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하는 물체에서 물리량인 각운동량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각운동량 보존 법칙'은 물리현상의 근본적인 원리 중 하나지만 그동안 양자역학을 따르는 미시세계에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거시세계로 각운동량이 어떻게 보존되어 전달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 연구팀이 미시세계 입자의 변화가 거시세계 물체의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이종석 물리·광과학과 교수팀이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 미시세계의 변화가 거시세계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직접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1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공개됐다.
각운동량 보존 법칙은 에너지 보존 법칙, 운동량 보존 법칙과 함께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세 가지 법칙 중 하나다.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회전할 때 팔을 안쪽으로 모으면 회전 중심으로 몸이 가까워지며 회전 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원리다. 각운동량 보존 법칙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거시세계뿐 아니라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는 작은 규모의 미시세계에도 적용된다.
1915년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반더르 요하네스 더 하스는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로 각운동량이 보존되며 전달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스핀은 미시세계에서 입자의 고유한 각운동량을 의미하며 방향성을 띤다. 자성을 띤 물질 내에 무작위 방향으로 있던 스핀 방향이 정렬되면 스핀의 각운동량을 보존하기 위해 거시세계의 자성 물체가 회전하는 현상이 '아인슈타인-더 하스 효과'다.
측정 기술의 한계로 아인슈타인-더 하스 효과가 발생하는 정확한 원리는 100년 넘게 밝혀지지 않았다. 2022년 독일 콘스탄츠대 연구팀이 고체에서 스핀이 고체가 이룬 격자의 집단적인 움직임을 입자처럼 표현한 '포논(phonon)'에 각운동량을 전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때 각운동량을 전달받은 포논인 '카이랄 포논'이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이어주는 각운동량 전달 매개체로 여겨졌다.
하지만 카이랄 포논이 생성되는 시간은 수 피코초(ps), 아인슈타인-더 하스 효과가 발생하는 시간은 수 밀리초(ms)다. 피코초는 1조분의 1초, 밀리초는 1000분의 1초로 두 현상 사이에 시간적 차이가 매우 커 그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연구팀은 먼저 자성 물질 루테륨산 스트론튬(SrRuO3)과 비자성 물질 타이타늄산 스트론튬(SrTiO3)을 결합한 격자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자성 물질인 SrRuO3에 높은 에너지를 가진 빛을 조사하자 스핀이 정렬되며 물질의 자성이 바뀌고 열에너지를 가진 카이랄 열포논이 생성됐다. 카이랄 열포논은 비자성 물질인 SrTiO3으로 전달돼 거시세계 물체가 회전할 수 있도록 하는 자기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연구팀은 물질의 자성 특성을 펨토초(fs, 1000조분의 1초) 단위로 추적할 수 있는 초강력 레이저를 활용해 전체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고체 입자의 스핀 변화로 생긴 각운동량 변화가 카이랄 열포논을 통해 인접한 물질로 전달되며 물체의 회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일어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종석 교수는 "포논이 자기 수송에 직접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결과"라며 "스핀 공학과 포논 공학의 접점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자기 및 열 기능성이 결합한 다기능성 나노 소자 개발에 대한 중요한 디딤돌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참고 자료>
- doi.org/10.1038/s41565-024-01719-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