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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은주]확증편향 사회, “진짜 맞아?” 되묻는 ‘넛지’ 필요

입력 | 2024-06-05 23:15:00

소셜미디어 환경, 허위정보 식별 어려워
정확성 물어보기만 해도 진위 분별 향상
허위정보 공유할 가능성 낮아지는 효과



이은주 객원논술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올해의 인물’이나 ‘올해의 사건’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지만, 주요 사전 출판사들은 매년 말 ‘올해의 단어’를 발표한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메리엄웹스터 사전이 2023년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진실한(authentic)’이었다.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치인의 발언, 본래 모습과는 딴판으로 포장된 소셜 미디어상의 이미지, 그럴듯하게 합성된 사진과 동영상이 얼마나 넘쳐나길래, 도대체 진실하다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사람들이 해당 단어를 검색하는 빈도가 급증했을까? 이런 상황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사정이 아니라는 것은 그다지 위안이 되지 못한다.

소통의 진실성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post-truth)’을 올해의 단어로 공표하면서 “여론을 형성함에 있어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 혹은 개인적 신념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을 지칭”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2017년에는 ‘가짜뉴스(fake news)’가 콜린스 사전의 올해의 단어라는 영예를 차지했고, 2018년에는 ‘오정보(misinformation)’가 그 계보를 이었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이 그럴듯하지만 사실과 다른, 혹은 아예 터무니없는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이 주요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다보스포럼은 2024년 발간한 ‘글로벌 위험 보고서(Global Risks Report)’에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단기 위협으로 오정보와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 문제를 꼽았다.

허위조작정보와 관련해서 빠지지 않는 것이 소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문제다. 사람들은 기존 신념, 가치, 의견 등에 부합하는 정보를 선호하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편향은 허위조작정보와 결합하여 진영 간 양극화와 대립을 부추긴다. 이처럼 우리가 가진 인지적·동기적 편향을 깨닫는 것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완화 혹은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확증편향을 가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자칫 허위정보를 너무도 순순히,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신에게 발행하는 셀프 면죄부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확증편향은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적 동기에서 기인한 것인데, 우리는 이와 더불어 정확성을 추구하는 동기 또한 가지고 있다. 따라서 초지일관 변함없는 태도와 견해를 유지하고자 하는 동기와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정확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동기 중 어떤 동기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정보를 평가하고 반응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현실에서 허위정보를 주로 접하는 창구인 소셜 미디어 환경은 이용자들이 정보의 정확성 외에 다른 요인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허위정보를 식별하기가 더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관련 없는 뉴스 헤드라인을 보여주고 그것이 얼마나 정확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등의 방식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정보의 정확성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옆구리를 한 번 쿡 찔러주기만(nudge) 해도, 이들이 허위정보를 공유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다수의 연구결과가 있다. 필자가 국제학술지 디지털 저널리즘(Digital Journalism)에 출판한 연구에서도 이전에 가짜뉴스를 접한 적이 있는지, 얼마나 자주, 어느 채널을 통해 접했는지 물었을 경우 사람들이 이후 제시된 정보의 진위를 더 잘 분별하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정확성 ‘넛지’의 효과가 개인의 정파성에 따라 달라지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최근 국제학술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출판된 논문에 따르면 좌우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정확성 동기를 높여주는 지시문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허위정보를 공유할 의향이 줄어들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전 연구에서 서로 상반되는 결론을 내린 바 있는 두 연구팀이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연구진의 확증편향이 작동할 여지를 자발적·선제적으로 차단했다는 점이다.

믿고 싶은 사실만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별다른 근거 없이 부정하는 것 역시 확증편향의 발현이다.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물론 믿기 힘들 정도로 낮긴 하지만, 이를 여론 조작 시도라고 매도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거짓과 왜곡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진실이 승리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매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우리 각자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챙겨 볼 일이다.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므로.



이은주 객원논술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