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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마다 다른 규제… 대마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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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마다 다른 규제… 대마의 두 얼굴

2024.07.20 08: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년 전 아시아 최초로 대마를 마약류에서 제외한 태국이 지난 6월 대마를 다시 마약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은 엑스터시와 같이 매우 위험한 약물로 분류됐던 대마를 의사의 처방이 있으면 복용할 수 있는 약물로 재분류할 방침이다. '의학적 효용'이냐, '남용의 위험성'이냐 찬반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한국의 상황을 들여다봤다.


"이것이 바로 의료용 헴프(Hemp)입니다. 대마에서 추출한 가루죠."


6월 10일 KIST 강릉 분원 천연물연구소에서 만난 함정엽 천연물소재연구센터 책임연구원(네오켄바이오 대표)은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흰 가루를 보여주며 말했다. 함 책임연구원은 "대마와 헴프(Hemp)는 전혀 다른 물질"이라며 운을 뗐다.


● 두 가지 성분, 두 가지 얼굴을 만들다


대마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화학물질을 가지고 있다.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과 칸나비디올(CBD)이다. THC는 정신 활성 성분이다.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고 취한 듯한 상태로 이끈다.

 

이에 반해 CBD는 정신 활성 효과가 거의 없다. 이런 차이 때문에 미국은 THC가 0.3% 이하로 포함된 대마, 대마 품종, 파생물 및 추출물 등은 헴프로 그 외의 것들은 마리화나로 부른다. THC 성분이 0.3% 이하가 되도록 품종 개량된 대마, THC가 0.3% 이하인 대마 오일, 대마에서 추출한 CBD 등이 모두 헴프인 셈이다.


THC와 CBD가 각각 다른 효과를 내는 이유는 두 물질의 작용기전을 파악하면 알 수 있다. 두 물질은 엔도칸나비노이드 시스템(ECS)을 통해 우리 몸에 작용한다. ECS는 에너지 균형이나 음식 섭취, 지질과 당 대사를 조절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엔도칸나비노이드, 칸나비노이드 수용체, 효소 이 세 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일어난다.


먼저 엔도칸나비노이드는 몸속에서 합성되는 물질로 칸나비노이드 수용체인 CB1, CB2와 결합해 기분이나 통증, 식욕, 면역 반응 등을 조절한다.

 

함 책임연구원은 "우리 몸에서 엔도칸나비노이드가 만들어지면 수용체와 만나 신경에 영향을 미치는데 보통 식욕이 올라가거나 통증이 억제되는 등의 반응이 나타난다"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효소가 엔도칸나비노이드를 분해하며 일련의 반응이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다시 대마의 화학물질 유형으로 돌아가 보자. THC는 CB1, CB2 수용체와 직접 결합해 작용한다. 그중 CB1과 더 강하게 결합하는데 CB1은 주로 뇌에, CB2는 말초 신경에 위치한다. 함 책임연구원은 "THC가 뇌 쪽에 위치한 CB1과 강하게 결합하면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돼 환각, 기억력 저하, 기분 변화 등 향정신성 작용을 한다"고 설명했다.

 

THC는 뇌에서 주로 작용하기 때문에 대마를 장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단기 기억 상실이나 정신적 증상 등의 큰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반해 CBD는 CB1, CB2와 직접 결합하지 않는다. 대신 CBD는 엔도칸나비노이드의 일종인 아난다마이드를 소포체로 옮기는 효소의 작용을 억제해 세포 내에 아난다마이드가 더 오래 머물도록 한다. 아난다마이드가 CB1, CB2와 결합해 작용하는 과정을 더 오래지속해 통증을 완화하거나 염증을 완화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 고순도 CBD…소아 뇌전증 치료제로 주목받다


쾌감이나 중독성과는 무관한 CBD는 항암이나 항발작, 항불안 치료에 유용하다는 연구가 여럿 있다. 2018년 미국은 CBD 약물을 뇌전증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을 승인했다.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던 환아가 고순도의 CBD를 복용하면 발작 증상이 즉시 호전된다.

