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 인간의 사고 과정이 합리성을 추구하고 주어진 정보에 근거해서 논리적인 결론을 추구한다는 ‘순수한 과학자(Naive Scientist) 관점’이 한때 지배하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인간의 인지적 판단 능력은 여러모로 제한적이어서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그런 결론을 굳이 추구하지도 않고 자기가 믿고 싶은 비합리적 결론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믿으며 살 수 있다는 관점이 더 우세하다.
어쩌면 이런 인간의 본성을 잘 알기에 법률은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한번 빠지면 극복하기 너무나 힘든 착각들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들을 해놓았다. 무죄 추정의 원칙, 합리적 의심의 기준 등. 사법 판단에는 크게 두 가지 오류가 있다.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처벌 오류와 진범을 놓치는 무처벌 오류. 당연히 둘 다 피하고 싶다. 죄 없는 사람이 처벌받으면 절대 안 되지만, 동시에 나쁜 놈은 꼭 잡아야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둘은 상충관계(trade-off)이고, 하나를 줄이고 싶으면 다른 하나를 감수해야 한다. 법은 명확하다. 무처벌 오류를 감수하더라도 처벌 오류를 줄이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아홉 명의 도둑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면 안 된다. 그래야 죄를 짓지 않은 나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은 무처벌 오류와 처벌 오류 둘 다 똑같이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떤 오류를 더 피하고 싶냐는 질문에 거의 50 대 50으로 대답한다. 반면에 경찰, 검사, 판사는 다르다. 정확히 일반인<경찰<검사<판사의 순서로 처벌 오류를 더 강하게 피하려 한다. 그러니 일반인은 분명히 범인인 거 같은데, 그 모두가 경찰에 잡혀가지 않고, 수사받은 모든 사람이 입건·기소되지 않고, 기소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정확하게 법의 원칙대로 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 검사, 판사들은 수많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각자의 역할에 맞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은 대부분은 별걱정 없이 살고 있다.
이런 일반 국민과 사법 시스템의 차이는 국민적 공분을 사는 사건에서 유독 문제를 일으킨다. 비극적이고 애통한 사건을 접하면 국민은 분노한다. 그래서 그 사건을 일으킨 나쁜 누군가를 꼭 잡고 싶고 책임지게 만들어서 정의가 실현되길 바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무처벌 오류를 더 피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사법 시스템은 오히려 반대여야 한다. 왜? 그런 국민적 공분을 사는 사건에서 나쁜 놈으로 찍히면, 그래서 수사 입건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진짜 끝장나니까. 경찰, 검사, 판사도 범인을 꼭 잡아 단죄하고 싶은 마음은 같겠지만, 그럴수록 처벌 오류가 더 무서워야 한다. 꼭 누군가를 잡겠다는 의지와 집요함만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의 기준을 높이는 완고함과 신중함이 더 필요해진다. 그러니 국민적 공분을 사는 사건에서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딱 들어맞는 사법적 판단을 본다면, 우리는 환호하기보다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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