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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아빠의 교육실험]코딩 교육, 과연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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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아빠의 교육실험]코딩 교육, 과연 필요한가?

2019.01.21 14:00

김기산 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아주 잠시 신문사 기자일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20여년간 줄곧 대기업에서 디바이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해왔다. 수많은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개발자 모습이 무엇일까 오래 고민했다. 정부가 소프트웨어 강국을 표방하고 기업 경영자들이 소프트웨어 인재를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우리 소프트웨어 교육은 철학이 부재하고 현실과 미래를 모두 담아내지도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필자는 코딩은  우리 아이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실패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코딩 교육 만능주의가 판치는 상황에서 아이와 함께 코딩을 하며 창의력과 실험정신을 키우는 대안으로서의 코딩 학습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육아휴직 동안 윤슬이 코딩 교육을 해보는 것은 어때?”

 

휴직을 앞둔 어느날 저녁, 아무렇지도 않게 아내가 말을 건냈다.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었다. 코딩 교육 의무화를 코 앞에 둔 지금, 소프트웨어 개발이 그저 밥벌이 수단뿐만이 아니라 소홀했던 육아에 대한 면죄부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파트 상가에는 어린이 코딩 교육 학원이 이미 성업 중이다. 휴직을 통해 시간적 자원도 확보했다. 다만, 주저함이 컸을 뿐이다. 코딩 교육이 내 아이에게 어떤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 내 자식이 개발자라는 직업에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워지는 것은 무척 꺼려지는 일이다. 지금은 경상도 어디선가 식당을 하고 있다는 ‘Mdir’ 개발자가 떠올랐다.(Mdir 프로그램은 윈도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 운영체제(OS)인 도스에서 쓰이던 전설적인 파일 및 폴더 관리 프로그램이다.) 먼저 나부터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전설의 DOS 프로그램 ‘Mdir’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전설의 DOS 프로그램 ‘Mdir’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포털에서 ‘어린이 코딩 교육’으로 검색해보았다. 갖가지 교육 학원의 검색광고가 페이지 상단을 차지했다. 아이들에게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필수적인 창의력을 발굴하잔다. 예상 못한 바 아니다. 어찌 됐던 이미 코딩 교육을 원하는 사람은 생겨났다. 시장은 그들의 구매력을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는다.  

 

그 아래로 “경력단절여성, 계속되는 광탈에 지쳤다면?”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도 눈에 띄었다. ‘코딩지도사’ 양성 과정에 대한 광고다. 코딩교육 의무화 이후 수요가 폭발할 직종이라는 설명이다. 6주만에 단기속성 코스를 밟으면 비전공자인 당신도 시장의 구매력을 나눠가질 자격이 생긴다고 유혹한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4차 산업 혁명에 적합한 창의력과 6주 단기속성 코스는 함께하기 어렵다. 기시감이 느껴졌다. IT 거품 시절, 시장은 단기속성 자바 개발자들을 양산했고 소모했다. 그리고는 거품이 꺼졌다. 그 많은 개발자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린이 코딩 교육’에 대해 유명 포털에서 검색 결과. 한두 단계만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각종 자극적인 문구의 광고와 강사 양성을 위한 단기 교육 과정에 대한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 코딩 교육’에 대해 유명 포털에서 검색 결과. 한두 단계만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각종 자극적인 문구의 광고와 강사 양성을 위한 단기 교육 과정에 대한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보다 정리된 정보를 찾기 위해 도서관과 서점을 찾았다. 코딩 교육 관련 서적들의 머리말들을 훑었다.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찬양 일색이다. 그러면서 당신의 아이가 시대에 뒤처지게 놓아 둘 것이냐는 협박도 빼놓지 않는다. “누군가 차고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있을까 두렵다”는 빌 게이츠의 인터뷰도 어떤 책에서는 인용됐다. 바로 잡스를 두고 한 얘기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잡스는 교차로 프리젠테이션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낯선 인문학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다들 4차 산업 혁명에 필요한 또다른 잡스를 양성하자며 코딩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바쁘다. 죽은 잡스가 산 초딩들을 컴퓨터 앞으로 내모는 형국이다.

