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바뀔 한국생활, 그 슬픈 예감[폴 카버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9일 2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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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email protected]

“식사하셨어요?”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지인을 만나서 나누는 대화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질문인 것 같다.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수많은 가이드북들에 나와 있는 내용이기도 한데 굳이 책을 통하지 않고도 한국에 1주 정도만 있어도 금방 체험하게 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렇게 음식이라는 주제를 통해 대화가 시작되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영국은 날씨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영국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뭘 하기 참 좋은 날씨네요(Nice weather for it)”라고 인사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무엇”을 하기 좋다는 것인지 특정하기는 힘들다.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물론 이 얘기를 들으면 영국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이 하루라도 있는지 의심하시는 한국분들도 꽤 있으실 것 같다. 영국을 여행해 보신 한국분들 중에 영국에서 비를 맞지 않고 오신 분들이 단 하나도 없는 정도이니 말이다. 바야흐로 한국은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돼 그런지 몇몇 분들이 날씨가 영국과 비슷해져서 영국에 있는 느낌일 듯하다고 한마디씩 하시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국에 연중 비가 자주 내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름에 내리는 폭우를 의미하는 장마 ‘monsoon’이라는 단어는 아랍어에서 기원한 외래어이고 이것은 영국에서 내리는 비와는 성질이 확연히 다르다.

통계 수치는 사실상 귀에 걸면 귀걸이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의 단적인 예다. 만약 여러분이 영국이 비가 많이 내리는 나라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다면 나는 한국이 영국보다 더 강수량이 많은 나라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반박할 수 있지만, 사실상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양측의 주장이 모두 맞을 수 있다. 한국은 연간 비 오는 날이 평균 106일인 반면 영국은 159일로 한국보다는 비 오는 날이 더 많지만, 강수량을 비교해보면 한국이 1440mm로 영국의 1100mm보다 30%가량 더 많다. 영어에는 비 오는 날을 대비하여 목돈 마련하기(saving for a rainy day)라는 표현이 있는데, 두 나라의 목돈 마련 상황을 비교해 보면 연간 강수량을 기준으로 할지, 연간 강수일을 기준으로 할지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연간 강수일을 기준으로 본다면, 영국에서는 평균적으로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비가 내리는지라, 영국이 비와 좀 더 친근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중절모에 레인코트를 입고 우산을 들고 다니는 영국 신사의 이미지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영국의 비는 시원하게 떨어지는 게 아니고 찔끔찔끔 질척거리며 내리는 스타일이라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조차 귀찮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영국의 이런 비와의 길고 긴 인연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멕시코만류의 영향으로 시원한 여름과 따뜻한 겨울을 통과하면서 녹색의 무성한 숲이 우거진 영국의 오랜 이미지도 바뀌었다. 한 예로, 포도나무는 영국의 축축한 겨울에 살아남지 못하는 식물이었지만 이제는 영국 남부지방에서 무성하게 자라 영국의 포도주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기후학자들은 영국이 사계절이 구별되지만 계절별 온도 차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온화한 기후에서 지중해 국가에 흔히 나타나는 뜨겁고 건조한 기후로 점점 변화해 가고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영국의 농업생산품과 식재료가 지중해식으로 바뀌면서 영국의 다소 소박한 메뉴들이 지중해 스타일로 업그레이드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인 듯하다.

한국에 20년 동안 살면서 한국도 기후변화가 분명히 왔다는 생각이 매년 더 강하게 든다. 물론 여전히 한국은 뚜렷한 사계절이 있지만, 겨울은 왠지 점점 더 따뜻해지는 느낌이고 봄과 가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으며 여름의 장맛비는 점점 더 거세지는 느낌이다. 날씨가 이렇게 달라지니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 축제나 벚꽃 축제 같은 한국문화를 대표하던 유명한 이벤트나 여행 다큐, 드라마의 배경들이 사라지거나 바뀌게 될 염려가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점점 더 따뜻해지는 겨울 날씨 때문에 우리가 즐겨 하던 겨울스포츠도 이제 점점 희귀한 일이 돼 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전엔 싸고 맛있게 먹던 사과 가격이 올라 자주 사먹지 못하는 과일이 될 것 같아 많이 안타깝기도 하다.

기후학자들은 이러한 날씨의 변화로 우리의 생활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가 환경정책을 적극적으로 펴 나가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농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과 이로 인해 우리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달라져 갈지를 추측하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산을 들고 레인코트에 중절모를 쓴 영국 신사의 이미지가 반바지 차림의 선글라스를 쓴 해변의 아저씨로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단순한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기후변화#한국#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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