 

현재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CBD 뇌전증 치료제는 영국의 제약회사 GW파마슈티컬스의 에피디올렉스가 유일하다. 한국에서 에피디올렉스를 구하기 위해선 꽤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환자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취급 승인을 신청하면 식약처는 이를 확인한 후에 환자에게는 승인서를, 한국희귀·필수의 약품센터(이하 센터)에는 취급 승인서를 보낸다. 환자는 식약처에서 받은 승인서와 원하는 약품의 수입 신청서를 센터에 다시 보낸다. 센터는 이 수입 신청서를 확인한 뒤 약품 수입을진행한다. 마지막으로 환자가 센터에서 수입한약을 수령한다. 이 모든 과정은 못 해도 수일이 걸린다.


6월 4일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만난 김세웅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CBD는 마약과 관계가 없는 물질임에도 한국의 마약류 분류에 따르면 CBD가 마약으로 분류된다"며 "이런 분류 때문에 약이 필요한 환자도 엄격한 관리 아래에서 약을 제때 구하지못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THC의 함량과는 관계없이 대마와 그 수지, CBD, THC를 모두 규제하기 때문이다.

 

대마의 THC 성분이 신경세포에 작용하는 과정 . 과학동아 제공
대마의 THC 성분이 신경세포에 작용하는 과정 . 과학동아 제공

이는 환자의 경제적 부담으로도 이어진다. "에피디올렉스는 한 병에 약 140만 원 정도입니다. 뇌전증을 앓는 사람은 1년에 20병이 필요하죠. 보험이 적용된다고 해도 국가나 개인에게 금액적 부담이 매우 큽니다. 사실 에피디올렉스는 한국에 있는 재료만으로도 값싸게 만들 수 있는 약이에요. CBD에 씨드오일을 섞은 것뿐이니까요."

 

대마에서 추출한 의료용 헴프 CBD.  네오켄바이오 제공
대마에서 추출한 의료용 헴프 CBD.  네오켄바이오 제공

한국은 2020년 경북 안동 지역을 헴프 규제 자유구역특구로 지정하고 산업용 헴프를 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규제자유구역의 특권은 거기까지였다. 만들어둔 CBD 추출물을 팔 수도 다른 의약품 연구로 발전시킬 수도 없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고농도 CBD 추출기술은 해외 어느 곳보다도 높은 수준"이라며 "해외에서 CBD 추출물을 구매하겠다고 해도 한국의 규제로 인해 팔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 마리화나와 의료용 헴프, 나라마다 규제 제각각인 이유


한국은 1975년 연예계를 강타한 대마초 파동 이후 1976년 마약류에 관한 법을 재정비했다. 오피오이드, 코카인, 대마초, 암페타민 및 메스 암페타민으로 분류되던 마약류를 마약, 대마,향정신성의약품,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마는 한국에서 마약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물질이 됐다. 해외에서는 수십 년 동안 연구가 깊이 있게 진행되며 THC와 CBD의 화학적 성질, 각각이 동물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졌지만 한국에서 대마는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다.

 

 

ㅇ 미국의 통제물질법에 따른 약물 분류법- 2024년 5월 16일 미국 행정부는 마리화나의 규제 등급을 스케줄 1에서 스케줄 3으로 낮추는 규제 완화 검토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마리화나는 1970년 통제물질법이 생긴 이후 계속 스케줄 1에 속했다.
ㅇ 미국의 통제물질법에 따른 약물 분류법- 2024년 5월 16일 미국 행정부는 마리화나의 규제 등급을 스케줄 1에서 스케줄 3으로 낮추는 규제 완화 검토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마리화나는 1970년 통제물질법이 생긴 이후 계속 스케줄 1에 속했다.

미국, 일본, 태국 등은 THC 성분이 들어있는 마리화나와 THC 성분이 거의 없는 헴프, 그리고 의료 목적으로만 쓰이는 의료용 헴프를 구분하고 각각의 규제를 재정비하고 있다. 헴프가 합법인 미국은 마리화나 규제 완화의 움직임까지 보인다.