 

정책 입안자의 생각도 궁금해졌다. 민주당 민주연구원의 간담회 '소프트웨어 교육 현황과 개선 방향' 자료를 구했다. 코딩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발제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세계 각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을 위해서 경쟁하고 있으나 국내 현실은 해외 주요 국가 대비 매우 뒤쳐진 상태이므로 디지털 경제 시대의 세계 흐름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뭔가 그럴싸하지만 교육 과정으로서의 코딩 교육 의무화와 연관은 여전히 찾기 어려웠다. 아니,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창의력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생겼다. 여전히 값싼 개발자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닐까.

 

민주연구원 주최 ′소프트웨어 교육 현황과 개선 방향′ 간담회 발표 자료의 일부. 4차 산업혁명과 초등 코딩교육의 연관성을 찾아 내기 어렵다.
민주연구원 주최 '소프트웨어 교육 현황과 개선 방향' 간담회 발표 자료의 일부. 4차 산업혁명과 초등 코딩교육의 연관성을 찾아 내기 어렵다.

교육과정 개정안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난생처음 ‘국가교육과정정보센터’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80호)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및 교과 교육과정” 중 정보과 교육 과정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자료는 코딩 교육을 포함하는 정보 교과는 “컴퓨터과학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바탕으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컴퓨팅 사고력 및 협력적 문제해결력을 기르기 위한 교과”로 정의했다. 용어 하나하나 모두 학적 개념에 대한 엄밀한 합의가 필요한 것들이다. 학부부터 박사까지, 거기에 개발자로서 모두 25년 가까이 지내왔지만 ‘컴퓨터과학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쉽게 정리하기 어렵다. ‘컴퓨팅 사고력’은 더욱 모호하다. 추상화와 모델링, 알고리즘을 활용한 문제 해결력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수학적 사고력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태생적으로 수학의 분과 학문으로 컴퓨터과학은 시작됐다. ‘컴퓨팅 사고력’이란 수학적 사고력과 동치일 수밖에 없다. 바꿔말하면 수학 교육만 잘 이뤄져도 ‘컴퓨터 사고력’ 함양이라는 코딩 교육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코딩 교육이 필요하다. 유난 떨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교육 시수도 문제다. 초등 5,6학년 각각 연간 17시간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다. 일주일에 1시간 남짓의 교육으로 ‘컴퓨팅 사고력’이 길러질 수 있다는 것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주 1시간 교육으로 모두 잡스가 될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정책 입안자가 바보는 아닐 것이다. 학교 체육 시간에 축구를 배운다고 모두가 손흥민이 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음미체 교육이 전문 운동선수 혹은 예술가 양성이 그 목적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동의한다. 4차 산업 혁명의 창의력 양성이라는 코딩 교육 의무화 목적이 논리적 비약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도 여전히 코딩 교육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어렵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코딩 교육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있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모든 경우를 확인하여 증명하기에는 사회의 복잡도가 엄청나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소위 컴퓨터 과학에서 말하는 NP 문제(Non-Deterministic Polynomial Time Problem)다. 쉽게 말해 어려운 문제란 것이다. 판단은 잠시 유보하고자 한다. 대신 일종의 실험을 해보고자 한다. 대상은 나의 딸, 그리고 나 자신이다. 언제까지 지속할지 예측할 수 없다. 아이가 원하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비록 4차 산업 혁명의 창의력은 찾지 못하더라도 다른 면에서 머리카락 한올만큼의 긍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실험은 실패가 아닐 것이다.     

 

 

 

※필자소개

김기산.  기업에서 IT 디바이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20년 가까이 리눅스 개발자로 지내다가 뜻밖의 계기로 육아휴직을 냈다. 지난해 한층 강화된 '아빠의 달' 제도의 수혜자로, 9살 아이와 스킨십을 늘리며 복지 확대의 긍정적인 면을 몸소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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