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장을 다녀온 베트남 하노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집값이었다. 고급 아파트와 빌라, 국제학교, 대형 업무 지구들이 몰려 ‘하노이의 강남’이라 불리는 신흥 부촌 ‘스타레이크 시티’의 집값은 한국의 웬만한 서울 외곽 아파트 수준에 못지않았다.
한 아파트의 20평형대 현재 시세는 5억 원 중반대로, 2018년 분양 당시보다 80% 올랐다. 월세도 만만치 않았다. 20평대 월세는 1800달러(약 249만 원), 30평대는 3000달러(약 415만 원)였다. 2006년부터 대우건설이 조성 중인 신도시인 스타레이크 시티의 아파트들은 단지 외관은 물론 내부 구조와 마감재까지 최근 한국에서 지은 아파트와 똑 닮아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올해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632달러로, 한국(3만4653달러)의 7분의 1 수준이다. 부동산 세제와 거래 방식, 법 체계가 다른 한국과 단순히 비교하긴 어렵지만 경제 규모 격차를 생각하면 매우 높은 집값이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 바로 옆 빌라는 더 비쌌다. 아파트보다 대지 면적이 넓은 빌라를 선호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수요가 몰린 영향이다. 2016년 150만 달러(약 20억 원)에 분양한 빌라 1채는 현재 400만 달러(약 55억 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었다. 더 넓고 입지가 좋은 최고급 빌라 호가는 70억 원을 웃돌았다. 대우건설 현지 관계자는 “내년 분양 예정 물량에 대한 대기자가 많다”고 귀띔했다.
베트남의 토지는 국가 소유로, 개인과 기업은 건물 소유권과 토지 사용권만 가질 수 있다. 단 베트남 국민이라면 주택에 한해서는 영구적으로 토지를 사용할 수 있어 사실상 주택을 소유하는 것과 다름없다. 상속도 가능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내 집 마련에 대한 욕망 추구의 길은 열어 놓은 것이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최근 하노이 집값이 크게 오른 건 공급 부족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도시 인구가 늘고 있는데, 주택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부동산 시장도 다르지 않다. 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1주, 매매 가격은 17주 연속 올랐다. 특히 선호도가 높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과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 가파르게 집값이 올랐다.
이 역시 당분간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또 과거 집값 급등기 때 매수 시기를 놓친 수요자들이 본격적으로 내 집을 마련하고, 갈아타기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이전 정부가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을 막고 징벌적인 세금을 물리며 억눌렀던 수요가 일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며 규제를 풀어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시장에서 체감할 만한 공급 효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공사비 급등으로 서울 주요 정비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영향이 크다. 그렇다고 서울과 거리가 있는 3기 신도시와 청년 임대주택까지 더한 물량을 근거로 “공급은 충분하다”고 말하는 정부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충분한 공급의 전제 조건은 수요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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