다. 호동아! 뭐하냐?, 조용히 해라 그래서 지켜보고 있었더니 얼마 후 다리를 뒤로 힘차게 당기니까 큰 비단잉어가 뭍으로 튀어 올라 왔다. 순간 옷으로 휙 감싸더니 잡아 훈련장에서 삶아 먹었다. 나는 배가 고파도 붉은 색 잉어를 잡아 먹는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이 친구는 너무도 당연하다. 한 번은 훈련을 한참 하고 있는데 꿩이 날아와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졌다. 후배들이 들고와 동배형 꿩이 방금 떨어졌는데요. 삶을까요?, 아니다. 우리가 잡은 것도 아니고 지도 얼마나 억울하겠냐? 그러니 산에 묻어줘라 후배들은 그냥 삶아 먹자며 내 눈치를 보다가 산에 묻었다. 한참이 지나 어둑어둑해지자 호동이가 들어 왔다. 후배들이 호동이형! 오전에 꿩이 유리창을 받아 죽었어요 하며 달려들어 일렀다. 어디 있어?, 동배형이 묻어 주라해서 저기에 하며 산속을 가르치자 호동이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냐며 즉시 산에서 꿩을 파내어 삶아 먹었다. 또, 한 번은 호동이가 옷인지 포대인지 뭘 나한테 주더니 따라 오라고 했다. 어디 가냐? 물었더니 너 몸보신 안 한지 오래됐지 내가 오늘 몸보신 시켜줄께 하며 그냥 따라오라고 했다. 도서관 근처에 규모도 적지 않고 울타리도 꽤 높은 선생님이 키우는 토끼장이 있다. 갑자기 그 울타리를 뛰어 넘어 가더니 뭐 하냐? 선생님 오겠다. 그 쪽 동굴에서 이 쪽으로 토끼를 몰아야 내가 잡지 하며 울타리를 넘어와 토끼굴을 쑤셔라고 성화다. 나는 선생님 토끼를 잡을 용기도 없지만 울타리를 넘을 용기도 없다. 애초에 이런 일인 줄 알았으면 따라 오지도 않았다. 또 울타리는 내 키보다 높다. 망설이고 있는데 잡았다 하더니 토끼를 잡아 넘어 왔다. 동배야! 수고했다 하더니 토끼를 잡아 훈련실에서 후배들과 삶아 먹었다. 나보고 ‘수고 했다’ 하고는 주지도 않았다. 언젠가 선생님이 잡아 먹는 것을 봤는데 우리는 왜 안되냐며 당당히 잘 먹더라. 넌 천재다. 이런 천재는 잘 사나 모르겠다. 이 친구는 이런 일이 일상이다. 여차하면 동배야! 따라와 하면 그날은 사고치는 날이다. 나는 절친을 거부 할 수가 없어 항상 따라 다녔다. 한 번은 빈 교실로 데려갔다. 선배들이 졸업하여 교실이 비었는데 먼저 가저 가는 사람이 임자라며 삼각자를 챙겼다. 넌 뭐하냐 빨리 챙겨 그래서 나도 삼각자를 엄청 많이 챙겼다. 가져 와서는 뭘해야 할지 몰라 처치 곤란이었다. 국립고등학교라 그런지 교련 선생님과 기숙사 사감 선생님은 군복을 입고 허리에 권총도 차고 다녔다. 516 기념탑 뒤에 육사 출신 교련 선생님이 살았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학교에 오면 항상 찾아가 만나길 청했으나 문을 걸고 나오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70년대는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기공을 1년에 두 번씩 방문하기도 했다. 내가 다닐 때는 전두환 대통령도 우리 학교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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