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사교육 불평등이 심화되며 상위권 대학 진학이 사실상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거주지역’에 좌우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와 함께 신입생을 지역별 학생 수에 비례해 뽑아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도 제시했다. 교육이라는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지면서 수도권 집중·저출산 문제가 심화되고,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서울·지방 서울대 진학률 격차의 92%, 거주지역 효과
2018년 서울대 진학생 지역별 분포를 살펴보면 서울 출신의 일반고 졸업생은 전국 졸업생의 15.6%였지만, 서울대 진학생 중에서는 32.3%를 차지했다. 서울의 강남·서초·송파구 등을 묶은 일명 ‘강남 3구’ 출신의 경우 졸업생 비중은 전국 졸업생의 3.6%였지만 서울대 진학생 중 12%에 달했다. 서울과 비(非)서울 간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 올해 서울대 진학생 중 서울 출신 비중은 37.2%로 2018년(32.3%) 대비 4.9%포인트 늘었다. 지역 균형 선발제에도 불구하고 읍·면 지역 출신은 13.4%에 불과하다.
한은은 27일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이 같은 격차의 원인으로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 등을 포괄한 ‘거주지역 효과’를 지목했다. 한은은 실제로 자녀 잠재력 외 경제력이나 지역 등이 진학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 분석했다. 전국 시군구를 서울과 비서울로 나누고 학생의 잠재력 순위를 기준으로 2018년도 서울대 진학률을 다시 산출해 본 것이다. 그 결과 서울의 잠재력 기준 가상 진학률(0.44%)은 비서울 지역(0.40%)보다 겨우 0.04%포인트 높았다. 하지만 실제 2018년 서울대 진학률은 서울(0.85%)이 비서울(0.33%)을 월등히 웃돈다. 한은은 잠재력에 따른 격차(0.04%포인트)는 실제 격차(0.52%포인트)의 8% 수준이라며 나머지 92%가 거주지역 효과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보고서는 “서울 내에서도 강남·서초구는 소득 수준이 비슷한 지역보다도 진학률이 훨씬 높다”라며 “부모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학원 인프라 등 사교육 환경의 차이가 서울-비서울 간 진학률 격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상위권 대학,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해야”
한은은 이렇듯 거주지역에 따른 사교육 격차가 대학 진학률 차이로 이어지면서 계층 간 분화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중심지 거주 등으로 인해 고소득층 학생이 상위권대 입시에서 자신의 잠재력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이는 저출산 등 여타 한국의 고질적인 사회 문제에도 연결돼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정종우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과장은 “대입 과열로 인한 수도권 인구 집중, 그로 인한 주택 가격 상승, 젊은 세대의 저출산이나 만혼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한은이 출산과 혼인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교육 및 양육비용 부담(44%), 취업 및 생활 안정 여건 미흡(15.0%) 등 경제적 요인에 따른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입시 문제 해결을 위해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울대 등 일부 대학에서 실시하는 지역균형선발 방식을 모집 정원 전체로 확대 적용하자는 것이다. 정 과장은 “서울 쏠림 현상을 막고, 교육비와 서울 주택가격 상승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서울 출신 학생 역차별이나 지방의 고소득층만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립대학이 도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가치와도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타당한 처방책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한은이 최근 논쟁적인 이슈 제기를 이어가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한은이 제기했던 돌봄 서비스 최저임금 차등 지급이나, 이번 대입 관련 이슈 제기는 기획재정부나 교육부 등 정부 부처의 역할을 간섭하고 나서는 것”이라며 “한은이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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