 

미국은 1970년부터 통제물질법에 따라 약물과 화학물질을 스케줄 1부터 5까지 등급으로 나눠 규제해 왔다. 스케줄 1은 남용 가능성이 크고 의료용 사용이 승인되지 않은 물질이고 스케줄 5로 갈수록 남용 가능성이 작고 의학적 사용을 승인할 수 있는 물질이다.


마리화나는 1970년 통제물질법이 생긴 이후로 줄곧 스케줄 1에 속했다. 그런데 지난 5월 16일 미국 행정부는 마리화나의 규제 등급을 스케줄 3으로 낮추는 규제 완화 검토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근거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최신 발표였다. 


FDA는 8가지 약물 분석 기준에 따라 조사한 결과 마리화나가 스케줄 1과 2보다 남용 가능성이 작고 의존성이 낮았다고 밝혔다. 또한 FDA는 항암 치료 시 발생하는 구토, 식욕부진, 통증 관리에 의학적인 효과를 보인다고 덧붙였다.규제 완화가 실제로 이뤄지면 미국에서 마리화나는 진통제나 기침 억제제로 사용되는 코데인, 수술 전후의 마취제로 사용되는 케타민 등과 같은 통제 물질로 취급된다. 

 

경북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에 있는 스마트팜에서 의료용 헴프를 재배하고 있다. 
경북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에 있는 스마트팜에서 의료용 헴프를 재배하고 있다. 

한편 2022년 아시아 최초로 마리화나의 오락적 사용을 합법화한 태국은 마리화나를 오락용 사용과 의료용 사용으로 나눠 규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스레타 타비신 태국 총리는 2024년 말까지 오락용 마리화나를 다시 마약류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사진은 지난 6월 9일 오락용 마리화나를 다시 불법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 모습이다.연합뉴스 제공
스레타 타비신 태국 총리는 2024년 말까지 오락용 마리화나를 다시 마약류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사진은 지난 6월 9일 오락용 마리화나를 다시 불법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 모습이다.

스레타 타비신 태국 총리는 지난 6월 12일 청소년 사용 증가, 질 낮은 품질의 대마 유통 등 여러 문제를 이유로 의료용 마리화나는 합법으로 유지하되 오락용 마리화나는 다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마리화나가 아닌 헴프는 원래부터 합법이었다.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전문가들은 한국도 환자에게 도움이 될 의료용 헴프에 대한 규제 완화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마리화나 합법화를 논하자는 게 아니라고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과거 일본은 대마에 대해 한국만큼 보수적인 나라였다. 그런 일본이 최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2023년 12월 6일 75년 만에 대마 관련법을 대폭 개정했다. 일본은 의료용 헴프를 합법화하면서 그 외 대마 사용에 대한 처벌은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존엔 '대마 소지죄'만 있고 처벌도 약했지만 개정된 법에는 '대마 사용죄'가 추가돼 의료용 헴프 외에 대마를 사용할 시에 처벌이 징역 7년까지 가능하다.


함 책임연구원은 "이 같은 일본의 움직임은 의료용 헴프 시장이 세계적으로 더욱 커지는 분위기를 고려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마 재배법 개정 카드까지 만지고 있는 일본이 이제부터 거대한 헴프 시장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용 헴프 시장은 2030년 168억 2000만 달러(약2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일본보다 앞선 2022년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의료용 헴프가 포함된 의약품을 국내에서 제조하고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2024년까지 개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과거에도 규제 완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국회에서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함 책임연구원의 마지막 말에선 기대와 책임감이 느껴졌다. 


"국민 보건을 위해 의료용 헴프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고 THC와 마리화나에 대한 규제는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려는 대마는 환자에게 필요한 약이지 국민보건을 위협하는 마약이 아니니까요." 


※관련기사
과학동아 7월, 금단의 마약 약이 될 수 있을까 PART 1. 국가마다 다른 규제 대마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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