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35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G전자는 연구원 여러 명을 풀어 나를 찾아 다녔단다. 시골에서 형님도 올라 오고 장난이 아니다. 삼성 친구들도 돌아가라고 성화여서 할 수 없이 G전자로 다시 들어 갔다. 김 본부장이 엄청 혼낼 줄 알았는데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자 만 했다. 이 분은 진짜 프로다. 모르긴 해도 그 일로 석준이 교수는 나를 다시 봤을 것이다. 말이 코치지 그냥 가만히 있는게 돕는 것이다. 대학에서도 학생들 가르치지 말고 그냥 가만히 밥만 축냈으면 한다. 평가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몇일 휴가를 다녀 오라 했다. 이 일을 좀 전의 그 일과 연결하면 약간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지난 번 부산기공을 갔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이제는 그곳을 갈 수가 없다. 친구들 말로는 정문과 후문에 내 사진을 붙여 놓고 학교 출입을 금지 시켰다. 그래서 시골로 가려 했는데 어떻게 만났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나 고등학교 동기 중 입시반이었던 준기를 만났다. 요즘처럼 휴대폰도 없던 시대에 그렇게 만난 것도 아이러니다. 기능훈련 하면서 특활생들끼리 가끔 해운대 백사장을 산책하곤 했다. 돌아올 때는 뒷문 앞의 분식집에 들렀는데 그 가계 사장은 나를 ‘미래의 대통령’이라 불렀다. 그래서 그곳을 가면 사람들은 항상 ‘미래의 대통령님 오신다’고 했다. 어쩜 찰라의 대통령을 한 번 해 본 것도 같다. 가계 딸이 근수형 하고 결혼 할 정도니 얼마나 자주 갔는지 알 수 있다. 처음으로 기능장려금(?) 이름이 같나? 암튼 기능 선수가 되면 학교에서 월 만원 정도의 장려금이 나왔다. 딱 한 번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졸업 할 때 준다. 나는 이 돈으로 라면땅이라는 것을 사서 지나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준기에게 주곤했다. 라면땅은 100원이나 하려나 하는 아주 싼 과자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를 받고 눈물을 글썽였다. 태어나 남에게 이유 없이 받은 첫 선물 같은 거라나! 처음 생긴 내 돈으로 분식집에서 라면 같은 것을 사먹을 여유는 없었지만 과자라는 것을 사서 그 친구에게 줬다. 장려금은 만원 정도였지만 나에게는 아주 큰 돈이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라면땅을 선물했다. 서로 시작은 다르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라고…, 준기는 대학 준비를 했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큰아버지 밑에서 컸는데 어렵게 공부해서 경상대 경영학과에 들어 갔다. 경상대 경영학과 과대표를 맡았는데 이도 참 아이러니다. 성격이 워낙 조용하여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기능올림픽으로 단련 됐지만 이 친구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그냥 돌아 갔나? 나를 경상대학으로 데려 갔는데 그곳에서 법학과 총학생회장을 만났다. 이 둘은 경남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화 운동권이다. 동배야 저것 좀 봐라, 나는 뭘 말하는지 모른다. 다만 글씨가 저게 뭐냐 비뚤 삐뚤…,, 못 읽을 정도로 현수막들이 엉망이다. ‘독제 타도! 전두환 개끼새!’ 보다 휠씬 심한 내용들이다. 그래서 너를 이리 데려왔다, 동배씨! 저런 글 잘 쓴다면서요. 그래서 부탁 좀 하려고 하는데요, 아! 나는 잠깐 휴가 나온거라 곧 돌아가야 합니다. 저런 글을 쓰려면 계속 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대학생도 아니고…,, 나라가 이 모양인데 국가대표가 되면 뭐합니까?, 나는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릅니다. 저런 글을 쓰더라도 뭘 알고 쓰야지? 나는 기능올림픽 밖에 모릅니다., 민주주의가 없는데 어떻게 기능올림픽이 있습니까?, 그 민주주의라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 온 겁니까? 우리나라 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